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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정치, 그리스도의 교회를 교회되게

기사승인 2021.05.08  15: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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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정치의 신학적 의의 ⑴

우리는 종종 평신도만이 아니라 목회자들도 교회정치를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본다. 이것은 일부 ‘정치목사’와 ‘정치장로’들이 노회와 총회에서 보여주는 그릇된 행태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교회정치를 노회와 총회 차원에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 하는 권력이나 어떤 가치의 배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파당과 파벌을 일삼는다. 그러한 그들의 행태는 세상의 정치모리배들이 보여주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회정치는 본질적으로 그와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질서, 교회정치

개혁교회 전통은 다른 교회들보다 교회정치를 특히 중요하게 여겨왔는데, 이는 칼빈의 가르침 때문이다. 칼빈에 의하면 정치질서는 타락 이후 모든 것이 혼돈과 무질서에 통째로 삼켜져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회 전체에 부과하신 잠정적인 질서이다. 이 질서는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완성의 때까지 임시로 적용되는 과도적인 질서이며, 그 완성을 기다리는 동안 모든 인간 사회는 혼돈과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해 잠정적인 질서, 곧 정치질서라는 인간적 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1)

칼빈은 이 질서가 특히 교회에서 준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2),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들의 시간적인 형식인 교회 안에서 질서가 깨질 때,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교회정치의 핵심은 어떻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주권을 온전히 드러낼 것인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신실하게 선포되며 말씀과 성례 속에서 제시되고(3), 그의 영예가 교회의 권징을 통해 유지될 때(4), 그리스도의 주권이 확연히 드러난다고 하였다.

개혁교회 전통에 속한 교회들(5) 가운데 무엇보다도 장로교회는 교회의 정치가 신학에 대하여 갖는 중요성 때문에 교회 정치를 진지하게 고려해왔다. 신앙은 그 자체를 표현하는 형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교 전통은 교회정치의 중요성을 단순히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교회정치는 복음에 종속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또한 칼빈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칼빈과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개혁교회 신학은 교회의 존재가 결코 정치에 의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정치의 본질은 그것의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성서에 대한 그것의 복종이라는 것이다. 교회정치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감독제가 합당한가 아니면 장로제가 합당한가, 만약 장로제를 택했다면 두 직분(목사와 장로)이 합당한가 아니면 네 직분(목사, 교사, 장로, 집사)이 합당한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교회의 주님이신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로 개혁자들에게 교회의 정치는 인간의 주도권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의 주님께 순종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어떠한 정치도 그것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한에서만,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그것이 그의 모든 결정들을 성서의 표준에 종속시키는 한에서만,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교회 정치에 대한 칼빈과 처음 장로회 정치제도를 확립시킨 스코틀랜드 개혁자들의 생각이었다.(6) 그들은 교회가 교회정치의 이 참된 의의를 잃어버릴 때,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이 교회의 머리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로마 가톨릭 교회와 영국의 국교회인 성공회를 통해 절실히 체험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정치에 대한 많은 연구물들이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정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정치 형태에 대한 연구물들일 뿐이고(7), 교회정치의 본질 혹은 의의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이 글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4권 교회론과 초기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통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되게 하는 교회정치의 실제적인 의의와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를 살펴보고, 이어서 그것이 오늘의 한국 장로교회의 개혁과 갱신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교회정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강조

