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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가톨릭교회 비판

기사승인 2021.06.12  15: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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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가톨릭 교회와 칼 바르트 ⑴

▲ 1938년부터 칼 바르트는 필요하다면 힘을 통해서라도 히틀러에 대한 저항을 강력히 요구했다. 프라하 복음주의 신학부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는 체코 군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싸울 것을 요청했다. ⓒ“Das Leben des Karl Barth: Stationen seines Lebens in Bildern” https://www.ekd.de/karl-barth-bildergalerie-41314.htm

칼 바르트는 일평생 양대 전선에서 신학 작업을 하였다. 하나는 소위 신 개신교주의 혹은 문화개신교로 표방되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논쟁한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논쟁한 전선이다.(1) 로마 가톨릭 신학에 대한 그의 태도는 대체로 극단적인 부정과 배격에서부터 차츰 긍정적인 접근과 이해를 모색해 나간 특징을 보여준다. 바르트 신학의 발전과정을 따라가며 로마 가톨릭과의 논쟁, 대화,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변화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 등을 간략히 살펴보자.

가톨릭의 교회 개념

1925년 10월 말, 바르트는 뮌스터(Münster) 대학 신학부 교수가 되었다. 뮌스터는 압도적으로 가톨릭적인 도시였다. 거리를 지나는 사제와 수녀들은 바르트에게 그가 더 이상 루터교의 요새인 괴팅엔에 있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었다. 위치의 변화는 그 나름으로 매우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이 시기부터 로마 가톨릭교회를 자유주의 개신교보다 점점 더 그의 주된 대적자로 간주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1927년부터 바르트는 주로 가톨릭교회 평신도들로 구성된 신학모임의 정규 회원이 되었다. 그 모임은 1928년에는 매달 한번 혹은 두 번씩 모이는 정규 신학 “연구소”가 되었다. 가톨릭에 대한 바르트의 관심은 일련의 강연들을 통해 드러났다. 첫 번째 강연은 “교회의 개념”이라는 제목 아래 1927년 7월 11일 뮌스터 대학에서 행해졌다.

이 강연에서 바르트는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어떤 점에서 일치하고 또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하였다. 일치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가 모두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이다”(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이라고 단언하며, 양측 모두 이 네 가지 교회의 표지들의 의미에 관하여 긍정한다는 것이다.(2) 그러나 은혜의 성격에 대한 이해에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협동이나 어떠한 피조물의 협력(예컨대 마리아의)도 배제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구원의 기관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지, 진리와 은혜를 초자연적 권능과 인식과 힘의 특수한 총화의 형식으로 인간이 소유하고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교회에게 부여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개인은) 사람들이 지각하고, 알고, 경험하는 다른 실체들에 대하여 하듯이 “은혜에 대하여 가장 사소한 지배권도 소유하지” 못한다. 교회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일 뿐이다. 교회는 보이는, 역사적인 존재로서 이것(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이다. 은혜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주장이다. 이 관계는 뒤바꿔질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주장한다:

교회의 영광은 정직하게 자신의 빈곤함을 고백하면서 영원히 부요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듣게 하는 곳에서만 존재한다. 사람이 지상의 물건을 소유하듯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 것으로 삼는 곳에는, 사람이 물질적이거나 영적인 재산들을 소유하듯이 그 말씀을 소유하는 그곳에는 교회의 영광이 존재할 수 없다.(3)

이것은 구체적으로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그리고 사도성의 이 네 가지 표지들이 교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의 특성들로 남아 있고, 순간순간 하나님은 교회를 성립시키신다. 그것들은 정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인 존재의 특성들이 아니다.

이 짧은 강연을 통하여 바르트는 가톨릭 대화 상대자를 진지하게 여기는 것은 단지 그를 바라보는 것을, 낯설고 색다른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우리가 그에 의해 충격을 받는 것과 같이 그도 우리로 인해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바르트에게 논쟁은 경멸이 아니라, 깊은 존경의 표시였다. 바르트는 이 논문에서 대화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인정을 드러낸 것이다.

