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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사람

기사승인 2020.10.20  15: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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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29

< 1 >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예수님 탄생 이야기의 주역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라는 칭호가 이미 폭로하듯이 요셉은 아기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 마리아의 남편일 뿐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도 요셉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고 시작되는 족보는 부계사회, 가부장적 전통을 그래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족보의 마지막 부분도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요셉을 낳고, 요셉은 예수를 낳고 …’ 이렇게 진행되어야 마땅한데, 놀랍게도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마 1:16)고 마태는 증언합니다.

요셉은 예수님 탄생 설화의 조역일 뿐입니다. 성서는 의도적으로 요셉을 주변부로 몰아넣었는지 모릅니다.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마태는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한 후에도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마 1:25)고 하고, 누가는 예수님이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한 사건 이후, 어디에서도 요셉을 등장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탄생 사건 주변부의 조역에 불과한 마리아의 남편 요셉, 직업은 목수, 다윗의 후손으로 나사렛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요셉이 목수였다는 것은 그가 목재 가공이나 건축업에 종사했다는 것과 당시 갈릴리 지역에서 중요한 경제력이었던 아마포 직조업과 도기업, 유리제조업과 함께 중산층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관례를 고려하여 나이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열다섯 내지 열일곱 살에 예수님을 낳았고, 요셉은 그 때 스물다섯 살쯤 되었으리라 추정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 구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집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재산(소유물)으로 여겨졌고, 이혼도 비교적 쉬웠는데, 대부분 으레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는 경우였습니다.

힐렐파 바리사이 사람들은 아내가 죽을 태웠을 경우에도 이혼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여자에게 교육 기회는 거의 없었고, 상속권도 없고, 법정에서 증인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딸의 결혼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소관사였습니다.

< 2 >

어쨌든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을 했는데,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자 그는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고 했다’(마 1:18-19)고 합니다. 마태는 그 이유를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마 1:19)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천사가 꿈에 나타나, 아기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아기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것(마 1:24)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로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요? 만약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했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만일 요셉이 큰 소리로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거나, 마리아를 고발했다면 열다섯 살 나이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에게 몰려온 것처럼 돌을 들고 달려왔을까요? 아니면 법정에서 간음죄로 사형판결을 받았을까요?

▲ Anton Raphael Mengs, 「The Dream of St. Joseph」 ⓒPublic domain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상상과 추측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다만 한 마디만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태에게 요셉의 의로움은 ‘율법에 대한 충성과 엄격한 준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명기에 따르면 “여자가 처녀임이 증명되지 않거든, 그 여자를 그 아버지의 집 문 앞에 끌어내고, 그 성읍의 사람들은 그 여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했지만”(신명기 22:20-21),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율법에 대한 충성이나 율법의 엄격한 준수’가 아니라, ‘약한 여인에 대한 친절함과 배려’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의로운 사람이라면, 날카롭게 사리를 따지고, 잘잘못을 가려, 심판하고 보응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마태는 의로움을 타자,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로 이해했고, 이것은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누가가 보도하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요셉은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요셉이 진실로 위대한 인물인 것은 그가 약혼녀 마리아가 친자가 아닌 아기를 잉태한 것을 받아드리고, 그 아기 예수를 친자처럼 양육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하는 것도 끔찍한 일이고,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이 되셔야 했을 것입니다.

요셉과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 이야기는 오랫동안 과학과 종교 사이의 논쟁점이었습니다. 동정녀의 성령 수태를 과학은 부정하고, 교회는 신앙으로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성서는 과학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태와 누가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도 다르고(마태는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라고 하는데, 누가는 엘리라고 함), 요셉과의 관계없이 태어난 아기는 그렇다면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는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 3 >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핵심은 진실로 다른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위하여 선택한 여인이 로마 제국의 왕비나, 이집트의 파라오의 공주, 유대 왕 헤롯의 딸이 아니고, 나사렛의 가난하고 비천한 여종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 다윗의 후손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인데, 그들 가운데 왕손도 있고 부유한 이들도 있을 것인데, 유독 나사렛 출신의 목수 요셉을 선택하셔서 마리아를 보호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탄절 이야기의 주역은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이지 남편이자 아기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구원사의 주역이 아니라 조역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역인 요셉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구원사는 미완으로 끝났을지 모릅니다. 혼전 임신한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배려가 없었다면, 요셉이 율법보다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돌에 맞아 처형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사에서는 모두가 주역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에서는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룹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와 모함에 빠져 이집트 노예로 팔려갔다가, 이집트에서 당한 역경과 수난을 오히려 이스라엘 구원의 전기로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 위기, 마리아의 불안과 두려움을 의로운 남편 요셉을 통하여 인류 구원의 역사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에서는 모두가 주역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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