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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간론 = “성경 즉 인간”

기사승인 2021.01.05  15: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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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인간론과 성경우주론

성경은 죽어가고 있다: 종교적 영성을 상실하고 있는 성경

성경은 인류에게 개방된 본향을 찾아가는 나침반으로서 종교적 인간이 걸어가야 할 구도의 문서이다. 성경은 또한 특정한 지역과 풍속, 문화와 역사의 사유체계 안에서 ‘신학, 유학, 도학, 불학’이라는 해석학적 전통으로 고유의 종교문화를 형성해 온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구촌의 사유체계가 합류하는 시점에 성경이 지닌 생명의 영성은 학파와 교파와 종파의 신앙체계에서는 위용을 뽐낼지는 몰라도, 구도의 문서로서 성경의 실천기능은 상실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자비와 사랑과 인 등 성경의 황금률은 현실세계에서 발현되지 못하고, 과학적 유토피아가 제시하는 미래세계에 직업종교인의 종교권위는 점점 더 실추되고 있다.

왜 성경은 종교적 영성의 원천이라는 고유의 기능을 재현하지 못하고, 문명의 선도적 기능은 고사하고 사회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성경이 실천적인 구도의 문서로 읽히기 보다는 제도종교의 철옹성을 강화하는 종교정보를 획득하는 도구적 지식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와 성경해석가와 종교적 신앙자는 제도종교의 틀 안에서 창교자를 숭배하고 구원과 구제로 ‘편안히 믿고 죽어서 영혼이 구원(제)받는다’는 기복신앙과 자본신앙에 경도된 제도종교 문화를 공고히 하는데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종교이익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종교를 신앙과 축적적 전통으로 구분하여 볼 것을 제안한다. 신앙은 종교적 인간이 가진 의미체계와 실천체계의 총합이고, 축적적 전통은 제도종교의 문화를 말한다. 즉, 종교문화는 종교적 신앙의 원천과는 일정한 영성적 거리를 두고 형성된다는 점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창교자의 언행이 담긴 성경의 정신과 제도종교의 문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성적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성경의 근본이 되는 창교자의 ‘신앙’의 언행은 세속화의 경향에 따라 제도종교의 ‘축적적 전통’은 형식화, 형해화되어 기계적인 의례체계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역사시대의 문제점을 안고 온몸으로 구도한 구도자의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의 통합적 기록인 성경(의 영성)이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이 분리된 그리스도교인, 불교인 등 종파종교인에 의해 해석되어 성경의 영성은 발현되어 재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찬린은 이런 신앙의 현상에 대한 원인과 현상을 다음과 같이 비평하고 있다.

옛날 빛나고 위대했던 혼들은 그 시대의 고뇌를 안고 바른 해답을 얻기 위하여 산으로 퇴수(退修)했다. 조로아스타도 붓다도 모세도 산과 광야로 퇴수하여 깊은 명상과 피나는 구도를 통해 신령한 불을 받고 하산했다. 산에서 점화한 이들 정신들의 불꽃으로 말미암아 미개와 야만의 황무지에서 방황하던 인류의 심성은 높이 도약하고 가시와 엉겅퀴와 잡초가 무성하던 세계심전(世界心田)은 옥토로 개간되기 시작했다.
미망(迷妄)과 무명(無明)의 심연에 던져져 돌과 나무의 정령(精靈)들을 숭배하던 애니미즘과 맹수의 탈을 쓰고 부족간의 혈투를 일삼던 토테미즘과 원시의 동굴 속에서 무병(巫病)을 앓으면서 강령(降靈)에 떨던 샤마니즘의 낡은 하늘은 귀열(龜裂)되고 그 틈 사이로 고등종교의 새 하늘이 개천되기 시작했다.
범천(梵天)과 도솔천과 여호와의 하늘이 열린 것이다.(1)
밝은 정오의 의식아래 진리의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던 성인들의 하늘도 현대에 이르러 변색되고 그 영력(靈力)은 사라져 갔다.
회색 버섯구름이 감도는 하늘에서는 방사성 낙진이 섞인 죽음의 비가 내리고 조직과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비인간(非人間)들이 단절된 유리의 밀실에 갇혀 깊은 우수와 불안과 절망을 안고 허무의 한기(寒氣)에 떨면서 쾌락의 독주(毒酒)를 마시고 있다.
계시 없는 하늘에서는 온갖 사령(邪靈)과 붉은 잡신들이 병든 현대인의 내면에 은밀히 잠입하여 우상을 진신(眞神)으로 착각시키는 작업을 치밀하게 자행하고 있다.
- 변찬린, 『성경의 원리 上』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9), 8.

