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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다시 일어선 사사

기사승인 2020.06.30  16: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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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13

‘사사’는 누구일까요?

구약성경의 사사기는 영어로 ‘Book of Judges’로 번역되었고, 한국어로는 ‘판관기’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 이름 ‘쇼페팀’을 문자적으로 번역한 것인데, ‘쇼페팀’은 ‘심판’, ‘판결’ 등의 뜻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삼상 4,18; 7,6)

그래서 ‘사사’는 대개 재판이나 중재의 기능을 맡은 인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런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사사’를 특별한 군사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때때로 일반적 통치자로서 역할을 한 인물의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여자 예언자, 드보라였습니다. 랍비돗의 아내인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간 지방인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했다고 합니다(삿 4,4-5). 그러나 이것은 드보라가 여자 예언자로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라는 부름을 받기 이전에 수행한 기능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사사기에는 열 두 명의 사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여섯 명은 ‘대 사사’, 나머지 여섯 명은 ‘소 사사’로 분류됩니다.

사사는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이 일종의 종신제 직분이었는데, 세습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지지만 때로 인간들에 의해서 세워지기도 합니다(입다). 사사의 권위는 거의 전제적이었는데, 사사들의 통치기간이 길어지면서 권력의 중앙집권도 시작되어 왕정체제 수립의 전(前)단계 역할을 했습니다. 사사들에게는 어떤 급여도 지불되지 않았고, 전리품 가운데서 큰 부분을 갖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제외하고는 직분을 임명할 권한도 없었고, 세금을 부과할 수도 없었습니다. 가나안 지역의 블레셋 부족과 달리 평등한 지파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일부 사사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지만, 모든 사사들이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옷니엘은 본토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고, 왼손잡이인 에훗은 지체장애인으로 알려졌으며, 바락은 남성답지 못한 자로 서술되었고, 기드온은 회의론자이며, 입다는 산적이었고, 삼손은 엄청난 힘을 가졌으나 실패한 자였습니다.

사사의 자격은 인간이 가진 재능이나 힘보다 하나님의 인준에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사들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밝히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기의 영을 부어 주셔서 구원사역을 하도록 했다고 강조합니다.

사사들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구원자로 일했지만, 사무엘을 제외하고는 도덕적, 영적 자질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에홋의 배반과 잔혹성은 가나안 족속의 삶의 행위와 너무 유사하고, 바락은 의지가 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기드온은 자신의 소명을 너무 가볍게 여겼고 동족에 대하여 잔혹했습니다. 입다는 협상을 통해 통치자가 되었고, 끝내는 하나님과 협상을 하다가 딸을 희생 제물로 바쳤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규약을 파기하면서 이방 여인과 사랑에 빠져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누구이며, 언제 기록되었을까요?

사사기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대 전승은 사무엘이 사사기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사사기 5장에 있는 드보라의 노래는 왕정체제가 갖추어지기 이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17장 6절에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더라’는 보도는 사사기가 왕정체제가 이미 형성된 시기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사기의 내용은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부터, 왕정체제가 수립되기 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기록 시기는 사울 왕조가 무너지고, 다윗 왕조가 세워져가는 어간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호수아는 정복이 시작된 수년 후인 110세에 죽었습니다. 정복시기의 연대는 주전 1446년의 출애굽 시점에서 정확히 40년 뒤의 일이고(신 1,3), 7년 만에 끝났기에 주전 1406년-1399년입니다. 이 연대는 갈렙의 증언에서 분명해지는데, 그는 자신과 여호수아가 정탐꾼으로 나갈 때가 40세이며 정복을 마칠 때가 85세라고 합니다(수 14,7-10). 이로써 우리는 여호수아가 주전 14세기 초반에 죽었고, 사사기는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시작되어, 삼손의 죽음(주전 1104년)으로 끝나므로, 사사 시대는 거의 30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주전 13세기 초의 가나안 지역은 강대국들의 이해에 따라 서로 밀고 밀리는 난투장이었습니다.

