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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디에도 ‘이대녀’ 현상은 없다”

기사승인 2021.08.04  17: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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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7월호 ⑴

▲ 여성의 위치를 제한함으로 여성 차별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Getty Image
언제부터인가 매달 한두번씩 모여 그 달의 <사건과 신학> 주제를 선정하고 누가 글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 인지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단골주제가 있었다.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제목을 보아하니 무엇인지 알겠다 싶으실 것이다. 바로 ‘청년’이 그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청년을 이야기하는 수식어들을 열거해보면 그들의 신산한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애와 출산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이름표가 붙더니,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은 영혼까지 끌어내야만 주거를 장만할 수 있는 세대가 청년세대라고 한다. 매달 주제로 거론될 만 하다.
하지만 사건과 신학은 선뜻 청년을 주제로 선택할 수 없었다. 변명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저런 평가가 청년들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확신이 서지 않아서이기도 하며, 동시에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해서 분석하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른 일일까?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그러는 동안 미디어와 정치권은 청년취업문제, 청년빈곤문제, 청년주거문제 등등 청년들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왠지 미디어와 정치권이 정말로 청년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은 우리들만의 의심이었을까? 미디어와 정치권은 얼마전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을 승리로 이끈 주체로 20대 남자 청년들을 꼽고, 그것을 소위 ‘이대남 현상’이라 불렀다. 또 그들이 소위 ‘안티-페미’경향을 보이며 현 정권의 성평등 정책을 심판하기 위하여 정치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이 정말 그 현상을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분석인지 의심하는 것은 우리만의 생각일까?
그렇게 두세 달 정도를 흘려보냈나보다. 이제는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이 문제를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기로 했다. 30대 청년이 야당의 대표가 되고, 20대 청년이 대통령 비서관이 되었다지만 청년세대(우리는 아직도 그 청년세대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라는 이들의 미래가 희망에 차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더 이상 고민해도 뚜렷한 답을 찾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정작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사자에 해당하는 이에게도, 또 그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로 나선 그들의 선배들에게도 글쓰기를 부탁했다. 그렇다. 이번 달 <사건과 신학>은 그저 듣는 소리가 될 것이다. 그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사건과 신학> 편집팀

‘젠더갈등’은 기성 정치 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써 재생산 및 재현된다. 젠더갈등을 청년세대 특유의 담론으로 국한시킴으로써 젠더갈등의 큰 맥락을 제거해버리고, 그것을 청년세대 내 남성과 여성 간의 성별 갈등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특히 2040청년 남성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젠더갈등 프레임을 이용한다. 이러한 양상은 젠더갈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젠더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키고 왜곡한다. 특히 이것은 청년 여성을 어느 담론에도 끼지 못하게 이중배제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대남 현상’, ‘이준석 현상’, ‘젠더갈등’. 이러한 표현들이 사람들의 일상 대화로부터 나왔을 리는 만무하다. 이 담론들은 주로 주류 언론과 기성 정치 세력에 의해 거론되고 있다. 언론은 20대 남성의 정치성향 및 투표 결과와 청년 이준석이 국민의 힘 당대표가 된 것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현상화 했다. 즉 20대 남성이 ‘여성 친화적’인 현 정권의 정책에 반감을 표하며 이탈하여 보수 정치 세력으로 합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호명하는 ‘이대남’은 반(反)페미니즘 남성 연대다. 특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20대 남성이 ‘이대남’을 대표한다. 이들은 남성을 피해자, 여성을 차별의 가해자로 정의하며 ‘역차별 담론’을 형성한다. 기성 정치 세력은 피해자 정체성을 내새우는 ‘이대남’의 정서를 이용해 청년 남성들의 표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젠더갈등을 부추긴다. ‘이준석 현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기성 정치 세력은 청년 남성층의 표를 흡수하기 위해 여야 할 것 없이 ‘이대남’이 어필하는 약자성에 당위성을 실어주면서 젠더갈등 담론을 재생산해 나간다.

