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보았던 날 1

기사승인 2021.04.09  15:21:31

공유
default_news_ad1

- 영적 여정의 오솔길

ⓒGetty Image
김오성 목사님의 이 글은 ‘평화교회연구소’(소장 황인근 목사)가 발행하는 웹진 「주간 평화교회」 60호에 수록된 것을 평화교회연구소와 저자의 동의를 얻어 에큐메니안에 게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 주신 평화교회연구소와 김오성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1 >

40대 초반의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체나 그림의 모든 수직선들이 중간에 작은 벼락처럼 지그재그의 선이 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일까? 이것을 궁금해 하다가 신체적인 증상에 대하여 무지한 까닭으로 그저 노안이 조금 일찍 온 것은 아닐까 지레 짐작했다.

며칠 지나 적응하면 원상태로 회복될 줄 알았다. 눈이 약간 불편한 것 말고는 아무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새로운 곳에서 실무대표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는 시기였다. 해야 할 일들이 보였고, 때마침 연합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느라 몸에 대해서 진득하게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 2 >

몇 일을 견뎌보다가 노안용 안경으로 바꾸기 위해 안경점에 갔다. 렌즈를 아무리 교정해도 벼락은 사라지지 않았다. 증상을 이야기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버스를 타러 가던 도중에 길 건너편에 안과가 보였다. 안과에 가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안과에 가서 동공 풀리는 약을 넣고 검사한 결과 눈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며 의뢰서를 써주면서 내과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안과를 나와보니 또 다시 길건너편에 내과가 보였다. 내과에 가니 다음날 금식을 하고 와서 혈액 검사를 하란다. 그렇게 혈액검사를 하고 몇 일 기다려 결과를 들으니, 의뢰서를 써주면서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이때만 해도 별일 없으려니 하며 그저 심드렁했다.

< 3 >

그렇게 의뢰서를 가방에 들고 다니면서 연합행사만 끝나면 종합병원에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터였다. 연합행사가 끝나고 뒷풀이 저녁 자리에 행사를 함께 준비한 20여명이 사람들이 모였다.

우연의 일치, 혹은 그 분의 섭리였는지, 때마침 의료선교회 간사를 하시는 목사님과 동석을 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때마침 들고다니던 의뢰서가 생각나서 이야기를 했다. 그 의뢰서를 보더니, 자기가 알고 있는 의사가 있다고 즉시로 전화를 해서 다음날 진료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 4 >

이른 아침 그 목사님과 함께 고대병원으로 가서 의사를 만나 의뢰서를 보였다. 간단한 검사만 하면 될 줄 알았었는데, 왠 걸 집에 가서 입원할 준비를 하고 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집에 가서 내복가지며 치약, 칫솔 등을 챙겨 병원에 입원했다.

다음날 검사를 받으러 이곳 저곳으로 옮겨가다가 희한한 병실을 하나 보았다. 환자 2~30명이 누어 있는데, 모든 환자들이 팔에서 피를 뽑아 침대 옆에 큰 기계와 연결시켜 놓은 장면을 본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것이 무엇일까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 5 >

입원한지 3일째 담당 의사가 오더니 검사결과를 이야기해주셨다. 원인 미상의 ‘말기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말기’라는 단어가 무엇인가 심각한 증상임을 알려준다고 느꼈을 따름이었다.

의사는 앞으로 길면 1년, 짧으면 1달 이내로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서 결정을 하라고 했다.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이라는 방법이 있는데, 둘 다 투석 방식에 맞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떤 투석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뭐라 설명을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렸다.

< 6 >

워낙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늦되고, 특히 선택을 하는 것에는 결정이 어려워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판단이 안 되었다. 그것보다 일단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의사에게 결정하기 위해 잠시 기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퇴원을 요청했다.

퇴원하면서 보니 병원 진단서에는 진료거부라는 소견이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잠시 결정을 미룬 것을 진료거부라는 딱지를 붙이니 내심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7 >

퇴원을 해서 일주일간 기도하러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의 몸상태는 기도는커녕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 들었는지 틈만 나면 잠을 잤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기도원에서 나와, 인터넷 검색과 책을 통해서 ‘신장병’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신장병은 기묘한 난치병이었다. 원인은 수도 없이 많았고, 유전적인 요인도 큰 비중을 차지한 병이었다.

다만 말기가 되기 전에 몇 가지 징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워낙 사소한 것들이라 주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아주 미세한 사인들을 무시하고 넘어가서, 뚜렷한 징후를 보이기 시작할 때는 이미 어떻게 손써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이미 몇 몇 사람들이 신장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강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 8 >

서양 의학으로 난치병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그 다음 치료방식으로 찾는 것이 동양의학이었다. 나 역시 그 코스로 들어섰다. 우연히 용하다는 한의사를 소개받아 만나게 되었다. 그 한의사는 고칠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하였다. 다만 치료과정에 투석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짧아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투석받을 수술을 받고 나서 한방적인 치료를 해보자고 하였다.

그 의견이 나름 합리적이라고 판단이 되어 투석을 받을 수 있는 수술을 먼저 받고 한방 치료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게다가 어떤 병에 걸리면 그 병을 잘보는 의사에게 다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고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말기신부전 판정을 받은 1달만에 다시 진단과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평생 병원과 동행을 하게 되는 첫 발걸음이 될지는 몰랐었다. (다음에 계속)

김오성 목사(한국살렘영성훈련원) peacechurch2014@g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