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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주권이 메타버스 속 MZ세대까지!(사 29:13-24; 행 8:4-13; 막 1:21-28)

기사승인 2021.07.29  22: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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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강림 후 열째주일(8월1일)

1.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두 주간의 세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제대로 된 세상과 사회의 권세에 순종하며, 이러한 세상 속에서 교회와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공동체, 그러한 사람임을 배웠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경쟁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와 개인은 놀라운 기적의 사건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에서 가버나움 사람들이 그 놀라운 사건을 경험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가르침에 놀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볼까요?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 1:21-22)

예수님의 말씀이, 그 당시 말씀을 연구하는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 있는 자와 같았다고 합니다. 서기관은 종교 경전의 말씀을 옮겨 적는 사람입니다. 경전의 전통에 서 있으므로, 기존 종교 전통의 계승자입니다. 그런데 이들 서기관과 같지 않았다는 말은 기존 종교 전통과 다르다는 말입니다. 권위 있는 자와 같다고 하죠? 권위 있는 자는, 그의 말이 바로 새로운 전통이 되는 자입니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과 권위가 어디까지 펼쳐지냐면, 바로 귀신 들린 자들에게까지 나아갑니다. 자기희생적인 삶의 새로운 전통이 현실 세계를 넘어 영적인 세계, 신비의 세계로까지 이어집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마술사 시몬의 세계까지도 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러한 세계에 관한 말씀이자, 그 세계를 그리스도의 주권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확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통해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내쫓아 영적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전통을 소개하고,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는 초대 교회 집사인 빌립을 통해, 마술사가 지배하는 세계를 그리스도의 주권으로 지배하는 표적과 큰 능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강포하고 오만했던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어, 혼미한 마음이 총명하게 되고, 원망했으나 새로운 교훈을 받아 새롭게 변화되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나가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저는 오늘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 메타버스(Metaverse)에까지 하나님의 표적과 능력이 나타나야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메타버스란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사실상의 종착점인 ‘메타버스’는 온라인 속 3차원 입체 가상세계에서 아바타의 모습으로 구현된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돈을 벌고 소비하고, 놀이와 업무를 보는 등 현실의 활동을 그대로 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주권과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먼저 이 현실 세계와 영적 세계를 지배하고, 나아가 인간이 기술로 구현한 메타버스 세계에까지 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3-24)

더러운 귀신도 예수님께서 만드시는 자기희생적인 새로운 전통을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고백합니다. 악은 선을 이길 수 없고, 어둠은 빛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몰아내십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 1:25-27)

사람들은 이것을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새 교훈에 귀신들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실, 공관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은 대부분 병자 치유 사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막 1:32-34; 마 8:16-17; 눅 4:40-4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병자 치유 사역과 귀신 축출 사건을 병행하셨습니다(막 1:39; 마 4:23; 눅 4:44).

2. 병자 치유 사역과 귀신 축출 사건의 의미

이런 병자 치유 사역이 한국교회의 경우에는, 성령 운동이 일어나면서 신유(神癒, 신적인 힘으로 병이 치료되는 것) 은사와 연결돼,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부흥회, 사경회, 기도원 운동 등 대부분의 교회 행사가 신유 은사로 귀결됩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당시의 신앙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단에도 성풍회가 있어, 다시금 성령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신체 치료 차원에 머물렀다면, 예수님은 그 시대 널리 활동하던 치료자 중 한 사람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시몬과 같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귀신 축출 사건의 근본적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곧 ‘질병’과 ‘질환’, 그리고 ‘치료’와 ‘치유’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고대 사회에서 병듦과 건강 회복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했는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2020년 9월 5일 열린 2020 제5회 헤븐리터치 미니스트리(대표 손기철 박사, 이하 HTM) ‘성령과 하나님 나라 심포지엄’에서 침신대 김광수 교수는 ‘주 예수의 공생애에서 복음 선포와 치유 사역’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질병(disease)이 생의학적 용어라면, 질환(illness)은 사회문화적 시각을 반영한다. 질병이 개인적이라면, 질환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성을 갖는다. 치료는 질병과, 치유는 질환과 관계된다. 치료(curing)가 질병을 검사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병듦에 의해 야기된 개인적·사회적 삶의 문제를 포함하는 사회문화적 시각을 반영하는 ‘질환’은 치유(healing)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현대의학적인 시각에서, 질병은 병원에서 치료해야 하고, 질환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치유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료의 문제를 넘어, 복지와 정책 그리고 관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질병은 병리학적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지만, 질환은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찾아 치유하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질병, 곧 병듦을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질병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질환의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질환의 시각에서 병듦은 병자 자신은 물론, 그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여러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불행의 구체적인 실제 사건입니다. 김광수 교수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질환으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병듦의 증상을 파악하고 분류하며 그것이 개인과 집단에 주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 혹은 그 증상을 어떻게 의미 있는 삶으로 연결시키는가를 발견하는 데 일차적 관심을 둔다.”

