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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섭 목사의 유리바다와 구도자의 길

기사승인 2020.06.29  1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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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스승이셨던 박효섭 목사님을 그리워하며

이 글은 2020년 6월 29일 오후 3시 한국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있었던 故 박효섭 목사 1주기 추도식 및 유고시집 출판기념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 저자 주

25년 전 제가 40대에 막 진입(進入)하면서 붙든 삶의 화두가 '길'이었습니다. 길이 나를 붙들었는지 내가 길을 붙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길'이라는 화두에 몰두했습니다. 박효섭 목사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 대 초반 '샘이 깊은 우물'이란 잡지에 실린 괴정교회와 박효섭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였습니다. 그때 '박효섭'이라는 이름을 처음 대하게 되었고, 그 이름은 매우 신선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강원도 정선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박 목사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박 목사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이 이 자리에 여럿 앉아 계십니다. 주로 파격적이고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특히 정선제일교회 전영호 목사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영호 목사님은 내 친구 박효섭 목사를 꼭 만나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후로 제가 감리교농목을 하면서 몇 차례 박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2004년 부산으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박 목사님과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박 목사님과의 만남은 마치 운명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작은 목소리, 선한 눈빛, 자연에 대한 경탄, 사물을 대하는 태도, 인문학적인 성찰, 예수기도, 여행담, 동방정교회 영성에 심취하게 된 과정 등을 전해 들으면서 박 목사님께 동화되고 매료되었습니다.

▲ 박효섭 목사의 생전의 모습 ⓒ박철 목사 제공

저는 지금까지 내가 그토록 전착해왔던 길 위에서 영혼의 순례자로, 도반으로 박 목사님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박 목사님은 구도자로서 하느님을 향해 길을 가신 분이고, 한 개인이면서 보편자로 세상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오랜 인류의 역사는 방황과 미로의 수많은 흔적을 기록하였으며, 희귀하게 좋은 길잡이가 나타난 일도 있으나, 보다 많은 오도의 안내자들이 인류의 역사와 그 당대의 시대정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였고, 오늘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박효섭 목사님은 참 스승이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영적 스승을 가까이 자주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복이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탁월한 영성가요, 기도자요, 신학자이셨습니다. 그는 세계신학의 흐름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편협한 종교, 생명력을 상실한 종교, 박제화된 종교, 교리화된 종교, 이념화된 종교를 매우 거북하게 여기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타 종교도 다 자기 나름의 구원의 방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시류에 영합하는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등장한 성인들이나 사막 교부들,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에 늘 귀를 기울이고 신학의 내면화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기독교 전통에서 성인이란 죄가 적은 사람이 아니라 남보다 죄를 슬퍼하는 영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대 자유인이셨습니다. 그분의 영혼은 자석처럼 언제나 떨림이 있었습니다.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아도 깊은 울림을 주는 분이셨습니다. 마음을 깨쳐 튼실한 심지를 지닌 하느님의 참 사람이셨습니다.

9년 전 연회에서 은퇴하시고 인생의 노년에 ‘통섭(統攝)’이란 화두를 풀어 그것을 신학화하는 작업을 시작만하고 떠나시게 된 것이 매우 애석할 따름입니다. 추운 겨울 난방도 되지 않는 사무실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박 목사님은 하나도 춥지 않다고, 따뜻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 한겨울 어느 날 오전 11시부터 장장 10시간 동안을 소파에 앉아 녹색 유리병에 든 주님을 모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 박효섭 목사 유고시집 『유리바다』(서울: 지식과감성, 2020)

지금 우리 손에는 박효섭 목사님의 유고시집 『유리바다』(서울: 지식과감성, 2020)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여행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순례자라고 인식하셨습니다. 『유리바다』에서도 박효섭 목사님의 그런 생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시집을 처음 전달받고 느꼈던 것은 그분의 시적 상상력과 감수성, 사물에 대한 관찰력은 제가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고, 한마디로 그 분의 시는 신을 향하여 바치는 아름답고 진실한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유리바다를 읽다보면 샘물처럼 맑고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기도의 말씀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밝은 빛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육화되어 기쁨과 눈물로 피어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소망과 평화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저는 박효섭 목사님이 갈망했던 내면의 유리바다를 바라봅니다.

그의 시 ‘발칸을 다녀와서’ 중, “아름답지 않은 건 인생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고서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라. 아름답지 않고서는 신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 그렇습니다. 『유리바다』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과의 대면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들고, 마침내 신에게 도달하게 하는 삶의 경탄과 찬미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이 떠나신지 1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가도 우리는 박 목사님을 여전히 그리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박효섭 목사님의 시 ‘촛불 앞에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저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촛불 앞에서

깨끗한 이마
곧은 목이
당신을 닮았습니다.

뽀얗게
맑은 살결이
애기 적 당신입니다.

얼은 달
가지 새로
기울고 있는데

숨결도
멈추어
불꽃이 됩니다.

육신이 타면
빛이 되고
영혼을 사루면
사랑이 됩니까?

초록별
한 떨기 임종을 지키더니

커다란
아침으로
밝아오고 계십니다.

박철 목사(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pakchol@empas.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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