인간과 지구와 태양우주는 거대한 유기체 우주의 한 조각

창교자의 언행록이 기록된 성경은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통합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후대의 경전해석자는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이 융합되고 회통된 해석자에 의해 해석되기보다는 오히려 삼자가 분리된 해석자가 가진 분절된 세계관에서 축 시대의 종파종교의 문화로서 해석된다. 이로 인해 깨달음의 불교, 믿음의 그리스도교, 실천윤리로서의 유교 등으로 다양한 종교문화가 유형별로 탄생된다.

그러나 성경은 종국에는 대동세계, 개벽세계, 용화세계, 천년왕국, 이화세계 등 완전세계, 즉 통합적 세계로 회귀한다고 새 축 시대의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구는 희랍적 이원론에 의해 우주와 인간, 생명세계를 통합적 세계관이 아닌 분절적 세계관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였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이다”라는 것은 저간의 사정을 말하는 유명한 말이다. 그가 유기체 우주인 과정철학을 말하며 아시아의 통합적 세계관에 근접하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아시아적 사유는 천지인의 삼재사상, 범아일여사상, 선교쌍수(禪敎雙修), 지행합일, 포함론(包含論), 장자론(長子論)(2) 등의 종교적 수사에서 보듯이 통합적인 세계관의 전통을 지향하고 있다.

분절적 사유관에서는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이 인간에게서 합일되는 경향이 아니고 분리된 형태로 나타나며, 직관적이고 통전적인 사유체계가 형성되기 어려우며, 통합적 세계관에서는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이 인간에게서 합일되는 경향을 띠지만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유체계는 형성되기 어렵다. 우리는 서양과 동양 등 구태의연한 지리적 혹은 문화적인 배타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축 시대는 지구촌 차원에서 인간이 우주를 지배한다는 사고적 경향과 인간의 신앙양상이 깨달음과 믿음과 실천이 합일되지 않고 분절되어 나타난 문명현상이 새 축 시대에는 인간과 우주가 유기체적 관계로 공생하여야 하며, 인간의 신앙양상도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이 합일되고 통합되어 나타난다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우리는 동서의 사유가 합류하는 시대에 인간과 대우주가 분절적 상태가 아니고 통합적인 유기체적인 거대한 조직이며, 인간은 대우주의 암호를 밝혀내어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이 일치되는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여 우주와 화합하는 자리매김을 하여야 한다. 불교적 언어를 빌면 대우주는 깨어있는데 아직도 미혹과 무명에 빠져 대우주의 합창에 참여하지 못하고 홀로 분절적 세계관에 살고 있는 인간 자체인 줄도 모른다. 도교적 언어로 대우주는 절로 자기 역할을 다하며 스스로 그러함을 드러내는 ‘자연’속에 조화로운데 인간만이 유위로서 교조적이고 교파적이고 교학적인 분절적 세계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성서적 언어로 로마서 8장 19절에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 만큼 선택된 성서적 인간의 사명은 막중하다. 깨달음과 믿음과 실천이라는 것은 특정 종교가 소유권을 가진 종교적 언어가 결코 아니다. 성서에도 깨달음의 언어가 적지 않고, 불서에도 믿음이 없지 않다. 따라서 새 축 시대의 구도자는 대우주의 합창 안에 깨달음과 믿음과 실천이 회통하고 발현하여 우주와 공생하는 존재로 깨어나야 한다.(도표 참조)

▲ 축 시대의 신앙 : 분절적 세계관(사진 위), 새 축 시대의 신앙: 통합적 세계관(사진 아래)

본래 성서만이 아니라 세계 종교의 경전은 통합적 세계관으로 기록되어 있다. 단지 다른 세계관을 가진 해석학적 전통에 의해 믿음과 깨달음과 실천의 강조가 분절과 통합의 경향성을 가질 뿐이다. 역과 도덕경 등 아시아 경전은 천지와 자연현상을 본받아(以) 인간의 행위를 실행한다. 예를 들면 “하늘의 운행이 건실하다.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강건하기를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는 표현을 사용한다.

『회남자』의 권 7 「정신훈」의 우주와 인간와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 동중서가 저술한 『춘추번로』의 천인상관론, 도교의 수련기술인 존사법(存思法), 맹자가 말한 만물비아(萬物備我), 주렴계의 『태극도설』, 육산상의 ”육경은 모두 나의 각주“라는 언술, 왕양명이 『전습록』에서 언급한 치양지와 지행일치의 주장, 인체와 자연을 일체화 시킨 「내경도(內經圖」, 지눌의 정혜쌍수와 돈오점수 사상, 서산대사가 『선가귀감』에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의 사유체계도 결국은 소우주=대우주라는 기본 도식을 근거로 한다. 이처럼 우주와 인간, 인간과 성경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읽고 해석하고 실천하는 소중한 해석학적 전통을 아시아인은 가지고 있다. 한국 등 동아시아인의 성경 편집의 구조상으로도 믿음과 깨달음의 신념체계와 실천이라는 의례체계는 분리될 수 없는 종교적 세계관에 살고 있다.