따라서 예수님의 병자 치유 사역은 ‘단순한 질병 치료’가 아니라, ‘복합적인 질환 치유’ 사역입니다. 그 목표는 일차적으로 억압적이고 비인간화된 사회-종교적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 비인간화의 틀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병듦과 관련해 형성된 유대교 사회의 상징적 질서, 곧 그 사회의 대중적 인식과 치유 체계에 대하여 도전하셨고, 권위자들에게 도전하며 심각하게 대립했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서기관과 같지 않고, 새 교훈이라고 놀라워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성경의 예를 들어볼까요? 예수님은 ‘나병 환자 치유(막 1:40-45)’를 통해 ‘거룩함’에 관한 율법의 근본 의도를 알지 못한 제사장들을 비판하셨고, ‘중풍 병자 치유(막 2:1-12)’를 통해 유대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확립해온 전통적 ‘정결 체계’를 비판하셨으며, ‘혈우병 걸린 여인 치유(막 5:25-34)’를 통해서는 유출병에 대한 유대교의 ‘정결 체계’에 도전하셨습니다. 특히 이 치유 사건은 남성 중심의 유대교 정결 사회로부터 여성을 총체적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놀랍고 새로운 구원 사건입니다. 김광수 교수의 말을 좀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들의 희생적 사랑을 토대로,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 속에서 구현된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공동체에서는 인종과 계급과 성별의 차별이 없다. 예수님은 유대교 정결 체계가 냉대와 경멸과 비인간화를 안겨다 주는 불행의 근원으로 작용함을 보셨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신체적 병듦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물론, 그 병듦과 관련된 불의하고 억압적인 사회-종교적 문제를 해결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영적 회복과 심리적 회복도 함께 주시는 근원적이고 다면적인 해방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막 1:28)”게 되었습니다.

3. 빌립의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예수님의 소문은, 이후 초대 교회의 소문이 되어 온 땅에 널리 퍼집니다. 교회가 급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성장을 바라보는 유대교 지도층은 이것을 수수방관만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스데반 집사를 잡아 죽였고, 유대교 소속이면서 오늘날 공안검사에 해당하는 변화되기 전 바울, 곧 사울에 의해 교회 박해가 가중되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와 집사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 말씀은 빌립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4-8)

▲ 빌립과 마술사 시몬

빌립이 행하는 말과 표적을 보고 많은 무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교훈, 새로운 전통, 새로운 진리로 가치관을 전환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 교훈은 미술사인 시몬의 세계관까지 침노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행 8:9-13)

4. 복음의 능력이 메타버스까지!

이렇게 그리스도의 주권과 하나님 나라는 못 미치는 곳이 없습니다. 현실 세계, 영적 세계, 그리고 마술사의 세계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비대면 온라인 시대를 맞아,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가 큰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는 어떨까요? 현실과 영적 세계가 아니니, 우리 신앙과 선교적 사명과는 상관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에 변하는 시대에 복음을 상황에 맞게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금 어려울 수 있겠지만 메타버스에 관해 좀 더 살펴볼까요?

비영리 기술 연구 단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은 메타버스를 ‘증강과 시뮬레이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합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일상기록(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가 그것입니다.

▲ 메타버스의 주요 용어

먼저 증강현실은 이런 것입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책에 있는 마커를 찍었더니, 책 위에 움직이는 동물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증강현실 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자동차 앞 유리에 길 안내 이미지가 나타나는 HUD(Head Up Display)도, 2016년 출시된 비디오 게임 포켓몬고(Pokémon GO)에서 포켓몬을 스마트폰으로 잡는 것도 모두 증강현실이라는 메타버스입니다.

일상기록, 곧 라이프로깅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상을 가상의 공간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물론 TV프로그램 <인간 극장>이나 <나 혼자 산다>를 보는 것 역시 다른 사람의 라이프로깅을 살펴보는 것이겠죠.

거울세계는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로 원격수업이나 원격회의를 해보셨다면 거울세계라는 메타버스를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역예배를 비대면으로, 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드린 것이 바로 거울세계입니다. 배달의민족(배민)으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네비게이션의 안내로 운전을 했다면 그것도 거울세계라는 메타버스를 경험한 것입니다. 거울세계는 현실을 거울과 같이 온라인에 반영한 세계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플레이어원>(2017)이나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1999)를 보셨다면, 가상세계라는 메타버스를 이해한 것입니다. 현실과 다른 새로운 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죠? 영화 <아바타>(2009)를 보셨다면 바로 이해될 것입니다.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네이버Z의 제페토가 대표적입니다. 출시 두 달 만에 글로벌 다운로드 수가 300만 건을 넘어섰고, 3개월 만에, 1,200만 건, 1년 6개월 만에 누적 가입자 수 1억 3,00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까지 165개국 2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해외 이용자 비중이 90% 이상이고, 10대 청소년이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페토가 주목받는 이유는 강력한 아바타 구현 기술력으로 증강현실(AR) 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찍은 셀카를 자신과 닮았으면서 조금 더 예쁜 3D 아바타를 만들어 줘 가상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게다가 이 아바타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콘서트, 게임 등을 즐기고, SNS를 즐길 수 있습니다.

