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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2020년, 어떤 평가를 받게 되는가?

기사승인 2020.12.19  16: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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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의 중요성과 낙제점의 한국교회

▲ 코로나 팬데믹 속 교회는 그야말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EPA

연말이 되면 개인부터 단체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자신들의 현실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갖는 시간을 보낸다. 이를 통해 잘못했던 것은 그 오류의 인과관계를 점검하여 향후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며 잘된 것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일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었는지 돌이켜 생각해 향후에 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발전을 거듭할 수 있고 혹은 도리어 이전보다 더 후퇴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따라서 평가를 할 때에는 보다 엄격하고 논리 정연한 기준점들을 두게 된다. 이를 통해 성공했다는 기쁨도 느끼고 실패의 쓰라린 순간을 다시금 맛보는 씁쓸함을 맛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미래를 설계하고 다시금 그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우리들은 그것을 성장 또는 성숙이라 표현한다.

한국교회는 어떠한 평가를 받을 것인가? 개신교의 전례서부터 기간을 잡고 서술하자면 이는 너무 글이 길어지기에, 그리고 또한 2020년에는 다양한 일들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 전반에 일어났기 때문에 2020년을 시간의 기준점으로 잡자. 2020년의 시작과 끝은 코로나-19의 확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이를 통해 방역대책의 일환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 역시 코로나-19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이만희의 신천지, 이초석의 예수중심교회, 이재록의 만민중앙교회, 최바울의 인터콥,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등 이단·사이비 뿐만 아니라 정식적인 교단에 소속된 일반적인 교회에서도조차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지역사회의 시선이 그리 곱지는 못했다. 물론 지금도 방역수칙 준수 및 지역상권 살리기 등 이웃과의 공생을 위해 노력을 하는 교회들이 있었지만 코로나-19 확산의 중점이 된 교회들의 공통점이 사회의 건강보건을 위한 최소한의 방역수칙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보수교회들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사태를 바로보지 못하고 정권심판론, 정부의 교회탄압 등 엉뚱한 소리만 일삼았다.

또한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한국교회는 또 ‘보수 해바라기’를 자처하였다. 그 선두주자로는 앞서 등장한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이었다. 노골적인 역사와 현실왜곡을 무기로 보수~극우 내 자신의 인기도를 올릴 뿐만 아니라 자신조차도 정치인이 되려는 야욕을 자신이 세운 정당 및 친한 보수~극우 정치인들을 앞세워 서슴없이 표출하였다. 다수가 보수진영인 한국교계에서는 선거법 위반 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보수 정당의 후보들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보수진영의 참패였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보다 더 선명하게 한국교회가 우리사회 내 정치영역에서 적폐임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특히 보수적 고령층 외의 교계 구성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었다.

아울러 사회적 성장흐름을 역행하는 추태가 어느 해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존중받을 수 있게 할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및 이슬람 창궐을 명목으로 반대를 일삼았다. 그 반대에는 팩트가 아닌 가짜뉴스들이 점철되었고 심지어는 차별금지법의 법조항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고 또한 일상적 독해력을 의심할 정도로 법조항을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일관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남녀평등의 가치가 교회에선 통하지 않음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각 보수교단 총회에 참석한 구성원들을 보면 고령층 남성 중심으로 고착되었고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성폭행 등 성범죄는 교단 내에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오히려 사회 법정에서 이들의, 잘못이 명명백백히 밝혀지고 구속 등 중한 처벌을 받음으로써 한국교회의 정화능력은 이제는 없음이 밝혀졌다. 신학교에서는 각종 비리문제가 폭로되었고 이로 인해 신학생들이 단식으로써 투쟁을 하기도 했다. 아울러 창조과학을 신대원 과정에 넣은 신학교도 있어 신학의 수준뿐만 아니라 학문의 수준이 지방대들보다 더 하락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교회가 어려워졌다는 이유만으로 교회에서 쫓겨난 교역자들은 부당함을 호소했으나 교회들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자발적 봉사자라고 우겨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교역자들을 두 번 울렸다. 기독인이었던 전태일 열사가 다시 살아와서 본다면 크게 경악할 정도로 한국교회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였고 지금 현재도 수많은 부목사, 전도사 등 교역자 및 직원들을 ‘헌신 페이’라는 명목의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

