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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열의 시대

기사승인 2020.11.20  12: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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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50주년, 변화된 시대의 민중교회의 길을 걷다 ⑴

▲ 지난 11월9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가 주최한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자 개최한 ‘민중교회 포럼’에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이 주제 발제를 하고 있다. ⓒ이신효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회장 김지태 목사)가 지난 11월 9일 오후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민중교회 포럼(코로나 이후 교회의 대안 찾기)’을 개최했습니다. 이 포럼에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님이 주제 발제를 하셨습니다. 이 글은 김진호 연구실장님의 발표문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생명선교연대 관계자 여러분들과 김진호 연구실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발제문은 길의 분량상 3차례에 나누어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분열

예장통합 총회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자교단소속 목회자 1,1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1)에 의하면, 코로나19의 확진자가 크게 늘었던 3~4월 주일예배 평균출석율은 42.4%였고,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을 낮추었던 5월24일 예배 때는 약 20%가 증가한 61.8%가 참여했다. 또 코로나 이후 평균감소 예상비율은 19.7%였다.

나는 이 조사결과가 얼마나 사실을 직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선 19.7%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은 너무나 낙관적 수치로 보인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의 2017년 조사(2)에 따르면 그해 개신교 신자 중 예배에 출석하지 않는 이들의 비율은 23.3%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여기서 핵심은, 그 수치가 아니라, 설문 대상이 다르다는 데 있다. 즉, 목회자가 아닌, 신자들의 대답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태극기집회가 한창이던 때 신자들은 23% 이상이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한데 개신교 8개 언론기관이 올해 8월13~20일 사이 실시한 〈코로나19의 종교 영향도 및 일반 국민의 기독교(개신교) 인식조사〉(3)에 따르면, ‘더 좋아졌다’ 1.9%, ‘비슷하다’ 34.8%인 반면, ‘더 나빠졌다’는 이가 63.3%나 되었다. 현재 개신교는 코로나19 시대에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 아니 오히려 대감염과 중소감염의 주범이기도 했고, 그밖에도 비대면예배 논쟁 등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상실한 ‘파렴치한 종교’처럼 받아들여진 것이겠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에 예배참석자의 감소율이 그리 많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게 상식이 아닐까. 그런데 2017년 한목협의 조사보다 감소율이 근소하지만 낮을 것으로 추정한 예장통합의 조사결과는 이 상황에 대해 그 교단 목회자들이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여기에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코로나19, 5차 국민인식 조사〉(4)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 조사 시기는 예장통합의 조사에서 예배참여비율이 42.4%라는 결과가 나왔던 바로 그 어간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종교인 중 종교모임에 참여했다고 답한 이들은 6%였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종교인구는 50% 이하이고 개신교 대 불교 대 가톨릭 신자의 비율은 ‘45:35:18’이며, 전체 종교인구 가운데 이들 세 종단에 포함된 이들은 98%를 넘는다.

2020년 개신교 신자가 좀더 줄었다고 가정하고 그 비율을 어림잡아 ‘40:40:20’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불교와 가톨릭 신자 모두가 종교집회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고 다소 무리하게 가정한다면 예배에 참석한 개신교 신자는, 다른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산술적 계산을 해보면, 15% 미만이 예배에 참석했다고 추정된다. 같은 시기에 예장통합파 목사들은 42.4%라고 보았음을 다시 한 번 주지하자. 그 차이가 너무나 현격하다.

목회자와 신자 간의 분열

여기서 어느 것이 더 사실을 개연성 있게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또 그것을 추론하기 위해 복잡한 생각을 펴는 것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의 관심은 코로나 시대와 그 이후에 목회자들과 신자들 사이의 시각 차이가 절충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사실에 있다. 아마도 목회자들은 교회가 더 큰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열망이 반영되어 상황을 해석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 신자들은 교회에 대한 너무나 커다란 실망을 자신들의 답변 속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목회자와 신자 간의 관점의 차이와 그것에 관련된 태도의 차이, 그 차이의 심각한 분열은 코로나 국면에서 비로소 생겨난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교회와 사회의 중요한 변화 속에 그런 격차는 이미 구조화되고 있었다. 그 이전까지 교회는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세력이었다. ‘변화를 추동’한다는 것은, 문화적이든 정치적이든, 교회가 사회의 변화와 보조를 맞추고 있거나 앞서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1980년대까지 교회는 사회의 변화 속도에 뒤처진 집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데 1990년대 이후 교회는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대중문화에 적대적인 담론을 만들기도 했고,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역으로 되돌리는, ‘역진(逆進)의 세력’이라는 이미지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또한 사회는 빠르게 세계에 대한 합리적 계산능력을 향상시켜 간 반면, 교회에서는 점점 반지성주의적 담론이 우세해졌고, 심지어 반사회적 성격을 지니는 분파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물론 대부흥기인 1960~1990년 사이 교회에도 반지성주의 현상은 만연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사회에도 그런 요소가 많았었고, 또 교회에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성들이 즐비하기도 했다. 한데 지금은 그런 이미지로 비추어지지 않고 있다.

