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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담론을 넘어 풍류선맥(僊/仙脈)정통론으로

기사승인 2020.09.15  17: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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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맥의 풍류성과 무맥의 무교성은 다른 차원의 종교현상이다

이번 글을 위해서 에큐메니안에 연재된 2월 3일(“풍류신학에 ‘풍류는 있는가?”), 2월 18일(선[僊]이란 무엇인가), 3월 3일자(선교신학으로서의 토착화 신학은 토착될 수 없다)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 저자 주

풍류와 풍류도(풍류의 길)는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광명한 세계에서 펼쳐진 홍익인간과 재세이화 하는 평화의 선맥을 말한다. 풍류도는 신화와 의례를 통해 한국인의 도맥(道脈)의 본바탕을 형성하는 종교적 기제이다. 이런 선맥의 창조적 영성에 종교문화적 명칭을 부여한 이는 최치원(857-미상)이다.

그는 신선(神仙)을 상징하는 난랑이라는 화랑을 기리며 쓴 비문에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일컬어 풍류(風流)라 한다. 가르침의 근원이 선사(仙史)에 자세히 적혀있다. 풍류는 삼교(三敎)를 포함(包含)하고 뭇 생명을 제 길수대로 조화롭게 한다.”고 하며 이어서 풍류에는 삼교의 이치를 다 포함하고도 남는다는 한국 영성의 정체성을 사례로 들어 「난랑비서(鸞郎碑序)」 76자에 기록하고 있다.

그는 문창후(文昌候)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고 제향될 정도로 한국 유학사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증대사비문(智證大師碑文)」에서 신라 선종사(新羅禪宗史)를  기술하고 화엄종에 관련되는 글을 20여 종이나 썼으며, 승려 현준과 정현 등과 교유하며, 말년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칩거했다는 기록이 보이는 등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게다가 당나라에서 고변의 종사관으로 있으면서 도교의 수련술을 배워 귀국하였으며, 『계원필경집』에는 도교 제초의례에도 정통한 것을 입증할만 한 초제가 14편이 있다. 특히 당나라에서 시해술(尸解術)을 배운 후 귀국했지만, 잊고 있다가 친형인 승려 현준에게 다시 배워 ‘가야보인법(伽倻步引法)’이라는 수련서를 남기고, 선거(仙去)했다고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이다.(1)(아래 사진 참고)

▲ 사진 왼쪽부터 최치원 동상, 최치원이 새겼다는 ‘해운대 석각’, 2020. 8.11 필자촬영

이처럼 ‘풍류’의 종교성은 유불도에 정통한 국제적인 종교전문가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의 글이기에 한국 종교를 언급할 때 지나칠 수 없는 신빙성 있는 종교자료에 이해되고 있다.

현대에 풍류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낸 사상가는 김범부(1897-1966: 본명은 정설[鼎卨] 혹은 기봉[其鳳], 아호는 범부, 아래 사진 참고)이다. 그는 세간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불도 및 동서고금의 현대학문에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동방 르네상스’를 꿈꾼 사상가이다.

미당 서정주는 그를 기리며 “신라의 제주(祭主) 가시나니”라고 하면서 “하늘 밑에서는 제일로 밝던 머리”라고 조사(弔詞)하고, 김지하는 “현대 한국의 최고 천재”라고 칭송하기도 하며 풍류도를 현대에 재현하여 한국에 동방 르네상스 등 제3의 길을 제시하려 한 독창적 사상가라고 평가한다. 그의 친동생인 문학가 김동리는 ‘무와 태극(혹은 율려)’이라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모색했다고도 한다.(아래 사진 참고)

▲ 사진 왼쪽부터 김범부, 범부 1차 자료, 수유리 묘소, 비석에 본명이 ‘其鳳’이라 적혀있음, 2010, 8. 12 필자 촬영

그는 1915년에 백산 안희제가 세운 백산상회의 기미육영회의 1회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지만 유학기간에 행적이 불분명한 채로 남겨져 있으며, 다솔사에 칩거하던 기간(1934-1941)에 “1934년에 일본 비예산문(比叡山門) 이하 대승직자(大僧職者)들과 대학교수단 40여명이 다솔사를 방문하여 ‘위진현학(魏晉玄學)과 격의불교(格義佛敎)’라는 주제로 강연을 일주일동안 했다”고 할 정도로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그의 건국방략인 풍류도와 풍류정신에 대한 글들이 다솔사 칩거 이후에 발표되고 다솔사가 비밀결사인 불교의 卍당과 유교의 대동청년당과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의 풍류담론을 언급할 때 풍류정신을 재발견한 근거지로서 다솔사에 대한 재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2)

