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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기본소득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기사승인 2021.07.25  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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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기본소득제에 대한 성서적 조명 ⑴

▲ 농어촌 인구의 감소와 유입 인구의 감소는 농어촌 사회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농어촌의 어려움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이는 곧바로 식량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Getty Image
지난달 22일 ‘허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 66명의 국회의원이 농민기본소득 법안을 국회에서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소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개별적으로 농민기본소득을 금전·지역화폐 등의 형식으로 지급하게 된다. 국회에서 농민기본소득법이 통과된다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에큐메니안은 누구보다 농민기본소득에 대한 성서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애썼던 전 원주영광교회 고(故) 이영재 목사님의 “농민기본소득제에 대한 성서적 조명”을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원래 이 글은 「농촌과 목회」 2020년 봄호에 게재되었다. 재게재를 허락해 주신 “농촌과 목회 편집위원회”(발행인 손인웅 목사, 편집위원장 한경호 목사)에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편집자 주

우리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제1차 산업혁명은 만 이천년 전에 일어난 농업혁명을 말하고, 제2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과 공장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18세기의 공업혁명을 가리킨다. 그리고 제3차 산업혁명은 20세기에 컴퓨터의 발달로 인하여 발생한 정보화 혁명을 가리킨다. 이제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발달하여 빅 데이터(big data)에 기반한 로봇의 시대가 열리는데 이것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컫는다.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

모든 정보들이 집결하는 곳을 플랫폼(platform)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소수의 자본가들이 플랫폼 정보를 장악하면 엄청난 부(富)가 소수의 사람들 손에 독점되는 현상이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나타날 수 있다. 공장노동자들이 로봇에 의해 대체되면서 실업 대란이 예상되는데, 실업수당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실업자가 양산되리라는 전망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대안이 ‘기본소득제’이다. 많은 국가들이 현재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고심하면서 연구하고 있다.

교회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인들이 실직당하고 가난한 시민으로 전락하면, 교회 운영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닥쳐올 일이니 조속한 시일 내에 머리를 맞대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제기한 쟁점들과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려 보는 일은 오늘의 교회가 시급히 착수해야할 신학적 과제이다.

특히 도시 중심의 문명이 극대화되는 가운데 더욱 피폐해져만 가는 농촌의 교회들이 당장 4차 산업의 변화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농촌교회는 농민운동단체들에서 제시한 농민기본소득제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농촌교회와 기본소득제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하여 논하려고 한다. 이 작업도 다른 쟁점들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는 일부터 착수해야 할 것이다.

국가 안에서 차지하는 농민의 지위

제1차 산업혁명인 농업혁명으로 인하여 종래의 수렵, 어로, 채집으로 경제활동을 하던 인간의 삶에 변화가 찾아 왔다. 기후 따라 이동하면서 살던 사람들 중에서 한 곳에 정착하여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새로운 삶이 등장했다. 정주민이 생겨난 것이다.

농업혁명 이후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농산물을 집약하고 독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권력자가 되어 도성을 건설하고 토지를 강점하여 영토로 삼고 더 이상 농업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유한계급이 되었다. 성경에서 이러한 권력자들은 가인과 라멕의 후예이며 네피림과 니므롯으로 표상된다. 이것이 국가의 출현과 성장을 떠받쳐온 경제적 과정이다.  국가의 지배 하에서 농토에서 일하는 자들을 ‘농민’(農民)이라고 부른다. (나는 농업혁명과 국가가 생기기 이전의 사람들은 자연의 순환운동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농자’(農者)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국가는 도시들의 연합체로 등장했으며 도시들은 고대노예제 체제를 유지하였다. 노예제  하에서 성밖에 사는 농민은 도시의 번영을 위해서 일하는 노예의 처지에 놓였다. 중세시대에 이르러 노예로서의 농민적 지위는 ‘농노’(農奴, serf)라 불리는 지위로 조금 더 나아졌다. 하지만 봉건영주들은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농노들의 삶은 여전히 열악하였다. 농노들은 영주의 허락 없이 여행도 할 수 없었다. 러시아 제국은 19세기까지 농노제도를 유지했으나 다른 유럽의 국가들은 중세가 끝날 때 농노제도를 폐지했다.

18세기에 제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도성의 외곽 성시(城市, burg)에 사는 자본가들이 신흥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들은 공장생산을 위하여 많은 노동자들을 농촌 지역에서 충원하였다. 많은 농민들이 공장노동자로 진출하였다. 농촌 인구는 급감하기 시작했고 도시 인구는 급증하였다. 농촌의 마을공동체는 해체되고 더욱 살기 어려워졌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러한 이농의 과정이 서서히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진행되었지만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60대 이후로 수십 년 안에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더구나 개발독재권력에 의해서 국토가 무리하게 개발되어 도시에 빈민촌에 대거 형성되고 농촌의 마을들은 급속히 해체되었다.

제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서자 세계의 도시들은 급팽창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농촌 마을들은 급격히 해체되어 농민들이 도시의 빈민촌으로 이주하였다. 이 현상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도시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국가체제 안에서 몇몇 선진적 국가들을 제외하면 농민의 지위는 더욱 낮고 비참한 처지로 전락할 전망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농자(農者)의 사명과 기본소득제

기본소득은 현대의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평등사상과 토지의 공개념을 옹호하는 안식년과 희년사상을 신앙의 내용으로 삼고 있는 교회는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불평등한 사회를 향한 예언자의 메시지를 현대의 언어로 선포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불평등한 체제 위에 서있는 자본가 중심의 교회들은 그 부동산과 자산을 사회에 모두 환원해야 한다. 참 교회라면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일에 자신의 자산을 다 투여하고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농촌교회들이 농민기본소득제에 앞장서야 한다. 제3차 산업혁명으로 더욱 비대해진 도시들과 달리 현저히 인구가 감소한 농촌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정책은 농민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것뿐이다. 농민이 늘어나야 농촌교회도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제를 실시하여 국가가 기본 생활비를 보장해 준다면 농촌 인구도 늘어날 것이다. 교회는 잃어버린 농촌마을 공동체와 농촌문화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농촌목회자들이 앞장서서 농업인 등록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사명감을 가지고 농촌의 부흥운동에 팔을 걷고 나서야할 것이다. 말씀 위에 다시 세울 수 있는 사회적 실천은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는 기본소득제의 실행밖에 없다.

고(故) 이영재 목사(원주영강교회, 구약학 박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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