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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기사승인 2020.06.29  16: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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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묵상하며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다가와서, 그에게 간청하여 말하였다.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서 고쳐 주마.” 백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셔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시민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마태복음 5:8~13/새번역)

지난 주 어느 새벽, 거룩한 독서(lectio divian)로 만난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 음성을 듣고 깨닫게 해주시길 기도한 후에 말씀을 두세 번 소리 내 읽었습니다(읽기 lectio). 천천히 읽을 때, 마음에 울림이 남은 구절은 “한 마디 말씀만”입니다. 이를 “한 말씀만”으로 줄여서 마음속으로 반복해 읊조렸습니다(묵상 meditatio). 한 말씀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 읊조리면서 마음에 주신 바를 따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기도 oratio). 기도한 것 모두를 주님께 맡기고 센터링기도(관상觀想 contmplatio)를 드립니다. 주님의 현존에 자신을 다 열어드립니다. 센터링기도로 마무리하고 하루를 살아가면서 거룩한 독서를 계속 이어갑니다.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일상의 틈새마다 “한 말씀만”을 계속 곱씹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풀을 뽑았습니다. 굵은 땀방울 떨구는 몸짓마다 ‘한 말씀만, 한 말씀만….’ 그 구절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말씀에 몸짓과 마음을 맡기고 되뇔 뿐입니다. 일하는 중에 그 말씀을 곱씹으면 마음 한편에 여백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그 한 구절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도록 귀를 열어드립니다. 하나님 임재의 자리가 확보됩니다.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분석하거나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이 내면 깊은 곳까지 스며 말씀이 말씀하시도록, 말씀이 자신을 읽도록 열어 드릴 뿐입니다.

말씀을 곱씹다가 문득 기도가 솟았습니다. ‘주여, 제게도 한 말씀만 허락하소서. 이번 주일 성도들과 함께 나눌 한 말씀만 허락하소서.’ 풀 뽑는 소리, 숨소리, 새소리 가운데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다시 곱씹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음속에 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해주신다. 하나님 말씀으로 듣는 중심이 없을 뿐이다.’ 그 음성의 메아리가 이어지고, 주님께 말씀 드립니다. ‘그러네요 주님. 백부장처럼 집에 오실 필요도 없다고, 그저 한 말씀만 해주시면 충분하다는 믿음이 없을 뿐이네요.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이 단순하고 평범하고 간단한 한 마디 말씀이면 충분했네요. 어떤 대단하고 신비하고 놀라운 말씀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기도 oratio)’ 다시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되뇌며(묵상 meditatio) 주변을 바라봅니다. 바람, 숲, 풀, 새소리와 흙과 하늘… 모든 것이 주님 주신 한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 말씀에 안깁니다(관상 contemplatio). 이렇게 아침 거룩한 독서에서 행한 기도oratio, 묵상meditatio, 관상contemplation이 자유로운 리듬으로 반복되며 일상을 물들입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묵상글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목을 고민했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제안해주신 ‘살며 묵상하며’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일상성 때문입니다. 성서학의 연구결과에 뿌리를 두지만, 그 안에 갇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묵상(meditatio)을 이성과 상상력을 사용한 적극적 추론으로 보는 거룩한 독서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말씀을 온몸과 삶으로 곱씹어 말씀에 자신을 맡기고, 말씀이 자신을 읽게 하는 반추기도 전통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반추기도이길 바란 「살며 묵상하며」가 어느덧 122번째입니다. 충분히 곱씹어 그 깊은 맛이 삶으로 우러나오길 바랐지만, 그보다는 시간에 쫓기며 마감을 맞추기에 급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롭고 감동적인 깨달음이 목표도 목적도 아니었건만,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에서 그 중심을 지키기 쉽지 않았습니다. 전시욕과 인정욕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하나의 마디를 짓고 일단 멈추려 합니다. 그 멈추는 자리에서 묵상의 내용보다 묵상의 과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내용 그 이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별한 깨달음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현존의 여백을 일상 도처에 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기도가 되고 몸짓이 묵상이 되는 동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며 묵상하는 그 과정 자체의 문을 열어 드립니다.

(그간 지면을 허락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태혁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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