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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곁의 예언자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다

기사승인 2021.08.05  16: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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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역사 알기 ㊷

왕정시대 예언자들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쭉 살펴보면, 왕들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예언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를 선포했던 이들의 모습을 대부분의 예언자에 중첩시켜 그들의 이미지를 그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같은 모습의 예언자가 아니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0장 5-6, 10-12절」에 나타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사울’이 만난 예언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예언자가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며 신내림을 받아 예언을 말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신접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상 10장」이나 「사무엘상 10장 12절」과 똑같은 속담이 등장하는 「사무엘상 19장 19-24절」을 보면 이런 예언자의 모습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들은 당시 사회 속에서 당연히 있음직한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반면에 「사무엘상 28장」에 나타난 ‘신접한 여인’은 글의 맥락상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사실 그녀에 관한 설화 자체에서 그녀가 부정적인 이미지인지는 모호합니다. 그녀는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무엘’의 영을 불러낸 이후에 어떠한 벌도 받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모든 책임을 ‘사울’에게 돌리는 역사가의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사무엘상 28장 10절」에는 ‘사울’이 그녀에게 벌이 돌아가지 않도록 맹세하는 장면이 나타나는데, 결국 ‘사울’은 그가 고민하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그녀의 벌을 대신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와 신접한 자는 분명하게 구분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그녀를 예언자와 똑같이 볼 순 없습니다. 「사무엘」에서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예언하는 사람과 영을 불러내는 사람은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10장」에 나타난 예언자들이 야훼 예언자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영을 불러내는 사람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무엘」은 이 두 부류를 확실히 구분합니다.

「사무엘」과 「열왕기」에 나타난 ‘예언자’로 불리는 모든 사람에 대해 따져보면서 어떤 이들이 ‘예언자’라고 불렸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만, 이들 전반에 관해서는 그 흔적이 성경 안에 너무 산발적으로 흩어져있고, 그들의 역할이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체 예언자 집단에 대해서 살펴보는 작업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왕 옆에 있었고, 이름이 나타난 몇몇 예언자에 집중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정권을 바꾼 예언자들

예언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왕실 정치에 개입합니다. 왕이 무엇인가를 잘못했다고 지적하거나, 전쟁에 나가도 된다 또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치에 개입하게 됩니다. 이런 예언자의 모습이 저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언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을 넘어서 정권을 바꾸는데 동참한 예언자들도 있습니다. ‘아히야’와 같이 새로운 왕국을 세우는 데 동참한 예언자도 있고, ‘나단’과 같이 ‘다윗’의 아들 중 한 명을 지지하여 왕으로 만든 예언자도 있습니다. 먼저 이런 예언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무엘, 왕의 위의 예언자

왕정의 시작에는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을 예언자라고 불러야 할지 제사장이라고 불러야 할지 사사라고 불러야 할지 모호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예언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20절」도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서 ‘여호와의 선지자’였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웠고, 그와 갈라진 이후에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처음 왕을 세운 예언자이면서 그 왕을 바꾸는데 일조한 예언자이기도 합니다. ‘사울’ 통치 후반부에 ‘사무엘’과 갈라섰다는 이야기는 이미 몇 차례 드렸습니다. 또 사무엘은 너무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후에 ‘아히야’를 살펴보기 위해서 ‘사무엘’과 실로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무엘’에 관한 전승을 따지는 학자들은 세 사람의 ‘사무엘’이 있다고 말합니다. 실로의 ‘사무엘’, 미스바의 ‘사무엘’, 라마의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상 1-3장」의 무대는 실로입니다. 하지만 실로가 무대였을 때 ‘사무엘’은 그곳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2장 11절」까지는 ‘사무엘’의 탄생 설화이고, 「사무엘상 2장」의 나머지 부분은 실로의 제사장 ‘엘리’ 집안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무엘상 3장」은 ‘사무엘’의 소명 설화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사무엘’을 부르셨다는 점보다 ‘엘리’ 집안을 버리셨다는데 이야기가 집중됩니다.

▲ Joshua Reynolds, 「유년기의 사무엘」 (1776년)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1792)가 1776년에 그린 ‘유년기의 사무엘’입니다. 아마 「사무엘상 3장」에 나타난 ‘사무엘’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으로 보입니다.

