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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힘도’

기사승인 2021.01.10  15: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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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Crijn Hendricksz, 「Christ Instructing Nicodemus」 (1604) ⓒGetty Image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며 말씀하십니다. 정말 진정으로 내가 네게 말한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복음 3,3)

니고데모가 어느날 밤 예수를 찾아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2장에 보도된 성전정화사건 이후 예수께 무슨 권한으로 그러는지 그 증표로 ‘기적’을 보이라고 했는데, 니고데모는 그 후 예수께서 행하셨다는 ‘기적들’에서 그들이 찾던 ‘기적’을 본 것 같습니다. 그가 밤에라도 찾아온 것을 보면 그는 상대적으로 열려 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가 지금 말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 사실을 속으로는 인정했고, 지금 예수 앞에서 이를 털어놓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그로부터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추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수에 대해 또는 예수에게서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에게서 무엇을 더 알고 싶어 했을까요? 니고데모가 묻기에 앞서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아시고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요 2,23-25), 먼저 그의 물음을 인지하고 위와 같이 답하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다는 것은 뜻밖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복음서에서 여기 예수의 대답에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 대답만 놓고 보면 그 물음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선생님이 본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생각하니 그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니 이 대답은 또 다른 물음을 낳을 것입니다.

거듭난다 곧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말로 설명되지만, 그것은 무슨 말일까요?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회개(마 3,1-12)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 것(갈 5,16-17)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란 죄에서 돌이키고 죄의 근원인 욕심을 절제하는 것이기에 성령을 따라 사는 것과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회개가 ‘나’의 역할을 부각시킨다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성령의 역할을 부각시킵니다.

이렇게 양자가 결합된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 곧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전환은 나만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나의 ‘힘’ 없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힘을 다하고 성령의 도움을 힘입을 때 우리는 회개의 열매이자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한 자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로 사는 오늘이기를. 하나님 나라를 보고 하나님 나라를 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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