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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학생운동, “대학의 민주화, 교회의 갱신, 사회 정의 실현”에 눈뜨다

기사승인 2020.12.02  15: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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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SCF 역대 총무들, 기독학생운동을 이야기 하다 ⑵

▲ 지난 11월25일 열린 역대 KSCF 총무 간담회에서 특히 1970년부터 9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기독학생운동이 어떻게 담아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도임방주 KSCF사무국장

에큐메니안이 지난 11월25일 주최한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역대 총무 간담회 첫 번째 기사에서는 시기상으로 해방 이후인 1940년대 중반부터 70년 중반까지의 ‘기독학생운동의 맹아기’(11월25일자 기사) 역사를 회고한 것이다. 학생운동이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추어 어떻게 진보적인 성격으로 진화해 갔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이념적으로 엄혹했던 시기와 부패 정권 속에서 어떻게 인권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 총무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70년 후반부터 90년대까지의 사회상과 학생운동의 모습이 드러난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학생운동이 어떻게 듣고 실천했는지를 들을 수 있다. 특히 한국 민주화 운동의 핵심 사건이었던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의 핵심 당사자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다.

사회자: 전대 총무님들의 말씀을 듣다보니 60년대가 지나면서 기독학생 운동 토대를 마련하고 70년 초반에 전열을 만들고 70년 중반을 지나면서 사회와 역사, 현장 속에서 학생운동이 현장에 나가고 에큐메니컬을 구현하고 만들어간 거 같습니다.

정상복 총무: 저는 64년 고려대 기독학생 회장이자 KSCF 서울지구 회장 출신입니다. KSCF에서 발행하던 ‘현존’이라는 신문의 편집국장이기도 했고요. 71년에 KSCF 간사활동을 했고, 73년에는 총무에 일임됐습니다. 이후에 이사장도 지낸 바 있습니다. 저는 실무적으로 보면 가장 오랫동안 KSCF와 연관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역시 KSCF가 학생운동을 하면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것은 ‘변혁’인 것 같아요. 당시 헌장이 있었는데 세 가지 영역의 변혁을 주장했습니다. 대학의 민주화, 교회의 갱신, 사회 정의 실현 이 세 가지였죠. 이 이념들을 구현시키는데 가장 역점을 두고 활동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은 KSCF가 주도했죠.

73년도 냉엄한 유신체제에서 긴급조치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민주화를 회복하자는 염원이 가득할 때 KSCF가 전국적인 학생 데모를 주도했어요. 서울대 일부 학생들과 KSCF가 함께 했죠. 후에 인혁당을 정부가 끼워 맞췄지만요. 민주화를 이뤄야겠다는 학생 데모는 주로 KSCF를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이에 관한 많은 자료와 증언이 있습니다.

민청학련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준 사건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더 깊어지면 좋겠어요. 학생 운동이 잠자고 있던 운동을 촉발 시켰거든요. 민청학련 사건은 모든 운동을 연결시킨 사건입니다. 언론 운동, 실천 문인 협회,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민청학련 운동을 통해 태동했어요. 저는 민청학련이 한국 사회 변혁의 큰 동인이 됐다고 봅니다.

세계 운동사를 여러 면에서 볼 수 있겠지만 민청학련은 온 가족의 운동, 사회 여러 사람이 연합이었습니다. 학생들만의 운동이 아니었어요. 구속된 학생이 생기자 ‘구속자 가족 협의회’가 생겨 온가족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요. 변호사 선임이 필요해지면서 KSCF가 구속 학생의 변호사 선임을 도왔는데 이를 계기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생겨났죠. 법조인이 민주화 운동에 함께하게 된 거죠. NCC인권위원회가 생기게 된 계기도 민청학련이었어요.

70년대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도 초기에는 다들 냉담했어요. 그래서 KSCF가 전태일 장례를 도맡았어요. 노동자와 학생을 연결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 후 학사단 활동이 시작되면서 학생이 대학 내에서 지식인 운동으로 멈추지 않고 민중 속에 직접 들어가 학생 운동의 새로운 지표를 던지게 됐죠.

