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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왕이냐 인간이 왕이냐

기사승인 2020.07.07  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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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14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기도

‘어린 사무엘, 기도했대요. 나도 할래요, 나도 할래요’ 어린이 교회학교에서 힘차게 불렀던 노래, 성도 여러분들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때 택시나 버스 운전석 앞에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이 써 있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 사진이 걸려 있던 것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사무엘’이라고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지요.

그러나 사무엘과 중첩되는 이런 이미지는 그의 어머니 한나가 자식이 없어 괴로운 마음으로 흐느껴 울면서 서원 기도를 하고,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아 낳은 아들이라는 것에서(삼상 1,10-11) 유래합니다.

한나는 실로 성소에서 마음 속으로만 기도를 드리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삼상 1,13). 이런 기도의 태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큰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곤경을 야훼에게 털어 놓기 때문이었습니다(시편 77,2). 한나는 고통 때문에 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시편 77,5).

그래서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하고 꾸짖었던 것입니다(삼상 1,14). 술 취한 사람은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었던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원통하고 괴로워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안 제사장 엘리는 하나님께서 그녀가 간구한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위로하며 돌려보내자, 한나는 그 길로 가서 음식을 먹고 다시는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지 않았다고 합니다(삼상 1,18).

그리고 한나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한나는 아들에게 ‘주님께 구하여 얻은 아들’이라는 이른바 ‘감사를 표현하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즉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기도를 하여 얻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감사기도의 압축 형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서원대로 어린 사무엘이 젖을 떼자, 그를 나실인으로 바치고, 실로에 있는 제사장 엘리의 문하에서 성전시동으로 키우게 했습니다(삼상 1,28). 마카베오하 2장 27절에 의하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기간은 3년이었다고 하는 것에 비추어, 우리는 사무엘이 3살에 이미 부모 곁을 떠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나실인’은 ‘바치다’, 또는 ‘구별하다’는 뜻의 ‘나자르’에서 파생된 말로서, ‘평범한 사람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나실인에 대한 규례를 전하는 민수기 6장에 의하면, 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들과 독주를 먹을 수 없고, 머리털을 자르지 않으며, 시체나 부정한 것과 접촉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사 삼손, 사무엘, 세례자 요한 같은 인물들이 모두 나실인의 범주에 든다고 하겠습니다.

사무엘이 나실인이 된 것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순전히 어머니 한나의 서원과 아버지 엘가나의 동의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삼상 1,23). 사무엘은 젖을 뗀 직후부터, 실로에 있는 성소에서 제사장으로 일하는 엘리에게 바쳐졌고, 사무엘은 아기 때부터 성소 안에서 나실인으로서의 엄격한 규정에 따라 성장하게 된 것이지요.

자식농사 망친 엘리와 사무엘

성경 속 인물을 심리적으로 분석한 목회상담학자 이관직은 사무엘이 ‘분리불안’을 경험했다고 추정합니다. 젖을 떼자마자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평범한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와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뛰어놀고 장난도 하면서 성장하지 못하고, 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입고 성소에서 생활하면서 유년기적 심리적 과제들을 경험하지 못해, 마치 ‘성인 아이’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무엘은 이런 분리불안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정작 자신의 가정은 돌보지 않아 자식 농사를 망친 인물입니다. 지파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사사로서, 동시에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지켜야 하는 지도자로서, 나라 일에 너무 바빠서 자식을 돌보지 못한 것이지요.

▲ 「한나, 사무엘, 엘리」 ⓒGetty Image

아니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것일까요? 원래 사사직은 세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자기가 늙게 되자, 자기 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습니다(삼상 8,1). 그런데 브엘세바에서 사사로 일하는 큰 아들 요엘과 둘째 아들 아비야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여” 백성의 비난을 샀다고 합니다(삼상 8,1-3).

공인의 삶을 선택한 모든 사람이 다 자식농사 망치는 것은 아니지만, 새겨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어린 사무엘을 키웠던 실로 성소의 제사장 엘리도 자식농사를 망친 인물입니다. 엘리의 아들들도 “행실이 나빴고, 주님을 무시했습니다.”(삼상 2,12). 그들은 주님께 바치는 제물을 함부로 대하였고(삼상 2,17), “회막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했습니다”(삼상 2,22).

