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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왕상 17:8-16; 행 6:1-7; 막 6:30-44)

기사승인 2021.07.23  12: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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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강림 후 아홉째 주일(7월25월)

1. 제자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지난주에, 성령강림 후 여덟째주일부터 성령강림절기 마지막인 열넷째 주일까지 말씀의 주제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았죠? 이것은 오늘 현재의 빛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지난주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에 따라 살되, 현재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관해서도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한 말씀이었습니다. 국가 권력이 정당하면 세금도 내고, 지킬 것은 지키고 선을 행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주 말씀은 사회와 국가가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 관해서, 특별히 교회의 역할에 관한 말씀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통해서,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리를 먹이시는 예수님의 기적이 나옵니다. 구약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뭄의 때에 사르밧 과부를 통해 엘리야가 먹고 마시지만, 결국 사르밧 과부의 가족들이 엘리야의 기적을 통해 먹고 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말씀은 이렇게 사람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들을 전담하는 일꾼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집사의 직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오병이어 기적입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0-31)

물론, 마가복음 6장인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앞에 세례 요한의 죽음과 장사(막 6:14-29)가 나오지만, 그 앞부분은 열두 제자를 파견한 말씀입니다(막 6:7-13). 따라서 13절까지 읽고 바로 본문 말씀으로 넘어와야 연결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무튼 고생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잠시 쉬라고 말씀하셨죠?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막 6:32-33).”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영적으로는 세례 요한이라는 시대의 예언자가 죽임을 당한 암울한 시대에, 육적으로는 굶주린 무리가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린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쫓아 달려온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육적으로 굶주린 무리, 곧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에게 먼저 여러 가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 허기가 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막 6:35-36)” 제자들의 생각에는 말씀만 가르쳤으면 됐지, 사람들이 먹을 것은 알아서 사 먹도록 촌과 마을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오병이어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막 6:37)”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 혹은 로마 군인들의 하루 복무비 정도입니다. 200명 군인의 하루 일당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묻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막 6:37-40)

사람들은 많았지만, 제자들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1-44)

▲ 오병이어 기적

우리가 봉사하거나, 이웃에 베풀려고 하면, “우리도 힘든데 어떻게 베풀겠습니까? 나중에 교회가 성장하면 그렇게 하시죠!”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감사하고 떼어 나누어 주면 풍성해집니다. 이것이 오병이어 기적의 핵심입니다.

2. 황제의 급식과 예수의 오병이어, 그리고 앉아서 하는 혁명!

이러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황제의 급식과 대조되는 사건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 네로 황제가 초기에는 로마 시민들, 곧 민중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고 말씀드렸죠? 로마 황제는 전쟁에서 이기거나, 무슨 축제가 있으면 시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들의 눈에는 황제가 베푸는 급식의 분량보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급식이 더 많다고 소개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배불리 먹었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가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고 하죠? 이때 떡을 먹은 남자의 수가 오천 명이라고 합니다(막 6:44). 이 당시 여인과 어린아이의 수는 계수하지 않았기에, 합쳐보면 대략 2만 명 정도가 되겠죠? 황제의 급식보다 많은 수입니다. 이백 명 군인을 먹일 수 있는 이백 데나리온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 검투사 시합을 보는 네로 황제

사실 고대 로마제국의 대표적인 즐길 거리를 꼽으라면 검투사 시합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검투사 시합이 개최되면 원형경기장을 찾은 로마 시민들에게 황제는 짜릿한 볼거리와 더불어 공짜로 빵을 나누어 줍니다. 아마도 그 원형경기장에 들어가 급식을 먹은 사람보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 더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였다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황제가 너희를 먹여주고 입혀주는 구세주, 곧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말이겠죠? 이것은 영적인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육적인 급식에서도 그렇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조금 더 살펴볼까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성찬의 원형(Eucharistic motive)’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가령 ‘떡을 가지사’, ‘축하하시고’, ‘나누시매’ 등의 표현은 예전적인 표현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 사건을 『요한복음 강해』(통나무, 2007)에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마도 초대 교회 성찬 예식의 가장 원초적 형태의 현장을 그렸을 것이다. 그것은 야단법석이었고, 야단 공동식사였다. 빵과 포도주가 아닌, 떡과 물고기의 식사였다. 거기에는 남녀노소 일체의 계급의 구분이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나누어 갖는 생명의 장만 있었을 뿐이다. 예수는 이어오병을 ‘들고, 감사하고, 나누어, 주었다’ 예수는 당대 가장 비천한 여인이 해야 할 일을 손수 직접 행한 것이다.”