어떤 학자는 ‘사무엘’이 본래 실로와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합니다. 「사무엘상 1장」에 나타난 탄생 설화는 예언자의 탄생 설화보다는 왕의 탄생 설화에 가깝기 때문에 ‘사울’의 설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무엘상 1-3장」에 나타난 전승이 누구의 전승인지와 상관없이 ‘사무엘’의 활동은 실로에서 벗어난 이후에 시작됩니다.

「사무엘상 3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지만, ‘사무엘’이 실로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이후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실로에서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고, ‘엘리’ 밑에서 교육을 받았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적어도 ‘사무엘’은 자신의 활동을 시작할 때에 실로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4장」에 나타난 ‘사울’과 블레셋의 전투 이야기에는 실로의 제사장 ‘아히야’가 등장합니다. 이 전쟁을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일어난 전쟁으로 보는 학자도 있긴 하지만, ‘사울’은 최소한 통치 초반까지 실로 제사장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울’과 ‘사무엘’이 갈라서게 된 이유는 ‘사울’이 실로 제사장 집단과 가까웠고 그들을 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울’ 이후에 ‘사무엘’의 지지를 받은 ‘다윗’은 실로에 있던 상징물인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옮김으로 실로에 있던 모든 권력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옵니다. ‘다윗’의 이 행동이 실로의 제사장 집단과 어떤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실로가 종교적 상징물이자 권력 유지의 상징이었던 언약궤를 잃었고, 그것이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사무엘’은 예언자일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며 사사였기 때문에 그가 왕권 교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왕이 세워지기 이전 시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단, 왕을 꾸짖다

정권 교체에 영향을 미쳤던 두 번째 인물은 예언자 ‘나단’입니다. ‘나단’은 「사무엘하」에서 「열왕기상」까지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모호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그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이후에 등장합니다. 그의 첫 등장은 「사무엘하 7장」으로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말하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단’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조금 애매합니다. 일반적으로 저희가 생각하는 예언자는 성 밖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왕이 있는 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7장 3절」에 나타난 ‘나단’의 모습은 왕의 신하 중 한 명처럼 묘사됩니다. 그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말을 들은 ‘나단’은 처음에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라고 대답합니다.

‘나단’은 ‘사무엘’과 같이 자신의 거처에서 살면서 왕에게 찾아가 예언을 선포했던 예언자들과는 다릅니다. 그는 성안에 살았거나 성에 출퇴근했을 것입니다. 훗날 ‘솔로몬’이 왕권을 잡은 이후 ‘나단’의 아들들이 지방 장관과 제사장이 되었다는 점, 그 아들 중 ‘사붓’은 ‘솔로몬’의 벗으로 표현되는 점을 본다면 그랬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나단’은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고 그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어디 출신인지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그가 예루살렘 수도 이전 뒤에 나타났다는 점, ‘사독’과 함께 ‘솔로몬’을 지지했다는 점을 들어서, 그가 점령 이전의 예루살렘 출신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제사장 ‘사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족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단’과 ‘사독’은 여부스족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사울’의 신하 중에도 에돔 사람 ‘도엑’이 있었다는 점을 본다면, 예루살렘에 살았다고 무조건 여부스족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느 족속인지, 이스라엘 사람이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나단’과 ‘사독’은 점령 이전의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인물들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루살렘 출신 여성이 낳은 ‘솔로몬’을 지지합니다. 「사무엘하 12장 24-25절」에서 ‘나단’이 ‘솔로몬’의 이름을 지어준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경쟁자였던 ‘아도니야’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입니다(삼하3:4). 어떻게 보자면, ‘솔로몬’과 ‘아도니야’의 왕위 다툼은 헤브론 집단과 예루살렘 집단의 대결이었습니다. 이 싸움은 결국 예루살렘 집단의 승리로 끝났기에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때 권력을 잡지 못한 제사장 ‘아비아달’을 실로와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런 연결은 후대에 첨가된 내용으로 보입니다. 만약 ‘아비아달’의 할아버지 ‘아히둡’이 「사무엘상 14장 3절」의 진술에 나타난 ‘엘리’ 손자이며 ‘이가봇’의 형제라고 보고, ‘아비아달’의 아버지 ‘아히멜렉’이 ‘아히야’와 같은 인물이라고 본다면, 그가 실로 출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래 활동했던 지역은 놉이었고 그의 고향은 아나돗이었습니다. 놉과 아나돗은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해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실로는 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아히둡’이라는 이름으로 이 둘을 묶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열왕기상 2장 27절」을 더 신뢰하여 ‘아히멜렉’과 ‘아히야’가 같은 사람이라고 본다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그려집니다. ‘사무엘’은 그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실로 제사장 집단과 결별합니다. 어쩌면 ‘사무엘’은 실로와 처음부터 관계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재위 초반에 실로 집단을 중용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사무엘’과 ‘사울’이 갈라서게 되었고, ‘사무엘’은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선택하고 지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사울’ 역시 실로 집단과 결별하게 됩니다. 만약 놉의 제사장들이 실로 제사장 집단을 계승하고 있거나 같은 집단이었다면, 이런 결별의 계기는 그들도 ‘다윗’을 지지했다는 점과 ‘사울’이 이로 인해 그들을 학살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실로 집단에서 살아남은 인물인 ‘아비아달’은 ‘다윗’과 함께 했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 이후 예루살렘 출신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실로 집단은 다시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권력을 잡은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추방합니다.

