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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기사승인 2020.07.19  0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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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해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고 그들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또 알릴 것이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기 위함입니다.(요 17,25-26)

예수께서는 유다가 그를 고발하려고 자리를 뜬 다음(13,30) 제자들에게 소중하기 짝없는 마지막 가르침을 주시고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신 후 17장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이 기도를 끝으로 예수께서는 잡혀가시는데, 위 본문은 그 기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자들을 포함해 그에게 주신 자들과 그들의 선포로 예수를 믿을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예수에게 주신 자들은 예수를 아버지께서 보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맺어진 일차적 상호관계가 이차적 일치관계로 진척되기를 기도하십니다(20-21절). 그 관계의 출발점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계시고 예수께서는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이른바 공속관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버지와 예수는 하나입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길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들도 서로 공속관계에 있고 그렇게 하나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에큐메니칼리즘의 원형이자 가장 완벽한 형태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나 됨으로써 그들이 하나된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된 아버지와 아들 안에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된 전체로 그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께 주신 자들이기에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들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세상은 아버지도 그 아들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세상이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냈다는 사실을 믿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의 온전한 깊이를 다 파악하진 못한다 해도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세상이 하나님을 모르고 그가 보낸 아들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고통스런 일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아시고 그렇게 간구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계속 일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고 또 알릴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하실까요? 그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부르는 자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이 아들을 사랑한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그들 가운데 있고, 그 사랑 때문에 예수께서도 그들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의 역순입니다.

그들이 전체로 하나님과 아들 안에 있고, 하나님과 아들이 그들 안에 있습니다. 이로써 공속관계가 완성되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가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일련의 관계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십자가를 향해 가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와 같은 관계를 의식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지요?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또 우리의 기도가 되는 오늘이기를.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어 훈훈하고 충만해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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