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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구여정 50년을 총정리 하다”

기사승인 2021.09.27  16: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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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희성의 『영적 휴머니즘』, 그 충격과 샘물 ⑴

▲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는 길희성 교수의 『영적 휴머니즘』을 진리탐구여정 50년을 총정리한 책이라고 평했다. ⓒGetty Image

1. 들어가는 말: 독자반응의 한 소리

2021년 9월14일, 나는 신간서적으로서 출판되자마자 1권을 보내주신 길희성 교수의 역저 『영적 휴머니즘』 (아카넷 , 2021)을 마지막 페이지(총 867쪽)까지 정독했다. 오랜만에 약 1달 동안 집중 독서를 한 셈이다. 책의 부제는 “종교적 인간에서 영적인간으로”였다. 그런데 매우 역설같이 내겐 느껴졌는데, 같은 날 우리시대 보수적 교단의 대표적 상징인물이셨던 조용기 목사 별세소식(86세)을 접히게 되었다. 당일 ‘한기총’이 발표한 추도문 성명에 따르면 “세계적 설교가요 뛰어난 영성가”라고 압축 표현했다. 조용기 목사의 별세소식은 “모든 사람은 결국 가는 구나!”라는 충격을 내게 주었다. 동시에 나는 심정이 참 복잡해지고 답답해졌다. 참된 ‘영성가’라는 평가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길희성 교수가 위 책에서 설파한 ‘참된 영성가’의 이미지와 ‘한기총’이 말하는 ‘위대한 영성가’ 이미지가 너무나 다르고 대조적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길희성 교수의 위에 소개한 역저를 읽고 난 후 다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국교계와 신학계라는 꽃밭에 떨어진 폭탄과 같겠구나!”라고. 이 책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 찬반 논쟁을 일으키는 ‘문제의 책’이 될 것이다. 책 분량이 워낙 커서 그 책을 다 읽고서 이러쿵저러쿵 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도 든다. 책 어느 페이지 문장하나를 잡고 물고 늘어지지는 사이비 신학자나 목회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염려된다.

나는 한국 기독교계를 향하여 길희성의 이 책, 『영적 휴머니즘』(Spiritua;l Humanism)을 주목하라고 강권하고 싶다. 찬반 입장을 떠나서, 세계적 석학이 일생을 정리하는 정직하고도 용기 있는 진솔한 신앙고백적 신학담론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약 3-4회에 걸쳐 에큐메니안 인터넷 신문매체를 통해 이 역저의 소중한 가치를 독지반응 형식으로서 소개하려 한다.

2. 저자 길희성은 누구인가?

나는  길희성 교수의 독특한 생애와 사상형성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려 한다. 길희성 교수는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 그 자신이 고백하는 바처럼 그는 기독교적 신앙이 그의 신앙과 사상의 맨 밑바탕에 지워버릴 수 없는 강렬한 영적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 자신이 20대 약관 시절부터 ‘삶과 역사의 의미’ 문제에 골몰하여, 서울대 철학과 입학했고, 유학하여 예일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각각 신학과 비교종교학을 전공하여 동서 세계종교사상과 영성신학에 깊은 지식과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 길희성은, 내가 보기엔 넓은 의미에서 한국 종교에서 어느 곳이나 웬일인지 거리를 두고 경계눈초리를 보내는 ‘학문계의 광야에 선 외로운 학자’라는 평가를 하고 싶다. 그 자신은 자기가 외롭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무의도인(無衣道人)의 경지에 이미 이르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길희성은 한국 현존 신학계와 종교학에서 독보적인 대학자이다. 종교와 신학전공자로서 길희성은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평생 몸담고 강의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저서로서는 <인도찰학사>, <지눌의 선사상>, <마이스터 엑하르트 영성연구>, <종교에서 영성에로>등 20여권이 있다. 줄여 말하면, 그는 불교학, 가톨릭 신학, 개신교신학, 인도종교사상, 그리고 서구 철학적 형이상학 연구 분야에서 최고봉을 형성하는 질적으로 최상급의 대학자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다재다능한 깊은 학문적 연구업적과 배경은 장단점을 갖게 되었다. 단점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는 불교학계, 가톨릭 신학계, 개신교 신학계에서 소위 학문적으로 ‘우리캠프 학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불교, 그리스도교, 종교학계 모든 분야에서 지닌 다중적 지식과 학문적 깊이가 도리어 길희성을 ‘다른 캠프’에 속한 학자라고 밀어 내버리는 역설을 초래했다고 본다. 특히 한국 개신교계는 길희성을 그저 한사람의 종교다원주의자 정도로 보며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우리캠프’ 학자라고 따뜻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리두기’는, 도리어 그로 하여금 어떤 교권이나 정통신힉에도 얽매이지 않는 학문적 자유와 연구발표의 자유를 가지게 하였다. 『영적 휴머니즘』도 그렇게 해사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길희성 교수의 학문적 결실물들은 소위 우물안 개구리들 집단보다는 우물 밖에서 참 종교적 영성 진리에 갈증 느끼는 일반 지식인들과 시민들에게 깊은 영향과 큰 반응을 일으키는 형국이다.

