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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과 파멸 속에서 야훼의 평화를 보았던 사람

기사승인 2020.09.15  17: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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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24

< 1 >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가 죽던 해, 곧 기원전 742년에 예언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예언활동은 요담 왕(기원전 750-735년)과 아하스 왕(기원전 735-715년)의 통치기간을 거쳐, 히스기야 왕(기원전 715-686년) 시대인 기원전 701년,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기원전 735년에 시작된 앗시리아의 위협 때문이었습니다. 앗시리아는 세력을 키우고 제국의 판도를 서쪽 지중해 항구도시들로 확장하려고 했는데, 특히 시리아 팔레스티나 회랑 지대를 통과하는, 교역로를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긴장한 이 지역의 군소 도시국가들은 페카(기원전 737-732년)가 집권하고 있던 북 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인 르친이 왕으로 있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에 대항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형제 국가였던 남 왕국 유다에 동맹에 가담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기원전 732-715년)는 동맹을 거부합니다. 아하스는 유다가 지리적으로 앗시리아와 멀리 떨어져 있고, 앗시리아가 탐내는 항구도시나 교역로들과도 무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앗시리아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르친과 다마스쿠스의 왕 페카는 아하스를 압박해서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그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동맹에 보다 우호적인 인물을 새로운 통치자로 앉힐 생각을 하고 유다 침공을 계획합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유다 왕 아하스를 만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였습니다. 아하스가 북 이스라엘과 다마스쿠스의 예루살렘 공격 위협에 맞서 수비를 서두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그 어느 외국과도 제휴하지 말고, 중립노선을 견지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사야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앗시리아에 원조를 청했고, 그 과정에서 유다는 결국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앗시리아의 속국이 된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앗시리아의 우상 숭배가 거행되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예속은 물론, 종교적으로도 앗시리아에 종속된 것이지요.

유다 왕 아하스와 집권층에 실망한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을 기록하고 봉인하여 훗날, 유다의 미래 세대들이 읽고 깨닫게 하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하고, 공적 활동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아하스 왕의 사후, 그의 아들 히스기야(기원전 715-686년)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다시 등장합니다.

히스기야는 부친 아하스의 친 앗시리아 정책을 점점 파기합니다. 그는 제의개혁을 추진하면서, 야훼를 중심축으로 삼는 야훼 신앙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때 마침, 앗시리아 왕 사르곤 2세(기원전 721-705)가 죽으면서 권력공백기에 일시적인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히스기야 왕은 시리아-팔레스티나 국가들을 부추겨 앗시리아의 종주권에 대항하는 반란 지도자로 나섭니다. 더욱이 앗시리아를 언제나 위협적으로 보고 있던 바빌론과 이집트는 유다를 부추기면서 반란을 선동했고, 군사적으로도 유다를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것을 음모라고 비난하면서, 유다 왕 히스기야가 이집트와 맺은 동맹을 ‘죽음과의 계약’이라고 부릅니다(이 28,15). 이사야의 상황판단은 옳았습니다. 이집트와 바빌론이 약속한 지원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반란은 앗시리아의 새로운 왕 산헤립의 손에 의해 분쇄되었고, 기원전 701년 유다도 앗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됩니다.

이사야는 유다의 이런 선택을 결국 힘의 정치를 지향하는 무익하고 오만에 찬 행동으로 비판합니다. 이사야의 일관된 입장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는 외국과의 동맹이나 정치적 음모에 의존하지 말고 조용히 그리고 굳건히 야훼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직 주님과의 계약에 한결같이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2 >

우리는 여기서 잠시 이사야의 인간적 면모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사야는 웃시야의 사촌이었거나, 아마샤 왕의 조카였다고 합니다. 역대지하(26장 22절과 32장 32절) 기자가 이사야를 웃시야 왕과 히스기야 왕의 ‘서기관’이었다고 기록한 것도 신빙성 있는 역사적 증언입니다. 유다 왕실과 고위층의 생활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이나, 주변 강대국들의 변화와 외교정책에 대한 분석능력으로 봐서도 이사야는 뛰어난 정치적, 전략적 안목도 갖춘 왕실 서기관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을 부정한 백성과 분리시켜 보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는 처음부터 보통사람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예언자도 자신이 속한 세상의 부정한 언어와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이사야는 부르짖습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이스라엘의 신앙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언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자기 나라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조국에 대한 심판과 파멸을 예언해야 하는 예언자로서의 삶의 마지막이 어떨 것인지를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사야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성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위경인 ‘이사야의 승천’에 의하면 므낫세 치세동안(696-642 BC) 통나무 안에서 톱으로 몸이 절단되는 참사를 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히 11,37).

그런데 스랍(뱀 혹은 코브라를 의미하는데, 후대의 예언자들의 전승에서는 천사로 해석되었다)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날아와서 그것을 이사야의 입에 대며 말합니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사 6,5-8).