또한 1950년에 부산 동래구에서 민의원(현 국회의원)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하였고, 1959년에 건국대학교부설 동방사상연구소에서 동방학 강좌를 3년간 개설했으며, 이때 수강생이 당대 지식인이었던 이항녕, 황산덕, 이종후, 이종익 등 적지 않은 사람이 청강하였다. 1963년에는 오월동지회의 부회장에 취임하여 박정희의 원로자문역할을 잠시 맡기도 한다. 그는 수유리 독립자 유공묘지에 안장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독립운동을 했는지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사진 참고)

아직도 당시 그의 명망에 비해 불분명한 그의 생애 행적은 더 밝혀야 하지만 적어도 김범부는 신라의 풍류도를 재발현시켜 경주(동학의 발상지)를 발원지로 하여 ‘동방 르네상스’를 주창한 문명사가이며,(3) 독창적인 학문적 방법인 오증론(五證論)(4)을 통해 한국의 풍류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이상학을 구축하려 한 동방학자임과 동시에 신라의 화랑정신을 현대의 건국방략의 정신으로 되살려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혁명적 경세가라고 할 수 있다.

풍류정신, 화랑정신, 동학정신, 국민윤리와 국민운동의 역사적 데자뷰

그런 김범부가 재발견한 풍류도는 무엇인가? 그의 풍류담론은 고대 한국인의 종교적 영성이던 ‘풍류도와 풍류정신’, 신라시대의 ‘화랑도와 화랑정신’, 근대의 ‘동학과 동방정신’을 역사적 데자뷰로 삼아 해방정국에 재현되어야 ‘국민운동’이자 ‘국민윤리’의 이데올로기로서 제기된다. 특히 풍류정신이 꽃핀 화랑제도가 통일신라의 밑바탕이 된 것처럼 물계자, 백결, 김유신, 김정호, 이의립 등과 같이 순수한 지정(至情: 당위명령)적 국가관을 가지고 종교적 신앙, 예술적 멋, 군사적 용기로 뭉쳐진 화랑의 후예들을 현대에 육성해야 한다는 건국방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화랑외사』, 『풍류정신』과 『정치철학특강』 등을 포함한 글들은 이런 정신을 가지고 쓰여진 고뇌가 담긴 글이다.(위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김범부의 1차 자료)

그의 풍류담론은 “무속은 샤마니즘계의 신앙유속으로서 신라의 풍류도의 중심사상이 바로 이것이고, 또 풍류도의 연원인 신도설교(神道說敎)도 다름아닌 이것(=무속)이다”라고 한다.(5) 이런 그의 언설은 범부연구회 회장이었던 최재목이 “3, 4천년전 몽고계의 고대문화와 공통성을 가진 사상(동방사상)으로서의 ‘神道思想’이었던 샤마니즘=무속(→萬神=神仙)의 정신이 우리나라 신라에서 다시 융성하여 ‘나라의 샤먼’인 화랑도의 도(=花郞道)=국선의 도(국선도, 선도)=풍류도가 독창적으로 성립되었다고 본다, (중략) 화랑의 운동은 원래 신라에서 중심적이었지만, 다시 조선에 이르러 수운의 동학(→갑오동학란)으로 꽃피고, 일제 강점기의 3.1운동 의거나 당시(5, 60년대)에 이르기까지(아마도 범부는 4.19, 5.16도 상정한 것으로 보임) 그 혈맥은 의연히 약동하고 있다고 본다”고 범부의 풍류정신의 맥락을 잘 정리하고 있다.(6)

그러나 김범부는 고대 한국은 신선의 본향이라고 말하지만, 한편 선과 화랑의 어원, 풍류의 연원이 담긴 『선사』와 동학의 ‘신내림’ 등을 무속적 경향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풍류해석에 샤마니즘을 해석학적 도구로 활용함으로 풍류에 담긴 선맥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1960년에 발표한 「풍류정신과 신라정신-풍류도론서언」에서 ‘현묘’에 대한 치밀한 성찰, 유불도의 가르침을 단순히 포함(包涵)한다는 의미가 아닌 삼교의 도리를 내포함과 동시에 포월하는 창조성이라고 포함(包含)을 해석한다. 특히 풍류도의 맥락에서 꽃 핀 ‘화랑정신’은 상마이도의(相磨以道義), 상열이가락(相悅以歌樂), 유오산수(遊娛山水) 무원부지(無遠不至) 등 종교적, 예술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군사적 의미만이 강조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풍류는 굳이 표현한다면 ‘멋’이라고 하며 ‘조화’의 정신이 바탕이 된다고 규정하여 현재 학계에서 통설적으로 이해되는 풍류담론을 정초한다.