후기 청동기 시대의 팔레스타인은 비록 이집트의 빈번한 출정과 극심한 빈부 차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시달리기는 했지만 물질문명은 상당히 발달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통상에 능한 백성으로 목재 수출과 직물과 염색 공업을 선도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공적은 글자의 형성, 곧 알파벳을 창안한 데 있습니다.

가나안 지역의 종교는 자연의 힘이 신적 임재와 행동의 표현이며, 인간이 살아남고 번영하려면 각 현상을 책임진 신들을 적절한 제의로 기쁘게 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만신전(萬神殿)의 명목상의 최고신은 ‘엘’이었지만, 오히려 ‘바알’이 주된 활동을 했습니다. ‘바알’은 본래 셈족 폭풍의 신 ‘하닷’의 칭호로서 북쪽의 어느 높은 산에서 제신의 왕으로서 군림했다고 상상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세라, 아스다롯, 아낫 등의 여신들도 숭배되었는데, 이 신들은 생식과 열매 맺기, 가축의 번식, 자손의 번창 등을 책임지는 신으로서 지방에 따라 성격과 기능이 유동적이었으나, 풍산제의(생식숭배)에서 주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산간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해변에는 무역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던 블레셋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족속은 주전 13세기 말부터 해양민족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고대 근동사회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헷 왕국을 붕괴시키면서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블레셋의 침략을 막아냈고, 블레셋은 가나안 남쪽 해안에 정착했습니다. 사사기 후반의 삼손 이야기와 사무엘서는 이들 블레셋 족속들과의 갈등과 다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공백기에 이스라엘은 이미 지중해 연안에서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블레셋의 경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철기문명을 구가하고 있었던 블레셋에 비해 이스라엘은 산간지역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느슨한 지파동맹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변 도시국가들도 산간지역에 흩어져 사는 작은 부족인 이스라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상비군도 없었고, 아직 경쟁할만한 국가 체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사들은 바로 이런 시기에 주변 부족들과 전투를 하면서 생존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군사 지도자이자 부족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한 부족영웅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사기 저작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사시기의 시작부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 신들을 섬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일삼았으며, 이집트 땅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 조상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주위의 백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며 경배하여, 주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삿 2,11-12)는 것입니다.

사사 웃니엘이 등장할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주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삿 2,7)고 보도하고, 사사 에훗이 등장할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들이 이렇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적이 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셨다.’(삿 3,12)고 보도하는 것으로 보아, 사사기의 저작 목적은 이방종교를 수용하면서, 출애굽 공동체의 출발정신인 평등하고 자유로운 지파동맹이 깨지는 것을 경고하는데 있다고 보입니다.

사사 삼손

▲ José Echenagusía, 「Samson and Delilah」 (1887) ⓒGoogle Art Project

오늘 우리는 여러 사사들 가운데 특별히 사사 삼손 이야기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소라 땅, 단 지파의 가족 가운데 마노아라는 사람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해 자식을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보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임신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고 통보하고, 임신 중에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그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면서,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성장하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삿 13,3-5).

