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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in ‘N포 세대’

기사승인 2021.09.15  16: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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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8월호 ⑶

▲ 수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청년세대들 ⓒYTN
이 글은 지난해 필자의 논문 “코로나 19시대, N포세대의 두려움과 혐오에 대한 윤리적 과제”를 N포세대 ‘이야기’ ‘서사’의 중요성을 토대로 재구성하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랩소디’는 음악적 장르 보다는 고대 그리스에서 이야기를 낭송하는 낭송자 ‘rhapsōdos’를 생각하며 제목으로 넣었습니다. - 저자 주

인류 역사상 역병이나 재난 앞에서 공동체는 잠재적으로 앓고 있던 약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코로나 19와 함께 시작된 지난 2년. 우리 사회는 두려움과 혐오에 사로잡혀 각자 도생을 위한 몸부림을 보였다. 특히 한국 사회 내에서 조금씩 발화했던 세대 간 혹은 특정 세대를 향한 혐오의 불씨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시절 속에서 청년들은 ‘이태원 발 코로나’ ‘할로윈 발 코로나’ ‘클럽 발 코로나’ ‘팬션 발 코로나’ 때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거리두기’ 실종의 주범으로 ‘젊으니까 괜찮은’ 청년들이 너무한다는 여론이 쏟아졌고 생각 없는 젊은 사람들의 객기가 K-방역을 무너트린다고 탄식했다. 그런데 가깝게 만나는 청년들은 ‘거리두기’ 정책에 따라 현실과 단절된 채 방에서 모니터로 소통하며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 근근이 이어가던 아르바이트조차 잠정 휴업에 들어가 결국 휴학을 하고 콜센터, 택배 회사를 찾는 얼굴로 선명하게 다가왔다.

사실, 그동안 청년세대에 관한 담론은 실업과 고용불안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포기하게 되는 연애, 결혼, 출산 등 근대적 생애과업 달성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졌고, 지금의 청년들이 과거 어느 세대보다 고학력, 고스펙을 갖추고 있지만, 낮은 고용률, 불안정 취업, 저임금, 높은 실업률, 주거 빈곤, 학자금 대출과 부채 등 사회로의 진입과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세대라는 점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현재 이들이 통과하고 있는 시대, 특히 코로나 19라는 재난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면면을 조심스럽지만 제대로 들춰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스스로를 ‘N포 세대’라고 부르며 연애, 결혼, 출산, 집, 경력, 취미, 인간관계 심지어 희망, 그리고 또 어디까지를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며 경기장을 떠나고 있는 이들의 두려움과 불안에 대해 우리 사회, 우리 교회는 얼마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왔을까?

같은 방향과 목적을 향해 질주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살았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정해진 원칙에 따라 살기 보다는 체감할 수조차 없이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정식을 적용하고 살아가고 있는 소위 밀레니얼 세대들이 포기한 것은 사회이고 공공영역이며, 삶이란 각자 사적으로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현장일 뿐이지 공공적 해결이라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사회가 해결해 주는 것을 오히려 ‘불공정한 것’이라고 불편해 한다. 누군가는 실력으로 노력해서 얻는 것을 ‘약자’라고 해서 쉽게 얻는다는 생각에 분노의 옷을 입은 혐오를 선택했다.

인문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분노와 혐오를 구분하면서 분노는 주체를 대상과 만나게 하지만, 혐오는 도망하거나 회피하면서 그 둘을 가능한 멀어지게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찌 보면 지금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그리고 부정의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체념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혐오가 동원된 것”이다. 특히 청년 세대들이 지목한 대상은 사회적 약자 뿐 아니라 자신들의 여혐 남혐, 기회균등 대학 입시 대상자, 인천공항 비정규직 보안검색 직원 등 세대 구성원들 간의 혐오로 세포 분열하듯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들은 10대의 감정적으로 취약한 시기를 보내면서 가족과 분리되어 무한경쟁 사회로 던져졌다. 대학입시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출발한 10대들은 이미 특권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구분되고 그 상황은 시기심에 불을 지폈다. 불안정한 시기 속에서 혐오집단을 설정하고 편가르기하며 끊임없이 낙인을 찍어대고 있다. 결국 쇠약해진 이들의 체념을 합리화하기 위한 선택은 구분과 분리를 동원한 ‘차별’이다. 이들은 서로를 ‘벌레’ 혹은 ‘충’이라 부르는데 익숙해 졌다. 혐오의 상징으로 발화된 이러한 호칭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성을 띠게 된 것이다.