▲ Marc Chagall, 「이사야 예언자」 ⓒWikiArt

이사야는 용감한 예언자였습니다. 아니 주님의 은혜로 악이 사라지고, 죄가 사해진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인간적 결함과 허물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민족에 대한 심판과 파멸을 예언해야 하는 예언자의 운명은 슬픈 운명입니다. 이사야는 외세, 앗시리아의 침략이나 유다 군사력의 부족이나 동맹의 약화에서 유다 민족 파멸의 원인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린데 파멸의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님을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사 1,3-4).

웃시야 왕 재임 시, 유다는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기였습니다. 본래 유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의해 유지되던 농경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수출농업을 꿈꾸는 거대한 지주형 조방농업경영제(Latifundium)의 출현은 국부를 증가시켰습니다. 그러나 부재지주들이 가져온 번영과 부는 양극화를 조장했고, 사회경제적인 약자에 대한 계약 공동체적 우애를 파괴했습니다. 결과는 권력층의 부정부패, 부유층의 사치, 사회적 약자들의 궁핍이었습니다:

“백성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것들은 눈이 멀어서 살피지도 못한다. 지도자가 되어 망을 보라고 하였더니, 벙어리 개가 되어서 야수가 와도 짖지도 못한다. 기껏 한다는 것이 꿈이나 꾸고, 늘어지게 누워서 잠자기나 좋아한다. 지도자라는 것들은 굶주린 개처럼 그렇게 먹고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백성을 지키는 지도자가 되어서도 분별력이 없다. 모두들 저 좋을 대로만 하고 저마다 제 배만 채운다”(사 56,10-11).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은 권력과 부에 대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탐욕으로 유다 공동체 생활의 기틀은 허물어졌고, 백성은 수탈당하고 고통을 받았습니다. 상부상조와 정의를 강화하는 제도를 바탕으로 평등사회를 건설하는 일은 갈수록 요원했고 민족 전체의 재난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지도층 인사들이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메시지는 눈앞에 닥쳐온 심판과 파멸을 예언합니다:

“만군의 주님의 진노로 땅이 바싹 타버리니, 그 백성이 마치 불을 때는 땔감같이 되며, 아무도 서로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오른 쪽에서 뜯어먹어도 배가 고프고, 왼쪽에서 삼켜도 배부르지 않아, 각각 제 팔뚝(혹은 제 자식)의 살점을 뜯어먹을 것이다”(사 9,19-20).

“그러므로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질병을 보내어 살진 자들을 파리하게 하실 것이다. 생사람의 가슴에 불을 질러 홧병에 걸려 죽게 하실 것이다. 그의 재물은 화염 속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 그 울창한 숲과 기름진 옥토를 모조리 태워, 폐허로 만드실 것이다”(이 10,16-18).

이사야는 그러나 심판과 파멸만 예언한 것이 아닙니다. 심판과 파멸의 한 가운데서도 이사야는 그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의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 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사 32,15-18).

그러나 이런 이상향에 대한 꿈은 유다 민족에 국한하지 않고 온 세계의 미래를 지향합니다(이 11,6-9). 유다 민족의 회복과 영광이 아니라, 유다 민족의 역사 안에서 인류 전체의 미래, 아니 우주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데 이사야서의 놀라움이 있습니다.

< 3 >

그리스도인에게도 국적과 국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위는 그것이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복속되는지, 아니면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으로 실현되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국적이 있고, 나라가 있고, 인종적 특징과 고유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정치가들은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경제인들은 경제적 시각에서 판단하고, 외교관들은 고도의 외교술로, 군인은 전략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런 모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판단, 그 위에 하나님의 뜻을 더 높이 두는 사람입니다.

오래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어려워졌는데,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이른바 무역전쟁으로 그 중간에 끼어있는 우리나라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와 미국과의 동맹관계 사이에서 복잡한 국면에 직면하게 된 것이지요. 북미회담이 구체적인 결실을 거두지 못하자, 남북관계도 경색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군사적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면 될수록, 미국의 군수산업은 언제나 이익을 얻고, 군사적 대결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민족 자신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우리는 국익과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일까요?

긴장이 고조되면 언제나 등장하는 것이 군비확장 논리입니다. 그러나 끝없는 군비확장과 무기수입이 안보를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와 외교를 통해 긴장을 해소하고, 남북교류를 더 활성화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적극적인 평화정착으로 군비를 축소하는 것이 진정한 안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주변 강대국들의 우상을 섬기고, 그들에게 군사적으로 의존적인 외교정책을 하면서 백성을 억압했던 지도자들 때문에, 그리고 지도층의 부정부패 때문에 파멸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밖으로부터 위협받는 평화는 오히려 국민을 단결시키지만, 안에서부터 위협받는 평화는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안에서부터 평화가 위협받는 때는 국민이 더 이상 지도층을 신뢰하지 않을 때입니다. 참된 평화는 무기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백성,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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