늙은 엘리는 소문을 듣고 자식들을 심하게 꾸짖었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삼상 2,25). 마침내 하나님은 엘리의 아들들의 일로 엘리의 온 가문의 대를 끊습니다(삼상 2,31).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한 날에 죽고(삼상 2,34), 단 한 사람만이 살아남지만, 그는 ‘맹인이 되고, 희망을 다 잃고, 그의 자손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변사를 당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삼상 2,33).

사무엘기의 저자는 “엘리가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을 두고 맹세한다. 엘리의 집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영 씻지 못할 것이다.”(삼상 3,13-14)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아버지인 엘리의 책임을 지적합니다.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지도자

사무엘은 주전 1103년경에서 1017년경 활동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사사 시대의 종언과 왕정 시대의 개막이라는 전환기에 활동한 제사장이자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과 두 번째 왕이자 통일군주였던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 팔레스타인에는 ‘가나안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방대한 문화권 사이에 위치하는 지역이었고, ‘가나안인들’이라는 말은 단지 어떤 주민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들은 해안가에 도시를 형성하고 무역으로 돈을 벌면서, 왕정체제와 상비군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종교체제도 분화된 다신사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도시들 옆에서 제2의 주민집단으로 정착생활을 하지 않고, 소규모의 가축사육을 하는 유목민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목초지를 찾아 이동해야 했던 이들은 비가 적은 여름에는 도시 근처에서, 그리고 겨울에는 신악지대의 초원에서 목초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목생활에서 농경사회로 이행하는 과정도 가나안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 지역에서 진행되었지만, 끊임없는 인구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충돌을 일으켰는데, 사무엘과 사울은 팔레스타인 중부의 부족들이 블레셋으로부터 가장 많은 위협을 받았을 때 활동한 것입니다.

최형묵 목사는 사무엘을 모세에 필적할 만한 거인은 아닐지라도, 이스라엘의 전환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경세가, 역사적 거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부족동맹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를 연 인물로서 새 시대를 예비하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지파들의 동맹 정신을 대변해야 하는 사사로서, 동시에 새로운 왕정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 갈등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최형묵 목사는 보고 있습니다. 그는 복고주의자도 혁명주의자도 아니고, 현실주의자도 이상주의자도 될 수 없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지만,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에서 한 편을 선택하지 않고, 이른바 ‘경계인’으로서 ‘사이-넘어’(between and beyond)를 지향한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지만, 두 가지 모두를 아우르는 지혜가 절실할 때도 있는 법’, 사무엘은 왕정체제의 필요성과 왕정체제의 어두운 면을 동시에 일깨우는 지혜를 가진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해 달라고 청원을 하게 된 배경에는 사무엘은 늙었고, 그의 두 아들이자 사사였던 요엘과 아비엘은 아버지인 사무엘이 걸어온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한다는 백성의 원망과 불만이 있었습니다.(삼상 8,5).

사사들에 대한 그런 불만 외에도 이스라엘이 더 이상 사사를 중심으로한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아니라, 왕정 체제로 전환하기를 원했던 것은 주변 이방 나라들이 모두 왕정 체제를 갖추고 이스라엘보다 월등한 철기문명을 누리면서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기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대장장이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드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습이나 곡괭이나 도끼나 낫을 벼릴 일이 있으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가야만 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만이 칼과 창을 가지고 있었을 뿐, 모든 군인들의 손에는 철제 무기가 없었습니다(삼상 13,19-22).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의 블레셋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는 장로들의 말에 마음이 상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백성이 한 말을 다 들어주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주님을 버린 것인데, 그들은 주님께서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주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지요.(삼상 8,7-8).

그러자 사무엘은 왕정체제가 수립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합니다: “왕은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아들들에게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당신들이 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 그는 또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당신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야 당신들이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삼상 8,11-18)

사무엘의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왕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서 그들에게 왕을 세워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정 선택은 이집트 파라오의 통치를 거부하고 출애굽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누려온 신정정치와 지파동맹체제의 평등과 자유의 종언, 그리고 우상숭배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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