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일송정 푸른 솔은”

기사승인 2021.06.12  15:14:36

공유
default_news_ad1

- 용정 ❮3.13❯만세시위를 일으킨 조선인 디아스포라와 순국열사들 ⑵

ⓒ이이소

❮3.13❯ 만세 시위에 순국하신 열사들의 이름을 찾으며 “조국을 찾겠노라 말 달리던 선구자”가 정식 군사훈련을 받은 군인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일송정 푸른 솔이 있는 비암산 서쪽의 평강벌을 일구고 해란강변의 서전벌과 북쪽의 구수하벌을 목숨 걸고 일군 농부들이었으며 그 농부들의 자식들이었다. 실제로 당시 희생하신 열아홉 분 중에 농부로 기록된 분이 열 분이 나온다. 실로 선구자는 농부였으며 순국열사의 절반이 넘는 숫자였다.

또한 간도국민회 회장이었던 구춘선이 지방회장에게 보낸 문건에 의하면 순국자 열일곱 분 중에 열다섯 분이 크리스천으로 간도국민회 지방회에 속한 회원들로 나온다. 말 달리던 선구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크리스천이었으며 그들은 간도국민회의 회원이 되어 농민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몸소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자녀들을 독립군으로 바쳤다.

3월 14일 발행된 연변 ❮조선독립신문❯ 2호, 김정규의 일기, 계봉우의 기록, ❮간도국민회❯구춘선의 공문서신, 룡정 ❮3.13❯ 기념사업회 회장이신 최근갑의 기록을 살펴 19분의 이름과 면모를 살펴보기로 한다.

연변❮조선독립신문❯ 2호는 순국열사들에 대하여 공적으로 가장 먼저 기록을 남겼다. 1919년 3월 14일에 발행된 신문은 순국열사들을 열다섯 분으로 밝히고 있는데 두 분은 신원이 불명하다고 하였다.

순국열사는 현봉률(모아산), 김승록(봉림동), 박상진(걸만동), 정시익(라자구), 리균필(로투구), 현상로(대불동), 공덕흡(명월구), 최익선(와룡동학교 교원), 박문호(남구학교 교원), 김태균(불명), 김흥식(서울), 리유주(토성보), 장학관(의란구) 그리고 이름과 주소불명의 두 분이다.

이어서 제창병원에 입원한 중상자는 열여덟 분으로 한부삼(모아산), 리도한(봉산동), 김원칠(불동), 김성무(로투구), 한원오(대모록구), 김종묵(구천하), 리용진(모아산 앞), 차정원(대허문), 림봉섭(투도구), 김진서(국자가), 송병식(남양동), 채민섭(모아산 수남), 리경찬(호천포), 김병영(명동학생), 채창헌(대오도구), 원용서(룡정), 공자인(명월구), 허준언(불명) 등이다.

연변 ❮조선독립신문❯이 중상자로 밝힌 분들 중에 제창병원에서 또는 퇴원 후에 순국하신 분들로 언급되는 분들이 김종묵, 차정원, 김진서, 김병영, 채창헌, 원용서, 허준언(1) 등 일곱 분이다. 연변 ❮조선독립신문❯ 2호의 기록대로라고 하면 순국열사가 스물두 분이 되는데 이는 룡정 ❮3.13❯ 기념사업회가 최종적으로 확정한 열아홉 분보다 세 분이 더 많은 숫자이다. 그러나 신원 불명의 두 분을 제외하면 스무 분이 됨으로 오버되는 한 분에 대한 검토를 다른 기록과 대조해보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2)

김정규의 일기는 현장에서 순국하신 열사는 아홉 분으로 김상진(3), 김흥식, 정시익, 박문호, 공덕흡, 리효섭, 김태균, 장학관, 김승록 등이다. 중상자는 최익선, 현남로, 차정룡, 리유주이며, 경상자는 김병영, 림봉섭, 허준언, 한윤삼, 리도한, 원룡서, 채창헌, 리정찬, 채민섭, 송장석, 한원오, 김성모, 김원칠, 김진세, 김종묵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상자 가운데 최익선, 현남로, 차정룡, 리유주 등이 병원에서 숨져 순국열사가 총 열세 분이라고 하였다.(4)

계봉우는 ❮북간도 그 과거와 현재❯에서 순국열사를 열아홉 분이라고 하였으나 열일곱 분의 이름만 적었다. 현봉률, 김승록, 공덕흡, 김태균, 장학관,김종묵, 허준언, 김병영, 박상진, 채창헌, 박문호, 최익선, 정시익, 현상로, 김흥식, 리유주, 차정룡 제씨로 순국한 장사 19인 중에 열네 분만 먼저 허청리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고 하였다.(5)

