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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페이’만 강요당하는 사람들

기사승인 2021.04.02  16: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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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모 소리

▲ ‘신앙페이’, ‘열정페이’만을 강요당하는 교회의 부목사들 ⓒGetty Image

“제발 일어나지도 않을 알람은 맞추지 말아라”

띠링띠링, 띠롱띠롱, 울리는 알람들을 끄느라 바쁘다. 이왕이면 어울려 화음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최대한 자신들이 거슬리는 소리로 잠을 깨려는 각오를 담아 알람 벨소리를 고른 것 같다. 요란한 소리만이 아니다. 드르르륵 진동까지 함께 울리는 탓에 혹시 바닥이 울려 아래층에 새벽부터 폐를 끼칠까 걱정이다. 발뒤꿈치를 들고서 달려 서둘러 이 방 저 방을 다닌다.

남편을 가장 먼저 깨운다. 몇 시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나마 잘 일어나는 큰 아이가 다음 차례다. 그리고는 얼른 어린 자녀에게 옷을 입혀야 한다. 새벽에는 제법 쌀쌀하여 내복에다 겉옷을 입히고, 외투까지 두둑하게 입혀야 한다. 팔을 끼우고, 허리를 젖혀 드는가 하면, 다리를 내밀고. 아직 잠을 깨지 못하여 게슴츠레 눈을 떠서도 어느새 능숙하게 함께 옷을 입는다. 가장 깨우기 힘든 둘쨀 깨울 차례다. 몇 분이라도 더 자게 해주려니, 가장 늦다. 그러나, 깨우는 시간은 가장 오래 걸린다.

드디어 나도 나갈 채비를 한다. 사실, 나는 거의 잠을 못 잤다. 혹시라도 사순절의 ‘특별새벽기도’ 기간에 펑크를 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힘든 일이다. 설령 낮에 한숨 자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불안함으로 시계를 보고 또 보며 쪽잠을 잔다. 그래도 남편은 토요일까지 새벽기도를 하는 대신 금요 철야가 없다는 사실이 상당히 편해 보인다.

이것은 마치 우리 교회 집사님이 코로나로 팬데믹 상황이 되어서 금요철야를 드리지 못한 때에 이야기한 반응과 비슷하다. 일주일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가족과 느긋한 저녁식사를 즐겼다면서 말이다. 주일에 교회에서 장로님, 부장님으로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는 청년도 있다. 서른 넘은 이제야 평일은 회사, 주일은 교회에서 바쁘던 아버지를 집에서 온종일 만났단다. 한편은 익숙한 가족들의 부재가 정서적으로 편하기도 한 어색함도 있단다. 이윽고, 예배드리지 않은 것을 기뻐한다는 죄책감과 뭐라도 해야 하는 불편한 강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 지나니 나름대로 익숙하다. 여느 금요일이었다면, 새벽 4시 20분에 차량운행을 시작으로 금요철야 차량운행을 끝내고, 자정을 넘겨 토요일이 되어야 귀가를 했을 터다.

직업인으로서 교역자 그리고, 일반 신도. 모두가 교회에서 바쁘다. 엄밀히 현재로서는 ‘교회에서 바빴다’가 더욱 적합하겠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바빴을까? ‘교회생활’, ‘믿음생활’이 속되게 말하는 ‘뺑뺑이’로만 유지되는 것인가?

코로나19는 쉼 없이 달리는 우리를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성전’이라 칭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에만 가두려 했던 우리를 신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시듯 흩으셨다. 매일 바빴던 교회 카페, 매 주일 바빴던 교회 식당, 그뿐이던가 전도특공대, 노인대학, 아기학교, 문화센터, 등등. 공적 예배를 제외한 모임들은 교회에서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 교회는 영적 공동체로서의 본질적 기능에 집중하고 영적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부름 받아 나서기 전 준비되셨나요?

