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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 오래된 미래의 지혜

기사승인 2021.01.08  16: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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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의 <신학수상>

▲ 사진 앞에서 둘째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필자인 김명수 명예교수, 2016년 12월15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영장 없이 불법구금 된 상태에서 가혹한 행위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듬해 3월 20일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되었다. ⓒ임승철 목사 제공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가6:30-31Q)

Give to everyone who asks of you, and from the one who takes what is yours do not demand it back.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Lk 6:30-31)

(1) 창살 없는 감옥

신학생 시절이었다. 1972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민주헌법을 폐기하고 유신헌법(維新憲法)을 선포했다. 종신(終身) 대통령제를 실시한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종언(終焉)을 뜻했다. 당시에 막걸리 반공법이란 게 있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마시고 홧김에 현 정권에 대해 불평하면, 그것이 곧바로 김일성 찬양으로 둔갑하여 3년형의 감옥살이를 해야 하였다. 유신정권은 나라 전체를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회복’을 위한 학생시위가 전국 대학가에서 가열차게 번졌다. 내가 다니던 신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학생들은 새벽마다 채플에 모여 구국(救國) 기도회를 개최했고, 매일 교정과 거리에서 유신철폐 시위를 이어갔다. 때로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하나 되어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상징적 행위로 삭발하기도 했다. 민주회복과 정의사회 실현을 위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신학생들에게는 역사와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뒤를 따르는 신앙고백의 일환이었다.(마태16:24 참조)

유신철폐 시위에 적극적이었던 한국신학대학은 유신정권에게 눈에 가시였다. 1975년 봄 학기에 문동환·안병무 교수가 해임되었다. 학교 교정에는 형사들이 상주(常駐)했고,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휴업령(休業令)이 내려지고, 학교는 폐교(廢校)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헌데도, 학생들의 유신철폐 시위는 끊이지 아니했다.

1975년 10월 어느 날 새벽,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검은 잠바차림의 신체 건장한 사람들에 의해 팬티바람으로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갔다. 눈을 떠보니 서울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 대공분실(對共分室)이었다.

당시 신학교에 유학 온 재일동포 학생과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다는 것이, 내가 이곳에 끌려오게 된 동기였다. 나는 지하실에서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온갖 고문을 당했다. 몸과 정신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당시의 고문 후유증이 지금까지 나의 일상적인 삶에 지장을 주고 있다.

내 입에서 간첩이라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이 계속되었다. 조서 작성 과정에서 나는 그에게 포섭되어 지령에 따라 학생시위 배후 조종자로 조작되었고, 신학생에서 간첩으로 둔갑되었다. 1심 재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은 나는 서대문구치소, 대전교도소, 대구교도소를 전전하다가 1548일 만에 석방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거사(擧事)로 인해서였다.

부산 경성대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있는 당시 민변(民辯) 소속 이석태 변호사로부터 몇 차례 연락이 왔다. 재심(再審)을 신청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이 변호사의 권면을 받아들여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재심을 청구했다. 2016년 12월15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영장 없이 불법구금 된 상태에서 가혹한 행위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듬해 3월 20일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되었다. 20대 후반 한창 젊은 나이에 간첩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시작했는데, 백발이 성성한 이순(耳順)에 간첩누명을 벗게 되었다. 실로 42년 만이다.

(2) 내 이웃의 운명

1976년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이다. 그 해 3월 김대중, 문익환, 안병무, 문동환을 비롯한 11명의 민주인사들이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명동성당 미사에서 개최된 “3ㆍ1 민주구국선언”사건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사방에 수감된 문정현 신부를 통해서 나는 이 소식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내 옆방에 한 사형수가 있었다. 나는 교도관의 눈을 피하여 틈틈이 먹을 것과 생필품들을 그에게 보내주곤 했다. 저녁식사를 하고나면 교도관의 눈을 피하여 우리는 가끔씩 화장실 벽 창살에 매달려 통방할 수 있었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이 이름은 이광안(李廣安)이었다. 넓을 광(廣)에, 평안할 안(安)이었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겠구나 생각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담요에 싸여 부산 수영구에 있는 광안동(廣安洞)의 어느 길모퉁이에 버려졌다. 순찰대원이 그를 발견하고 파출소로 데려왔다. 아기를 고아원에 보내면서 이름이 필요하게 되자, 순찰대원은 광안동에서 주었다고 해서 ‘광안’이라는 이름과 자기 성(姓)을 따서 자기 이름이 되었다고 했다.