간도국민회 회장 구춘선은 1920년 7월 14일 지방회장에게 보낸 <포충장을 전달할 데 관한 문건>에서 순국열사 열일곱 분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작년 3월 13일 룡정에서 진행된 독립 축하식 때 순국한 의사들에 대하여 우리 림시정부에서 포충장을 하달하였다. 이 의사들의 유족에게는 지방회에 전달하여 의사유족들에게 시달하여 의사유족과 지방유지인사들이 모여 전달식을 거행하기 바란다. 의사유족의 과계지방과 의사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제1 중지방 : 김종묵, 최익선, 공덕흡, 정시익, 김승록, 리균필, 현봉률(7인)
제2 중지방 : 장학관, 김태균 (2인)
제1 남지방 : 이유주, 차정룡, 현상로(3인)
서지방 : 박문호, 채창헌(2인)
동지방 : 박상진(1인)
로령 : 김병영(1인)
서울 : 김흥식(1인)
그러나 리군필의 이름은 틀렸으므로 정부를 향하여  정정을 요구하였다.(6)

❮간도국민회❯의 명단에는 원용서와 김진세 두 분이 누락되어 있는데 이는 그분들이 ❮간도국민회❯가 임시정부에 순국열사 명단을 제출할 때까지 살아 있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국민회의 실수로 파악이 된다. 국민회 문건에 부상자 명단이 없으므로 두 분에 대하여 알려면 다른 기록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구춘선이 회장으로 있었던 ❮간도국민회❯는 ❮3.13❯ 만세 시위 후에 만들어진 북간도 최대의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국민회는 3.13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던 ❮독립운동의사부❯를 계승한 ❮조선독립기성총회❯를 이어받아 캐나다장로회 선교부 산하의 지 교회들을 근간으로 하여 북간도를 동부, 서부, 남부, 북부와 중부의 5개의 구역 분할을 하여 조직을 강화하였다. 지 교회 목회자들이 지회장이 되었으며 지 교회 교우들이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청년들은 ❮국민회군❯이나 ❮경호대❯에 가입하여 독립군이 되거나 자위대로서 마을을 지켰다. 제1 중지방은 ❮간도국민회❯ 중부지방회 제1 지방회에 소속된 회원이며 제1 지방회 안에 있는 교회의 교우라는 뜻이다. 이는 순국하신 분들의 소속 지역과 교회를 밝혀준다.

제1중지방의 최익선, 서지방의 채창헌, 박문호는 크리스천 청년 중심으로 만들어진 ❮철혈광복단❯의 일원이었으며 동지방의 박상진은 걸만동교회 청년이었다. 순국열사 아홉 분이 중부지방회에서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중부지방회가 용정에서 가까운 연길현 팔도구, 태양동, 조양천과 삼봉, 와룡동, 국자가 일대이고 캐나다장로회 지 교회가 많은 지역이어서 교우들 동원이 비교적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중부지방회에는 당시 4대 사립명문으로 유명하였던 캐나다장로회 산하의 와룡동의 창동중학교와 국자가 소영자의 광성중학교가 있어 학교와 교회를 통한 독립운동이 활발하였다. 실제로 1920년 10월 일본군의 대만행인 ❮경신대학살>에 두 학교가 불에 탔으며 중부지방회 산하의 많은 교회들이 대 박해를 받았다.

장문호는 늦어도 1989년 초에 썼을 ❮룡정촌의 3.13 반일시위운동❯라는 에세이에서 ❮3.13❯만세 시위에서 19분이 희생되었는데 5분은 장례식 이후에 사망하였다고 하였다. 순국열사는 채창현(충렬대의 지휘자), 공덕흡 (충렬대의 기수), 박문호, 김흥식, 정시익, 현봉률, 김승록, 김태균, 장학관, 김종묵, 허준언, 김병영, 박상진, 최익선, 현상로, 리유주, 차정룡, 원인선, 리균섭 등이라고 하였다.(7) 그는  장례식 후에 사망한 자 다섯 분에서 김진세를 빼고 허준언을 넣었다. 이는 그가 계봉우의 기록을 참고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1990년에 설립된 ❮룡정3.13기념사업회❯ 회장 최근갑은 『시련의 열매』에서 순국열사들 열아홉 분으로 정리하였다.

현장에서 순국한 열사는 열 분으로 박상진 (교구장, 걸만동 사람), 정시익 (상인, 명월구 사람), 공덕흡 (농민, 명월구 사람), 김태균 (농민, 의란구 사람), 김승록 (학생, 봉림동 사람), 현봉률 (농민, 모아산 사람), 리균필 (농민, 로투구 사람), 박문호 (교원, 이도남구 사람), 김흥식 (상인, 한국 서울 사람), 장학관 (농민, 의란구 사람) 등이다.
3월 13일 밤 제창병원에서 순국한 열사는 세 분으로 최익선 (교원, 와룡동), 현상로 (농민, 대교동), 이유주 (농민, 토성포) 등이다.
3월 14일에서 17일 사이에 제창병원에서 순국한 열사는 차정룡 (농민, 대허문) 한 분이다.
3월 17일 장례식 이후 순국한 열사는 다섯 분으로 김종묵 (농민, 구수하 사람), 채창헌 (교원, 대오도구 사람). 김병영 (학생, 명동촌 사람), 원용서 (상인, 동성용 사람), 김진세 (농민, 국자가 사람) 등이다.(8)

최근갑이 밝힌 열아홉 분의 순국열사는 구춘선의 문건에 나오는 열일곱 분에 원용서와 김진세를 더하였다. 그러나 장문호가 정리한 열아홉 분과는 한 분이 다르다. 그는 허준언 열사 대신에 김진세 열사를 넣었다.