▲ 『사진: 기독교 경학(經學)과 한국인을 위한 성경해석의 겉표지』

한국 구약학회장이었던 왕대일은 『기독교 경학(經學)과 한국인을 위한 성경해석』(사진 참조)에서 다산, 길선주를 비롯한 초기 한국의 교회공동체의 성서만남과 다석의 성서해석은 수행이라는 관점의 글을 소개하면서 말미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훈련받은 서구식 성서읽기-이것은 쉽게 말해 이학(理學)이라고 부를 수 있다.-의 장점과 우리 선조들이 수행하였던 경학적 성서읽기-이것은 심학(心學)이라고 부를 수 있다-의 장점이 합류하는 것이다.(중략) 성서해석의 두 지평(서구적 방법론과 동양적 수행, 또는 역사비평과 경학)이 한국 교회에서 적극 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열매를 온 지구촌의 교회에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한국인의 성경해석은 기독교 경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온 누리에 열어젖히게 될 것이다.(3)

성경(聖經)의 ‘경(經)’은 마음을 수양하고 실천하는 ‘벼리’로서의 뜻을 함의하고 있다. 경천위지(經天緯地)한 종교적 강령이 담긴 성경은 읽고 실천하여야 할 종교문헌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의 마음에 걸린 거문고 줄을 연주하며 인간에게 내장된 천명(天命)과 지리(地利), 천도(天道)와 지도(地道)를 일깨우며 종교적 인간(人道)은 구도의 궁극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들이 탄주하는 거문고는 말씀의 거문고다.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심금(心琴)을 울린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은 거문고 줄이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의 말씀을 모은 책을 경(經) 이라 하는데(성경, 불경, 사서삼경, 도덕경, 베다경, 코란경, 아베스타경 등등), 경(經) 은 인간의 마음 속에 맨 올이며 씨줄이다.
성인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에 맨 거문고 줄을 울리는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씀이 인간을 회개시키고 개조했던 것이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도 구약인의 마음속에 맬 거문고 줄이었다. 예수의 말씀도 심금을 울리는 거문고였고 석가, 노자, 공자 그 밖에 다른 성인의 말씀도 다 심금을 탄주(彈奏)하는 악기였다.
- 변찬린, 『요한계시록 신해』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9), 97.

성경인간론 = “성경 즉 인간”이다

변찬린은 “성경 즉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의 원리』 사부작을 저술하면서 구상한 첫 장이 「성경론」이다. 성서는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경륜의 기록이다. 성서적 인간에게 성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고 마땅히 가야할 길을 제시해 준 종교문서이다. 성서를 바로 알고 실천하면 영생의 본향에 도달하지만, 성서를 잘 모르면 미로에 빠져 죽음의 나락에 빠진다.(4)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해석학적 대원칙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면서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심지어 성서의 해석법까지도 성서에서 재구성하여 성경해석의 벼리로 삼는다.(5)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먼저 흙으로 몸을 빚고 나중에 생기를 불어넣”어 유기체인 인간을 만들었듯이 성서도 유기체적인 편집구조를 가진다고 인체에 비유하여 그의 「성경론」을 전개한다.

성경은 66권으로 편집된 문서인데 각 권은 모두가 독립적이면서도 전체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경은 인체와 같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문서이다. (중략) 우리의 몸이 육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성경도 구약인 몸과 신약인 혼과 계시록인 영으로 구성된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 무의식과 현의식과 초의식으로 구성된 것과 동일하다. 구약은 무의식의 세계요 신약은 현의식의 세계요 계시록은 초의식의 세계이다.
- 변찬린, 『성경의 원리 上』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9), 51-52.