내 이웃의 운명은 기구했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아원과 소년원을 전전했다. 그는 성장하면서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을 무대로 소매치기로 생활했다.  그 후 감옥을 자기 집 드나들듯이 했다고 한다. 금번이 8번째인데, 뜻하지 않게 사람의 목숨을 해치게 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했다.

하루는 운동시간에 그를 만났다. 오른손 엄지가 없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연을 물었다. 지난 번 출소할 때, 소매치기 생활을 청산하려고 스스로 잘랐다고 한다. 출소 후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장사 밑천이라도 장만할 겸, 양산 근교에 있는 소 키우는 농장에서 3년 동안 온갖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동안 밀린 임금을 요구하자, 주인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인근마을에 내려가 술을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시면서 저런 수전노는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가슴에 달고 있는 사형수를 상징하는 삼각형으로 된 ‘빨간 딱지’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손, 발, 귀가 모두 동상에 걸려 고생했다. 성탄절을 전후하여 사형수들을 처형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내 이웃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잠을 못 이루고 먹지도 못한다고 했다. 아마도 자기 운명을 예감했던 것 같다.

성탄절 며칠 전이었다. 운동시간에 나는 하얗게 눈이 쌓인 운동장에서 초췌한 몰골을 한 내 이웃을 만났다. 그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나에게 접근하여 무언가 손에 쥐어주고 총총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유리조각으로 칫솔대를 깎아 만든 십자가였다. 거기에는 예수가 아니라 발가벗긴 창녀가 달려있었다. 십자가에 달린 창녀에게서 예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녀가 달린 십자가’를 나는 2년 넘게 간직하고 있었다. 허나, 대구교도소 시절 검방(檢房) 교도관에게 그만 빼앗기고 말았다.

그 다음날 새벽이었다. 구슬픈 나팔소리와 함께 내 이웃은 교도관들에 의해서 운동장 옆에 있는 폭설로 지붕이 하얗게 덮인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얼마 시간이 흘렀을까, 내 이웃은 흰 천에 덮인 채 들것에 실려 나갔다. 사흘에 걸쳐 내 이웃을 비롯한 12명이 사형 집행되었다. 그 중에는 좌익수도 한 명 끼어있었다. 연말 서대문 구치소의 분위기는 마치 줄 초상난 집처럼 음산했다.

나는 며칠 동안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 이웃을 비롯한 사형수들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상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들의 죽임 당함이 과연 당사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인가?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우리 모두에게 공동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교수형이 사회적 타살(他殺)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기 마련이다.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Sein zum Tode)’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자연의 순리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허나, 죽임 당함의 문제는 다르다. 사회적 모순의 업보이다. 따라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인간의 의지와 책임의 문제다.

4년 반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오로지 두 가지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what can I do?),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what do I have to do?)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는 일이었고, 해야 할 일은 건강을 챙기는 일이었다. 0.78평의 좁은 공간에서 건강 챙기기의 수단으로 습관을 들여온 요가와 명상생활은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감옥이라는 인생의 한계상황에 직면하여, 이를 나는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는 계기로 삼았다. 감옥에서 독서가 허락된 성경, 신학서적, 동서양고전, 불교서적 등을 탐독했고,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어 성경과 독일어 성경을 십 수차례 읽고, 일본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당시 감옥에서 익힌 이러한 규칙적 생활습관들이 직접간접으로 큰 도움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3) 유마경의 불이(不二)사상

불교의 초기 대승경전 중에 <유마경>이 있다. 주인공은 비야리성의 유마거사이다. 어느 날 그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가모니 붓다께서 문병 차 문수보살을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을 보낸다. 문수보살이 묻는다. “그대가 아픈 원인이 무엇입니까?” 유마힐이 답한다. “중생이 병들어서 지금 내가 누워있지요.” “언제쯤 낫게 되겠는지요?”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낫게 될 것입니다.”

중생이 병들면 나도 아프고, 중생이 나으면 내 병도 낫게 된다는 것이다. 중생과 나를 ‘둘이 아닌 한 몸(不二如一)’으로 본 것이다. 나와 중생, 나와‘나 아닌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되어있고, 감응(感應)하는 존재임을 유마경은 말하고 있다.