이는 ‘아히멜렉’과 ‘아히야’가 동일 인물이며 아나돗 또는 놉의 제사장 집단이 실로 제사장을 계승하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보았을 때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이 실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부족합니다만, 실로라는 지역이 어째서인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 ‘나단’은 분명히 다른 예언자들과는 다릅니다. 「사무엘하 12장 1-15절」에 나타난 ‘나단’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왕을 꾸짖었고, 선포가 끝난 후에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이후 예언자들과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이것이 후대 역사가에 의해 편집된 장면이라고 말합니다.

일부 학자는 「사무엘하 12장 1-25절」에 나타난 상황, ‘나단’이 ‘다윗’을 꾸짖고, ‘다윗’은 회개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벌을 주셔서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었고, 그 보상으로 ‘솔로몬’을 낳게 하셨다는 상황이 ‘다윗’과 ‘나단’에 의해 연출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며, 더 나아가 ‘밧세바’가 지금 낳은 아이가 ‘우리아’의 아이가 아니라는(어쩌면 그것을 감추기 위한) 쇼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현대 정치판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는 해석이기는 합니다만, 이를 증명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 Eugène Siberdt, 「다윗 왕을 꾸짖는 예언자 나단」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유진 시베르트(Eugène Siberdt, 1851-1931)가 그린 ‘다윗 왕을 꾸짖는 예언자 나단’입니다. 권위적인 모습으로 ‘다윗’을 꾸짖고 있는 ‘나단’의 모습과 이를 듣고 있는 ‘다윗’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윗’이 회개하는 모습이 아닌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만약 앞선 해석이 가능하다면, ‘나단’은 ‘다윗’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예언자였고, 이런 해석에 기대지 않는다고 해도, ‘나단’은 왕 앞에 나가서 왕을 꾸짖을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실로 사람 아히야

세 번째 인물은 새로운 왕국을 탄생시키는데 기여한 인물입니다. 바로 「열왕기상 11장 26-40절」과 「열왕기상 14장 1-18절」에 나타난 예언자 ‘아히야’입니다. ‘아히야’ 역시 「열왕기상 11장」에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열왕기상 11장 29절」은 그가 실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아히야’가 앞서 「사무엘상 14장」에 나타난 제사장 ‘아히야’와 다른 인물이라는 점은 굳이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시대가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엘리’의 증손 ‘아히야’가 장수하여 ‘여로보암’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가 실로 출신이라는 점과 ‘엘리’의 증손 ‘아히야’와 같은 이름이라는 점은 이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느끼게 만듭니다.

‘아히야’는 ‘솔로몬’의 국가가 둘로 나눠질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10개의 지파를 ‘여로보암’의 손에 맡깁니다. 「열왕기상」에 나타난 모습만을 본다면, 그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전령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여로보암’이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지지한 예언자였습니다.

▲ Gerard Hoet, 「여로보암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 (1728)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제라드 호에(Gerard Hoet, 1648-1733)가 1728년에 그린 ‘여로보암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입니다. 하단부에 여러 언어로 써있는 문구는 전부 같은 뜻으로, 이 작품의 제목입니다.