신학생들은 목사가 되면 대다수 교회건물을 지으니 혹은 짓기 원하니, 건축학을 전공필수, 차량운행을 위한 운전면허 취득도 패스 과목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를 혼자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음향이나 전자기기 사용은 물론이고, 각종 영상 제작과 편집 등의 디지털 적용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독창발표회 내지는 콘서트나 다름없는 온라인예배 송출용 찬양 실력도 필수 요소인 듯하다.

화면에 클로즈업되니, 하나같이 외모를 단장하는 것에도 공을 들인다. 물론 미자립 교회의 단독 사역이라면 더욱 넓고 다양한 능력들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보일러 교체, 페인트칠, 변기교체, 전등교체, 지하수 펌프 수리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어찌되든지 그러한 일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 기술에 속하는 것일 뿐이다.

목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 때문에 바빠야 할까? 유진 피터슨은 바쁘지 않은 목사가 영성의 한 요소로 보았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당신은 무엇이라 답하고 있는가? 이왕 말이 나왔으니, 목회자 과세 제도가 시행되면서 근로계약서라는 것을 작성한다. 과세 신고의 방법도 ‘근로소득’으로 신고할 수 없게 한다. 부목사에 대한 4대 보험지출에 대한 부담을 안지 않기 위함이다. 물론 고액의 사례비를 받는 담임목사에게 ‘기타소득’ 신고는 종교 활동비의 비과세 인정이라는 큰 혜택도 있겠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 두 가지가 있다. 계약서에 노조 설립 금지가 적시된 것. 다른 하나는 주 5일 근무이되 주일과 월요일이 휴무라는 것이다. 목사에게 주일이 쉬는 날일까? 나로서는 도대체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설명 듣기로는 여느 성도와 같이 주일에는 봉사란다. 포괄임금으로 지급되는 월급은 연장, 야간, 휴일 근무 등의 특근수당도 없다. 이러한 계약은 수도권의 중대형교회에 부목사의 고용계약에서 대다수 적용되고 있다.

워라밸(work life balance)까지는 아니더라도 유급휴가를 꼬박꼬박 쓰려는 요즘 젊은 목회자들은 열정이 없고 소명이 희박하다는 핀잔을 각오해야 한다. 담임목사들은 휴가를 쓰지 않고, 세미나 참석으로 골프 여행을 다녀온다는 데... 기억하기로 루터는 일찍이 만인사제 이야기하면서 목사(사제)는 교회 안으로, 평신도는 교회 밖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기능, 역할의 차이만이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에게 적용된 거룩한 소명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강요된 ‘존버’의 ‘열정페이’, ‘믿음페이’를 만들어낸다. (참고로 ‘존나 버티기’ 또는 ‘burning’이라는 뜻의 존버는 속어이나 젊은층이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거룩하지 못한 단어 사용은 죄송하나, 현실감을 반영한다.)

서비스 종사자입니다만

여느 평신도처럼이라고 했으나 service에 종사하는 부목사는 일반적인 성도와는 다른 시간의 패턴으로 살고 있다. 쉽게 말해, 남들 쉴 때 바쁘고 남들 바쁠 때 쉴 틈이 있다. 전형적인 서비스직 노동자다. 주말이나 8월 초의 휴가절정에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을 갈 수도 없다. 쉬는 날인 월요일은 아이들이 일부러 맞추어 체험학습으로 쉬어도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등의 시설들은 대부분 휴무이다.

그나마도 교회 행사나 장례라도 있다면 모든 사적 시간 계획은 취소다. 한편, 대체로 계약당사자 ‘을’은 비정규직이다. 담임목사와는 정년의 보장도 다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될 수 없는 그들은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다. 우리 아들에게 ‘닥털(닭털)’이라며 놀림 받는 남편도 박사다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불투명한 미래와 같은 황사가 요사이 온통 하늘을 뿌옇게 뒤덮는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던 그 때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크게 소리 지르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oi, Eloi, lama sabachthani).’ ‘부재’와 ‘임재’ 사이에서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면 살아갈 힘과 소망이 있다. 이제 사순절이 끝나고 부활절이 다가온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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