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고대 교회 교부들의 사후세계관

기사승인 2021.08.23  21:00:22

공유
default_news_ad1

-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㉙

< 1 >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자, 그러면 재림과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기 전에 죽은 신자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심판이 시작된다면, 오래 전에 죽은 이들은 어떤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고대 교회 교부들은 ‘개별 심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모순과 대립되는 견해들을 조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집트나 페르시아 신앙에서 알려진 것처럼, 개인의 영혼의 운명은 그 사람이 죽을 때, 개별 심판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즉결주의를 뒷받침합니다.

2세기 순교자였던 유스티누스(Justinus, 100년-163년)는 선한 자들의 영혼과 악한 자들의 영혼은 서로 떨어진 지역에서 최후의 심판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시대에 저술을 남긴 시리아 출신의 교부 타티아누스(Tatianus, 110년-180년)는 영혼들이 최후의 시간까지 잠을 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세기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us, 155년-240년경)는 곧장 하늘로 올라갈 순교자들의 영혼을 제외한 모든 영혼은 서로 나뉘어 각각 차등이 있는 림보(Limbus)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림보’는 일반적으로 ‘고성소’(古聖所)로 번역되는데, 예수를 미처 알지 못하고 원죄 상태를 유지한 채 죽은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5세기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년-430년)는 두 가지 심판에 대해 말했는데, 하나는 죽음 직후에 받는 심판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 이후에 뒤따르는 심판입니다:

“영혼은 그 육체를 떠날 때 먼저 심판을 받고, 나중에 몸과 합하여 다시 심판을 받게 된다. 영혼은 자신이 머물렀던 것과 똑같은 육신 속에서 고통 받거나 영화를 누린다.”(박스)

이런 생각이 고대 그리스도교에서 더욱 활발하게 성장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권능이 막강한 정의로운 왕으로 이해한 신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배경은 순교자들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도들이 당한 공개적 고문과 참혹한 처형은 천국에서 갚음을 받아야 마땅했고, 순교자들을 박해하고 고문하고 처형한 것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응징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기원후 155년경에 발생한 기독교인 순교 사건을 증언하고 있는 ‘폴리카르포스의 순교’라는 글에 의하면,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죽어간 순교자 폴리카르포스(Polykarpos, 69년-155년)가 고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마음의 눈에는 저 높은 곳에, 인내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된 좋은 것들만 보였고… 주 하나님께서 더는 인간이 아니고 이미 천사가 된 그들에게 친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은 끔찍한 고문을 지상에서 견딘 대가로 천국에서 신적 존재로 격상해, 죽으면서 곧바로 천사가 된다는 것이지요.

3세기 중엽에 이르면, 죽는 즉시 경험할 저주받은 자들의 운명과 구원받은 자들의 영광에 대한 더더욱 생생한 간증이 등장합니다. 이 역시 기독교 박해와 순교를 맥락으로 한 글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당대 가장 유명한 순교자 중 한 명으로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200년경-258년)는 본래 이교도 출신 웅변가였는데, 246년 기독교로 개종하여, 2년 만에 영향력 있는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가 주교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데키우스 황제(249년-251년 재위)의 명으로 착수된 기독교 박해가 북아프리카를 휩쓸었습니다. 키프리아누스도 결국 258년, 후대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착수한 박해 사업의 일환으로 순교했는데, 그가 소아시아에 파견된 로마 총독 데메트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의 사후 세계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뒤 이을 응징에 대한 확신이 우리를 인내하게 합니다. … 형벌과 고문을 순순히 당하고만 있는 건 우리가 당하는 어떤 고난도 되갚음 받지 않은 채 지나가지 않을 것임을, 또한 우리가 당한 박해의 부당함에 비례하여 그 박해자들에게 실현될 응징의 정의로움과 심각함도 엄청날 것임을 확신하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교도 박해자들에 대한 응징은 어떤 것일까요? 키프리아누스는 그들이 “항시 타오르는 게헨나가 저주받은 자들을 태울 것이며, 징벌이 살아있는 불꽃으로 그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 육신을 그대로 지닌 혼들이 무한한 고문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고문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와 반대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에게 약속된 낙원은 “너도 나도 은혜를 받고, 파릇파릇한 들판에는 기름진 옥토가 연한 풀을 입고 꽃의 향을 먹고 있는 곳, 작은 과수들이 높다란 언덕을 꼭대기까지 뒤덮고, 구부러진 나뭇가지가 펼친 숲의 덮개가 만든 그늘마다 울창한 잎으로 나무가 옷 입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기독교 순교자들과 의롭게 산 자들 모두가 영원한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묘사된 낙원과 마찬가지로 매우 생태적인 공간입니다.

