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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심성의 살림살이 이성

기사승인 2020.07.26  15: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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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신 할매 신화에서 읽어내는 한국인의 살림살이 이성 (5)

▲ 인자한 할머니상의 나한 ⓒGetty Image

끝으로 살림살이 이성의 독특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서양의 이성개념과 대비시켜 그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서양의 분석적 이성

서양의 이성이 인식론적 이성이라고 한다면, 살림살이 이성은 성명론(性命論)적, 다시 말해 생명학적 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1) 인간의 주관적인 사유, 인식, 판단, 행위가 강조되는 이성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령을 자기의 바탈에서 알아보고 거기에 따라 살아가는 생명(生命) 또는 성명(性命)의 이성이다. 인식론적 이성의 가장 큰 특징이 매개적(medial)이라면, 생명학적 이성의 그것은 몸으로 겪어서 앎[살앎]이라 할 수 있다. 인식이 그 본을 ‘[알아]보기’에서 취한다면 살앎은 그 본을 ‘[알아]듣기’에서 취한다.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 또는 사태를 개념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인식이라는 것이 사물[사태]을 잘 관찰하여 그에 맞갖은 방식으로 머리 속에서 표상하여 개념으로 잡아서 그 개념을 갖고 사물[사태]의 본질에 맞는 판단을 내려 그에 따라 올바르게 행위하는 것이다. 이렇듯 봄[보기]을 모델로 삼은 인식론적 이성은 인식주체와 인식객체, 인간과 사물, 사유와 대상,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도식 속에서 펼쳐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성적인 사고에서는 사물의 근거 또는 원리[원칙]를 찾거나 사태의 원인을 찾는 방식으로 최종근거나 제일원인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논리가 전개돼나간다. 그 방법은 주로 분석을 통한 종합이다. 세부적인 요소들로 분해하여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원자]를 찾아서 그것을 갖고 전체의 그림을 종합적으로 그려내는 환원론적 방법을 주로 쓴다. 그 밑바탕에는 인과론적 시각이 깔려 있다. 모든 것은 어떤 원인에 의해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시각 말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사태에는 그것을 지금의 그것이 되게끔 한 근거와 원인이 있다. 이성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러한 근거와 원인의 바탕 위에서 일어나고 생긴 사물과 사태를 제대로 알아보는 일이다. 이성적인 판단이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사실에 입각한 판단이다.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서양의 이성이 인식의 차원에서는 근거와 원인을 찾고, 행위의 차원에서는 이유를 찾는 원인규명과 정당화에 치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삶,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 자체

성명론(性命論) 또는 생명학(生命學)의 살앎에서 중요한 것은 인식이 아니다. 말이나 개념의 차원이 아니다. 여기서는 삶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목숨을 유지하며 살아 있다는 사실,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게 살면서 나라는 생명체를 비롯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존재의 뜻 또는 삶의 의미를 알아들어 그것에 따라 살아야 한다.

하늘로부터 ‘살라는 명령[생명(生命)]’을 부여받은 생명체는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생명[존재]의 연을 맺고 있다. 어떤 것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생명[존재]의 그물망 속에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천상세계, 지상세계, 지하세계의 존재들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물 또는 생명체의 이치나 본성을 깨쳐서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사물들은 서로의 사이가 관계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인연으로 얽혀있다.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아서는 사물이나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잡아낼 수 없다. 생명학적 이성은 애초부터 어떤 것을 잡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 그 깊숙한 본성의 소리를 들으며 하늘 아래 다른 것들과 서로 얽혀 있는 인연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나와 그것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는 관계의 그물을 알아듣고 그 통합적인 관계 속에서 내가 전체에 어울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한다.

생명학적 이성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하늘로부터 ‘살라는 명령’을 부여받았음에 주목한다. 한국의 민중들은 힘이 없고 빽[뒷배경]이 없으면서도 ‘살라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약자로서 살아남아 살아가는 생존의 지혜를 터득해야 했다. 그것이 곧 생명학적 이성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배운 첫 번째 원칙은, 지배는 결코 생명의 원리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공생과 상생의 시각에서만 생명에 합당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공생과 상생의 원칙 속에서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을 우리는 ‘살림살이’라고 부른다.(2) 한(恨)많은 고생살이를 어떻게 살림살이로 바꾸었는가를 살펴보면서 살림살이 이성의 몇 가지 특징을 끄집어낼 수 있다.

살림살이 이성은 약자, 피지배자로서 살아가며 살아남는 삶의 방식을 생활화하고 있는 삶의 지혜이다. 거기에는 약자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담겨 있다. 이들의 앎은 모든 것을 몸으로 겪어내고 치러내는 알음[살앎]이며, 앓음으로서의 알음알이를 통해 배운 몸에 새겨진 앎이다. 살아남기 위한, 삶과 뗄 수 없는 삶[생명]을 위한 앎[삶앎]이다. 삶 자체를 정당화 또는 합리화시키기 위한 앎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의 세계에 조화롭게 자신을 맞추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울리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한(恨)많은 고생살이를 살림살이로 전환시킨 할매의 삶앎이 곧 살림살이 이성이다. 한국의 민중들은 한을 삭이고 풀며 살아서 종국에는 인정이 많은 착한 민족,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되었다는 종족발생적 삶의 역사가 한국인 개인의 심리구조에 각인되어 있어서 한국인은 지금도 [개체발생적으로] 한을 삭이고 풀어가는 정 많은 사람을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꼽는다. 몸으로 부딪치며 겪는 어려운 생존여건을 몸살이의 차원에서 치러나가면서 한국인은 맘살이의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공생과 상생의 살림살이를 영위해나간다.

