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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창 1:26-31; 요일 3:1-10 눅 12:4-7)

기사승인 2020.09.11  17: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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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절 둘째 주일(9월13일) 교회연합주일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살펴본 것이죠? 그러나 여섯째 날의 경우, 하나님께서 땅의 생물, 곧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까지 종류대로 내신 것만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이후에 인간을 창조하시는 말씀이죠? 바로 구약 창세기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 미켈란젤로 <천지창조>와 <아담의 창조>(1508-1512)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곧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곧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누구나 인종과 계급, 성별과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존엄하고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권능을 허락하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엄청난 권세입니다. 또한 이들 인간에게 하나님은 먹을 것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29-30)

여기에 인간의 먹을거리에 관한 말씀이 나오죠? 29절에 보면,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가 인간의 먹을거리입니다. 그리고 30절에 의하면,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셨습니다. 창조 때는 인간과 짐승 모두 ‘채식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9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노아의 언약을 보면, ‘육식생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찾아볼까요?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창 9:3-4).” 왜냐하면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래는 채식이었으나, 노아 홍수 이후 육식이 허락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인간 창조가 끝나고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창 1:31)”이 됩니다. 정말 인간 중심적이죠? 지난주 말씀드렸던 축자영감설로 읽으면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정말 대단한 권세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복음서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사람을 뜻합니다)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6-7)

앗사리온은 로마의 청동동전으로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6분의 1입니다. 우리 돈으로는 5-7천원 정도 됩니다. 이러한 값어치의 참새도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데, 우리 인간은 얼마나 더 소중하게 여기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서신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 우리 인간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 죄는 불법이라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죄를 짓죠?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곧 선악과 사건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여기서 죄는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오늘 세 본문 말씀의 맥락에서는 ‘우리의 몸을 죽이는 자(눅 12:4)’와 ‘마귀에게 속한 자(요일 3:8)’로서 ‘마귀의 자녀(요일 3:10)’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몸을 죽이는 자’인 ‘마귀에게 속한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권세 있는 자’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또한 요한 사도도 이렇게 말하고 있죠?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요일 3:7-9)

그렇다면 우리의 몸을 죽이는 마귀의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파괴하고, 그 결과 이 세상에 거주하는 우리 인간의 몸이 고통 받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로움과 반대되는 일입니다. 불의죠? 이렇게 불의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또 태풍 마이삭과 하이눈을 통해 엄청난 재앙이 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마귀의 일은 그 어떤 사탄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오만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오늘 창세기 말씀을 잘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창세기가 쓰여진 당시의 자연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는 우리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죠? 따라서 자연을 정복해서(아마도 ‘이해’라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만) 우리 인간에게 주는 피해와 재해를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지성과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어느 정도 정복한 상황에서, 인간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자연재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파괴하고 그 결과 우리 인간의 몸을 해치는 재앙은 자연재앙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만든 인간에 의한 재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3. 총에 맞아 죽어가는 늑대의 눈

 『모래 군의 열두 달』 (따님, 2000)이라는 책을 쓴 심층 생태주의자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 1887~1948)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레오폴드는 인간을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 즉 대지 공동체의 정복자로 보았던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입장을 취합니다. 또한 윤리의 대상을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공동체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레오폴드는 ‘대지윤리’(land ethics)라고 부릅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윤리의 대상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며 점점 확장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인격체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과 어린이, 노인 모두 보호하고 존중해야 하는 도덕적 대상입니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시대에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입니다. 호메로스의 시대와 비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윤리적 대상이 점점 확대되어 온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윤리학이 진화하는 방향입니다. 이 방향에 따르면 모든 동식물과 토지까지(자연 전체) 윤리의 대상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레오폴드의 이러한 윤리적 입장은 그가 경험한 사냥의 경험 때문입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 환경윤리의 아버지 알도 레오폴드와 그의 책 『모래군의 열두 달』

“우리는 즉각 늑대 무리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사격이 끝났을 때, 늙은 늑대는 쓰러졌고, 새끼 한 마리는 빠져나갈 수 없는 돌무더기를 향해 필사적으로 다리를 끌고 있었다. 늙은 늑대에게 다가간 우리는 때마침 그의 눈에서 꺼져가는 맹렬한 초록빛 불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때 그 눈 속에서, 아직까지 내가 모르는 오직 늑대와 산(山)만이 알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근대 ‘환경윤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도 레오폴드는 젊은 날 총에 맞고 죽어가는 늑대의 눈을 보았던 기억을 평생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는 늑대의 눈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가진 의미와 인간이 생명공동체에 가하는 폭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레오폴드가 살았던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는 자연의 정복과 착취를 통한 발전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습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시민들이 휴가여행을 즐기기 위해 경치 좋은 휴양지로 가기 위한 자동차 도로개선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레오폴드는 “휴양지 개발은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 마음에 감수성을 심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해 개발 반대론자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토지에 관한 레오폴드의 통찰은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해답을 알려줍니다. 레오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토지를 우리가 소유한 상품으로 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용하고 있다. 토지를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토지를 사랑과 존중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천지 만물의 창조 맥락에서 봤을 때, 자연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자연과 다른 생명체의 삶을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4. 원숭이에게 미사일 쏘기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베스킨라빈스의 상속자였으나, 그것을 포기하고 환경운동가로 활동 중인 존 로빈슨의 『음식혁명』 (시공사, 2011)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로빈슨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존 로빈슨과 『음식혁명』 책 표지

“농경지 2.5에이커에서 양배추를 생산하면 23명의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 감자를 생산하면 22명, 쌀을 생산하면 19명, 옥수수를 생산하면 17명, 밀을 생산하면 15명, 닭고기를 생산하면 2명, 쇠고기를 생산하면 1명의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육식을 끊는 행위를 통해 모든 대륙의 자연을 대대적으로 회복시키는 ‘생태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고 휴양지로 편히 가기 위해 도로를 건설하는 우리나라 국민 의식 수준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사람들은 건물이나 예술작품과 같은 인간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야만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신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진보’라고 치부하는가?”