그러나 그의 풍류담론은 유동식의 풍류신학과 한·중·일의 풍류사상을 비교한 종합저서라고 할 수 있는 신은경의 『風流- 동아시아 美學의 근원』(2000년 우수학술도서)에서조차 언급이 거의 되지 않는다.

샤마니즘과 풍류도(風流道)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그의 풍류담론이 무속신앙의 맥락에서 정초시키는 것이 정당한 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풍류담론은 미래지향적인 ‘동방 르네상스’ 담론으로 형성도 되지 못한 채 단순히 전통부활론이란 지점에서 형성되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의 본의와는 상관없이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의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근 범부연구회의 해체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7)

우리의 논제에 집중하면 첫째, 고대의 샤머니즘과 선맥이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선사에 기록된 풍류의 연원과 동학의 강령체험이 무속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가? 둘째, 한국 고유의 선맥이 제도와 경전에 의거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화랑도=풍류도’ 혹은 ‘화랑정신은 화랑의 제도에 있지 않다”는 그의 상반된 듯한 견해에 대해서도  재평가해 보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동방사상연구소에서 당대 지성인을 대상인으로 한 ‘동방사상강좌’의 연속강의시리즈(특히 제12강 단학과 선도, 제13강의 정기신의 내단)는 그의 학문적 지향을 알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이다. 그의 강좌기획 의도를 고려할 때 무속적인 맥락에서 풍류담론을 해석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는 하나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8)

문화인류학자 조흥윤은 ”오늘날의 무는 퇴화된 모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 종교문화의 원형이 무교라고 말하는 학자의 견해도 조흥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즉 고대의 무교와 현대의 무교는 혼합되어 분별이 쉽지 않지만, 변찬린은 고대의 대무(大巫)와 현대의 소무(小巫)는 구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고대의 무적 현상은 “선(僊)의 대도를 깨치고 성신의 강신을 받고 신선의 비의를 깨치고 터득하는 대무의 개념”이라고 해석한다. 최근에 새롭게 발굴한 변찬린의 「무(巫)의 식성(食性)」(9)에는 이런 견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전략)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보면 이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곧 풍류(風流)라고 했다. 풍류도(風流道)는 샤마니즘처럼 유불선(儒佛仙)을 혼합(混合)한 종교가 아니라 본래부터 풍류도(風流道)는 삼교(三敎)의 진리를 그 안에 내포(內包)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샤마니즘과 풍류도(風流道)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풍류도(風流道)의 심원(深源)과 도맥(道脈)을 발굴하여 샤마니즘의 식성(食性)에 먹혀버린 유불선(儒佛仙)과 기독교를 그 본래의 모습대로 회복(回復)하여 풍류도(風流道)의 심기(心器)에 담을 줄 아는 대지(大智)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이 나라에 본래부터 있는 풍류도(風流道)의 정신이야말로 핵분열처럼 열교화(裂敎化)한 모든 고등종교를 하나로 통일(統一)하고 조화(調和)할 수 있는 신기(神器)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풍류(風流)의 정신으로서 평화(平和)의 성대(聖代)를 개명(開明)하고 자유의 신국(神國)을 열자.

특히 “풍류도는 선(僊)”이라고 단언하며, 화랑도 등은 풍류가 사라진 후 나타난 하나의 제도라고 인식하며 ‘풍류선맥론’을 제기하며 동서의 사유체계를 통합하는 해석학적 도구로 이용한다.

▲ 변찬린, 「僊(仙)攷」, 『甑山思想硏究』 5, 1978, 188.

윤이흠은 한국 고유 종교 전통을 샤마니즘과 ‘하늘신 신앙’과 ‘자기수련적 전통’이라고 하며 특히 풍류도를 ‘자기 수련적 전통’으로 이해하고 있으며,(10) 최삼룡도 신교적(神敎的) 신앙과 선교적(仙敎的) 수련이라고 하면서 선가(仙家)로서의 화랑도를 조명하고 있다.(11)

이처럼 고대의 무교와 현대의 무교는 외형상 유사한 종교현상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하지 않고 한국종교의 원형은 무교(속)라고 연구하는 경향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선맥의 풍류성과 무맥의 무교성은 다른 차원의 종교현상이다

한국 종교문화에서 선맥과 무맥은 종교적 인간의 ‘맥(脈)’에서 발흥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실재에 바탕을 두지만 신앙현상은 다르게 표현된다. 선맥에서 발현하는 풍류성은 창조적인 종교적 영성으로 이해되지만, 무맥에서 발현하는 무교성은 수동적인 종교적 영성으로 사용된다. 풍류성과 무교성은 전혀 다르게 사용하는 문화 코드이다.