칼빈이 제네바에서 그의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가 직면한 사태는 교회조직은 없는데 말씀은 선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로마가톨릭의 기본 조직은 거부되었으나 새로운 교회조직은 아직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빈은 새로운 교회의 질서에 관심을 갖고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 신앙과 생활을 지지해주는 교회조직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8) 그가 이때 가장 주목한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게 하는 결정적인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의 주된 요점은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 존경을 받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9) 그러나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가 실제로 교회의 머리와 주로서 인정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가? 바꿔 말하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곳에 진정한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종교개혁 이전까지 신학적 전통 속에서 거짓 교회로부터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교회의 표지 혹은 속성으로 인정되었던 것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회의(381년)가 고백하고 채택했던 교회의 네 가지 표지들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10)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도 이 표지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표지들만으로는 새로운 교회를 부패하고 타락한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코 차별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된 교회를 드러내는 보다 결정적인 표지를 찾았고, 결국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올바로 집행되는 곳에 참된 교회가 있다고 대답했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제7조는 개혁자들의 공통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교회는 그 안에서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11) 칼빈은 『기독교강요』제4권 서두에서 이 표지들의 기능을 명시하고, “교회라는 이름에 속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를 자칭하는 모든 집단에 이 표준을 시금석으로 적용해야 한다”(12)고 역설한다. 이와 같이 그는 이 두 표지들을 참된 교회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함으로써 단순히 그 표지들을 보이는 교회의 지시물로 보는 루터의 개념을 넘어선다.(13)

그러나 이 두 ‘표지’는 어떻게 참된 교회를 식별하는 잣대가 되는가? 칼빈은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로부터 다시 시작한다. 히브리어 ‘카알’(Kahal), 헬라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ἰα)는 라틴어로는 ecclesia로 표기되고, 소집된 모임을 의미한다. 칼빈은 그것을 군대(compagnie)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 용어가 메신저의 외치는 소리나 혹은 트럼펫 소리를 듣고 모든 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여서 신자들의 군대, 곧 신실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의 군대를 형성한다. 그들을 소집한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같은 의견, 같은 이념,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인간적인 집회에 의해 형성되는 것도, 혹은 단순히 같은 신앙과 소망과 사랑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교회는 그때까지 다른 견해를 갖고 서로 흩어져 있던 개인들을 ‘함께 부르시어’(convocatio) 하나의 단체로 구성하는 하나님의 소집에 의해 형성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의 모임이다.(14)

그러므로 칼빈은 교회의 신앙과 삶에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확고하게 세우는 일에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어떤 방식으로 교회에 임재하시며, 실제로 교회의 주님이 되시는가? 칼빈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서에서 말씀하신다”(Deus dixit)는 사실에서 발견한다.(15) 성서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 때문에, 칼빈은 성서를 대할 때,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생생한 음성을 하늘로부터 직접 듣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한다.(16)

따라서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그 말씀이 선포될 때, 그곳에 계신다. 복음의 선포는 부재중인 그리스도에 관한 인간의 선포가 아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그리스도 자신이 복된 소식과 그 효과로서 그 자리에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교회의 첫째 표지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말씀의 선포라는 지상적 형태에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의 주권이 온전히 드러나고 인정되는 곳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전도 마찬가지이다. 성례는 부재중인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단순한 상징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 안에 현재하는 상징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눈에 보이는 떡과 포도주라는 상징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재를 드러내려는 것이다.(17) 이 성만찬은 그리스도 자신이 이미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유일회적인 희생을 통해 우리가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받고 있다는 사실과 또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와 일체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증하는 예식이다.(18)

그렇다면 만약 어떤 장소에서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올바로 집행된다면, 정확히 그곳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으며(19),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이 올바로 확립되어 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20) 그러나 만약 어떤 교회에서 이 복음이 무시되고, 그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말과 허위”가 지배한다면, 성전과 사제계급과 그 밖의 화려한 외부 장식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21)

