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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만족하고 살게”

기사승인 2021.02.16  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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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학자가 묻고 이경수 감리교 원로목사가 답하다

이번 호는 감리교회에서 30년간 목회현장에서 사역을 하신 이경수 원로목사님을 모시고 인터뷰로 하였다. 이 인터뷰는 2020년 12월 16일부터 2021년 2월 14일까지 대면 인터뷰, 유선 통화, 그리고 이메일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 필자 주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은 현장에 계신다

▲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은 사회생활을 하시다가 목회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목회의 길에 들어셨는지요?

▲ 이경수 목사 근영

원로 목사: 우선 모든 《에큐메니안》 독자들께서 코로나 시대를 잘 극복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저의 경우는 모태신앙은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셋째 누나 따라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 나가기 시작한 것이 신앙생활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큰누나가 다니던 장로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신학교에 가기 전까지 쭉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중·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고 고1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너 이 다음에 목사 될래?’라는 말을 들었지만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고3이 되면서 한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입에 떨어져 재수하면서 대학에 합격시켜주면 신학공부하겠다는 서원을 혼자서 세우고 공부해서 고려대 사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교회 대학부 활동을 하였는데 당시 표재명 장로(고대 철학과 교수)의 지도로 문학과 철학, 역사와 신학 서적을 섭렵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하니까 중학교 교사가 되어서 일을 하다가 서원을 지키기 위해 1년 만에 장로회신학대학 시험을 보고 합격했으나 어려서부터 키워주신 교회 목사님 찾아뵙고 인사드렸더니 문득 하시는 말씀이 “이 선생, 부름받았나?”였습니다. 이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신학교를 포기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물음의 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혼자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신앙흔적 때문인지 지금도 현장에서 ‘예수가 살아가신다면 어느 현장에 계실까’를 생각하면 부지런히 그 현장에 찾아가는 것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종교연구를 위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종교인과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종교인이 자신의 종교체험을 증언하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목사님께서도 특이한 종교경험이나 신비체험이 있으셨는지요?

원로 목사: 저는 종교체험이나 신비체험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철야기도를 한 적도 없고, 금식기도를 해 본 적도 없고, 방언을 해 본 적도 없이 오로지 전국을 방랑하며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자의 길이란 무엇인가? 부름받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듣는 것인가? 계시가 갑자기 내려오나? 그렇다면 결국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 건가? 예수처럼 살 수 있는가? 하는 실존적인 물음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도 참 많이 읽고, 예수의 전기도 다 찾아 읽고 하면서 특히 누가복음에 심취하여 곁에 다가오는 사람들 품어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신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생명을 죽이는 일은 사탄의 일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나에게 “그런 삶을 살라시면 그렇게 살겠다”는 신앙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녁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우연히 부름받았나 물으셨던 ‘그 목사님’을 만나 탕 안에 벌거벗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감신대에서 야간신학생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로 바로 서류를 내어 감신 신학원에 들어갔고, 이어 동 신대원까지 나와 본격적으로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수표교교회와 쇄암교회를 거쳐 어린양교회(1997-2012) 담임목사로 일하다 조금 일찍 은퇴하였고, 나우리교회(2012-현재) 소속 원로목사로 있는 중입니다.

내 목회활동의 사명은 “내가 길을 찾지 않고 길이 열리는 대로 가겠다. 그게 어디서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게 주님이 가라 하시는 길인 줄 믿고 가겠다.”라는 사명으로 30년 목회의 길을 걸었다고 회고를 하게 됩니다.

▲ 이경수 목사

특별히 내 목회의 절반은 상담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부목사 때 상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1997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생명의 전화 상담원으로 봉사하고 있는데 부끄럽지만 20년 장기봉사상 및 1,500시간 상담봉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전화(24시간 개방)에서 봉사한 지 올해로 25년째인데 봉사시간(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에는 거의 쉴 틈 없이 전화가 옵니다. 자살하려는 사람 등 사회적 안전망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절체절명의 외마디와 하소연들을 듣고 나면 진이 빠져 버립니다. 그래도 하루 두세 명 적어도 하루에 한 명의 목숨은 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내담자 중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고 그들의 말을 통해 듣는 한국 교회의 속 모습, 목회자들의 추한 모습, 교인들의 실상을 너무나 많이 들었지만 지면상으로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모습,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이 많지만 말을 아끼겠습니다.