기성 정치 세력이 젠더갈등을 청년세대의 전유물로 재현하는 것은 청년세대가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은폐한다. ‘청년 빈곤’,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 ‘불안정한 고용’, ‘청년 주거 문제’ 등 소위 ‘이대남’—특히 사회적으로 낙오된 20대 남성이 과잉 대표되는—이 느끼는 피해의식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도록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다. 이들이 재현하는 젠더갈등 프레임에서 ‘이대남’의 시선은 ‘집단이기주의를 표방’한다고 비춰지는 ‘요즘 청년 여성들’에 꽂힌다.

‘이대남’의 피해의식과 분노는 여성혐오로 분출된다. 애당초 얼마 주어지지 않은 파이(pie) 보다는 그 파이마저 나눠 가져야 하는, 아니 그것마저 ‘빼앗으려는’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문제시된다. 이들이 봤을 때 ‘이대녀’는 과거에 비해 차별경험이 없는 위풍당당한 20대 여성인 것이다. 이것은 청년세대가 동일하게 겪는 구조적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청년세대 간의 싸움을 조장한다. 성공은커녕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청년세대가 처한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기성 정치 세력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이대남’의 약자 정체성에 힘을 실어주는 정치담론으로써 젠더갈등을 재현하는 것이다.

사실, 청년세대가 동일한 구조적 문제를 겪는다고 말할 수 없다. 청년세대 담론에서 청년은 청년 ‘남성’을 표준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청년세대가 직면한 어려움은 곧 청년 남성이 직면한 어려움이다. 요즘 청년세대는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 세대’로 불리는데, 이 N가지에는 청년 여성이 겪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출산 및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일상적 불안과 두려움, 가부장적 가족제도로 인한 갈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어려움은 청년의 문제가 아닌 ‘여성’의 문제로 주변화 된다.

청년 여성은 ‘청년’으로 인식되기보다 ‘여성’으로 인식되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적인 차별을 받는다. 젠더갈등은 물론 청년세대 담론에서조차 청년 여성은 이중배제되는 것이다. 젠더갈등 프레임에서 집중조명을 받는 것은 청년 남성의 내래티브와 분노다. 이것이 바로 ‘이대녀’ 현상이나 ‘류호정 현상’이 없는 이유다. 청년세대 담론 어디에서도 청년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든 청년세대 담론은 청년 ‘남성’ 중심으로 생산된다. 이것을 생산하는 주체는 그 역시나 ‘남성’ 중심의 언론과 기성 정치 세력이다.

나, 만 31세, 기혼, 청년, 여성, 전도사. 매일같이 직장상사에게 남편 밥상은 잘 차려주냐는 질문을 받는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여성 대상 성범죄 사건을 접하며 나 또한 표적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떤다. 매일같이 내 직장 동료, 친동생, 아는 언니, 아는 동생, 친구, 그리고 동기들이 겪는 성차별∙성범죄 일화를 들으며 분노한다. 교회와 신학교마저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매일같이 절망한다. 이런 나에게 ‘이대남’ 현상? ‘이준석 현상’? ‘젠더갈등’? 기가 찬다. 누가 ‘이대남’ 현상이라고 명명하고, 누가 ‘이준석 현상’이라고 명명하고, 도대체 누가 ‘젠더갈등’이라고 명명하는가? 모두 여성 발화자를 철저히 배제한 표현. 신물이 난다.

참고문헌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0). 청년관점의 ‘젠더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협동연구총서, 1-530.
• 허성학 (2020). ‘20대 남자 현상’이 던지는 질문—청년세대의 계급적 조건을 담론화하지 못하는 정체성 정치에 대하여—. 진보평론, (85), 244-275.
• 최종숙 (2020).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성향과 젠더의식 비교를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189-224.

신혜은(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문화윤리)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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