그럼 선맥의 풍류성과 무맥의 무교성은 어떤 동질성과 차별성과 변별성을 가지고 있을까?(12)

첫째, 풍류성은 고대 한국의 신화와 의례에서 지고신에 대한 제천의례에 연원을 두지만, 무교성은 지고신이 아니라 다신(령)적인 신관에 의해 발현되는 종교현상이다. 윤승용은 “한민족의 근본신앙은 하늘신앙과 제천의례이고, 그것을 조형으로 하여  한민족의 종교성을 대표하는 선적신명(仙的神明)과 다른 한쪽은 북방 시베리아 전역에 걸쳐있는 종교성인 무적신명(巫的神明), (중략) 그리고 고유한 천지신명이 있다”고 구별하고 있다.(미주 13) 선맥은 하늘신앙과 선적신명에 바탕을 둔 창조적 영성이다.

선맥의 발흥인 고대 한국인의 신화와 제천의례에서 집단전승된 지고신과 선맥의례는 최치원에 의해 삼교를 포월하는 종교적 영성으로 규정되며, 토착화된 근대의 종교경험이 최제우의 종교체험에서 나타난 동학은 ‘다시 개벽’과 지상선경이라는 개벽세계의 이상향을 말한다. 이는 무속적 세계관이 아닌 풍류적 세계관에서 전개되는 종교사상이다. 반면에 무교성은 무당이라는 의례전문가에 의해 신도의 종교적 요구에 부응하여 다양한 신령의 기능신(Function God)을 불러 청신(請神), 오신(娛神), 송신(送神)의 과정을 통해 개인차원의 길흉화복을 조정하며 조화로운 세상을 지향한다.

일부 토착화 신학자는 한국의 ‘하나(느)님’과 최제우의 신체험을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범재신론이라고 주장하며 그리스도교의 유일신관과 유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개벽’ 후 선화적 인간이 사는 지상선경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국 종교문화에서 나타나는 ‘하늘님’이 범재신론이라는 것은 선교신학자의 입장에서 토착화를 위한 호교론적 신론이며, 한국의 신관을 왜곡하는 오류이다. 윤이흠은 “한국인의 지고신 관념에서 재래의 하느님 관념은 중국적 관념과는 동질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혼용하고 있으나, 기독교의 유일신 관념과는 아직 타협점을 찾지 못한 단계이다”(미주 14)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 종교역사에서 그리스도교식의 신관이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은 것은 다양한 신명이 존재해 왔으며, 선맥사상이 종교적 기저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종교 전통이 현대에도 살아있는 종교현상이라는 점이다.