▲ 목사님은 대형교회의 목사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이름도 나지 않았다고 수차례의 인터뷰 요청에도 한사코 거절을 하셨습니다. 소위 목회에 성공한 성공사례는 지상에 많이 알려져 있기에 숨겨진 목회현장에서 묵묵히 성서의 정신을 실천하는 분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는 오히려 목사님처럼 작은 교회, 이름 없는 교회의 자리에서 사회적 약자와 동고동락하는 목회를 해야 하는 것이 성서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요?

원로 목사: 처음 의뢰를 받고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한국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원로 목사로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인터뷰를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같은 지방에 나이가 나보다 몇 살 위여서 형님으로 모시던 선배 목사님이 계셨는데 교회를 개척한 지도 꽤 되었고, 건물도 있고, 교인들도 제법 모이는 교회의 목사님이셨는데 하루는 나보고 이렇게 말합디다. “이 목사, 이 바닥에서는 교회만 크면 무조건 형님이야!” 모든 것이 교회 크기, 교인숫자로 판가름 나고 그러면 아무리 나이가 적고 어려도 형님노릇 한다는 취지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만나본 목사님들 중에는 진짜 큰 교회 목회하면서도 겸손하시고, 티 안내시고, 끊임없이 베푸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교회가 커지면 참된 의미의 목회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건 당연지사입니다. 교회가 커지면 그건 경영이고, 기업이 되어 버리고 관리가 되는 것이지 그걸 목회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어느 목사님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앞자리에 앉은 분이 인사를 하는데 도무지 누군지 알 수 없어서 누구신데 인사하느냐 했더니 자기가 목사님 교회 장로라고 말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회현장에서는 보통 300명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목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면을 빌어 말씀드리지만 제발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욕심부리지 말고 교회 나누는 일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신사참배, 제주 4·3사건, 권력유착의 교회성장은 개신교의 3대 죄악

▲ 목사님께서 하실 말씀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교계의 실상을 솔직하게 더 묻고 듣고 싶지만 공적인 자리라 말씀을 아끼시는 것 같아 더 여쭙지는 않겠습니다.  목회자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 권력과 세속적 명예와 탐욕적 자본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세상에 이름이 납니다. 사실 종교인은 세상과는 일정한 ‘영성적 거리’를 유지하라는 것이 세계 경전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가 세상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대형화, 기복화, 자본화의 길로 접어들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빚’이 되었다는 자성의 소리도 이곳저곳에서 들리기도 합니다. 사회의 혁신세력이 되어야 할 한국 교회가 오히려 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이런 종교적 현상이 생기데 된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원로 목사: 소위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어둠과 부패의 세력으로 몰리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사실은 코로나 이전부터 일찍이 잠재되어 있던 것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터지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한국 교회가 지니고 있는 업보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신사참배 문제입니다. 3.1운동을 비롯해 그나마 조국독립과 민족해방에 참여했던 한국 교회가 집단적으로 하나님과 민족을 버리고 일제에 투항한 것이 신사참배라면 그 때의 교회지도자들이 책임을 면키 어렵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제대로 회개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자들이 교회지도자로 군림했던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둘째는 해방 후 남북대치 상황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북쪽 출신 기독교인들이 주로 모인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소위 서북청년단을 만들어 제주 4.3사건을 비롯한 민족상쟁의 비극을 일으킨 것 또한 한국 교회가 저지른 씻을 수 없는 과오입니다. 셋째는 한국 교회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망가진 원인을 꼽으라면 1970년대 경제개발과 맞물려 일어난 교회 부흥운동의 결과 교회의 대형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을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운동의 결과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소위 부흥사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성장론자들이 당시 권력을 잡은 독재자들과 밀착해서 그들을 지지하고 권력을 뒷받침하고 그 댓가로 경제적 특권을 누린 것이 교회성장의 배경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시작으로 해서 세계 최대의 교회,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 등이 등장했고, 세계 10대 교회 중 6~7개가 한국에 있다는 통계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교회가 커지고 모이는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전국에 지교회를 세우면서 엄청난 헌금수입이 생기고, 땅과 건물 등 부동산을 사들이고, 비자금 만들어 유용하는 일들이 생겨 타락에 빠져드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수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되니 그걸 놓을 수 없어서 자식에게 물려주게 되고, 개교회를 넘어 수많은 단체를 만들어 벼슬을 탐하게 되고, 그러다 개중에는 성적 타락에 빠져 온 교회를 망신시키는 목사들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한 마디로 ‘예수 없는 교회’, ‘복음 없는 교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목사가 이미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있으니 예수는 필요없는 것이고, 예수의 복음은 교회성장에 도움이 안되니 벗어버린 격이지요. 하나님 대신 바알이 중심이 되고, 복음 대신 성공철학이 선포되는 상황이니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어둠과 부패의 세력이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고 이것이 최근에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해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신측 목사님이신 권수경 목사님이 쓰신 『번영복음의 속임수』라는 책을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밝 변찬린 선생은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인물