그렇습니다. 신의 창조물을 파괴하는 것이, 창세기 말씀에 나오는 ‘땅을 정복하고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청지기로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것입니다. 잘 관리하고 보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탐욕과 자만으로 정복하라는 말씀을 파괴로, 다스리라는 말씀은 짓밟는 것으로 이해하여 오늘 기후 위기와 대자연의 파괴, 동물들의 절규를 가져 온 것입니다.

해마다 500억 마리의 동물이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물고기를 빼면 매년 250억 마리의 동물이 인간의 음식이 되기 위해 죽고, 매년 4천 만 마리의 동물이 모피가 되기 위해 죽어갑니다. 간디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도망가고, OECD 국가 중 유기견 수출 1위(고아 수출 1위일 뿐만 아니라!)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동물들이 살기에 우리나라는 그리 좋은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동물은 법적으로 철저히 ‘물건’입니다. 물건은 ‘인권’이 아니라, 사람의 ‘물권’의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동물은 소유와 점유의 객체가 되고, 그 권리자인 인간에게 처분권이 있습니다. 동물은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사용되고 처분되고 심지어는 필요가 없으면 폐기됩니다.

2010년 11월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뒤, 매몰 살 처분된 가축 수가 무려 350여만 마리에 달했습니다(부산 시민 인구가 이 정도도 됩니다). 그뿐인가요? 살충제, 부동액, 브레이크액, 표백제, 탈모제, 눈 메이크업, 잉크, 선탠오일, 손톱 광택제, 마스카라, 헤어스프레이, 페인트, 윤활유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 많은 상품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모두 동물을 이용한 독성 실험을 거친 것들입니다. 동물은 인간의 윤택한 삶을 위하여 실험실에서도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밖으로 눈을 돌려볼까요? 시카고 대학의 ‘쥐를 33일간 잠재우지 않는 실험’, 오레곤 대학의 ‘갓 태어난 생쥐의 앞다리를 잘라, 그럼에도 자기 몸을 단장하는지 관찰하기’, 하버드 대학의 ‘사냥개에 플루토늄 주사하기’, 옥스퍼드 대학의 ‘10일 된 새끼 고양이 양 눈을 꿰매 시력 상실의 영향에 대해 관찰하기’,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쥐의 두뇌에 헤르페스 바이러스 주사하기’, 미 국방부의 ‘원숭이에게 신경가스, 청산가리, 방사능, 총알 혹은 미사일 쏘기’, 미 농무부의 ‘어미 뱃속에 있는 새끼 돼지 태아의 목을 자르고 그것이 임신한 암퇘지의 인체 화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기’, GM의 ‘자동차 충동실험에 돼지나 원숭이 이용하기’ 등은 분명 ‘인류 문명의 진보’와 ‘동물의 고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곧, 인류의 진보는 동물 학대와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 청래당의 동물실험 반대 포스터

이것이 지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이 벌이는 짓입니다. 물론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도 이렇게 하죠? 지구상에 전쟁과 폭력이 끊임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앞서 소개해드린 레오폴드의 생태중심주의가 필요합니다. ‘탈인간중심주의’, ‘도덕 확대주의’, ‘대지 윤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우리 인간은 그저 평범한 한 구성원에 불과합니다. 레오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류는 동료 구성원들과 전체 공동체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대지윤리는 공동체의 범위를 넓혀 동식물뿐만 아니라 대지를 포함한다.”

지금 동료 구성원들의 건강은 물론, 전체 공동체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떠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의미를 지금 이 땅에서 레오폴드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과 존중’입니다. 땅과 생물을 사랑과 존중으로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피조 세계를 우리 인간들이 사랑과 존중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 세대는 아니더라도, 다음 우리 후손들에게는 그러한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5.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바로 요한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고귀하게 창조되었지만, 사랑과 존중이 아니라, 파괴와 고통만 일삼은 인간들, 곧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예수께서 나타나시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다시 만드실 것입니다. 지금 경전인 마태복음에 나오지는 않지만, ‘유사 마태복음’에는 이러한 세상에 관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이 사막으로 들어갈 때, 사자들과 흑표범들과 다른 동물들이 나타나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구절입니다. 유사 마태복음의 내용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처음에 마리아가 그들을 둘러싸는 사자들과 흑표범들과 여러 야생 짐승들을 보았을 때, 그녀는 큰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그녀의 얼굴을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어머니. 저들은 어머니를 해치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저를 서둘러 섬기려고 오는 겁니다.’ 이 말과 함께 예수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냈다. 사자들은 그들과 함께 계속 걸었고, 그들의 짐을 옮기는 짐승들과 황소들, 당나귀들과도 함께 걸었다. 이들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들은 이 중 단 하나도 해치지 않았다. 사자들은 그들이 유대로부터 함께 있다가 데려온 양들 사이에서 온순했다. 양들은 늑대들 사이를 걸었으며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어느 하나도 다른 동물에 의해 다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라는 예언자의 말이 성취되었다.”

▲ <목동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아기 예수님> (1650-1655), 발토로메오 에스테반 뮤릴로 작품

이러한 세상을 위해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는 우리의 욕망과 탐욕, 곧 죄를 없애줄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죄 없으신 예수께서, 당신 안에 거하는 그 누구라도 범죄 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교회연합주일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먼저 창조질서를 보전해야 합니다. 불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는 마귀의 자녀를 대적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의를 행하며 서로 사랑하며 연합해야 합니다. 따라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사랑이 이깁니다.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사랑해서 정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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