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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실패한 정치의 징후들

기사승인 2020.07.20  18: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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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생의 정치신학: 캐서린 켈러의 ‘(성공)보다 나은 실패’(a failing better)를 위한 정치신학 (1)

▲ 캐서린 캘러 미국 드류대학교 교수
본고는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16집(2020): 327-358에 게재된 논문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본지에 연재하는 것임을 일러둔다. - 편집자 주

우리 시대 정치신학의 필요성 혹은 정치적인 것의 귀환의 전제는 우리는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다. 우리의 정치는 삶을 더 정의롭고 풍요롭고 공평하고 넉넉하게 만드는데 실패했다. 근대로부터 이어진 인간해방의 꿈은 소위 ‘호모 데우스’라 불릴 극소수 특권계층의 형성으로 신기루처럼 부서지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던 경제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정치(政治)는 결코 정치(正治)로 이어지지 못하고, 거주지와 삶을 의미하는 단어로부터 유래하는 경제(eco-nomy)는 결코 삶을 가능케 하는 체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자유도 온전한 평등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자유민주주의의 물질적 성장엔진이었던 자본주의는 그 성장의 끝이 도래했다고 말해진다.

자본주의는 폐허들을 양산하면서, 불안정하고 취약한 인생들의 숫자만을 성장시킨다. 안나 씽은 이를 “불안정성의 범지구적 상태”(1)라고 표현한다. 모든 것이 정처없이 표류하고, 가치가 의미를 상실하고, 기준은 권력의 힘과 크기를 의미할 뿐인 우리 시대의 핵심적 문제들 중 하나가 ‘정명’(正名, to retify names)의 실패라고 크로켓(Clayton Crockett)은 주장한다. 즉 사물과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기호자본주의의 시대, 법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 등과 같은 이름들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 이름은 금융통화처럼 정처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닌다.(2)

이런 가운데 신자본주의의 범지구적 질서에 맞서 지역주의가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와 종교의 옷을 입고 다시 등장한다. 그래서 이를 “종교의 귀환”(the return of religion)으로 부르기도 한다.(3) 모든 것이 불분명해진 시대를 종교적 전통의 가치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종교의 귀환은 곧 샹탈 무페의 표현처럼 “정치적인 것의 귀환”(4)이기도 하다. 이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종교의 부흥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정치적인 것’이란 “모든 인간 사회에 본래부터 있으며 우리의 존재론적 조건을 결정하는 ... 차원”으로서, 우리의 모든 정체성은 관계성, 말하자면 내외의 경계성으로 구성된다. 이는 외부 타자에 대한 적대관계를 통해 우리의 경계가 설정된다는 칼 슈미트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5) 하지만 정치적인 것이 이러한 모습으로 귀환하는 것은 도착적 귀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의 정치가 맞이하고 있는 급박성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예외 없이’ 모든 생명이 존재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급박성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친구/적의 경계를 설정하는 예외적 주권권력의 힘을 자신의 정치신학(6)의 토대로 삼았던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논리는 그 어떤 예외도 허용치 않는 오늘 우리 지구행성의 위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적인 것의 귀환’ 시대에 정치신학을 재규정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생태계 위기와 기후변화는 지구 위에 살아가는 생명의 공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제 정치신학의 주제는 해방이나 반란 혹은 저항보다는 ‘공생’(co-life)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통속적으로 생각하는 ‘공생’이란 그저 관계적으로 얽힌 존재들이 서로 좋게 상리공생(相利共生)하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신학적 의미에서 혹은 기독교 신앙적 의미에서 ‘공생’이란 서로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끼리의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기존사회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동등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들을 하나님의 동등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는 기획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것은 현사회구조 하에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존재를 예를 들어, 노예와 여자를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고 품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었다. 황제를 정점으로 모든 존재가 신분제 위계질서로 규정된 사회구조 하에서 그들은 기존의 위계적 사회질서를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기준으로 재구성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 박해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즉 기독교 공동체는 처음부터 기존과는 다른 정치체재를 전개하는 정치적 공동체였다는 말이다.

그것은 모두를 적/아군의 이분법으로 재구성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아군을 결집해 정치세력화해내는 칼 슈미트적 정치신학과 정반대로, 적/아군 혹은 친구/적의 이분법을 허물고, 동등한 존재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인간이하의 존재(the inhuman)를 형제와 자매로 호명하며, 존재를 회복시켜주는 정치, 즉 공생의 정치였다. 캐서린 켈러는 이를 ‘정치적인 것의 귀환’으로 선포하고, 신학적으로 성찰한다.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신학은 제도권 정치를 넘어, “우리의 우주정치적 얽힘들의 위태로운 유한성과 ‘다중다성적 리듬’(polyrhythmic)의 복잡성”(7)을 포착하고, 거기서 “새로운 정치적 행동주의를 위한 시간”을 열어(8), 현재의 제도권 선거정치를 넘어서는 “민주적 투쟁성(democratic militancy)”(9)을 모색하는 신학이다.

여기서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은 배제와 혐오의 정치 즉 친구와 적의 이분법적 정치신학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성육신의 논리를 기후변화의 위기와 민주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종말의 상황 속에서 대안적으로 실현하려는 신학적 노력이다. 신학을 세속의 한복판에 실현할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는 “세속화된 신학”(theology secularized)(10)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배제와 혐오가 아니라 “창생 집단체”(the genesis collective)(11)의 관계성 속에서 비존재로 밀려난 이들을 존재로 회복하여, 피조세계에 참여시킨다는 의미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정치신학이기도 할 것이다.

미주

(미주 1) Anna Lowenhaupt Tsing, 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ty of Life in Capitalist Ruin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6.
(미주 2) Clayton Crockett, Radical Political Theology: Religion and Politics After Liberal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1), 1.
(미주 3) Ibid., 2.
(미주 4) Ibid., 2;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이보경 역, 『정치적인 것의 귀환』(The Return of the Political), 4쇄 (서울: 후마니타스, 2012), 11.
(미주 5)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2012), 13.
(미주 6)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라는 용어가 독일의 보수적인 법 이론가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1921년 출판된 책 제목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매우 역설적인데, 그는 “국가에 관한 근대 이론의 모든 중요한 개념들은 세속화된 신학적(theological) 개념들”이라고 주장했다(Catherine Keller, 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 Our Planetary Emergency and the Struggle for a New Pub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8], 8).
(미주 7) Keller, 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 (2018), 39; 폴리리듬(polyrhythm)은 서로 다른 리듬이 중첩되어 연주되는 것으로서, 재즈같은 분야에 쓰이는 음악용어로부터 유래한다.
(미주 8) Ibid, 39.
(미주 9) Ibid, 40.
(미주 10) Ibid, 162.
(미주 11) Catherine Keller, On the Mystery: Discerning Divinity in Proces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8), 47.

박일준 객원교수(감리교신학대학)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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