▲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가 1980년 전·후에 출간된 후 목회현장에서는 필요에 따라 적지 않은 목회자가 설교 자료로 사용한 걸로 당시 개신교 언론지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985년에 《풀빛목회》에서는 ‘한국교회 제3의 물결 성서공부 교재’의 하나로 『성경의 원리』를 주목하였으며, 지금도 교계와 목회자, 변찬린과 관계가 있었던 분들이 SNS에 『성경의 원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성경의 원리』가 개정신판으로 출간되었는데 목사님은 어떤 기회로 한밝 변찬린 선생의 『성경의 원리』를 읽으시게 되었는지요?

원로 목사: 몇 년 전 지인으로부터 예전에 나온 『성경의 원리』를 소개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인은 저와 막역한 사이고, 아무 책이나 소개하지를 않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았습니다. 저자가 ‘邊燦麟 述’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쉽게 쓰여졌기에 읽는 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에서 언급되는 용어와 주제는 그리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목회 경력이 30년이 되고 게으르지 않게 성서를 수십 회 통독한 입장에서 한밝 선생의 주제별로 인용하는 성구에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성서 전체를 암송하는 경지를 떠나 성서해석의 신기원을 이룬 책처럼 느껴졌지요.

더구나 제가 다방면에 걸쳐 독서를 하는 편인데 한밝 선생이 책에 사용하는 종교적 용어는 편하게 읽히면서도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그 맥락은 전혀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책을 처음 읽은 느낌을 말하는 것인데 그 다음에 불쑥 드는 의문이 도대체 어떤 삶을 사셨던 분인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분에 대한 삶이 궁금해서 시중에 나온 『한밝 변찬린: 한국종교사상가』와 그분의 종교운동을 해석한 『포스트종교운동』을 읽어보고는 그분의 처절한 구도자로서의 생애, 종교개혁가로서의 생애, 한밝문명사가로서의 생애, 풍류학자로서의 면모를 알고는 이런 분이 어찌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스러움이 들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그분의 구도생활을 책을 통해 접하고는 한마디로 한밝 선생이야말로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한밝 선생의 삶과 사상이 좀 더 널리 알려져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 목회자에게 하는 공식적인 첫 질문인 것 같습니다.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가 목회현장에서는 어떻게 자리매김이 될까요? 솔직하고 편안하게 말씀해 주시면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원로 목사: 한국 목회 현장을 보면 교회와 신학, 신학과 설교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 감신대에서 불교와의 대화에 앞장서셨던 변선환 교수의 출교사태, 그리고 손원영 교수가 사찰에서 행한 설교에서 예수가 육바라밀을 실천했다는 것 등이 현장 목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얘기는 처음 하는데 제가 아는 몇몇 목사님들과 평신도 몇 분에게 『성경의 원리』를 드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그분들에게 책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한 마디로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지금까지 배운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밝 선생은 풍류를 바탕으로 유교, 불교, 도교 등과 동학, 증산교 등 토착종교를 아우르며 역사적인 제도적 기독교가 아니라 초역사적 초종교를 지향하였고, 이를 통해 “성경을 선(僊)의 문서”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단어들부터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또 쉽게 쓰여진 책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문장들이 곳곳에 튀어나옵니다.