유마경의 불이(不二) 사상을, 구마라집의 문하 승조(僧肇: 374~414)법사는, 동양의 우주관과 접목시켜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體)를 말했다.<벽암록> 나와 천지만물은 한 뿌리에서 나온 한 형제자매라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유일신 창조신앙과 통한다. 천지만물은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분의 자녀들이기에 차별이 있을 수 없고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만물(panta)은 하나님에게 뿌리를 두고 있으며(from), 그분의 보살핌으로 살다가(through), 그분에게로(for) 귀의(歸依)한다”고 말했다.(로마11:30; 사역)

(4) 모세의 성결법전

우리 민족 상고시대 경전 중 하나인 <천부경>은 하늘, 땅, 사람이 하나라는 사상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합일체(合一體)라는 말이다. 사람의 몸은 흙의 원소와 공기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흙이 오염되고 공기가 오염되면, 인간 또한 병들게 되어 있다. 오늘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구촌 인류가 겪고 있는 재앙은 이와 연관성이 있다.

<천부경>의 인간관은 기독교 창조신앙의 핵심에 해당한다. 창세기 2장에는 인간의 창조 내력이 소개되어있다. “안개가 땅에서 올라와 땅을 적셨다. 야훼 하나님께서 흙(아파르 민 하아다마)으로 사람을 만드시고(야차르) 생기(니쉬마트 하임)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이 되었다.”(창세2:6-7)

사람은 흙(아파르 민 하아다마)을 물로 빚어 만들어졌고, 사람의 코에 ‘생기(니쉬마트 하임)’를 불어넣었다는 것, 그리하여 비로소 사람이 ‘살아있는 목숨(네페쉬 하야)’이 되었다고 한다. ‘기(氣)’,‘숨’으로 번역된 ‘너샤마’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생기(生氣), 곧 하나님의 영(성령)의 작용으로 인해서 인간은 살아있는 ‘참 사람(네페쉬 하야)’이 된다. ‘흙의 사람(아파르 민 하아다마)’으로 사느냐, 아니면 ‘참 사람’으로 사느냐, 곧 ‘육의 인간’으로 사느냐 ‘영의 인간’으로 사느냐의 문제이다. 인간이 천지의 묘합체(妙合體)임을 알고, 만물이‘한 피붙이’라는 것을 알아서, 모두를  이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 사람’ 곧 ‘네페쉬 하야’의 길이다.

‘네페쉬 하야’로 사는 길을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계약인 경신애인(敬神愛人) 계명에서 찾았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참 사람의 길이라는 것이다.

경신(敬神) 계명: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하나님 야훼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신명6:4-5) 이는 ‘쉐마(들으라)’로 불리는 율법 대헌장으로써 십계명 1-4계명의 종합이다. 가나안에 입주하여 도시국가 제도와 다신(多神)문화 환경과의 대결 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할 신세대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계명이다. 일편단심 하나님을 공경해야 된다는 경신 계명은 모든 율법의 근본이며 신명기학파 신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애인(愛人) 계명: “너는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레위 19:17-18) 애인 계명은 성결법전(the Holiness Code: 레위 17-26)에 속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레위 19:2)는 계명에 기초하고 있는 성결법전의 중심에 이웃사랑 계명이 위치한다. ‘거룩함(체데크)’은 이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일상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인간 또한 거룩해야 하며, 천지만물 또한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의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동기요 목적이기도 하다. 이는 ‘이웃 사랑하기를 내 자신처럼 하라’는 계명 속에 응축되어 있다.

(5) 예수의 가장 큰 계명

경신애인(敬神愛人)을 큐(Q) 예수는 ‘가장 큰 계명’으로 소개한다. 이는 원래 큐 예수의  말씀(마태22:34-40/루가10:25-28Q)이었는데, 마가복음에서 확대되고 있다(마가12:28-34).

예수를 시험하려고 한 율법학자가 와서 질문을 던진다. 마태복음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루가는 영생(eternal life)의 비결을 묻는다. 아마도 저자 루가는 율법학자의 질문을 그리스-로마 사회의 청중을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인 ‘영생’ 문제로 대체하고 있는 것 같다.

마태복음에서 경신애인 계명은  예수의 입에서 나온다. 반면, 루가복음에서는 율법학자의 말로 소개된다. 예수가 역질문 하자, 그가 말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옳다. 그렇게 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루가10:25-28) 이어서 루가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저자 루가는 이웃의 민족주의적인 경계를 파쇄(破碎)한다.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측은지심을 발휘한 사람을 ‘이웃’이라고 한다.(루가10:30-37)

저자 마태는 경신과 애인 계명을 분리시키고, 그 속에 “전체 토라와 예언서들”근본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마태22:40) 당시 바리새파가 벌였던 ‘율법 생활화’운동이 율법의 세부조항 준수에 집착한 나머지 형식주의로 흐르게 되자, 큐 예수는 율법의 본말(本末) 회복운동을 벌였던 것 같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섯 개의 반제(antithesis) 계명들이 언급된다.(마태5:21-48) 큐교회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도외시한 바리새파의 율법주의를 비판한다.(루가11:42/마태23:23Q) ‘이웃사랑 생활화 운동’을 큐마태는 ‘보다 더 나은 의로움’으로 정의한다.(마태5:20)

헌데, 저자 루가는 두 계명이 하나로 통합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루가10:27) 두 계명의 유기적 통합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 공경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표현되고, 이웃 사랑은 하나님 공경에 근원을 두고 있다. 루가복음에서 경신과 애인은 한 동전의 양면이다.