히브리어로 ‘나실’은 ‘구별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민수기 6장에 의하면, ‘나실인’은 서약을 통해, 다시 말해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특정하게 구별된 삶을 사는 남자와 여자를 말합니다. ‘나실인’은 부정한 것이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고, 시체를 만지지 않으며, 머리를 깎지 않는 특별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고, 동시에 자기 구속력을 갖고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서원한 기간 동안에는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살아야 했고, 규정된 조항을 어겼을 때는 속죄제물을 드린 후에 머리털을 밀고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주어지는 카리스마와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천사를 통해 부모에게 주어진 신탁으로 ‘나실인’이 되었고(삿 13,7), 그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에 있는 마하네단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처음으로 그에게 내렸다(삿 13,24-25)는 점에서 카리스마적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사 삼손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져서 그의 삶에 대해서는 반복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다만 삼손 이야기의 핵심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➀ 삼손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물었더니 한 목사님은 ‘사랑에 눈이 멀어 능력을 빼앗기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힘이 장사인 깡패’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사들은 이스라엘 부족을 위해 전투를 하는데, 삼손은 자기 부족을 위한 지도자라기보다는 이방 여인들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들릴라라는 여인의 무릎 사이에 머리를 베고 잠이나 자면서(삿 16,19), ‘나실인’으로서의 서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힘자랑이나 하는 깡패나 건달이라는 것이지요.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것도 이스라엘 부족을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원한을 풀기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➁ 성경인물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목회상담학자 이관직은 삼손에게서 ‘금지된 장난’의 주인공을 봅니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결단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결정된 삼손은 지켜야 할 금지명령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성장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삼손의 여러 여성 편력은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례들을 의식적으로 파괴하는 행동도(잔치를 베푼다거나, 죽인 사자에게서 꿀을 따서 먹은 것, 마침내 머리를 깎이는 것 등) 자기부정적이고 금욕적인 삶에 대한 반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이스라엘 부족의 여인들도 많이 있었는데, 굳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이방 여인들과의 사랑에 빠진 것도 금지된 장난을 시도하려는 삼손의 모험심과 충동심을 보여주고, 그것도 그가 어릴 적부터 지나치게 억제되어온 삶에 그 원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➂ 민중신학자이자 역사적 예수 연구자인 김진호 목사는 삼손 이야기에서 삼중의 폭력적 대립을 읽어냅니다. 신과 인간의 대립, 남녀의 대립, 종족간의 폭력적 대립이 그것인데, 특별히 여성에 대한 폭력에 주목합니다. 삼손의 이런 폭력성은 종족적 가치, 특별히 나실인으로 구별된 지도자로서 종족을 위한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그의 개인적 욕망이 충돌하는데서 기인한다고 김진호는 지적합니다.

삼손의 폭력성은 그가 소수부족이었던 단 지파 출신이라는 것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단 지파는 북쪽으로는 에브라임 지파가, 남쪽으로는 유다 지파가, 동쪽으로는 베냐민 지파가 있고 서쪽에는 블레셋 족속이 있는, 사방에서 에워싸는 강력한 부족들의 틈새에 끼어있던 군소 부족이었습니다. 삼손이 이렇게 군소 부족이었던 단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과 삼손이라는 이름이 태양과 관계되어있고, ‘태양의 집’이라는 뜻의 벳세메스 인근 이야기라는 점이 암시하듯이 삼손은 약소부족의 희망이었습니다. 약소부족의 소수자적 운명이 삼손으로 하여금 다른 부족에 대한 폭력적 적대행위를 하게 했던 것이지요.

➃ 이상명 교수는 삼손 이야기에서 육신의 누이 뽑히고서야 영안이 열린 비극의 영웅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적 영웅주의를 피하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진정한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읽어냅니다.

➄ 사사 삼손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삼손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나실 사람은 금기를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금기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지키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행동입니다.

우리 교회는 2017년에 강원용 목사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토크 콘서트를 열었는데, ‘지성적 신앙과 일상의 성화’가 주제였습니다. ‘지성적 신앙과 일상의 성화’는 동시에 우리 교회가 추구할 가치이기도 합니다.

‘지성적 신앙’은 지성과 신앙이 대립,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입니다. 지성 없는 신앙은 맹신이 될 수 있고, 신앙 없는 지성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일상의 성화’는 일상의 평범한 삶이 거룩하다는 삶에 대한 긍정이자, 동시에 일상의 성화를 위해서는 무언가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은 ‘반복’이라고 말했고, 유대인은 율법을,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무슬림은 ‘신앙의 다섯 기둥’을 지키는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면,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규칙적으로 훈련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규례를 만들고 지키는데서 믿음의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삼손의 힘이 머리카락에서 나오듯이.

둘째,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대자,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었고(삿 16,16), 마침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마침내 힘을 잃은 삼손,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을 뽑히고, 놋사슬에 묶여, 감옥에서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숭배하는 다곤 신의 축제가 벌어지고 삼손은 그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곰 같은 신세가 된 것이지요(삿 16,2-25).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깎였던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삿 16,22). 깎인 머리털은 다시 자란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삼손 이야기에서 제가 주목하는 두 번째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깎인 머리털은 다시 자라듯이, 비록 믿음 생활에서 실패하여 넘어졌다고 해서 절망하여 스스로를 포기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서 믿음으로 참으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신다는 것이지요.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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