그러니 평신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이 단시간에 한밝 선생의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밝 선생은 성경 66권을 다 암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자유자재로 성경구절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유교, 불교 등 다른 종교들의 경전이나 다른 학문들의 내용들까지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것에 압도당하며 커다란 벽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책을 읽든, 무슨 경험을 하든, 누구와 대화를 하든 그 모든 것이 설교에 맞춰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설교할까? 어떻게 설교에 써먹을까? 예화로 쓸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데 한밝 선생의 책을 갖고 설교를 할 수 있는 목사들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교회의 부패상과 세계 신학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있기에 오히려 이런 사정에 정통했던 한밝 선생의 성경해석은 큰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 가운데에 한밝 선생에게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유명 대학 교수가 논문을 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의 원리』를 세 번 정도 정독하고, 이호재 교수님이 쓴 『한밝 변찬린: 한국종교사상가』를 읽고, 한밝 선생의 『선방연가』라는 시집을 옆에 놓고 하나씩 읽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목사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경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찬찬히 “성경의 원리”를 한 번 읽어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 변찬린 저술과 학술연구서(출간순)

▲ 변찬린 선생의 종교적 생애를 읽어보셨다면 오늘날 목회자에게 어떤 점을 소개하고 싶으신지요?

원로 목사: 한밝 선생이라는 분이 어떻게 이렇게 철저한 무명의 자리에서 구도를 하였는가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성서의 진리를 알기 위해 그야말로 처절하게 묻고 대답하고 그리고 동족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자기의 편함을 구하지 않았던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오히려 숙연해지는 마음까지 들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과연 우리 목회자들은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의 복음을 무명의 자리에서 진실되게 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대해 한국이라는 삶의 정황에서 성경을 읽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분의 성경해석의 생경한 부분은 우리 이웃들이 신앙하는 종교에 대한 관심까지 포함해서 성경해석에서 그 물음과 대답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교수가 “유불선기(儒佛仙基: 유교, 불교, 선교, 기독교) 사교(四敎)를 다룰 시점이 되었다는 확신이다. 한밝 선생이 그 일을 하고 떠났다”고 쓴 글을 본 기억이 있고, 또 다른 교수는 “유영모와 함석헌 그리고 김흥호와 더불어 변찬린에게서 이렇게 새로 배운다. 훌륭한 스승들이다. 이들을 통해 서양에 동양적 성서론이 거꾸로 소개되어 정신세계와 계시세계의 풍성함이 더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라는 소감을 블러그에 남기기도 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호재 교수님의 연재는 한국교회를 위해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목사, 질문하는 교인, 사회와 동고동락하는 교회가 한국 교회를 살린다