허준언 열사는 최근갑과 윤병석의 명단에는 빠져 있고, 계봉우의 명단에는 순국열사로 나타나며 연변 ❮조선독립신문❯에는 중상자로, 룡정상부국 보고서에는 부상자로 기록되었으며 김정규의 일기에는 경상자로 장문호의 기록에는 순국열사로 나온다.

김진세 열사는 최근갑의 기록에는 순국열사로, 윤병석의 부상자로, 계봉우의 명단에는 없으며, 연변 ❮조선독립신문❯에는 중상자로, 룡정상부국 보고서에는 부상자로 기록되었으며 김정규의 일기에는 경상자로, 장문호의 명단에는 빠져 있다.

모든 기록들이 근거 없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허준언도, 김진세도 순국열사로 보는 것이 맞을 듯싶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3.13❯ 만세시위에 관한 모든 것을 학술적으로 종합하며 정리한 최근갑의 명단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며 허준언열사를 19인의 명단에서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

현재 시점에서 최후의 정리자라고 할 수 있는 최근갑은 1989년에 10월에 ❮3.13 반일독립운동순난자묘소❯ 발굴조사팀을 만들어서 32명의 노인들을 방문하여 증언을 들었고 다섯 차례의 현지답사를 통하여 연변대학교의 역사학자들과 교수, 룡정시 관계자들과 함께 합성리 공동묘지에서 ❮3.13❯ 반일의사들의 묘소를 확인하였다. 그는 ❮3.13❯ 순난추념준비위워회를 설립하여 묘소를 수선하고 ❮3.13반일의사릉❯ 이란 비석을 세우고 첫 추모식을 가졌다. 그 후로 ❮룡정 3.13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아 80주년 행사 등을 통해 3.13만세시위 역사적 역할과 의미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9)

한 세기 전에 그것도 한반도가 아닌 북간도 용정 땅에서 일어난 역사를 기억하며 순국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왜 그 때에 조선의 아들들이 두만강 넘어 땅에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준엄한 질문이며, 조선이라는 나라로부터 차별과 천대, 굶주림과 헐벗음 외에는 받은 것이 없는 천민들이 망국의 역사 앞에 보여준 희생과 헌신을 소중하게 기억하기 위함이며 조선의 민초들이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독립에의 꿈을 꾼 역사적 사건을 길이 되새기면서 자주 독립과 평화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싶어서이다.

순국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묘역이 새롭게 정리되는 꿈을 꾼다. 그리고 허락이 되면 ❮3.13❯ 순국열사들의 유족모임에 참여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시름없이 듣고 싶다. 조선 망국이 낳은 중국의 조선족, 일본의 재일동포, 러시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고려인과 남북한의 8천만이 만남과 소통의 해법을 독립운동에서 찾으며 미래의 대화합을 부단히 추구해가길 두 손 모아 빈다.

미주

(미주 1) 허준언 열사에 대한 기록이 연변 ❮조선독립신문❯2호에서는 중상으로 나오나 사방자, 계봉우는 순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구춘선의 공문서신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김정규의 일기에는 경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주 2) 김철수, 『연변항일사적지연구』, 162, 163, 164.
(미주 3) 김상진은 박상진의 오기나 오해로 본다. 다른 기록들은 다 박상진으로 나온다. 
(미주 4) 김철수, 『연변항일사적지연구』, 164, 165.
(미주 5) 김철수, 162.
(미주 6) 김철수, 161, 162.
(미주 7) ❮중국조선족발자취❯ 총서 편집위원회 편, 『개척』; 장문호 저 ❮룡정촌의 3.13 반일시위운동』, 472.
(미주 8) 최근갑, 『시련의 열매』, 141, 142.
(미주 9) 리광평 외, 『륙도하』, 125, 126.

 

참고서적

1. 김철수 저, 『연변항일사적지연구』, 연변인민출판사, 2001.
2.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편집위원회, 『개척』, 민족출판사, 1989.
3. 최근갑, 『시련의 열매』, 료녕민족출판사, 2011.
4. 리광평 외, 『륙도하』, 연변인민출판사, 2013.
5. 양소전 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연변인민출판사, 2005.
6. 김택 외, 『길림조선족』, 연변인민출판사, 1995.
7. 연변조선족사집필소조 편, 『연변조선족사 상』, 연변인민출판사, 2011.
8. 룡정3.13기년사업회 외, 『룡정3.13반일운동 80돐 기념문집』, 연변인민출판사, 1999.
9. 양전백, 함태영 원저,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7.
10. 차재명 원저,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상』,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8.
11. 류연산, 『혈연의 강들 상』, 연변인민출판사, 2001.
12. 룡정시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문화총서 편집부 김재권 외 4인, 『일송정 제7기』, 연변인민출판사, 2003.
13. 허청선, 강영덕 주편, 『중국조선민족교육사료집 1』, 연변교육출판사, 2002.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