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껍데기는 가라

기사승인 2021.01.20  14:23:43

공유
default_news_ad1

- 전환, 율법의 정화수와 복음의 포도주(요한복음 2:1~12)

본문말씀은 유명한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로 만든 기적을 전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의 공생애에서의 첫 사건이자 동시에 첫 기적 이야기입니다. 그 만큼 이 이야기가 뜻하는 바가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즐거운 잔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전하는 상황을 다시 한 번 돌아볼까요?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있었습니다. 요즘 결혼식의 상황을 연상하면 안 됩니다. 그야말로 축의금을 내고 한 끼 식사하고 깔끔하게 흩어지는 풍경이 아닙니다. 집에서 결혼식이 이뤄지고 종일 결혼잔치로 요란법석한 상황입니다. 그 결혼잔치에는 예수와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이 초대받아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잔치에 빠질 수 없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때 예수의 어머니가 술이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 대화의 상황을 보면 묘합니다. 예수의 가족이 잔치의 주빈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거기까지는 그런 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술이 떨어졌으면 그 사실을 먼저 확인한 사람이 그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상한 것은, 어머니의 말에 이어지는 예수의 대꾸입니다. “여자여,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이 대답은 어머니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상관이오. 나의 때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나의 때’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자신의 정체를 온전히 드러내는 때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아직 그 때가 아니니 잠시 기다리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멈칫해야 할 것 같은데, 어머니는 주저함 없이 스스로의 몫을 수행합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일러둡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는 바로 방금 전에 보였던 태도와는 달리 돌로 만든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합니다. 그 물 항아리들은 유대교의 정결예법에 따라 준비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결례를 치르기 위한 정화수를 담아두는 항아리였습니다. 일꾼들이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예수께서는 이제 그 물을 떠다가 잔치를 맡은 사람에게 가져다주라고 말합니다. 잔치를 맡은 이는 그것이 훌륭한 포도주라는 것을 알고,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이 미리 예비해 둔 것으로 칭찬하며 잔치를 계속합니다. 당연히 잔치의 즐거움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께서 이 첫 번째 기적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냈고,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잔치자리의 상황이니, 여러 가지 흥미로운 장면을 떠올릴 수 있지만, 오늘 이야기에서 특별히 두 가지 점을 주목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와 어머니의 이상한 대화 장면이요, 두 번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첫 번째로, 잔치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게 된 어머니가 아들 예수에게 요청했을 때 두 사람의 대화는 상당한 긴장감이 돕니다. 대답 그 자체로 볼 것 같으면 거절의 의사를 밝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뭔가를 보여줄 테니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 대비하도록 일러 줍니다. 과연 예수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고, 그것을 포도주로 바꿔냅니다.

이 긴장감 도는 대화의 상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에서는 이 대목에서 처음 등장하는 어머니는 아들 예수의 정체를 드러내는 촉매자로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긴장된 대화의 장면은 다분히 요한복음 저자의 의도성을 드러낸다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보여줄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그 사역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복선을 깔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감당한 어머니 마리아는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격으로서 역할을 맡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옛 약속을 기억하고 마침내 그 약속이 성취될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아들 예수를 보며 직감하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결국 기적 사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마리아의 신실한 믿음에 근거한 요청에 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놀라운 기적을 내보인 데서 상당히 수동적으로 응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마지막 구절이 말하고 있듯이 그 기적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냈다고 했으니 만큼, 아예 처음부터 그럴싸하게 행동했더라면 더 멋있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 반응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그 필요를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의 한 패턴입니다. 기적은 초자연적 능력의 과시로서 행해진 것이 아닙니다. 절실한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는 행위로서 기적이 행해진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을 때 예수는 기적을 거부합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절실히 바라는 그 어떤 것에 대응하여 예수는 기적을 행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영광이었습니다. 첫 번째 기적부터 그 성격은 분명했습니다.