좀 더 나아가 이것을 ‘예수의 혁명’으로 이야기합니다. 곧 예수의 혁명은 나누어 먹는 혁명이며 예수의 혁명은 총칼을 들고 싸우는 ‘서서 하는 혁명’이 아니라, ‘앉아서 생각해보자!’, ‘앉아서 같이 먹자!’라는 ‘앉아서 하는 혁명’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 마가복음에는 없지만, 병행 본문인 요한복음에는 오병이어 기적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말씀을 볼까요?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느라.”(요 6:14-15)

여기서 예수님께서 산으로 떠나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불리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곧 정치적인 혁명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홀로 산으로 떠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근원적으로 새로워지는 영적인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무리를 떠나신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근원적인 영적인 체험 없는 정치혁명은 반드시 실패로 끝나게 돼 있습니다.

3. 사르밧 과부,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 엘리야와 시돈땅 사르밧 과부

예수님의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구약 말씀에도 나옵니다. 오늘 구약 본문 말씀은 엘리야가 패역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에게 나타나, 바알 숭배에 대한 징계로써 가뭄이 발생할 것을 예고한 이후의 일입니다. 지독한 가뭄 중에 먹을 것이 없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의 과붓집을 찾아가 공궤(供饋, 윗사람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를 받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왕상 17:8-11)

그러나 이 여인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

지독한 가뭄에 먹을 것이 없어서, 그나마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겠다는 여인의 말은 엘리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본 예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여인의 말을 들은 엘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3-14)

여인은 먹을 것을 먼저 달라는 엘리야의 말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러자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습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5-16).” 성도들의 순종과 봉헌이 더 큰 복으로 이어진다는 뜻일까요? 아무튼 이렇게 엘리야는 굶주린 이를 살리고 자신도 살게 되었습니다.

자, 다시 서두에 말씀드린 내용으로 돌아가 볼까요?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사회와 국가 공동체 안에 사는 사람들에 관해서, 또 그들에 관한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씀드렸었죠? 핵심은 봉사이며, 오늘 말씀에서는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사도들이 다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 일꾼을 세웁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이렇게 굶주리고 배고픈 이들을 먹이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었고, 엘리야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의 일입니다.

4. 접대의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도행전 말씀을 보겠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을 대신하여 구제를 전담할 일곱 집사를 선출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공동번역으로 보아야 뜻이 정확합니다. “이 무렵 신도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그리스 말을 쓰는 유다인(헬라파 유대인)’들이 ‘본토 유다인(히브리파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과부들이 그날그날의 식량을 배급받을 때마다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행 6:1).”

초대 교회에 최초의 갈등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갈등은 교회 내에 두 집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집단은 본토 유대인인 히브리파 사람들이고, 다른 한 집단은 그리스 말을 쓰는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히브리파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원래부터 거주했던 본토 유대인으로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은 사도행전 2장 5절에 나온 ‘경건한 유대인’으로 오순절 성령강림 때 복음을 받아들인 디아스포라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은 후,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인생의 마지막을 성전 근처에서 살기 위하여 고향인 유대 땅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 근처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남편이 죽어서 혼자가 된 여인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말도 잘 안 통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이러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는 교회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연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역개정에는 ‘매일의 구제’라고 번역했지만, 사실은 ‘그날그날의 식량’을 말합니다. 여기에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가 소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나서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이렇게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이 분쟁합니다. 먹는 것 때문에!, 그리고 봉사하는 것 때문에! 이때 열두 사도가 지혜롭게 해결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2-4)

매일의 구제, 곧 그날그날의 식량을 배급하는 봉사의 일을 맡길 사람을 세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집사의 직분입니다. 그리고 이 직분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나아가 칭찬을 받는 사람을 택하여야 합니다. 그러자 나누어진 두 집단이 함께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됩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 6:5-6)

▲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세워 안수하다

집사들에게 안수하죠? 안수 집사로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봉사의 일을 하는 이들을 세우게 되자, 교회가 어떻게 변합니까?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이들이 만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행 6:7a)”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행 6:7b)”하는, 곧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道)에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대부분 분쟁은 좋은 일 하는 것 때문에 발생합니다. 특별히 먹는 것, 봉사하는 것 때문에 생깁니다. 또한 그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끊임없이 분쟁하고 갈등하고 교회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초대 교회가 집사를 세울 때 어떻게 했죠? 성령이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웠습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을 세워야 하며 세상적으로도 지혜가 있는 사람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교회 안에서는 물론,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서,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성도, 제대로 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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