다시 돌아가, ‘N포 세대’라는 이름 앞에 서 본다. 과연 그들이 포기한 것은 무엇일까, 3포, 4포, 5포 하나씩 늘어간 포기 앞의 숫자들은 애초에 ‘연애’ ‘결혼’ ‘출산’에서 시작되었다. 무조건 이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일자리’ 죽을 때까지 내 돈으로 살 수 없는 ‘집’이 전제가 된 상징적 용어였다. 또한 ‘포기’의 반대편에 ‘성공’이라는 짝이 될 수 없는 개념을 배치시켜 ‘갖지 못하는 것’이 ‘실패한 것’이라는 도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이 실체 없는 포기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개인과 사회의 합의로 만들어가는 ‘전제’의 전환뿐이다. ‘전제’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청년 세대들은 사회와 공적 영역에서 사라지면서 끝없는 포기의 항목들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 ‘전제’가 향해야 하는 방향인 ‘편가르기’에서 ‘함께’, ‘자기 중심’에서 ‘우리 중심’라는 ‘전제의 전환’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 속에 이미 정답은 드러나고 있다.

올해 초 노량진 공시생이었던 P는 지난해 대구로 달려가서 3개월 동안 자원 봉사활동을 했다. 의료 자격증도 없고 전문적인 역할도 맡을 수 없었지만 병원에서 간호사를 도와 배식을 하거나 폐기물을 치우고 온갖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P는 대구에서 만난 이름 없고 자격증 없는 청년들과 함께 뜨거웠던 올 여름도 봉사 활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난 6월 군을 제대한 J는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세워 둔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친구들과 여행도 영어 학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는 마당에 투덜거릴 수도 없이 방에서 컴퓨터만 쳐다보면서 지냈다. 눈치가 보여 동네 식당 아르바이트를 나갔지만 손님보다 아르바이트생들이 더 많은 탓에 일주일에 한번, 사장님 호출이 있을 때만 일할 수 있었다. 점점 손님은 줄어들고 시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아르바이트생들도 점포를 떠났다. 그런데 J는 떠날 수 없었다. 본인마저 그만두면 사장님 혼자 힘드실까봐 계속 출근을 했다. 시급을 제때 받지 못하는 날들이 많지만 J는 지금 이럴 때는 그냥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의인이라고 불리는 29세 사다리차 운전기사 청년, 그리고 ‘소확행’에서 삶의 위안을 찾는 우리 주변 청년들의 모습 속에서 어쩌면 ‘N포’ 세대들은 스스로 ‘전제’의 전환, 즉 동전을 뒤짚어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암담한 시간이었던 COVID 19 팬데믹 속에서, 우리 사회, 특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구호나 지키지 못하는 약속, 혹은 플라시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재난은 적어도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의 복잡하고 모호한 문제들 특히 경제와 이념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작용 기재가 될 수 있다”는 레베카 솔닛의 주장을 되새겨 본다. 두려움과 분노로 점철된 폐허 속에서도 “피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서 스스로 공동체의 본질을 발현하고 생존을 위해 연대를 형성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N포 세대들의 모습 속에서 ‘희망’의 이야기를 건져 낼 수 있는 가장 적실한 때가 아닐까.

참고한 자료

< 1 > 단행본 및 보고서
⦁ Nussbaum, M. C., Upheavals of Thought : The Intelligence of Emotions, Cambridge, 2001.
⦁                 , The Monarchy of Fear : a Philosophical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 NY: Simon&Schuster, 2018
⦁                  , 『타인에 대한 연민』, 임현경 옮김, 서울 : 알에이치코리아, 2020.
⦁ 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정해영 옮김, 서울 : 펜타그램, 2012.
⦁ 타파크로스, 『빅데이터로 보는 밀레니얼 세대』 서울 : 북투데이, 2017.
⦁ 이지성, “코로나 19시대, N포 세대의 두려움과 혐오에 대한 윤리적 과제” 『기독교사회윤리』 48,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2020.
⦁         , “공감의 길, 고통의 내러티브에 관한 연구”, 『기독교사회윤리 제30권』, 한국기독교사 회윤리학회, 2017.

< 2 > 온라인 자료
⦁ 김경수, YTN, 2020.12.02, "더 못 구해 너무 죄송합니다" 군포 아파트 화재 '사다리차 의인' https://www.ytn.co.kr/_ln/0103_202012021716390606, (최종검색일 2020.12.05.)
⦁ 박권일, 한겨레신문, 2016.02.11, “ 왜 분노하는 대신 혐오하는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30008.html (최종검색일 2020.09.12.)
⦁ 박은하, 경향신문, 2015.09.04,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09042059215 (최종검색일 2020.11.12.)

이지성 교수(루터대학교 디아코니아 교양대학)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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