개신교회에 대한 하나의 질문으로서의 로마 가톨릭 교회

두 번째, 더 본질적인 강연이 1928년 3월9일 브레멘, 3월15일 오스나브뤼크, 4월10일 뒤셀도르프의 개신교 청중들 앞에서 행해졌다. 제목은 “개신교회에 대한 하나의 질문으로서 로마 가톨릭 교회”였다. 바르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회에 제기하는 근본적인 물음은 개신교회가 참으로 교회인가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신교는 본질적으로 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의도하였다. 개신교는 교회의 파괴도 전적으로 다른 어떤 것에로의 변화도 추구하지 않았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다시 세우고자 하였다. 그들은 가톨릭교회에 포함되어 있는 교회의 참된 본질에 대해서는 결코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개신교는 단순히 교회의 하나의 본질에 대한 새롭고 더 나은 이해를 의미했다.

그러나 바르트에 의하면 ‘개신교’의 의미에 대한 이 본래적인 이해는 16세기 교회개혁 이후에, 특히 소위 19세기의 자유주의적 개신교에 의해서 변질되었다. 교회를 하나님의 참된 교회가 되게 하는 이 참된 본질은 무엇인가? 자유주의적 개신교가 완전히 포기해버린 본질은 무엇인가?

바르트에 의하면 그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해이다. 하나님의 현존이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 하나님은 교회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의 주체이다. 이 관계가 뒤바뀌는 곳에서, 하나님이 대상이 되고 인간이 교회의 주격이 되는 바로 그곳에서 그 본질은 사라진다. 교회는 교회이기를 그만둔다.

자유주의적 개신교가 교회의 본질을 완전히 넘겨준 바로 그 지점에서,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보존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그 “본질은 왜곡되고 오용되었지만, 그것은 상실되지 않았다!” 바르트는 이점에서 “로마 가톨릭교회가 자유주의적 개신교보다 개혁자들에게 더 가까이 서있다!”고 말하며, “만약 내가 두 개의 악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가톨릭교회를 선택하겠다”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바르트가 현대의 가톨릭교회에 관하여 그 본질이 거기에 보존되어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바르트는 베른하르트 바르트만(Bernhard Bartmann)의 『교의학』(Lehrbuch der Dogmatik)과 칼 아담(Karl Adam)의 책,『가톨릭교회의 본질』(Das Wesen des Katholicismus)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특히 하나님은 “교회의 진정한 자아”라는 아담의 진술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대한 고대 교회의 교리들이 현대의 가톨릭교회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교리들의 존재는 그 본질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좋은 지표이다. 그 교리들의 부재는 그 본질의 상실을 의미할 것이다.(4)

물론, 바르트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교회의 신적 주체가 인간적 대리자들로 대체되는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바르트는 분명히 우리가 땅 위에서 “교회의 머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적 이단”이라고 강조한다.(5)

가톨릭 신학의 존재유비 비판

로마 가톨릭교회와 바르트의 대화는 더 진전되었다. 바르트는 1929년 2월 뮌스터 대학에 가톨릭 신학자 에리히 프르지바라(Erich Przywara)를 초청하여 강연하게 하였다. 그 강연의 제목은 “가톨릭교회-원리”였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바르트는 도르트문트에서 “신학에서의 운명과 이념”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여기서 바르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존재유비”(analogia entis)의 개념과 본격적으로 대결한다. 다음해(1930) 그는 성령의 교리에 대한 또 하나의 강연집 출판하였고, 여기서 그는 특히 프르지바라에 의해 옹호된 ‘존재유비’에 대한 그의 강력한 비판을 계속하였다.

‘존재유비’는 사전에 채택한 보편적인 존재개념에 입각하여 인간의 존재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역추론하는 시도를 말한다. 바르트는 이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왜냐하면 존재유비는 존재의 철학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공존을 순수한 은혜의 기적과 사건이 아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사실과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의 개념 아래, 존재와 더불어 주어진 질서의 구조 아래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추론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선취해버린다. 여기서 유한한 존재가 절대화되고 피조물이 신격화되는 시도가 이루어진다(CDⅡ/1, 81-84).

