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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 지원율 급감, 무엇을 고민해야 할 것인가

기사승인 2020.12.17  17: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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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목회자의 자질을 생각해 본다

많은 신학대학원이 정원 미달이다. CTS 12월 10일 뉴스 방송에 의하면 상황이 이렇다.

“아신대 신대원은 90명 모집에 26명이 지원해 0.28대 1에 머물렀습니다. 성결대 신대원도 100명 모집에 40명만 지원해 0.4대 1을 기록했고, 한신대 0.43대 1, 침신대와 서울신대가 0.53대 1을 보여 추가 모집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총신대와 장신대 신학대학원의 경우 미달사태는 피했지만 1점대 초반의 낮은 지원율을 보였습니다.”

거대 교단 소속인 총신대학원와 장신대학원 두 곳만 정원 미달을 간신히 모면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두 거대 교단도 정원 미달이 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 CBS노컷뉴스 2019.12.22. 기사인용

그동안 꾸준히 지원율이 낮아지고는 있었지만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자 각 교단들은 충격에 빠진 것 같다. 여러 가지가 염려되는 상황이다. 기자에 의하면 이런 것들이다.

“당장 신학대학원의 운영이 어렵게 됩니다. 또 목회자의 자질 저하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원율이 낮으면 경쟁력이 약화되고, 그렇게 되면 뽑지 말아야 할 사람을 선발하게 되고, 이는 학생들의 학업능력 저하는 물론 목회자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의 학생 수가 줄면 목회자 수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 수급 문제는 사실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목회자가 지나치게 많이 배출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목회현장이 부족하다보니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마지못해 더 상위의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현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목회를 포기하거나 어렵게 개척에 도전하지만 대부분 3년 내에 망하는 것이 현실이다.

▲ 목회자수가 교회수를 추월했다. ⓒ예장통합 총회 신학교육부

조금 현실적인 고민이라면 신학대학원의 운영이 어렵게 된다는 점인 것 같다. 이제 기독교의 위기가 현장 목회자들만이 아니라 교수들의 생존문제가 되었다. 목사들만이 아니라 교수들도 이중직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안정적인 상아탑에 앉아 교회가 점점 어려워지니 교회가 작아져야 하고 본질을 찾아야 하고 근본적으로 변해야한다고 쉽게 훈수를 두곤 했던 교수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신학대학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일시적으로 정원을 조금 줄이거나 수요가 있는 다른 학과들을 개설하는 등 변칙적이고 현상유지적인 엉뚱한 대안 말고 그동안 교회에 대해 말해왔던 원칙들을 그대로 신학대학원에 적용해야 한다.

무게감을 가진 문제의식이라면 목회자의 자질 저하 문제일 것 같다. 하지만 이도 매우 허위적인 염려다. 이러한 염려는 이전까지는 목회자의 자질에 대해 우려할 필요 없는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걸 전제할 때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상은 이와 정반대이지 않을까? 물적 토대의 변화라는 상황적 차원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동안 심각할 정도로 목회자의 자질이 저하되는 교육을 해왔기 때문에 교회 스스로가 기독교의 위기를 불러왔고 지금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우리는 기자의 염려를 뒤집어서 보아야 한다. 신학대학원의 운영이 어렵게 되므로 이제야 비로소 목회자의 자질이 상향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어떤 목회자의 자질이 필요한 걸까? 그것은 상황인식과 맞물리는 것이라 기자의 상황인식을 먼저 살펴보자.

“신대원 지원율의 하락은 인구감소로 학생 수 자체가 줄어드는 사회적 요인도 있고요,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하락과 같은 부정적 이슈가 하락세의 원인으로 손꼽힙니다. 올해는 여기에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이 더해지면서 신학대학원 입학 지원이 급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오랜 기간 비대면 예배를 드리다보니 젊은 성도 중에서 목회자가 되겠다는 소명감이 덜 생겨서 신대학원 지원을 떨어트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분석이다. 하지만 상황적인 차원이나 현상적인 차원의 분석보다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요청된다. 단지 인구감소나 코로나19 국면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지원율은 감소하고 있었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 또한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위기 수준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급격한 하향곡선을 긋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신학대학원 정원 미달로 나타났을 뿐이다.

▲ ‘더불어숲동산교회’의 비전: 공교회성과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선교적 교회

지금은 피상적인 원인이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나는 그동안 『페어 처치』, 『성자와 혁명가』, 『코로나19 이후 시대와 한국교회의 과제』에서 한국교회의 위기는 공교회성과 공동체성과 공공성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또한 한국교회가 구원론과 선교론과 기독론과 교회론이 통합된 ‘선교적 교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해왔다. 이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상황에서 더욱 강력한 요청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 같다.

바벨론 포로기와 그 기간을 지나고 나서야 진정한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바벨론 포로기라고 생각하고 한국교회는 철저히 기득권을 내려놓고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Christendom(크리스텐돔) 시대였던 500년 전 종교개혁의 문제제기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Post-Christendom(포스트-크리스텐돔) 사회요 무종교 사회이며 다문화 사회이고 초연결·초지능·초융합의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 퀴어이론, 포스트휴머니즘, 사이보그학, 동물해방, 리오리엔트, 기후위기 등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제의식들이 표출되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파국적 사건을 통해 지금의 시대가 “하나님-생태, 예수님-정의, 성령님-평화”라는 과제를 요청하는 문명사적 전환의 묵시록적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안일하게 과거나 붙잡고 있거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수준의 하나마나한 말과 실천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제 환골탈태 수준의 근본적인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 코로나19 팬데믹은 “생태, 정의, 평화”를 요청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문명사적 전환 시대에 걸맞은 교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신학대학원은 학생들을 이에 부응하는 목회자로 가르쳐야 한다. 메가처치를 이루기 위한 기존의 교회성장학 수준이나 반대로 단순히 진보적인 사회참여 수준의 담론만 내세우는 지적 허영을 가지고는 목회자의 자질을 높일 수 없다. 성자적 영성과 혁명가적 영성을 겸비하고, 신학과 함께 인문학을 통달하며, 좌와 우 그리고 현대와 전통을 통합하고, 한 영혼을 사랑하는 목양과 한 몸을 섬김의 리더십으로 경영하는 목회에 대해 배울 뿐 아니라 한 지역을 섬기는 지역활동가의 면모까지 두루 갖추어야 하며,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읽고 “생태, 정의, 평화”의 감수성을 지닌 목회자로 교육받아야 한다. 한국 초기교회 시기의 목회자는 교회지도자일 뿐 아니라 동시에 민족지도자였던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다시 그런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지라도, 이 시대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목회자가 나올만한 교회와 신학대학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도영 객원기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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