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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무엇인가?

기사승인 2021.05.25  0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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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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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그 내용에 따라 구분하면, 청원기도, 감사기도, 찬미와 흠숭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기도를 바치는 형식에 따라 구분하면, 소리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청원기도와 감사기도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기도입니다만 찬미(讚美/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기리어 칭송함)와 흠숭(欽崇/흠모하고 공경함)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찬미와 흠숭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 뵙고 하나님께 맞는 예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의 원천이시고,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인간에게 무상의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인간은 찬미로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흠숭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달아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입니다.

바치는 형식에 따라서 기도는 소리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로 구분합니다. 소리기도는 말 그대로 소리를 내어 기도문을 정성껏 바치는 기도를 말합니다. 염경(念經)기도라고도 하지요. 묵상기도는 침묵 중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뜻을 새기며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를 말합니다. 관상기도는 침묵 중에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바라봄의 기도이며, 우리 내면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들음’의 기도이며, 자신을 완전히 비워 하나님과 일치하는 비움의 기도, 일치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청원기도 가운데는 ‘중보(仲保)기도’가 포함됩니다. 중보기도는 기도하는 사람과 중보기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고독하게 하지 않습니다. 남이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힘든 세월을 지내는 동안 자신을 지탱할 수 있으며, 자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서로를 위해 존재함으로써 인간생활이 활력을 얻듯이, 인간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상대방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으로써 성령 안의 생활도 활력을 얻게 됩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온 세상과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위한 기도입니다.

< 2 >

기도는 훈련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나님과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서서히 성장하면서 부모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귐 안으로 성장해갑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눅 18:1), 신앙은 기도를 강화하고, 기도는 신앙을 강화합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사진 2,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말씀하신 것은 정신을 집중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기도는 오직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확고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 말입니다.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 천사는(사진 3, 수태고지)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눅 1,37)고 말했고,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 예수님에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며 놀라고 당황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막 10,27)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우리가 기도한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강한 의지가 요구됩니다. 예수의 옷깃만 만져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혈루병을 앓던 여인에게(사진 4. 혈루병 앓는 여인)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5:34). 귀신들려 병에 시달리는 딸을 위해 간구했던 이방인 가나안 여인에게 예수님은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마 15:28)고 말씀하시자 곧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습니다.

기도에는 믿음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라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나는 할 수 없다’거나, ‘정말 이루어질까?’하는 의심과 회의가 기도하는 사람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미리 취하여 우리 자신의 의지를 방해합니다. 완전한 실망을 맛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마음의 반쪽만을 걸고 있고, 건성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모든 힘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소원, 의지와 기도에 응답하려고 하시는데, 기도하는 사람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흔들린다면,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께 간청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은 자신의 소원과 의지에 대해 분명한 생각이 있었고 솔직한 신뢰를 갖고 예수께 왔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기도 중에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소원과 간구를 아뢰어야 합니다. 분열되지 않은 온전한 마음으로 체념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 여호수와 아론이 모세의 팔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Getty Image

셋째,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기도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바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은 예수 때문에, 예수와의 사귐 속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아버지가 되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5-16).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요한 16:24).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요한 16:23).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는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합니다. 제사장들에게 잡힌 후,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이 동료들과 드린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능력의 손을 뻗치시어 병을 낫게 해주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해주십시오.’(행 4:30)(사진 5. 성령강림). 기도가 끝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습니다(행 4:31).

넷째,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사진 6, 무화과나무) 들어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 앞에서 깨어 기도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눅 21:34-36).

골로새서 기자도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골 4:2)라고 말합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잠자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잠자지 않으면 인간은 죽습니다. 인간의 평생의 3분의 1이 자는 시간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사진 7.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든 제자들). 너무 피곤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부재를 기도 속에서 확인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견디기 어려운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 제자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자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열린 눈과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어둠의 현실을 인식하라’는 뜻이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함께 중보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기도 중에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그럴 때, 누군가 우리를 위해 함께 깨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중보기도의 힘이지요.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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