KSCF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 학생 운동을 확산시키는 계기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비록 지금 KSCF가 많이 위축됐지만 한국 학생운동사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차선각 총무: 저는 부산 출신으로 되게 보수적이었어요. 새벽 기도회 종을 내가 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전국연합회 컨퍼런스를 한다고 해서 서울에 왔는데 어떤 양반은 술을 먹지 않나 누구는 담배를 피지 않나 (웃음) 교회 청년이 술도 먹고 담배도 피는구나 처음 경험했었죠.

저는 부산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학생운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서울에서 부산을 내려가는 일이 있으면 제가 마중을 나가고 접대했어요. 그랬더니 중앙정보부에서 저를 사찰하더라고요.(웃음) 저는 저를 의식화 시켜준 KSCF에 감사합니다. 가능한 KSCF일에 발 벗고 나서고 후원하고 있습니다.

활동 당시 ‘한국의 새롭게’가 KSCF의 슬로건이었습니다. 한국을 새롭게 한다고 참 열심이었죠.(웃음) 그랬던 동지들, 후배들을 이렇게 만나서 너무 반갑습니다

사회자: 70년대 당시 슬로건이 ‘한국을 새롭게’였나요?

정상복 총무: 당시 WCC 웁살라 대회에서 ‘만물을 새롭게’라는 주제를 내세웠었어요. 거기서 힌트를 얻었죠. 당시 ‘앞으로 한국 학생 운동의 좌표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물음이 있었어요. 민족의 과제, 세계적인 문제, 학교에서의 현존 등을 고민해 ‘한국을 새롭게’라는 슬로건이 탄생했죠.

사회자: 한국 기독학생에게 슬로건이었으면서 동시에 세계 교회의 선언에 대한 실천적인 모습이네요.

정상복 총무: 그렇습니다. 세계 교회를 향한 연대의 의미였죠.

박종렬 목사: 저는 67년에 대학교를 들어갔어요. 당시 서울대에는 KSCF 기독학생모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박형규 목사의 권유로 학생 운동에 참여하게 됐죠. 한국 사회의 학생 운동에 호감을 가지는 계기가 됐어요. 매년 4.19만 되면 서울대에서는 성명서를 작성했습니다. 대표로 뽑힌 5명이 토론을 거쳐 성명서를 발표했죠.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하는데 성명서를 읽고 나서 친구가 퇴학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제가 덜컥 학생회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 후 KSCF연맹 학생회장이 되라는 권유 받아 KSCF 학생회장이 되어 사회정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습니다. KSCF에 참여하면서 학생 운동의 새로운 길을 발견했어요.

학사단 활동을 하며 빈민지역을 조사하기도 했어요. 서울 전체 지역을 조사했습니다. 그 후에 신학공부를 하고 인천에서 목사하다 95년에 KSCF 총무로 활동했습니다.

사회자: 1990년대가 드디어 나왔네요.

이광일 총무: 저는 KSCF가 주관한 전태일 장례식 때문에 학생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KSCF 서울지구 지회 부장으로 활동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청년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개교회별 청년 학생이 어떻게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73년 KSCF에서 활동하며 공과대학을 다닐 때 문득 ‘이렇게 살다가는 왕년에 운동 조금 했다’정도로 끝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휴학하고 신학교에 갔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73년에 박형규 목사님 남산 부활절 사건이 나면서 KSCF 리더들이 많이 잡혀 갔어요. KSCF 여름 대회를 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제가 준비했어요. 저의 뜻과 상관없이 끌려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웃음) 늘 후회는 없습니다. 신학교를 마치고 KSCF 실무자로 일했습니다. 새로운 산업선교에 대해 고민하고 기독교 노동자 선교에 대해 고민하다가 교회를 통한 방식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국내에는 저의 역할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이 들어 캐나다 선교를 몇 년 갔다가 돌아와서 2000년 KSCF에서 4년간 총무를 했습니다. 지금 고백하는 것은 역대 총무 중 가장 무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만 고생한 것이 아니라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고생시켰다고 생각해서 미안해요.

저는 지금도 할 수 있는 일, 제 능력범위 내에서 교회 청년회 활성화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권이민수 simin004@nate.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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