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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스칸달론을 극복했다

기사승인 2020.11.04  17: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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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나의 걸림돌(skandalon)이다”: 마태복음의 스칸달론에 관한 연구 ⑶

▲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마태공동체의 정황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Getty Image

지난 글들을 통해 마태복음의 내포저자가 스칸달론을 강조하고 스칸달론에 관한 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내포저자는 스칸달론이라는 주제를 강화시키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마태복음의 내포독자가 처한 상황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공동체, 모두로부터 미움 받다

마태복음의 내포독자들인 마태 공동체의 기독교인들은 공동체 외부의 갈등과 내부의 대립의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 내/외부의 갈등과 대립은 결국 스칸달론을 유발시켰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태복음의 내포저자는 스칸달론에 대한 가르침을 강화시켰다고 추측할 수 있다.

유다 혁명 이후(AD. 66-70) 팔레스틴 유대교는 얌니아 회의를 기점으로 바리새 유대교로 재편되고 있었다. 유다 혁명 이전의 유대교는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있었다.”(monocentrism) 포로기 이전의 유대교와 비교해서 “다중심적, 이질혼합적, 사회종교적 다원성”을 가진 “종교적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1)

그러나 얌니아 이후로는 “바리새주의적 개혁”(Pharisaic reform)이 발발해 다른 이단들과 더불어 유대-기독교인들은 회당으로부터 축출되었다.(2) 그러므로 마태의 갈등은 유대교와의(with) 갈등이지 유대교 내의(within) 갈등은 아니다. 유다 혁명 이후의 시기에 시리아 안디옥의 도시에서 일종의 “가정교회”로 모였던 마태공동체는 회당으로부터의 박해와 선교의 거부를 경험했을 것이다.(3)

마태복음의 내포독자들이 받았던 핍박은 유대교 회당과의 갈등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 이 핍박은 “총독과 임금들”과 같은 이방인들로부터 유래하기도 했다(마10:18).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내포독자들은 회당 세력과 이방인 지배자들이라는 양쪽 집단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마10:22)는 말은 마태공동체의 자기고백이 아닐까? 파송설교와 종말설교는 모두 이러한 박해의 상황을 강조하고, 끝까지 견디라고 격려하고 있다.

핍박과 박해의 위기 앞에서 “의로운 피”(마23:35)를 흘린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례 요한처럼 신앙에 관한 스칸달론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베드로나 제자들처럼 제자도에 있어서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마태 내러티브에서 그리고 있는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의 스칸달론은 박해의 상황에서 발생한 마태공동체 지도자들의 스칸달론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례요한과 제자들의 스칸달론에 관한 이야기는 역시 스칸달론의 위기에 처한 내포독자들을 준비시키고 교육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스칸달론을 극복하다

마태복음에서 내포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스칸달론을 극복한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사람의 일들보다는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함으로, 나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자기를 구원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음으로 스칸달론을 극복하는 훌륭한 모델이 된다.

내포저자는 스칸달론의 위기에 직면한 내포독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스칸달론의 위기 가운데서 사셨다. 마태복음의 시작과 끝은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4) 내포저자는 내포독자들에게 스칸달론의 위기 가운데서 사셨던 예수가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선포하고 있다. 베드로와 같은 지도자가 바다 바람에 침몰해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람을 잔잔케 하시며 함께 하시어 구원하신다는 이야기는 박해로 말미암은 혼란과 스칸달론의 두려움이 만연한 시대를 살았던 마태복음의 내포독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외부박해만 스칸달론의 위기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갈등과 대립도 스칸달론의 위기를 초래한다. 마태 공동체의 내부적 대립 역시 스칸달론을 야기시켰고, 내포저자는 다시금 공동체 내부의 통합을 위해 스칸달론 문제를 강조해야만 했다. 타이쎈(G. Theißen)에 따르면 가라지 비유와 큰 잔치 비유(마22:1-14)는 코르푸스 페르믹스툼(corpus permixtum)사상을 반영한다. 내포저자는 공동체 내에 “걸림돌들”이 있으며 심판이 종말의 때까지 유보되어 있음을 강조한다.(5) 가라지 비유와 교회설교 중 실족에 관한 말씀은 교회 내부에도 걸림돌들이 있었으며 그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다.

내포저자는 특히 공동체 내부의 “작은 자”의 스칸달론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작은 자”들은 방랑 예언자들이며 “제자”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다(마10:41-42). 이들이 “미천한 태생의 사람”(lowborn person)(6) 혹은 “천민”(7)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비자발적인 주변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8) 내포저자는 공동체 내부에서 이들을 실족시키는 것에 대해서 강력한 어조로 경고한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이들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마25:31-46).