< 2 >

그런데 박해기가 끝나고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가종교가 되면서부터 사후세계관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믿음을 지킨 의인들은 죽은 후에 곧바로 천국으로 가고, 이교도들은 지옥의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지배적 종교로 입지를 확고히 해갈 무렵이던 4세기 말엽, 일부 기독교 저술가들은 천국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종착지가 아니며 지옥도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만 맞이할 운명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인 죄인들도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특히 자기 입으로 설파하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지 않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런 운명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축복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가 가는 곳을 묘사해서 큰 인기를 얻고 영향력을 행사한 책은 4세기 말 혹은 5세기 초엽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바울묵시록’이었는데요, 이 책은 사도 바울의 사후 세계 여행을 묘사한 허구적 이야기이지만,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년-1321년)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울묵시록’에서 묘사된 천국에서는 그리스도가 젖과 꿀의 강이 흐르고 유실수가 빙 둘러 심겨 있으며 각 나무가 연중 열두 종 열매를 맺는 이 약속의 땅에서 성도들과 함께 천 년을 지낼 것이라고 천사가 설명해줍니다. 여기서는 포도나무 한 그루 당 만 개의 송이를 맺고 각 송이가 천 알의 포도를 맺는다고 합니다. 수확량도 놀랍고 포도 맛도 환상적일 터이니, 누구보다도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비할 바 없는 낙원일 것입니다.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바울은 낙원의 반대 장소에서 신을 모르는 영혼과 죄인들이 벌을 받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경악스러운 것은 최악의 형벌 중 다수가 교회 밖의 사악한 죄인이 아닌 교회 내부에서 죄를 범한 성직자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불이 끊는 강 속에서 벌을 받는 기독교 신자들을 봅니다. 천사들은 쇠 삼지창으로 이들의 창자를 격렬하게 찌릅니다. 다른 사람은 시뻘겋게 달궈진 칼날로 입술과 혀가 지져지는 벌을 받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부글부글 끓는 타르와 뜨거운 유황으로 안감을 채운 누더기 옷을 걸치는 벌을 받습니다.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공인된 후, 세월이 흐르면서 온갖 부류의 사람이 다 섞여 든 대규모 세력으로 발전한 후대에는 신자냐 비신자냐가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가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초점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평신도보다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요구 수준이 매우 엄격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Gustave Dore, 「Illustration for Purgatorio by Dante Alighieri」 ⓒWikipedia

< 3 >

인간이 죽은 후에 맞게 될 세계에 대한 고대 교회의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논의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년-430년)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후 세계관은 그의 역작, ‘신국론’의 마지막 세 권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한 자들은 실제적 고통을 느끼면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요, 구원받은 자들은 그에 맞먹는 실제적이고 촉각적인 즐거움을 누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지옥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고문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실제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세상에서도 처벌된 범죄가 행해진 기간만큼 형벌 기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원한 벌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지은 죄의 대가로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강탈이나 살인에 대해 그 범죄가 벌어진 시간만큼만 형벌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형벌이 범죄의 흉악함에 따라 달리 주어지는 것처럼, 벌은 영원히 지속되겠지만, 그 정도는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신국론’ 22권을 축복받은 자들이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서술하는데 할애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세부 사항은 거의 안 나오고, 그저 영원토록 하나님을 우러르며 숭배하면서 지낼 거라는 얘기만 나옵니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모든 이해의 수준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하늘나라에는 어떤 악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진정한 평화만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입어 영원히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저주받은 자들이 경험할 영원한 고문이든 아니면 구원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한 황홀경이든 오직 세상이 종말을 맞고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이루어질 때 일어날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도 바울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종말이 오기 전에 죽는 사람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일까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신학의 핵심을 명료하게 정리한 ‘엔키리디온’(421년, 신앙요강)에서, 한 사람의 ‘사망과 최종 부활 사이에 그의 영혼은, 육의 상태로 살았을 당시 스스로 얻은 명운에 비추어 각 영혼이 응당 받아야 할 바에 따라, 숨겨진 휴식의 장소 또는 징벌의 장소에 거류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망과 부활 사이의 막간에 특정의 공간에서, 상 또는 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사후 세계관은 이전까지 논의된 그리스도교 사후 세계관을 수렴한 것이고, 그 후 서방 교회의 중세기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그 후에도 끝내 풀지 못한 수많은 논점들이 계속 제기되었습니다. 그 논점들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연옥’(煉獄)에 대한 교리입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만일 죽는 즉시 의로운 신자들은 구원받고, 악한 자들은 저주받는다면, 그 둘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인가? 완벽히 구원받을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정죄/淨罪)은 없는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교리적 해답을 ‘연옥’ 교리가 제시한 것인데, 사실 ‘연옥’(Purgatory)이라는 용어 자체는 12세기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졌고, 연옥 개념은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가 열린 후에야 기독교 공식 신경의 일부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전통에 있는 개혁교회는 ‘연옥’ 교리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연옥’ 교리는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려고 하는 것은, 연옥 교리가 남긴 전통 가운데 하나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 성만찬에서 성체를 받을 때,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려야 하고 특히 그들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들이 연옥에서 정죄의 고통을 받고 있는 망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이 개념은 사실 2세기 경에 이미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초기 원전들에 여자와 여자의 기도가 갖는 힘에 초점을 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여성들의 기도가 힘이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 같습니다.

연옥 교리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해석은 유명한 중세사학자인 자크 르 고프가 쓴 ‘연옥의 탄생’과 ‘돈과 구원’이라는 책을 참고할 수 있는데요, 르 고프는 연옥 교리가 순수하게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관심에서만이 아니라, 중세 교회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시각에서 해석했습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