(6) 인류의  보편적 지혜 황금률

"남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가6:31) 흔히 황금률로 불리는 큐 예수의 이 계율은, 인간관계를 푸는 열쇠이다. 인류역사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덕성 위기의 시대에 여러 성인군자들이 등장하여 외친 주옥같은 지혜의 말씀이 황금률이다.

황금률(Golden Rule)이라는 별칭은 3세기 로마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에게서 유래한다. 그는 큐 예수의 말씀을 황금으로 써서 자기 집무실에 걸어두고 이를 지침으로 행정을 집행했다고 한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는 1세기 경 유대사회에서 최고의 랍비로 존경을 받고 있던 힐렐에 관한 일화들이 많이 나온다. 하루는 헬라인 무역상이 힐렐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 토라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 묻는다. 그가 답한다. “당신이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시오.” 나머지 율법조항들은 모두 이에 대한 해설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했다. 외경인 <토비트서>에도 황금률이 나온다. “네가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토빗4:15)

이슬람교의 <코란>에도 황금률이 나온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다운 인간이라 할 수 없다.” 힌두교의 <마하바라타> 서사시에도 우주 법인 다르마를 황금률로 설명한다. “나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불교에서는 인간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존재로 본다. 남도 나처럼 고통 받기를 싫어하니,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을 인간의 도리로 보았던 것이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는 삼법인(三法印)에 속한다. 시간적으로 모든 존재는 변화의 과정 속에 있으며, 공간적으로 특별히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 존재 이해의 특징이다. 불교에서는 자타불이(自他不二)에서 존재의 진면목을 본다. 따라서 나를 이롭게 하는 것(自利)과 남을 이롭게 하는 것(利他)은 별개가 아니다. 자타(自他)가 ‘한 몸’임을 알고, 자리이타의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의 길이다. 나 자신의 소중함(천상천하유아독존)을 깨쳐서 다른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불교의 황금률이다.

<논어>에도 황금률이 나온다. 제자 자공이 평생 동안 삶의 지침으로 삼을만한 말씀 한 마디를 청하자, 공자가 답한다. “서(恕)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 <맹자>에서 유래하는 역지사지, 그리고  <대학>에 나오는 혈구지도(絜矩之道)는 내 마음을 잣대로 삼아 남의 마음을 재고, 내 처지를 생각해서 남의 처지 헤아리라는 말씀이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하고 상대방과의 공감능력을 키울 때, 모두에게 이로운 홍익사회(弘益社會) 구현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제 인류역사에서 종교의 시대는 지나갔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 모두를 살리고 이롭게 하는 보편적 지혜인 황금률 문화종교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이웃사랑의 길은 무엇인가? 내가 당해서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고, 남이 내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 주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 갈등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황금률의 부재(不在)에서다. 인류가 살 길은 다른데 있지 않다. 경신애인 계명과 황금률의 생활화와 사회적 실천에 있다.

맨 처음 기독교 공동체인 큐교회는 예수가 전해준 이 두 계명을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라고 선언했다.(마태22:40; 7:12) 시공을 초월하여 온 인류가 지키고 따라야 할 천명(天命)이요, ‘진리의 화육(化肉)’으로 본 것이다.

나는 신학교 재직시절, 큐 예수의 경신애인 계명과 황금률을 ‘복음 중의 복음(Gospel of Gospels)’으로 가르쳐왔다. 나는 평생 두 제자를 잊을 수 없다. 제자 김선일은 2004년 5월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의해서 피살되었다. 제국주의 전쟁 놀음의 희생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제자 최한규는 2007년 7월 물에 빠진 두 어린 생명을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 사회적 불의에 의해 타살 당하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어린 생명들을 구했던 제자들이야말로 나의 곁에 머물렀던 예수의 화신(化身)들이었다.

김명수 명예교수(신학박사, 경성대) kmsi1204@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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