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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기사승인 2020.10.13  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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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게 보기”고린도후서 4:14-18

▲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10명의 나병환자는 제사장에 갔습니다. 그 중 한 명의 나병환자만이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의 찬양을 합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 안에 있는, 이미 주어진 완전한 평안을 날마다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형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을 허물어버려야 합니다. 헛된 욕망,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목적,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의 방식, 상처 받았던 기억들 그래서 용서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등등 허물어버려야 할 벽들입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벽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형통하기 위해 자동차로 예를 들자면, 자동차의 운전대를 우리가 잡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운전석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자리를 비워야 그 자리를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자동차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한 주간 하나님과의 형통한 삶을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셨고, 또 어떤 노력들을 하다가 이 자리에 나오셨나요? 늘 스스로 세운 벽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허물어버림으로 하나님과 형통하시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쉬기 위해 한 마을에 들리셨는데요. 이 때 멀리서 예수님을 알아 본 나병환자 열 명이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신들을 고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예수라는 선생을 만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지 않습니까? 동네 의원을 가도 고칠 수가 없고, 좀 더 큰 병원을 가도 고칠 수가 없고, 허리와 무릎 쪽으로는 가장 유명하다는 전문병원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고칠 수가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면 얼마나 절망하겠습니까?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어떤 지역의 한 의사가 허리와 무릎을 100%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의사가 너무 바쁘다고 해서 만나기를 포기하겠습니까? 우리도 간절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까요.

지금 나병환자들은 절박한 상황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는 해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 예수가 자신의 마을에 왔다는 소식을 열 명의 나병환자가 듣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예수를 만나러 가지 않겠습니까? 당시 병든 사람은 죄인이었습니다. ‘병’은 다른 이유들보다도 ‘죄’의 결과로서 얻은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죄는 자신으로부터 또는 조상이나 부모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여겼습니다. 또한 전염병을 가진 사람은 성 밖에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고립된 채 외롭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예수의 소식을 들은 나병환자들은 이제 ‘죄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가족의 품으로 이웃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나병’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 선생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환자의 이런 간절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제사장에게 가야하는 이유는 당시에는 제사장으로부터 전염병이 치유되었음을 증명 받아야 했습니다. 병이 나았다고 해서 바로 격리에서 풀리거나 ‘죄인’의 증표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사장에게 가는 길에 자신들의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리고 열 명의 나병환자 중 한 명이 예수님을 찾을 때와 같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감사를 받으신 예수님은 묻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그리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에게 감사한 나병환자를 바라보며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지금까지 누가복음 17:11-19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본문은 치유 보다 나병환자가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점, 구원받았다는 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기적이야기 입니다. ‘치유’는 ‘믿음’을 가지도록 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간절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도 기도의 소리를 높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이 고백을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저 예수님을 병을 치유해주는 선생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주님’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그저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 돈을 줄 수 있는 부자,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게 현명한지를 알려주는 지식 많은 선생 정도로 여기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그들은 나병이 나았어도 앞으로 인생의 또 다른 고통을 겪을 것이고, 병도 새로 얻을 것이고, 자신의 문제를 다른 이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순간의 고통에서 벗어났을 뿐입니다. 병만 치유되면 행복할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지금 내 눈앞에 문제가 해결되면 살아갈 만 할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아홉명의 나병환자와는 달리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을 들은 나병환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으리라 확신합니다. 믿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씀은 정말 놀라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돌아온 나병환자에게 하신 말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읽은 오늘 본문이 구체적인 한 예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늘 바울은 고통과 혼란 속에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공동체로 모여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오늘날과는 달리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삶이었습니다. 때로는 죽음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환난과 고통이 ‘우리를 위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많은 이들이 고통은 벗어나야만 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에서 벗어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기도가 부족해서 인가요? 헌신이 부족해서 인가요?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은 반드시 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환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게 해줍니다. ‘믿음’은 우리가 고통과 환난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이 변화가 은혜이고 신비입니다.

고통과 환난은 오늘 본문이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게 합니다. 사실이에요. 그냥 둬도 낡아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들은 고통과 환난이야말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게 할 수 있는 은혜의 통로로 받아들입니다. 완전히 다른 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중에 황용택 성도님이 병원에 입원하셔서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날인 26일 새벽예배부터 참여하셔서 지금까지 1년이 안 되는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 나오기 시작하셔서 지금까지 3번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그래서 제가 여쭤봤습니다. 황용택 성도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하나님이 저를 시험 하시나봐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왜 감사했냐구요? 황용택 성도님은 자신의 이런 상황들이 하나님께로 더 깊이 향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라고 여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경통독도 한 번 하셨고, 매일 핸드폰으로 성경을 듣고, 읽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목사인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은 어려운 상황이 빗겨가거나 해결되도록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상황 자체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 스스로가 치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의 태도를 가진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야기 합니다. 환난은 “잠시 받는 가벼운 것입니다.” 이 환난은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권면의 마침표를 찍는 문장을 이야기 합니다.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이렇게 큰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인데 왜 “잠시 받는 가벼운 것”이라고 표현하나요?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원함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수님께로 돌아온 한 명의 나병환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그토록 보여 지는 것들을 해결받기를 소망했지만, 정작 구원받아야 할 것은 자신의 그릇된 자아였습니다. 그릇된 태도였고, 그릇된 시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30에서 나의 믿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수고하고 있는 삶과 무거운 짐을 치워주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수 있음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배우면,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들을 다르게 경험하도록 태도를 바꿀 수 있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바로 이 시각과 태도가 놀라운 믿음의 신비이고 은혜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자신을 언제라도 구원할 수 있게 됩니다. 나병환자는 삶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과 환난이 은혜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오히려 이런 일들이 날로 속사람을 새롭게 하도록 한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잠깐 동안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며 연연해 하는 삶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한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이런 세상적인 기적과 기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만 기도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외침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추구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구걸하며 예수님을 주님이 아닌 선생으로 부르며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치는 낭비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생을 다르게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믿음의 태도가 스스로를 구원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이런 믿음의 태도로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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