여기에서 그가 실로 출신이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앞서 실로 집단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그 시나리오가 어느정도 맞는 부분이 있다면, ‘아히야’가 ‘여로보암’을 선택한 이유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에 의해 잃어버린 실로 집단의 힘을 되찾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히야’의 지지가 ‘여로보암’의 안전을 책임져 줄 수는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40절」은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다”고 말하는데, ‘이러므로’가 의미하는 것은 ‘아히야’의 예언 선포가 아니라 아마 ‘여로보암’의 반란이었을 것입니다. ‘아히야’의 인정을 받고 지지를 받은 ‘여로보암’은 어떤 방식으로건 ‘솔로몬’을 향한 반란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란은 실패로 이어졌고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히야’의 지지를 업고 일으킨 반란이 실패했기 때문인지 ‘여로보암’과 ‘아히야’의 관계도 이 이상 유지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후 ‘여로보암’이 펼친 종교 정책이 실로 예언자 ‘아히야’의 생각과 같았다면, 「열왕기상 14장」에서 ‘여로보암’의 아내가 정체를 숨긴 채 ‘아히야’를 찾을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펼친 종교정책, 레위인이 아닌 어떤 사람이라도 제사장으로 세우는 정책과 실로가 아닌 단과 벧엘에 제단을 쌓은 일은 ‘아히야’를 비롯한 실로 집단의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여로보암’에 대항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열왕기상 14장 6-16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여로보암’을 향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일 정도였을 것입니다.

실로를 둘러싼 집단 갈등

왕정 시대 예언자로 불리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보면서, 초기 왕정 시대를 보게 되면 그 시대에 있었던 권력 다툼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권력 다툼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다윗’과 함께했던 ‘갓’이 있고, ‘르호보암’ 옆에는 ‘스마야’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예언자의 모습을 보인 이들입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무엘’, ‘나단’, ‘아히야’는 권력이 이동하는 한복판에서 특정한 인물을 지지하며 활동했습니다. ‘사무엘’은 왕정 이전 시대에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지지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단’은 자신의 지지세력이 결국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아비아달’과 같은 운명을 겪지 않고 ‘솔로몬’의 왕실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아히야’의 경우는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았을 때, ‘여로보암’의 반란에 조심스럽게 동참했지만, ‘솔로몬’의 눈에는 띄지 않게 활동했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1장」에는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고 권위 있게 선포하는 모습이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비밀리에 ‘여로보암’과 접촉했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1장 29절」은 그들이 길에서 만났고, 두 사람만 있을 때에 ‘아히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세 사람의 예언자 중에서 ‘아히야’만 목숨을 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 세 사람 다 자신이 지지하던 인물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 실로라는 지역이 연결됩니다. 특정 인물을 실로와 관련있는 인물로 연결시켜 놓은 것은 후대 역사가의 편집일 수 있지만, 실로는 초기 왕정 이전부터 ‘솔로몬’ 시대까지 상당히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고, 그곳에 있던 제사장 또는 예언자 집단도 적지 않은 권력을 갖고 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실로가 「사무엘-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 집단의 시대에까지 권력을 갖고 있었고, 후대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역사서에 이런 내용을 첨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미 남왕국 유다 말기에 예언자로 활동했던 ‘예레미야’가 실로가 붕괴되었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렘7:12-15; 26:6-9 참고). 「열왕기」에서 ‘아비아달’을 통해 실로와 연결된 아나돗의 예언자 ‘예레미야’만이 실로를 언급한다는 점도 아이러니이긴 합니다만, 실로는 과거에 중요 성소로 역할을 하다가 그 역할을 상실했고, ‘예레미야’ 시절에는 이 사실이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은 확실해 보입니다.

초기 왕정 시대의 기록에서 예언자나 제사장이 실로와 연결되어 나타날 때 그곳에는 정권 교체를 위한 활동들도 함께 나타납니다. 이런 모습을 본다면, 왕의 옆에 섰던 예언자들이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만 수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을 어디까지 분리해낼 수 있을지 확답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활동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예언자가 그런 활동을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언자들의 이런 모습은 초기 왕정 시대 이후 거의 보이지 않게 됩니다. 또 ‘나단’과 같이 왕 옆에 상주하는 예언자, 소위 궁중 예언자라 불리는 이들의 모습도 초기 왕정 이후 「사무엘-열왕기」 안에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초기 왕정 시대가 지나고 분열 왕국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언자보다는 제사장 집단이 왕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엘」과 「열왕기」는 히브리어 성경 구분에 따르면 ‘예언서’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를 읽어가면서 왕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가운데 당시 권력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분열 왕국 이후의 예언자들에게서 이렇게 직접적인 권력 이동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다음 글에서도 「열왕기」에 나타난 예언자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너무 유명한 예언자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보다는 잠깐씩 등장하지만 「열왕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예언자들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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