바르트는 어거스틴을 뒤따르는 모든 가톨릭 신학에는 창조 안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존재론적 연속성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바르트는 1929년 9월 14일 파울 알트하우스(P. Althaus)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어거스틴주의를 은혜의 교리에서 완전히 뿌리 뽑아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개신교의 신학을 가질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6)

어거스틴은 기독교 신학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와 그분 자신 사이에 확립한 상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또한 있는 그대로의 피조적인 실재 내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흔적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르트는 어거스틴의 사상 안에 있는 강력한 신플라톤주의의 구성 요소가 신적 존재에로의 그것의 참여를 통하여 하나님과 자연 사이의 틈새를 막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7)

바르트가 로마 가톨릭의 존재유비를 비판한 것은, 그것이 창조주와 인간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양자를 동일한 수준으로 환원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 때문에 바르트는 존재유비를 “적그리스도의 고안물”(CDⅠ/1, ⅷ)이라고 하며, 교황을 “살아 있는 존재유비”(8)로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에 의하면 창조의 사실은 단지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확립할 뿐이며, 그러므로 불연속성을 확립할 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연속성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의 두 번째 기적”에 의한 것일 뿐이며,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그 연속성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1947년 본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에 관한 일련의 강연에서 존재유비가 모든 가톨릭적 사고 노선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분석한다:

“예컨대, 모든 가톨릭적 사고에는 본질적인 중심과 부차적인 중심이 있다. 성서‘와’ 나란히 교회의 교리 전통과 오류 없는 교회의 교사직이 서 있고, 그리스도‘와’ 나란히 사도 베드로와 오류 없는 교회가 서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나란히 피조물의 존재가 서 있다.”

바르트가 ‘숙명적인 이원론’이라고 부른 이 ‘와’(‘und’)는 마리아의 형태에서 분명해진다. 그리스도‘와’ 마리아, 곧 피조적인 이 존재가 신적 존재를 위한 유비로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나 참된 중심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의 결정적인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만”(solus Christus)과 “그리스도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9)

그러므로 바르트에게 “어떠한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결정적인 대답은 교회의 오랜 역사, 예식의 아름다움, 교황과 사제 계급제의 위용 같은 외적인 화려함 같은 것이 아니다.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가 갈라지는 분기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교회 안에서 권능 있게 들려지고 있고 또 그분에 대하여 질문되고 있는지 그 여부에 있다.(10)

미주

(미주 1) 자유주의 개신교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에 대해서는, T. F. Torrance, Karl Barth, Biblical and Evangelical Theologian, 1990, 최영 옮김,『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적인 신학자』 (한들, 1997), 43-104를 참고.
(미주 2)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은 이 네 가지 표지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교회를 결정하는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참된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했고,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올바로 집행되는 곳에 있다고 대답했다. 개혁교회는 여기에 하나의 표지를 더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신자들의 훈련이 그것이다. 최영, 『개혁교회 신학의 주제』 (지성과 실천, 2005), 112-116.
(미주 3) K. Barth, "The Concept of the Church," Theology and Church (SCM Press, 1962), 282, 272-85를 참고.
(미주 4) K. Barth, “Roman Catholicism: A Question to the Prostestant Church," Theology and Church, 297-333를 참고.
(미주 5) 존 D. 갓세이 편집, 윤성범 옮김, 『칼 바르트와의 대화』 (대한기독교서회, 1984), 85.
(미주 6) B. L. McCormack, Karl Barth's Critically Realistic Dialectical Theology, Its Genesis and Development 1909-1936 (Clarendon Press, 1997), 390에서 재인용.
(미주 7) T. F. Torrance, Karl Barth, Biblical and Evangelical Theologian, 1990, 최영 옮김,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적 신학자』 (한들, 1997), 170, 187.
(미주 8) 정승훈, 『칼 바르트와 동시대성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6), 412. 존재유비에 대항하여 바르트는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를 주장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일에서 인간에게 내재하는 언어의 파악능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떠맡음으로써 진정한 상응과 합일에 이르는 유비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생기며 인간이 처분하거나, 선취할 수 없는 유비이다. KDⅡ/1, 256이하; 이신건, 『칼 바르트의 교회론』 (성광문화사, 1992), 134. 그러므로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유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님에 의해서만 현실성을 가지며, 신앙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CDⅡ/1, 83).
(미주 9)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947, 백철현 옮김, 『그리스도교 교리의 주제와 내용: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에 관한 해설』 (그리스도교신학연구소, 1989), 237.
(미주 10) K. Barth, Gotteserkenntnis und Gottesdienst nach reformatorischer Lehre, 1938, 백철현 옮김, 『하나님, 교회, 예배: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 대한 해석』 (기민사, 1987), 19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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