한이 유발되는 상황은 나의 책임이나 관할영역을 벗어난 나와는 무관한 운명적인 삶의 상황이다. 이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팔자가 좋다는 양반계층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점지하여 출생시키는 것은 삼신 할매의 소관이니 말이다. 내가 원한과 분노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나의 마음과 나의 바깥 세상에 살이 끼여서, 부정이 타서, 조화가 깨져서 그런 것이다. 나는 한을 삭이고 풀어서, 깨진 조화를 다시 되살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내가 행한 행위나 마음가짐 때문에 이런 상태가 오게 되었음을 시인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변 사물들에게, 신령스런 존재들에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서 그 살을 제거하고 부정을 씻어 조화를 되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모르고 해를 끼친 그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위해 빌고 또 빌어야 한다. 다른 사람, 주변 자연, 사물, 신령스런 존재들, 잡귀들, 병귀신들 등에게 무언가 책잡힐 것을 하여서 그 해코지가 지금의 나에게 닥치고 있는 것이니 그것들에게 나의 잘못을 시인하고 잘못을 용서해줄 것을 빌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나의 삶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희생을 다른 것들에게 요구하고, 가능하면 어떤 형태로든 내가 끼친 해는 되돌려놓아야 한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립과 갈등, 투쟁과 정복을 피하고 조화와 화해의 원칙에 입각해서 서로를 위하고 아껴야 한다. 가장 약한 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그들과 어울려서 ‘살라는 하늘의 명’을 수행할 때 이 세상은 더 이상 고생살이가 아닌 살림살이가 될 것이다.

생명을 점지하여 살을 주고 뼈를 주고 숨[혼]을 주어 생명체로 태어나서 자라서 살다가 명을 다하여 죽는, 이 모든 생사의 권한은 인간의 손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삼신 할매의 소관사항이다. 삼신 할매는 천상세계, 지상세계, 지하세계를 아울러 생명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지고신인 옥황상제이다. 이 생명의 질서가 어지러워져 무언가 부조화가 생기면 이 부조화가 인간들에게 환난과 고통을 가져다준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체가 생명의 조화를 깨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살라는 명령을 받은 생명체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체를 죽여야 하는 살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생명의 질서 안에서 볼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인연으로 맺어져 있기에 이러한 먹이사슬은 그 어울림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기적이며 자신의 욕망을 무한히 키우는 인간이 등장하면서 이 우주생명의 조화가 깨지기 시작한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과 환난은 결국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이러한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만들어낸 부조화가 서서히 누적된 결과이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나는 나의 부모와 친척, 그 부모와 친척, 또 그 부모와 친척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생명들에게, 자연사물들에게 끼친 해와 고통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한에 대해 나 자신 어느 정도 잘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와 나의 부모와 친척 등등이 알게 모르게,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살이 끼고 탈이 나고 고통이 생겨났으니 그 한의 원인을 내 주변에서부터 찾아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을 풀어나가는 한풀이 방법은 한을 피하지 않고 그 한을 맞이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여 모두가 복을 나눠 갖는 화해와 조화의 방식이다. 나를 비롯한 인간의 잘못임을 시인하고 인간들 서로서로가 서로서로에게 용서를 빌고 산과 강, 들과 바다 등 자연에 있는 신령한 존재들에게 용서를 비는 뜻에서 그들을 위한 굿을 벌여 깨진 조화를 다시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땅의 민중들은 이렇게 굿을 통해 자신의 삶에 신성성과 제의성과 놀이성이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살림살이의 이성을 터득했다.

지금 지구촌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성은 강하고 능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우승열패의 생존경쟁적 이성이 아니다. 잘나고 똑똑한 자들이 못난이들을 설득하고 포섭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을 자기 식으로 대중적[보편적]으로 주도해나가는 목적합리적 합리성이나 의사소통적 이성도 아니다. 힘없고 빽 없어서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한(恨)을 품고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약한 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삶을 보는 그런 이성이며 합리성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려 서로 살고-살리는 그런 공생과 상생의 이성이다. 그 실마리를 우리는 삼신 할매의 살림살이 이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주

(미주 1) ‘생명(生命)’이라는 말은 원래 ‘성명(性命)’이라는 말과 통하여 쓰였다고 한다. 참조 이기상, <생명. 그 의미의 갈래와 얼개>, 『우리말 철학사전 2. 생명·상징·예술』, 지식산업사, 2002, 117.
(미주 2) ‘살이’는 정상의 본격적인 삶이 아닌 삶을 지칭하는 말이다. 삶의 ‘본 곳’에서 벗어나고 빗겨난 삶을 이른다. 남을 부리고 억압하며 사람을 도구화하고 강요하는 삶에는 으레 ‘00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를테면 시집살이, 머슴살이, 처가살이, 귀양살이, 감옥살이, 곁방살이, 문간살이, 고용살이, 식모살이, 드난살이, 움막살이, 초가살이, 타향살이 등이 다 그러하다. 이들 모든 살이는 배제되고 소외된 삶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이며 강요된 고생살이를 모두가 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살림살이’로 만들고 있는 이성에 주목해야 한다. 임재해, 『한국민속과 전통의 세계』, 382; 김열규, 『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 가지』, 250.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철학과)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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