미주

(미주 1) J. Calvin,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 (Genève:Labor et Fides, 1955-1958), Ⅳ.10.27; 20.2. 이하 Institution으로 표기함.
(미주 2) Institution, Ⅳ.10.27.
(미주 3) Institution, Ⅳ.1.9.
(미주 4) Institution, Ⅳ.12.1-11.
(미주 5)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개혁교회 그룹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개혁교회’(Reformed)로서 스위스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독일 남부지역과 헝가리, 네덜란드 등 유럽 대륙으로 확산된 교회이다. 둘째는 ‘장로교회’(Presbyterian)인데, 주로 앵글로 색슨 세계에 뿌리를 내린 개혁교회들을 일컫는 개혁교회 명칭이며, 특히 영국 성공회(국가교회)의 감독체제에 대응하여 장로교 체제를 강조한 교회를 말한다. 오늘날 한국의 장로교회는 이 유형에 속한다. 셋째는‘회중교회’(Congregational)로서 영국의 국가교회요 감독교회인 성공회와의 갈등에서 시작된 교회이다. 회중교회는 개교회의 자율성과 권위를 강조하며, 예배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평신도들의 자율성과 권위를 강조한다. 넷째는 ‘복음주의 교회’(Evangelical)로서 19세기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개혁교회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구원경험을 강조한다. 회중교회와 복음주의 교회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에 대하여 유보적이거나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들이 있다. 김주한, “개혁교회의 기원과 전통형성”, 지인성 외 공저, 『개혁교회의 신앙전통』(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 2008), 104-106.
(미주 6) 칼 바르트/최 영 옮김, 『칼 바르트가 읽은 주의기도/사도신조』(서울: 다산, 2000), 217 이하.
(미주 7) 장로교 정치에 대하여 국내에서 최근 나온 연구서로는, 배광식, 『장로교정치제도 어떻게 형성되었나?』(서울: 도서출판 토라, 2006). 오덕교, 『장로교회사』(서울: 합동신학대학원 출판부, 2004). 서창원,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앙』(서울: 진리의 깃발, 2003). 이형기, 『장로교의 장로직과 직제론』(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박용규, 『한국장로교회 사상사』(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7). 임택진, 『장로교회 정치해설』(서울: 기독교문사, 1986). 이영수, 『교회정치』(서울: 한국성서협회, 1976) 등등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장로교회의 기원과 장로정치제의 특징, 정치원리 등을 소개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미주 8) 칼빈의 교회론에 대해서는, 최  영, 『개혁교회 신학의 주제』(서울: 지성과 실천사, 2005), 103-122를 참고. 루터는 교회의 조직을 거의 제후들에게 맡겼던 반면, 칼빈은 처음부터 매우 자주적인 교회의 질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신약성서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질서를 본받고자 무척 노력했다. 한스 큉/이종한 옮김,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왜관: 분도출판사: 2002), 718.
(미주 9) Institution, Ⅳ.ii.6.
(미주 10) 교회의 네 가지 표지들에 관해서는, 최  영, “Credo Ecclesiam,” 「말씀과 교회」41집(서울: 기장신학연구소, 2006), 119-140을 참고.
(미주 11) 한스 요아킴 크라우스/박재순 옮김, 『조직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446.
(미주 12) Institution, Ⅳ.i.11.
(미주 13) 티모디 조지/이은선·피영민 옮김, 『개혁자들의 신학』(서울: 요단, 1994), 278.
(미주 14) 칼 바르트, 『칼 바르트가 읽은 주의기도/사도신조』(2000), 208.
(미주 15) Institution, Ⅰ.vii.4.
(미주 16) Institution, Ⅰ.vii.1.
(미주 17) 파커/박희석 옮김,『칼빈신학입문』(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186이하.
(미주 18) 이에 반하여 로마 가톨릭의 미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하여, 지금도 날마다 미사를 집행하는 사제에 의하여 그리스도가 제물로 바쳐지지 않으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인 희생과 고난을 부인하며, 따라서 배격되어야 할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다. 칼 바르트/백철현 옮김『그리스도교 교리의 주제와 내용』(서울: 그리스도교신학연구소, 1989), 236.
(미주 19) Institution, Ⅳ.i.9.
(미주 20) 칼 바르트/신경수 옮김,『사도신경 해설』(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144.
(미주 21) Institution, Ⅳ.ii.1. 여기서 칼빈은 눈에 보이는 교회의 외형적 형태, 곧 외적인 교회의 화려함, 로마 교회의 교황의 보좌와 그 밑에 종속하는 사제계급, 주교를 중심으로 조직된 로마 교회 제도에 정면으로 맞선다. Institution,Ⅰ.pré.xxxii를 참고.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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