냉철하게 2020년의 한국교회를 돌아보고 총평을 하자면 분명한 ‘낙제’이다. 물론 소수의 선한 사례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그 말 그대로 소수이며 다수의, 교회들은 침묵으로 또는 동조로써 한국교회의 후퇴를 견인하였다. 평가에서 소수의 의견도 존중은 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결코 평가를 크게 좌우할 요소는 아니다. 도리어 그러한 일말의 번외요소가 지나치게 집중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평가를 방해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의 순간이 타임머신 등을 통해 돌아올 수 없듯이 한 번 한 걸음을 내딛었다면 그것은 결단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내부 구성원들일수록 평가를 다소 후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내려졌던 평가는 결코 제대로 되었다 할 수 없다.

자동차로 비유를 하면 이렇다. 휠 얼라이먼트를 보러 정비소에 갔는데 엄격히 정해진 안전범위에서 아주 작은 수치로 어긋났음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동차의 바퀴정렬 상태가 이상 없다고 판단 내린 것과 같다. 자동차에 있어서 바퀴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핸들 등 조향장치로도 쉽게 제어를 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는 사고로 직결된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수많은 항공사고들 속에서도 그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내부자들은 절대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문제점을 직면하게 된다. 무언가를 평가하기 위해 냉철함이 필요하지만 그런 엄격한 기준점을 한국교회는 쳐다볼 자격조차도 없었고 쳐다볼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였던 것이다. 또한 설령 내부적 평가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자화자찬으로 끝나는 도돌이표에 갇혀버리곤 한다. 그러기에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혁신적인 개혁안은 나올 수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첨을 하는 자들의 구밀복검에 한국교회는 매해를 거듭할수록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엉망이 된 한국교회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가 물려준다고 생각을 해보자. 이 얼마나 참담한 상황이겠는가? 아이들이 교회에 안 나가겠다고 할 때 윽박지를 것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세대에서 얼마나 수많은 창피한 과오의 역사들을 방치해왔는가를 생각해 땅바닥에 머리가 깨지도록 박으며 울며 기도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세상의 질서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월하다고 각종 사회규범들을 업신여긴 한국교회는 이제 세상으로부터 범죄자 집단이란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미 수많은 안팎의 사람들은 이 앙시앙 레짐을 단두대 위에 올려 잘라내자고 소리 높여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교회내부의 자위에만 중독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연래행사처럼 목사들이 성도 앞에서 회초리를 맞는 퍼포먼스를 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간 한국교회의 적폐화로 인해 실망하고 실질적 피해를 입어왔던 시민들과 개혁을 외쳐왔지만 소수의견으로 내몰리고 쫓겨남을 당한, 그리고 실망한 성도들에게 정말 피가 터지도록 몽둥이를 맞아야 할 지경인 것이다. 그 정도로 내부와 외부의 불만과 분노는 이미 코로나-19 확산 정국에 맞춰 정점에 다다르고 있음이 보인다.

각 교회들에서부터 교단 총회본부에 이르기까지 이젠 매서운 겨울바람과 같은 엄격하고 냉혹한 현실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어 이제라도 올바른 판단과 실천을 해야 그나마 저질렀던 과오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다. 그게 한국교회가 사회적 회개인 것이다. 명심하자. 한국교회가 2020년 평가결과로 받아야 할 것은 위로가 아니라 잔혹한 매질이다. 처절할 정도의 개혁과 혁신이 없이는 한국교회는 이대로 가면 절멸한다.

임석규 대표(기독청년학생실천연대) rase21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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