특히 저자 소개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저자가 그의 생에 후반기에, 10여 년 전부터 개인의 저택을 팔아서 그 돈으로 강화도에 학문연구와 명상의 집 ‘심도학사’(尋道學舍)를 짓고서, 종교간 담을 넘어 진리를 찾고 대화하는 실천적 삶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길희성 교수(78세)의 연령으로 볼 때 이번 신간역저 『영적 휴머니즘』은 그의 학문과 영성의 총체적 결실물이다. 한국 기독교계가 마땅히 주목해야 할 책이다. 큰 충격도 주겠지만 진리의 샘물을 발견할 것이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에큐메니안

3. 이 책의 집필의도와 책의 구성

길희성은 왜 이 책을 집필했고 그 책 제목을 『영적 휴머니즘』이라고 붙였는가? 그 점을 알려면 마지막 페이지까지를 다 읽고 나면 밝혀지겠지만, 저자의 이 책 서두에 실린 ‘머리글’만 읽어도 대강 밝혀진다.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사람의 학자로서 평생을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는 화두가 있었는데 그것은 “신(하느님) 문제와 삶과 역사의 의미문제”였다고 고백한다. 두 가지는 둘이면서 서로 얽힌 하나의 문제였고, 폴 틸리히 표현을 빌리자면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었다.

길희성은 현대문명의 근본문제, 현대 종교와 철학과 신학의 핵심문제도 결국 그 문제라고 본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냉철한 회의주의적 신념을 지녔던 이반의 입을 통해 내 뱉는 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무서운 예언적 말이 오늘날 무신론적이고 생물학적 인간관만을 받아드리는 현대문명의 양육강식과 비인간적 사회의 모습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강화되어온 이성의 자율성에 기초한 세속적 휴머니즘과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처럼 무신론적이고 순수 유물론적 생물학적 인간관과 세계관도 휴머니즘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저자 길희성의 판단에 의하면 약육강식의 역사적 사회 현장에서 신문제와 삶의  의미문제가 의심을 받고 부정되면 인간존엄성, 도덕의 당위성, 인간자유와 정의의 존재론적 밑둥이 잘려진 나무 같아서 인간다운 삶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에큐메니안 인터넷 신문의 영상지면이 허락된다면, 나는 앞으로 약 4회에 걸쳐 길희성 교수의 이 심혈을 기울인 역저 『영적 휴머니즘』을 독자반응의 입장에서 소개하려 한다. 북리뷰는 아니다. 왜냐하면 900페이지에 가까운 거작을 A4용지 10장(2.5장 * 4회)에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의 독자반응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우선 첫 번째 이번글 이므로, 이 책에 대한 총체적 소감을 아래에서 몇 가지로 피력하고자 한다.

첫째, 이 책 『영적 휴머니즘』은 한국 종교학계에서 최고지성인으로 평가받는 저자 길희성 교수가 그의 진리탐구여정 50년을 총정리 하는 자기 신앙고백적 결실물이다. 단순히 외국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책 페이지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신앙한다”라고 주체적-실존적 고백을 읽을 수 있는데, 그 점은 이 책이 지닌 탁월한 매력이며 동시에 독자들과 한국 기독교계에 신선한 충격과 도전이 된다.

둘째, 이 책은 현대세계사조와 인류사상사를 꿰뚫어가면서 종교학, 그리스도교신학, 동서 철학의 형이상학을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거대한 학문적 서사시이다. 그 세 가지 영역에 필생 연구한 대학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지성의 대향연이자 문명비판서요 대안제시의 명저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있던 동서 철학적 사상, 불교와 유교의 귀중한 영적 유산, 가톨릭 신학 특히 동방정교회 신학유산, 그리고 현대 자연과학의 결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독자들의 의식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우물안 개구리들처럼 정통신학 체계와 자기종파나 철학 학파에 매몰되고 칩거하는 닫힌 실재관과 신앙관을 탈피하고 세계가 직면한 진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도록 초대받을 것이다.

셋째, 이 책이 씨름하고 있는 근본 화두는 21세기 지성인에게 걸맞는 새로운 신관과 인간관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새로운 신관은 ‘자연주의적 초자연주의 신관’이며 새로운 휴머니즘은 ‘영적 휴머니즘’이다. 전자 곧 새로운 신관 제시를 통해 저자는 전통적인 초월적 유신론, 경전 문자주의 보수신앙, 배타적 종파들의 신관, 자연과 신을 동일시하는 범신론 등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한다. 새로운 인간관 곧 ‘영적 휴머니즘’은 계몽주의 시대이후 서구사회와 근대화된 세계현실을 풍미하는  세속적 휴머니즘, 신자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유물론적이고 생물학적인 인간이해, 그리고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해버린 자율적 이성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 한다.

쉽게 말해서 길희성의 이 책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밭에 묻힌 보화”(마13:44)를 다시 찾고 “네 속의 빛이 어둡지 않은가 살펴보라”(룩11:35)는 말씀을 학술적으로 풀어낸 명저인 것이다. 물론 저자의 새로운 신관과 새로운 영적 휴머지즘이 100% 기독교 신앙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점은 뜨거운 쟁점으로 언급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연제 될 <길희성의 영적 휴머니즘 2, 3, 4>에 에큐메니안 독자들의 지속적 관심을 당부 드린다. 왜냐하면 이 책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이 너무나 본질적이고 귀중한 종교계와 신학에 내리치는 ‘죽비’(竹篦)와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신학과) soombat1940@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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