순천향대학교는 2021년 대학입학식을 세계 최초로 메타버스에서 진행했습니다. 김두관 의원은 메타버스에서 독도를 구현하여 실제처럼 독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이 코로나의 급습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 순천향대학교 입학식과 김두관 의원의 독도 메타버스

이러한 메타버스는 ‘세컨드 라이프’의 시작입니다. 세계 시가총액 1~8위 기업 중 절반이 메타버스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텐센트(중국의 카카오톡 격인 위챗을 만든 중국 기업), 나이키 등. 세계 경제의 중심이 오프라인 기반의 제조, 유통 기업에서 메타버스라는 온라인 기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 이야기가 매우 어려우시죠? 오늘 구약 말씀에 나오는 말씀처럼, 마음이 혼미하시죠? 아마도 원망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급하게 바뀌어 저도 따라잡기 힘듭니다. 쉽게 말해 세대 차이가 너무 나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의 주권이 MZ세대까지!

최근 세대 구분론이 흥미로운데, 크게 보면 5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와 그 윗세대, 크게 보면 60대 이상입니다. 그리고 n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로 현재 5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입니다. X세대는 삐삐와 워크맨을 사용했던 개성 넘치는 세대입니다. 서울대 인류연구소에 의하면 1974~1983년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40대가 해당이 됩니다. 급속도의 경제 발전 속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구세대와는 달리 청소년 시절 풍요로움을 누린 첫 세대에 해당이 됩니다.

▲ MZ세대의 자기 계발 뇌 구조

최근 MZ세대로 묶어 부르고 있지만, M세대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로 X세대의 뒤를 잇는 인구 집단입니다. 1980년생부터 1995년생까지, 혹은 1982년생부터 2004년생까지로 봅니다.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와 n86세대의 자녀들입니다. 유소년기부터 정보통신기술(IT)의 과도기를 겪은 세대로서, IT 활용력이 다른 세대에 비해 탁월하며 대학 진학률도 높습니다. 이 세대의 특징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과도기 세대이며 앞뒤 세대의 특성을 모두 공유한 폭넓고 다원적인 가치관을 가진 세대입니다. 특히 이들의 가치관을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고 합니다.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며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소비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Z세대(Generation Z)는 1995년~2010년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20대 중반부터 10대들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Z세대를 가르는 기준은 모바일 네이티브 여부입니다. 곧 태어났을 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IT 기술이 존재했던 세대입니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 10대 시절을 보낸 세대가 Z세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합니다.

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어려서부터 인터넷 이용이 가능한 이동식 기기(스마트폰, 태블릿 PC)를 접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자라면서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접했기 때문에, Z세대들은 IT 기술에 익숙하고, 사교 생활에 있어서 SNS를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물론 앞선 세대들도 모두 컴퓨터 웹사이트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는 익숙하지만, Z세대는 후자를 특히 선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기업은 이들 Z세대가 소비 성향, 성장배경 등 많은 방면에서 이전 세대와 차이를 보이기에, 다른 마케팅 전략을 짜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른 인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삐삐와 워크맨을 사용했던 개성 넘치는 X세대, 인스타그램과 개인적 삶으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세대, 말을 하면서부터 늘 와이파이를 찾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디지털 Z세대, 이들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각각 다릅니다. 각각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데우스(신적인 인간)로 구분됩니다. 이들 모두가 함께 하나의 ‘아날로그 지구’에 살고 있지만, 각기 다른 ‘디지털 지구’, 곧 메타버스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6.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오늘 구약 이사야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의 삶을 영위하는 유다 백성들의 불신앙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구원 열정이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소망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사 29:13-14)
 
과학기술에 힘입어 지금 세대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자리할 공간이 없습니다. 지음 받은 물건이건만,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과학기술로 창조주를 창조하려고 합니다. 이사야는 창조주인 토기장이를 피조물인 진흙같이 여긴다고 비유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5-1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자와 죄를 짓고자 기회를 엿보던 자를 다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소멸하고 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못 듣는 사람과 맹인, 그리고 겸손한 사람과 가난한 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그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사 29:17-20)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을 총명하게 하시며 원망하던 자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그 교훈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현실 세계와 영적 세계에 미치도록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 29:21-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그 변화의 속도가 눈이 부시게 빠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되는 세상, 새로운 인종들인 호모 데우스에게도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세상에, 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의 표적과 능력을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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