“성경 즉 인간”이란 말은 육산상이 말한 “육경은 내 마음의 각주”라는 말처럼 한가하지 않고, 「내경도」처럼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비교종교학적으로 성서는 다른 세계 경전과 다른 독특한 차별성을 가진다. 성서가 다른 경전과 다른 큰 차이는 이스라엘의 부족신과 아브라함의 가계와 약속을 맺었으며,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와 맺은 계약문서라는 것이다. 그것도 성서는 야훼라는 신과 피로 맺은 계약문서라고 출애굽기(출 24:3-8)와 히브리서(히 9:18-20)는 강조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부족신인 야훼와 계약을 맺고, 신약에서는 성서적 인간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와 계약을 맺는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과 불경과 사서삼경이 같은 경서인가? 같은 값어치가 있는 책이냐? 이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하고 넘어가야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힘들면, 힘들다고 하세요, 그러면 쉽게 하겠습니다.
첫째로 이 성경이라는 문서 속에는 다른 경서에서는 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 보통 우리가 기독교 목사나 신부, 일부 철학자들이 그리스도교는 무슨 종교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설교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서만 있는 말이 아니에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예수보다 앞서 오신 석가모니가 먼저 한 말입니다. 그런 말 때문에 성경이 위대한 문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서양의 경서를 비교해 보면, 공통되는 공통 언어가 있습니다. 대개 윤리나 도덕적인 의미에서는 공통 언어가 많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남을 미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것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문서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라는 문서 속에는 다른 경서에는 없는 소식이 꼭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이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이 계약한 약속의 문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성인의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과 어떤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불경 속에서도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팔만대장경, 거기에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그런 것을 볼 것 같으면, 불경이 계약 문서라는 말이 없습니다. 사서삼경 속에서도 그런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그런 말씀이 없어요. 그런데, 성경만은 유달리 하나님이 인간과 계약을 맺는데, 이 계약 문서가 성경인데, 이 계약을 맺을 때, 피를 가지고 맺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다른 경서와 구별되는 것입니다.”(6)

구약성서의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성서의 신약은 ‘새 약속’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성서적 인간은 성서가 계약문서이기 때문에 성서가 말하는 종교적 황금률을 반드시 준수하여야 한다. 신과의 계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으로 파기된다. 계약파기의 주체는 신이지 인간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성서를 왜 읽는가라는 당위적 물음은 성서를 어떻게 읽는가라는 해석기술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실존적 결단의 문제이다.

“성경 즉 인간”이란 말은 성서의 세계에서 나를 이해하고 이웃을 이해하고 역사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우주를 이해하는 가운데서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도의 역할은 물론이고 다양한 타자와의 관계 속에 실존적 내가 하여야 할 실천 강령의 선택이라는 시급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의 사건은 일체가 하나님이 제시한 실존적인 나의 선택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영육갈등의 실존적 사건의 확대된 전개가 역사적이고 사회적 현상이다. 성서의 사건 역시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상징과 비유이기에 구약과 신약 등 『성경전서(聖經全書)』는 반드시 회통적이고 통전적으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성서=인간’이라는 성서해석의 원리는 변찬린의 일관된 원칙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인간론’이다.

성경이 이같이 인체의 구조처럼 몸인 구약과 마음인 신약으로 구성된 것은 참으로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중략)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곧 성경인 것이다. 성경은 인간 그 자체의 역사적 실존적 전개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그 암호 해독은 인간 자신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때 바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현존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나 밖에 성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격성이 있는 문서이다.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문서이므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닮게 구성되고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몸이 없으면 마음이 없고 마음이 없이 몸이 없듯 몸과 마음은 쌍전(雙全)해야 한다. 때문에 구약이 없이 신약이 없고 신약이 없이 구약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신약과 구약을 함께 연구하고 그 암호를 해독해야 한다.
- 변찬린, 『성경의 원리 上』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9), 53-54.

〈성경 즉 인간〉 〈인간 즉 성경〉 임을 대각大覺하자.
인간밖에 성경이 없고 성경밖에 인간이 없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성경을 해석하자.
- 변찬린, 『성경의 원리 上』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9), 60.

성서적 인간은 ‘살아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죽어서는 부활의 영생’으로 가는 도의 나그네이다. 신과 계약을 맺은 계약문서인 성서에 기복신앙과 자본신앙에 경도된 그리스도교의 신앙현상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이웃사랑에 동참하는 선택받은 성서적 인간의 신앙현상이 아니다.

새 축 시대의 구도자는 성경 안에서 발생한 인물과 사건과 역사는 내 몸 안에서 전개된 역사의 외형적 확대라는 관점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와 동고동락하는 고난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성경인간론’은 한가로운 기복신앙을 추구하거나 종교정보를 얻는 성경으로서가 아니고 구도자가 본향에 회귀할 때 지켜야 할 종교적 황금률이 적힌 구도의 문서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미주

(미주 1) 본문의 굵은 고딕체는 필자가 강조를 위해 표기한 것임.
(미주 2) 이호재, 〈풍류심(風流心)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역사적 학맥: 포함론-화쟁론-오증론-장자론〉, 《에큐메니안》, 2020. 10.13.
(미주 3) 왕대일, 『기독교 경학(經學)과 한국인을 위한 성경해석』, 대한기독교서회, 2012, 348-350.
(미주 4) 변찬린, 『성경의 원리 上』, 한국신학연구소, 2019, 26-27.
(미주 5)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 上』의 각 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서 상당히 치밀한 엄격성을 보여준다. 각 장 자체에 세계 종교에 관련된 풍부한 정보가 함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주 6) 변찬린, 「성경강의 테이프」 (1981. 03. 08).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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