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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방 여인 때문에 열린 문

기사승인 2021.07.29  00: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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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Michael Angelo Immenraet, 「The Woman of Canaan」 (17세기경) ⓒWikipedia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시며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구나. 네가 원하는 대로 네게 될 것이다. 그 때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마태복음 15,28)

수로보니게 여인으로 불리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의 보도와 달라서 그가 가나안 사람인지 헬라 사람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이라는 서북부 해안지역에 가셨을 때 만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이방 지역에 가신 이유는 모르지만, 거기 가신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거기까지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는 본래 자신이 이 땅에 보내진 이유가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그 여인을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의 활동 무대가 주로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잇는 지역에서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앞의 경우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에 가셨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고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스라엘에 한정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메시야라는 견고한 사상적 틀을 이로써 깨뜨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예수께서 홀로 여시고 완성시키시지 않았습니다.

여인과 대화는 그 틀을 깨는데 ‘이방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큼을 일깨워줍니다. 이스라엘의 누구도 그들에게 예수를 알려준 적은 없지만, 그 여인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며 도움을 호소합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그는 자생적 기독교인인 셈입니다.

그런데 예수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습니다. 묘한 긴장의 순간을 깨뜨린 것은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침묵을 거절로 판단한 듯 그를 보내라고 합니다. 그 여인의 외침은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들을 따라오며 계속 소리칩니다. 딸을 위한 간절하고 갈급한 외침입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침묵과 따라오지 못하게 하자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마침내 예수의 입이 열렸지만, 마치 제자들의 입장을 수용하는 듯 위에서 본 대로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싸늘하고 모욕적이기도 한 대답뿐이었습니다. 이것으로 큰 장벽을 느꼈을 것이나 그것이 여인의 입을 닫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침묵보다는 거절의 말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 호소가 계속됩니다. 이에 대해 자녀의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는 예수의 대답은 이방인을 개 취급하는 전형적인 유대적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에게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답변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예수의 말에 기대 날카롭게 응수합니다.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는다. 개도 주인(~하나님)의 개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에 예수께서는 무장 해제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구별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 자신들과 이방인 사이에 세운 철의 장벽이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여인은 예수께서 자기를 인정하고 일하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께서는 네 믿음이 크구나, 일이 네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고 대답하심으로써 확인합니다. 이 대답은 더 이상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자녀와 개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 사건은 단순히 이방 여인의 딸이 병을 고치게 되었다는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음의 문이 전적으로 이방 여인에 의해 열렸음을 이 이야기는 전해줍니다. 모든 차이와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점을 우리는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복음으로 우리가 우리 인식의 틀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오늘이기를. 주님의 침묵과 거부를 넘어 주님의 감동을 이끌어낸 여인의 지혜와 인내와 용기가 우리의 것이 되는 이날이기를. 코로나19와 기후변화로 인한 힘겹고 뜨거운 날들을 모두 건강하게 보내며 기쁨으로 웃을 수 있게 하소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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