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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지 못할 죄(?)도 있다

기사승인 2020.07.12  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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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주의와 사실주의를 넘어서

최근 번역된 성공회 스퐁 감독의 마태복음 연구서(한국 기독교 연구소 2020)를 통해 새롭게 배운 통찰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성서문자주의를 ‘이방인 기독교인들에 의해 생겨난 이단’이라고 했지요. 바로 이 말이 이 책의 부제로 선택되었습니다. 저자는 마태 복음서를 유대교 회당 예배력에 맞춰 예수를 고백한 유대 기독교인들의 창조적 문서로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자적 성서이해는 이후 유대교에 무지한 이방 기독교인들의 시각이었다고 합니다. 하여 스퐁 감독은 문자주의를 벗겨내는 것이 성서의 본뜻에 이를 수 있는 첩경이라 했습니다. ‘성서숭배’를 벗겨내야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애절한 호소가 한국 교회에 들려졌으면 합니다.

< 1 >

그럼에도 마태는 유대인의 편견을 넘어서는 예수 상(像)을 언급합니다. 유대교 틀 안에서 유대교를 넘어설 목적에서였습니다. 마가서가 시로페니키아 여인이라 말한 것을 ‘가나안’ 여인으로 변경시켜 예수와 대면토록 한 것이 한 예입니다. 저자는 이 본문 마태의 창작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문자가 아니라 뜻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주지하듯 역사적으로 ‘가나안’은 유대인들에게 아주 부정적으로 기억되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가나안 여인을 등장시켜 그녀와의 공동체성을 거부하는 유대적 고정관념을 난파시키고자 했습니다. 지금껏 상종치 않았던 자신들 태도를 도덕(합리)적이라 여겼던 이들의 경험과 편견에 맞서고자 한 것이지요. 그녀는 귀신들려 고통 하는 딸을 둔 여인이었습니다. 일상이 고통인 그녀가 울부짖는 어머니로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에게 ‘다윗 아들이시여 내 딸을 고쳐주세요(마15:22)‘라고 간청했습니다.

허나 주변 사람은 물론 제자들 역시 더러운 여인을 빨리 이곳서 떠나보내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처음 예수의 시각도 다르지 않았지요. 자신 역시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예수의 답변도 의외로 강해졌습니다. ‘자녀들(유대인)에게 줄 빵을 개(이방인)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여인은 이런 대화 자체를 기회로 여기면서 ‘개들도 주인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느냐’고 항변했지요. 유대인들 틈바구니에서 개가 되어 모욕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주장하는 여인을 예수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모욕을 받으면서도 견뎌내며 자기주장을 하는 여인에게서 편견을 바꾸는 지혜를 봤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하느님 언약 밖에 살던 여인이 아주 큰 믿음을 지녔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 서기관 마태가 어떤 이유로 이 이야기를 유대인 회중예배에서 전했을까요?

선택된 백성들과 그들이 개라고 불렀던 이방인, 가나안 사람(여인)들과의 공동체성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을 결코 게토(Getto)에서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자신들 정체성 유지를 위해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생존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보편주의를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기존 틀에서 거부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조차도 포용한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 그리스 사람, 종, 자유인, 남자, 여자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을 말한 바울도 이점에서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독교는 이천년 역사를 통해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희생시키며 존재해 왔었지요. 과거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그렇게 말입니다. 기독교 교부들은 유대인들을 ‘살려둘 필요 없는 해충’으로 여기기도 했었지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당시 미움 받을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목하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재현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 2 >

매 시대마다 마태가 전하는 ‘가나안’ 여인이 존재했습니다. 한때는 그가 유대인이었고 이슬람 사람이기도 했으며 불교인인 적도 있었겠지요. 유럽으로 끌려갔던 아프리카 사람들,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도 당대의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차별받는 난민들, 성소수자라 해도 잘못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마태에게 가나안 여인은 결코 역사적 사실적 인물로서 의미 있지 않습니다. 제도의 한계에 도전하며 편견을 깨고자 모진 학대 속에서도 자기 소리를 내는 뭇 약자들, 소수자들의 상징일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얼굴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바뀌며-마태가 시로페니키아 여인을 가나안 여인으로 변경했듯이- 담장을 허물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개들도 주인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항변하면서 말이지요. 목하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그들 부모와 친구들과 함께 가나안 여인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뜻이 문자(주의)로 축소되면 이런 소리는 결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보편주의, 한계를 모르는 하느님의 사랑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기 생존을 위해 타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불고 싶은 대로 부는 하느님 영’을 조롱하고 모독하는 존재라 하겠습니다. 성서는 ‘성령 모독’을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강변하지 않았던가요?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할 것을 가르쳤던 성서가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있음을 말한 것이 많이 이채롭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역차별이라 말하며 이를 지지하는 이들을 이단시 하는 이 땅의 주류 기독교 세력들, 대형 교회 성직자들, 혹시 성령 모독죄를 생각해 보았는지요? 이제는 눈을 떠서 현실을 달리 봐야 할 때입니다. 팬데믹 상황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옳습니다. 그 뜻을 성찰 않고 기독교 탄압 운운하는 것은 복음(하느님)을 왜소케 하며 웃프게 만들 것입니다.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을 소경이라 일컬었던 지를 아프게 성찰하십시다. 그때 그들처럼 분노하는 것으로 자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무제약성(사랑)을 자신들 편견 속에 한계 지워 가뒀던 과거 역사와 단절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성서 문자주의, 성서 숭배를 신앙이라 가르치는 일을 그쳐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 질뿐입니다.

< 3 >

고 박원순 시장 죽음을 목도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마다 일리(一理)를 담은 이야기를 쏟아 놓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어떤 말을 덧붙여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피해자 편에 서서 그의 선택을 의미 없게 만들고 싶지 않고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판단할 생각도 없습니다. 단지 가족과 시민을 위해 무수한 할 일을 남겨놓고 다른 길을 가야했던 그의 고뇌만이 가슴에 맴돌 뿐입니다. 명시되지 않았을 뿐 그의 죽음 속에 이미 모두에 대한 사죄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요?

제게 그의 죽음은 회(면)피를 넘어 엄중한 책임의 행위였다고 느껴집니다. 살아생전 그는 자신의 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에게 늘 미안해 하면서도 공인답게 일체를 공적으로 돌리며 생활했습니다. 그의 죽음 또한 이런 삶의 귀결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자신의 평소 말, 자신이 만든 규칙을 스스로 어겼다는 자책감, 그것이 그를 못 견디게 했을 것입니다..

그를 비난하는 뭇 사람과 달리 하느님 앞에 단독자로서 섰던 용기 있는 사람이라 믿습니다. 자신의 한계(이율배반)를 죽음으로 사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어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내 뱉은 말에 책임지는 삶을 살 것”을 말입니다. 이후 우리는 사람(人)의 말(言)이 믿어지는(信) 세상을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제게 가나안 여인의 또 다른 절규가 되었습니다.

장례예식 자체가 시비 거리가 되었고, 사법적 판단을 더하자는 모욕을 받고 있으나 그의 연약함을 하늘이 품었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이런 연약함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온 천하에 드러냈습니다. 그렇기에 피해자를 거듭 괴롭히는 일도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일체 시비를 거두고 그와 함께 그를 넘어서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피해자를 비롯하여 가족과 동료를 두고 홀로 떠난 그에 대한 우리들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겠지요.

이정배 교수(顯藏아카데미) ljbae@mtu.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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