해서 1980년대까지 교회는 존경받는 목사들에 대한 추종 현상이 돋보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신자들은 목사에 대한 존경심을 철회하는 일이 흔하게 나타났다. 목사들의 설교권력이 빠르게 붕괴했고, ‘실망신자’들의 유랑현상이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유랑하는 신자들이 재정착한 교회들, 이른바 1990년대 성공한 교회들은 목사들의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는 교회의 특정 프로그램이나 이미지 등이 대대적으로 소비된 결과인 경우가 많았다.

2천년대 어간부터는 종교의 정치세력화 현상이 크게 활발해졌는데, 1989년 설립한 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이 한국개신교를 명실상부 대표하는 집단으로 부상한 시기도 2천년대 초였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서 3.1절 구국기도회가 열린 시청 앞 광장으로 20만 명의 인파가 몰렸고, 그것을 주도한 이는 그해 한기총의 대표회장으로 취임한 길자연이었다. 그의 배후에는 조용기, 김홍도 등 대표적인 초대형교회 목사들이 있었고, 길자연은 이들을 등에 업고 강성반공주의적 한기총의 정치색을 시민사회를 향해 뚜렷하게 표출하였던 것이다.(5)

한국 교회 내의 분열

하지만 그것으로 이 시대 개신교를 파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한기총이 주도하는 강성반공주의 담론은 2천년대 급성장하는 교회의 추세와는 결을 달리하는 개신교계의 상대적으로 낙후된 영역에서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 많은 평신도들이 실망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신자들의 주권의식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 중 적잖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 ‘떠돌이신자’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충성하는 신자’에서 ‘소비자가 된 신자’로 주체양식이 빠르게 변환되어 갔다.

이들 소비자적 신자들이 이곳저곳을 쇼핑하듯 떠돌았고, 그들 중 다수가 재정착했다. 이렇게 소비자형 떠돌이 신자들의 집중적인 재정착지가 된 교회들, 하여 이 시기 크게 약진한 교회들은 저들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춤형 종교상품을 내놓은 덕이었다. 그 맞춤형 종교상품의 대표적인 기조를 나는 ‘웰빙보수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미주 6) 즉 웰빙보수주의적 교회는 평신도의 욕망을 일정하게 반영한 교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강성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교회들은 목사가 그 종교성을 주도했고, 평신도들은 그들의 추종자인 경우가 많았다. 목사들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강한 탓에 그 교회들의 구심력은 비교적 견고했다. 하지만 그들의 구심력이 미치는 영역 바깥에서 그들은 적폐의 표상처럼 여겨졌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이른바 ‘낡은 보수’가 적폐로 낙인찍힌 것처럼 말이다.

한데 평신도의 주권의식이 급상승하는 시대에 많은 목회자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런 풍조를 종종 신앙의 위기처럼 받아들이곤 했다. 가령 목회자들은 ‘쇼핑신자’라는 용어로 신자들의 떠돌이 양상을 비하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변화된 종교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회피하였다. 그것은 변화의 조건을 해석하지 않는 게으름을 정당화시키는 명분이 되었다. 동시에 교인 장악력이 강력한 목사들을 선망하는 풍조가 이런 프레임과 맞물려서 확산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1990년대 이후, 특히 2천년대 이후에는, 모든 목회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회자들 중 많은 이들이 주권화된 신자들의 평신도적 자의식과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해서 나는 이 시기를 ‘대분열의 시대’로 본다.

미주

(미주 1)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소속 목회자 대상 포스트코로나19 설문조사 1차 보고서〉 in 《코로나19 이후의 한국교회 대토론회》(예장통합총회, 2020.06.15.)
(미주 2) 한국목회자협의회,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 2018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 조사 보고서》
(미주 3) 최송현, 〈현실 감각에 문제? 비신자 82.7% “교회 코로나19에 대응 못한다”, 개신교인 56.9%는 “대응 잘했다”―‘코로나19 이후 가장 타격받을 종교’ 82%가 ‘개신교’…신뢰도는 종교 중 꼴찌〉, 《뉴스앤조이》(2020.09.01.)
(미주 4) https://hrcopinion.co.kr/covid-19/article?board_name=board5_4&order_by=fn_pid&order_type=
esc&vid=13

(미주 5) 조연현 기자, 〈한기총 갑작스런 '우향우' 왜?〉, 《한겨레신문》(2003.02.06.)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100020/2003/02/009100020200302062037509.html)

(미주 6)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오월의봄, 2020) 참조.

김진호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kjh55940@daum.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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