▲ 조금 대담 주제와는 벗어날 수도 있지만 초기 코로나 발생 사태 때 그리스도교계가 신천지를 대하는 태도와 태극기 집회로 대변되는 극우 그리스도교계가 보이는 현상에 대해 주류 그리스도교계가 보이는 반응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원로 목사: 이 질문에는 신천지로 대표되는 소위 이단이나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전광훈 류의 극우 기독교계와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주류 기독교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과연 한국교회에서 주류 기독교계라고 불리는 집단이 과연 어떤 것인지, 주류 기독교계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부터 짚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주류 기독교계라 하면서 소위 ‘장감성’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는 이름을 단 교회들은 흔히 말하는 정통교회라고 인정받던 때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장로교만 해도 예장, 기장, 고신 등으로 갈리고, 예장은 다시 통합, 합동을 중심으로 엄청난 수의 교단으로 갈라졌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 아래 교단을 나타내는 명칭이 붙은 숫자만 100개가 넘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게 대부분 목사들의 자리다툼 결과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순복음 계열의 교회들이 급격히 성장했는데 그들 또한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교파에 관계없이, 교단에 관계없이 수많은 신학교들이 세워졌고, 엄청난 수의 목회자를 배출했습니다. 그것 역시 돈벌이가 되니까 목사들이 저지른 일입니다. 거기에 이단으로 불리는 교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스운 말로 우리나라에 자칭 메시야, 자칭 재림주가 몇 백 명 된다는 것이 한국 교회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많은 교단이나 교파들 중에 어디를 주류 기독교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기총 등은 대형교회 목사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단체일 뿐입니다. 한 단체에 회장이 몇 명인지 세어보면 뻔합니다. 대부분의 연합단체들이 또한 그렇게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기관을 NCCK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활동과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 모든 교단들, 교파들, 분파들이 다 똑같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목사들의 온갖 범죄행위가 여기저기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니 목사로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솔직히 할 말이 없고, 지금은 한국교회가 침묵하고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 한국 목회현장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시면서 한국 그리스도교계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계시면 한국 교회의 건전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원로 목사: 외람되지만 원로목사로서 현직에 있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드릴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몇 마디 하겠습니다.

우선 목회자들은 첫째 ‘예수로 만족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교육전도사를 4년 하고 시골교회 담임전도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모시고 있던 조경우 원로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마지막에 한 말씀 해주셨는데 “이 전도사, 예수로 만족하고 살게”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평생 그 말씀 기억하고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둘째, 설교를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가능한 한 적게 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성경공부를 하라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설교보다는 오히려 그 시간에 교인들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하여 서로 소통하는 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끼리끼리만 어울리지 말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을 게토화된 교회에 가둬두지 말고 “온 세상이 나의 교구”라고 말씀하신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관심분야를 넓히고, 역사의식을 키워야 합니다. 목사들만큼 속이 좁고 사방이 막힌 사람들이 없다는 말을 듣지 않아야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성경의 원리』 사부작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도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싶습니다.

첫째, 우선 ‘맹목적 교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여야 합니다. 성경을 향해, 목사를 향해, 나 자신에게 질문하여야 합니다. 질문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무조건, 덮어놓고 믿지 말고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찾아 나가서 성경 안에서, 세상 안에서, 인간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 주일만 교인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교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만 교인이고 세상에서는 교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더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베풀 줄 모르고, 돈만 밝힌다면 그가 사는 곳이 곧 지옥이며 그런 사람이 죽어서 가는 천당이란 없습니다. 살아가는 현장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 곳이 바로 천국이 되게 해야 합니다.

셋째, 돈 밝히고, 돈 긁어모으는 교회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목적이 되는 목사들은 삯꾼이요, 사탄의 종입니다. 개인적으로 목회 30년 동안 헌금을 강요하는 설교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러니까 교회가 안 큰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과 예수 앞에서 이 문제만큼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 어려운 기회에 인터뷰를 하시는데 목회자가 사역을 하시는데 가족분들도 동고동락한다고 알고 있는데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계시면 이 자리를 빌어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원로 목사: 작은 교회 목회하는 남편의 사역에 반려자로서 불평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어려움을 감내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잘 자라서 꿋꿋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딸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이나 한국 그리스도교인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계시면 간단하게 해 주시지요.

원로목사: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교회에 다니시는 분도 있을 테고, 아닌 분도 있을 텐데 혹 내가 한 말들이 너무 심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 마음에 상처가 되는 분들에게는 용서를 구합니다. 다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교회 규모는 작지만 정말 신실하고, 인격 갖추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 때 남은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그런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찾아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끝으로 그동안 제가 만난 많은 제자들, 교우들, 동역자들에게 하나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장시간 인터뷰에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진솔한 대담내용이 한국 교회의 발전과 건전한 한국 그리스도교 문화 형성에 큰 자양분이 되길 기대합니다.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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