마태의 사회 세계는 종교 지도자들이 걸려 넘어지고 작은 자들이 스칸달론으로부터 보호되는 곳이다. 게엔나(지옥)과 “구원의 상실”을 언급하면서까지, 죽음을 명하고, 신체 절단을 명하면서까지 “작은 자”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마태의 내포저자는 기존의 랍비, 아버지, 지도자의 권위를 극복하는 “혁신적인 대안 공동체”(9)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와 같은 혁신적인 대안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며 하나님의 나라이다.

조심하라, 깨어 있으라

마태복음은 스칸달론의 문제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마태공동체가 스칸달론과 배반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스칸달론 이야기에는 그러한 시대상황을 초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이화순이 주장한 것처럼 “실족은 단순한 불신앙이나 비-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일부”라는 역설이다.(10) 스칸달론과 신앙의 역설 가운데서 베드로와 같은 반석이 걸림돌과 사단이 되는 “아이러니한 장면”(11)이 연출된다. 하지만 슈바이처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걸림돌로 변할 때 조차도 반석으로 남게 된다.”(12) 이것 역시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스칸달론은 “사람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비밀과 역설 속에 발생한다. 스칸달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영광의 메시야가 아니라 수난의 메시야라는 역설 속에서 발생한다. 스칸달론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역설 속에서 발생한다. 신앙의 본질 속에 스칸달론에 빠질 수 있는 아이러니한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하여 모든 신앙인들은 “십자가의 걸림돌”(고전1:18f)에 주의하고(13)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한 자에게서 구하옵소서”(마6:13)

미주

(미주 1) E. W. Stegemann, W. Stegemann, The Jesus Movement: A Social Hirtory of Its First Century (Edinburgh, T & T Clark, 1999), 137-186.
(미주 2) D. Senior, C. P., “Between Two Worlds: Gentile and Jewish Christians in Matthew's Gospel,” Catholic Biblical Quarterly 61 (1999), 2.
(미주 3) 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5), 37-38.
(미주 4) 마태복음에서 임마누엘과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는 J. D. Kingsbury, 『마태복음: 설교자를 위한 선포주석』, 황성규 역 (서울: 컨콜디아사, 1983), pp. 105-107 참조.
(미주 5) G. Theißen,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복음서에 대한 사회-수사학적 접근』, 류호성, 김학철 역 (서울: 대기독교서회, 2002), 103. 교회 안에 의인과 죄인이 모두 있다는 사상.
(미주 6) B. J. Malina, R. L. Rohrbaugh, Social-Science Commentary on the Synoptic Gospel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2), 117.
(미주 7) 김재성, “마태복음에 나타난 작은 사람들,” 『신학사상』 133집 (2006): 85-90.
(미주 8) D. Duling, “Matthew and Marginality,” in JBL Seminar Papers (Atlanta, Georgia, Scholars Press, 1993), 642-663.
(미주 9) 오우성,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성서적 신앙공동체: 마태복음 23:8-12를 중심으로,” 『성서의 권위와 성서적 신앙공동체』 (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2005), 113, 131. 오우성에 따르면 랍비는 종교적 권위를, 아버지는 가부장적 권위를, 지도자는 사회-정치적 권위를 각각 상징한다.
(미주 10) Hwa-Sun Lie, Der Begriff Skandalon im Neuen Testament und der Wiederkehrgedanke bei Laotse (Frankfurt/M: Peter Lang & Bern, Herbert Lang, 1973), 33. “Das Skandalon ist nicht ein einfacher Unglaube oder Nicht-glaube, sondern ein Bestandteil des Glaubens.”
(미주 11) 김은정, “마태복음 L'Évangile selon Matthieu에 나타난 문학적 아이러니,” 『프랑스어문교육』 제24집(2007): 305-333.
(미주 12) E. Schwiezer,『마태오복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359.
(미주 13) Theißen, “속죄의 거리낌으로서의 십자가,” 『신약논단』 제12권 제2호 (2005): 309-331. 십자가는 바울에게 “신학적 걸림돌”로 우주신학, 역사신학, 율법신학을 수정한다. 십자가는 “사회적 걸림돌”로 존경과 명예를 수정한다. 십자가는 “정치적 걸림돌”로 권력요구를 수정한다.

김재현(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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