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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못한다

기사승인 2021.04.20  16: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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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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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이 계명은 재판과 관계된 것입니다. 지금도 법정에서 증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법정에서도 증인의 증언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전문적인 수사 기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사자 혹은 목격자들의 증언이 실제적 진실을 밝히는데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었지요.

그러나 증언이 언제나 객관적이고 진실을 밝히는데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대부분 피해자나 목격자가 고발자였기 때문에, 증인이 원고가 되면서 거짓 증언이 빈번했고, 그 폐단 또한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어떤 계명이나 율법이든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거짓증언하지 말라는 계명도 당시에 거짓 증언이 빈번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십계명 외에도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 거짓 증언을 경고하는 말씀들이 있는 것도 증언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는 ‘너희는 근거 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하여 죄인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출 23,1-2)고 경고하고, ‘거짓 고발을 물리쳐라. 죄 없는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출 23,7)고 엄하게 명령합니다.

거짓 증언에 대한 금지령은 억울한 피해자를 막기 위한 목적에서 제정된 것이자 동시에, 재판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것에도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법전은 ‘모든 성읍에 재판관과 지도자를 두어, 백성에게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하고, 재판에서 공정성을 잃어서도 안 되고, 사람의 얼굴을 보아주어서도 안 되며, 재판관이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경고하는데, 그것은 ‘뇌물이 지혜 있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신 16,18-19)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재판은 공정해야 했고, 거짓 증언으로 죄 없는 사람이 피해를 당해서는 안되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법전은 반드시 두세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했고, 거짓 증언을 악의 뿌리로 규정하면서, 거짓 증언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된다며, 목숨에는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지요.(신 19,15-21). 특별히 사형 같은 중한 선고에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는 규정을 둠으로써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악한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뇌물로 증인을 매수할 수 있고, 허위 고발과 거짓 증언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증언으로 피해를 본 만큼, 거짓 증언한 사람에게 같은 피해를 입혀야 한다는 동태복수 법규만이 아니라, 말라기는 ‘거짓으로 증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말 3,5). 동태복수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에게 내린다는 것이지요. 저도 어떤 교수의 거짓 증언으로 법정에서 참담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황당하고 격분했지만, 아무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말라기의 이 말씀만이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지요.

▲ 제8계명의 거짓증언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법정의 문제이다. ⓒ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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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6세기 교회개혁자인 칼뱅은 이 계명을 단지 법정에만 한정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이웃의 명예와 이익을 침해하는 모든 언급을 금하는 계명으로 확대해석했습니다. 칼뱅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이 계명을 ‘어떤 사람이든 중상모략하거나 무고해서는 안되며, 허위 사실을 퍼뜨려 그에게 해를 끼치고 험담이나 경솔한 말로 상처를 입혀서도 안된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지요.

법정에서의 거짓증언만이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정 밖에서도 비방, 허위, 가짜뉴스, ‘카더라 통신’, 아니면 말고 식의 유언비어, 악성 댓글들이 사람의 명예와 명성, 자존심과 재산에 엄청난 상처와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2008년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최진실 씨의 죽음부터 2009년 가수 겸 배우인 설리 씨의 사망 등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악플’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거짓증언에 의한 일종의 사회적 타살입니다.

우리 시대는 그런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무엇이 거짓말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딘가에는 진실이 말해져야 하고, 그리고 누구인가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언론이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가짜뉴스가 판치고, 권력과 자본의 힘에 의해 진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곳에서 교회만큼은 믿을 수 있는 진실이 선포되는 곳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인만큼은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martyr)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증인’(witness)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순교자란 정직한 증언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목숨이 위협받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 증인이 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법정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을 중상모략(中傷謀略)하거나, 험담이나 거짓으로 명예에 상처를 내거나, 인격을 깎아 내리는 언행도 거짓증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계 21,8)고 하여, 거짓말을 지옥심판의 죄로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닫아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벧전 3,10)고 성경은 권면하는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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