둘째, 풍류성과 무교성은 종교조직으로 제도화되지 않는다. 종교학적 측면에서 풍류성은 아직까지 제도종교로서 조명된 적이 없다. 풍류성은 문자그대로 ‘바람의 흐름’이기에 특정한 조직에 창조적 영성을 불어넣을 수는 있지만 그 실체가 조직화된 적은 없다. 무교도 종교학에서는 하나의 종교현상이라고 한다. 무이즘, 무교, 무속, 무 등으로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워지고 있지만, 개념 설정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실체적인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종교성은 ‘현장성’이 강조되어 참여자에게만 구전과 비전으로 전승되는 특성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두 종교성은 현세지향적이라는 공통성을 가진다. 그러나 풍류성은 “홍익(弘益)하는 인간” 혹은 ‘홍익할 수 있는 인간’이 온 우주를 재세이화하여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든다는 개혁적인 지향적을 가지며, 개인차원에서도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수행적인 종교적 수련의례로 의식의 고양 등 인간자체의 변화를 시도한다. 반면에 무교성은 현세 기복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타율적이고 기복적인 신앙현상으로 현실타협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종교의 역사에서 풍류성이 강조될 때는 원효의 통불교운동,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 등과 같이 주체적이며 창발적인 종교의 사회화 운동으로 공동체의 분위기를 개혁하는 경향이 있지만, 무교성이 강조될 때는 종교 사대주의와 교파(학) 식민주의가 주를 이루어 기복적이고 현실에 안주의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에 그리스도교 전래 이래 서구신학에 바탕을 두고 서구신학의 대리전 양상을 띠는 한국 그리스도교의 모습은 풍류성이 발휘되지 않고 무교성이 작동된다고 평가하면 과언일까? 특히, 교회매매와 교회세습,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사회적 공감을 못얻는 일부 교회와 목회자의 종교행위, 기복신앙과 자본신앙에 매몰된 교회현상은 한국인의 풍류적 심성에 안착하지 못한 수입종교의 한계를 드러내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무엇보다 큰 차별성은 풍류성은 선맥과 연계되어 선화적 인간, 영성(靈聖)생활인이라는 존재론적 비약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반면 무교성은 존재론적인 인격변화 혹은 존재탈바꿈에 대한 특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점이 두 종교성을 구별하는 가장 큰 변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풍류성은 엘리트 종교의 경향을 가지며, 무교성은 민중종교의 성향을 가지며 한국 종교사에서 인체 DNA의 이중나선구조와 같이 공존하고 있다. 풍류성이 강화되면 무교성은 약하게 되고, 무교성이 성행하면 풍류성의 창조성이 쇠퇴하는 반비례 종교현상으로 나타난다. 두 종교성은 ‘하나의 바람’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형성하는 모든 분야에 역동적인 종교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광활한 요동반도를 무대에서 전개된 고대의 신화와 제천의례의 선맥은 경주에 뿌리를 두며 동인의식을 가진 고운 최치원, 다시 개벽을 통해 동학을 개창한 수운 최제우, 그리고 풍류도를 재발견하며 동방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범부 김기봉으로 계승된 풍류담론은 한밝 변찬린에 의해 역사시대와 영성시대의 가교담론인 선맥의 풍류담론으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풍류선맥(僊/仙脈)정통론은 간텍스트적 해석과 다학제적 방법을 이용하여 유교와 불교와 도교와 기독교뿐만 아니라 현대학문을 이해지평에서 해후시켜 초과학적 영성시대의 보편담론으로 제안되고 있다.

미주

(미주 1) 최삼룡, 『한국문학과 도교사상』, 새문사, 1990, 73-74, 281-298; 특히 최치원과 가야보인법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안동준, 「최치원의 가야보인법과 현묘지도」, 『도교문화연구』(37), 2012, 47-73를 참고할 것.
(미주 2) 2013년 5월 24일 다솔사 차축제 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한 학술회의 때 발표한 안동준의  「김동리 문학과 다솔사」는 기존의 연구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김범부의 일본 유학기간, 다솔사 칩거 기간 등 ‘모호한 행적’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김광식,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역사의 단면 -」, 『佛敎硏究』 第48輯 , 2018, 135~168과 이 논문에 대한 안동준의 논평을 참고할 것.
(미주 3) 김지하,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1999), 20; 김용구,「범부 김정설과 동방 르네상스」, 『한국사상과 시사』 (불교춘추사, 2002), 260-290.
(미주 4) 문헌 등의 문증(文證), 유물등의 물증(物證), 구비전설 등의 구증(口證), 민속 및 풍속 등의 사증(事證), 심정과 혈맥을 통해 체험되는 ‘혈증’을 말한다.
(미주 5) 김범부, 「최제우론」 제 2장, “수운의 득도”, 『풍류정신』, 정음사, 1986, 89.
(미주 6) 최재목, 『범부 김정설의 풍류·동학 그리고 동방학』 (지식과교양, 2018), 98-99.
(미주 7) 최재목, 앞의 책, 5.
(미주 8) 김범부·이종익 편, 「동방사상강좌」, 『이종익 박사학위논문총서(동방사상논총)』, 보련각, 1976, 11-74.
(미주 9) 제자의 유품에서 최근에 발굴하였다. 玄黎民(변찬린의 필명 가운데 하나), 「무(巫)의 식성(食性)」, 발표매체 미상, 1982. 4. 14.
(미주 10) 윤이흠, 『한국의 종교와 종교사』 (박문사, 2016), 135-138.
(미주 11) 최삼룡, 앞의 책, 56-78.
(미주 12) 자세한 사항은 이호재, 「한국 재래종교(在來宗敎)의 ‘구원’관」 , 『신학과교회』10, 2018, 109-145.
(미주 13) 윤승용, 「민족종교의 기본사상」, 『한국 민족종교의 기본사상- 단군, 개벽, 신명』, 한국민족종교협의회, 2019, 23-31; 류병덕, 「한국종교맥락에서 본 원불교 사상」, 『문산 김삼룡 박사 회갑기념논문집』 (원광대학출판부, 1985), 41. (이문출판사, 1981), 232-233.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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