두 번째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 그 자체는 상당히 통쾌한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유대교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결정적 차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교 정결례를 위하여 준비된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물을 담으라 해놓고 예수께서는 그 물을 포도주로 바꿔 버렸습니다. 유대교의 정화수가 복음의 포도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얼마나 통쾌한 이야기입니까? 정결례법에 따라 항아리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그 항아리에 채워진 물은 정결하게 씻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해놓고 그 물을 씻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먹는 용도로 사용해버렸으니 이건 이만저만 커다란 가치전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그냥 물이 아니라 맛있는 포도주로 바뀌었으니 더더욱 놀라 자빠질 일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유머를 눈치 채지 못한다면, 성경을 너무 경직되게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 Bartolomé Esteban Murillo, 「The Marriage Feast at Cana」 (1672) ⓒWikiCommons

따분하고 맛없는 유대교는 그만 가라, 이제 즐겁고 맛있는 예수의 복음이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의 시대적 배경 자체가, 유대교와의 결별이 시작될 즈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통적인 유대교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첫 번째 기적 이야기에 담긴 의도는 그 만큼 더욱 선명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초점을 통해서 볼 때, 결국 예수께서는 당시 민중들의 절실한 요구에 따라 그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즐겁고 기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공생애 첫 번째 사건, 첫 번째 기적 이야기의 초점입니다.

혼인잔치가 계속되는데 포도주가 떨어져 버린 상황, 그것이 사람들이 처해 있는 삶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그 결여를 채워주겠다는 종교는 어땠을까요? 손부터 씻어라, 발부터 씻어라 요구하는 종교였습니다. 교리에 어긋나서도 안 되고 교회법에 어긋나서도 안 된다는 요구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요구에 응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보편적 요구, 그 갈망에 응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그저 자신의 능력 과시에 지나지 않는다면 주저하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에 따른 것이라면 서슴없이 나섰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언행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와 예수의 긴장감 도는 대화는 그 극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믿음과 세계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의 일대전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전환을 통해 사람들은 기쁨을 누리고 참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공생애 첫 번째 사건, 첫 번째 기적 이야기는 그 일대전환을 알려주는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한 해를 지나면서 세계의 급격한 변화, 특별히 종교적 믿음의 급격한 전환이 요청되는 시대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특별히 종교적 믿음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해 겪었던 두 가지 계기를 통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코로나19 위기가 주는 교훈입니다. 누차 이야기해왔지만, 이것은 새삼스럽게 위기를 촉발시킨 계기라기보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온 위기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계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통해 사회적 공공성을 배제하고 사람들의 보편적인 요구를 외면한 채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교리를 강조하는 종교집단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신천지,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극우보수 기독교세력, 그리고 최근에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해외선교를 주도해온 인터콥과 BTJ(Back to Jerusalem) 열방센터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이들의 태도는 온 인류가 겪고 있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 교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다시 되돌아보게 해주는 반면교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가 보다 폭넓은 차원에서 교회의 위기의 실상으로 드러내주었다면,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교회 안에서의 논란은 더 좁고 깊은 차원에서 교회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습니다. 특정한 인간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배제하는 논리가 교리와 교회법으로 정당화되는 광기의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이 율법주의에 묶여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금요일 기장총회 제105회 총회 1차 실행위원회에서 또 다시 수많은 비난자들로부터, 교회와사회위원회가 차별금지법지지 입장을 천명했다는 이유로 공격을 당해야 했습니다. 참으로 서글펐고 몸과 마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코로나19 위기로 지난 해 9월에 끝났어야 할 총회가 정회와 속회를 거듭하는 가운데 대면과 비대면으로 번갈아 진행되었고, 무려 4개월에 걸쳐 지난 주간 1월 14일에야 마무리되었는데, 정회도 없이 장장 5시간 진행된 회의 가운데서 세 차례나 나서 보고하며 번번이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대열에 헌신적이었던 기장교회마저 다 무너졌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다 무너진 집 기둥 하나 겨우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듯한 심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따르는 교회가 아니라 율법주의, 교리주의에 매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런 맛없는 교회와는 결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혼인잔치의 포도주와 같은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그 전환이 지금 교회에 요청되고 있습니다. 저마다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세계에 대한 희망, 그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실현하는 교회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이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는 현상은 예사스러운 사태가 아닙니다. 거기에 교회의 미래 운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교회의 구원 가능성은 없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여신도회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간 고답적인 어떤 성적 역할을 역설할 마음은 없습니다. 한 마디만 덧붙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을 드러내게 해주는 마리아의 역할이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진정으로 인간에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선물하시고자 한다는 약속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신 기적에 동참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