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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고난을 ‘낮꿈’으로 바꾼 사람 - 요셉 이야기

기사승인 2020.06.02  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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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9

< 1 >

요셉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막내 아들, 17살의 소년인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고, 아버지의 편애를 받았기 때문에,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창 37,4). 화가 난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스무 냥에 팔아넘겨, 요셉은 이집트 노예로 팔려갔습니다(창 37,28).

이집트에서 바로의 신하인 경호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으나,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된 보디발은 요셉을 그의 심복으로 삼고, 집안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다고 합니다(창 39,4).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창 39,6)이었던 요셉을 ‘날마다 끈질기게’ 유혹했으나(창 39,10), 요셉은 거절합니다. 화가 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모함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게 하지요(창 39,20).

그러나 감옥에서도 ‘주님은 요셉과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고 합니다(창 39,21). 요셉은 감옥에서 바로에게 술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을 만납니다. 그런데 같은 날 밤, 이 두 시종장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요셉은 술을 바치는 시종장이 풀려날 것이라고 해몽하면서, 자기를 기억했다가 바로에게 자기 사정을 말씀드려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창 40,14).

술을 올리는 시종장은 요셉의 해몽대로 풀려났으나, 요셉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창 40,23).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해괴한 꿈이었습니다. 마음이 뒤숭숭해진 바로는 전 이집트의 마술사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들여, 그가 꾼 꿈 이야기를 했으나, 아무도 그 꿈을 해몽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창 41,8). 그 때 감옥에서 만났던 요셉을 기억해낸 시종장이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 바로에게 불려온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합니다. 그것은 일곱 해 동안 큰 풍년이 들었다가, 일곱 해 동안 큰 흉년이 들터이니,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책임자로 세워 이집트 땅을 다스리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창 41,29-33). 요셉의 해몽과 제안을 기쁘게 생각한 바로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느냐?’하면서(창 41,38), 요셉을 온 이집트의 땅의 총리로 세웠습니다(창 41,41). 요셉의 나이 서른 살 때의 일입니다.

풍년이 지나고, 기근이 온 세상을 뒤덮게 되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왔습니다. 그 가운데 야곱의 아들들, 곧 요셉의 형들도 있었습니다. 식량을 구하러 온 형들과 요셉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어서 반복할 필요가 없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형들을 첩자로 몰아(창 42,9), 감옥에 가둔 후, 인질로 시므온을 붙잡아 두고(창 42,24), 나머지 형제들을 식량과 함께 고향으로 돌려보내면서, 막내 동생인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이집트로 올 것을 요청합니다. 아버지 야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근이 더욱 심해지고 가져온 식량도 떨어지자,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이집트로 갑니다. 요셉의 극진한 환대를 받고 집으로 향하지만, 요셉은 사전에 계획한대로 베냐민의 자루에 자기 은잔을 몰래 넣어두었다가, 마치 도둑맞은 것처럼, 혐의를 뒤집어 씌워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위협합니다. 형들은 막내 동생을 잃으면 아버지 야곱이 슬퍼하며 죽을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하고, 마침내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한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밝힙니다.

놀란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창 45,3). 그러나 요셉은 말합니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곳에 팔아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창 45,4-8).

요셉은 형들과 하나하나 다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그제야 요셉의 형들이 요셉과 말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창 45,15). 이 소식을 들은 바로는 요셉의 부친과 가족 모두를 이집트로 이주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이집트로의 집단 이주가 시작된 것이지요. 이스라엘 자손은 고센 땅에 자리를 잡고, 재산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했습니다(창 47,27).

< 2 >

자, 이것이 성경에 전승된 요셉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요셉은 ‘꿈꾸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창 37,19). 그러나 사실 꿈 이야기는 요셉에게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경고하셨고(창 20,3-6), 야곱도 베델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창 28,12).

▲ Ford Madox Brown, 「The Coat of Many Colours」 ⓒWikiCommons

성경에서 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민 12,6). 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식, 혹은 천사들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통로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꿈으로 점을 치면서 백성을 현혹하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도 성경에 있습니다(신 13,5). 예언자 예레미야는 주님의 이름을 팔아 거짓말로 예언하는 예언자들을 규탄합니다: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지금 너희 가운데 있는 예언자들에게 속지 말고, 점쟁이들에게도 속지 말고, 꿈쟁이들의 꿈 이야기도 곧이듣지 말아라.’(렘 29,8).

그러나 좋은 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몽도 있고(시편 73,20), 헛된 꿈(잠언 12,11; 28,19)도 있습니다. 그런 꿈들은 걱정이 많으면 함께 많아지는 꿈이고(전도서 5,3), 그래서 전도자는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다. 오직 너는, 하나님 두려운 줄만 알고 살아라.’(전도서 5,7)고 권면합니다.

목사이자 꿈 연구자인 제레미 테일러는 ‘꿈은 인류의 역사 이래, 신의 세계와 더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신의 세계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인 실체의 한계를 넘어선 상징적 진실을 지니는 다층적인 세계이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꿈은 인류 공통의 심오한 인간성과 보편적 상징을 드러내는데, 근본적으로 인류는 유사한 방식으로 꿈을 꾸고, 유사한 희망, 사랑, 두려움,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이 꾼 꿈, 요셉이 해몽한 꿈들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상징은 인간의 삶의 양면성, 곧 인간은 빛과 어둠, 상승과 몰락,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 3 >

요셉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는 형제들 사이의 갈등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창조 이야기에서부터 공통된 유형을 발견합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인 아담과 이브 이야기부터,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야곱의 아들 요셉과 열 명의 형제들 사이의 갈등은 엄격한 가부장제 안에서 장남에게 보장된 위계질서가 차남, 막내 동생에 의해서 무너지는 사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계승자가 장남으로 이어져 내려오지 않고, 차남 혹은 막내를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야곱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야곱은 가부장적으로 확정된 위계질서를 바꾼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지만, 마침내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신앙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희망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는 ‘희망’은 ‘아직 아닌 존재’(noch-nicht)의 존재론이라고 합니다. 그가 볼 때 인간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완성되지 않은 존재이며, 자신의 모든 본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이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성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존재의 바탕에 놓여 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인간 존재의 필연적 특성입니다. 그런데 그 희망의 가장 친숙한 형태가 ‘낮에 꾸는 꿈’(백일몽)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밤에 꾸는 꿈’에서 인간의 의미심장한 본질을 찾아내고 낮에 꾸는 꿈을 의미 없는 몽상으로 치부한 것과 정반대로, 블로흐는 더 많은 행복을 소망하는 ‘낮꿈’에서 ‘유토피아의 위대한 사고가 출현하기 전의 사상적 싹’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낮꿈’은 ‘낮꿈’을 꾸는 자가 일어서서, 그 꿈을 실천적 행위를 통해 실현할 때, 희망의 꿈이 될 수 있다고 블로흐는 말합니다.

< 4 >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13장에 걸친 긴 부분을 차지하는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 12장부터 25장에 이르는 아브라함 이야기만큼의 분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 이야기는 놀랍게도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요셉 이야기가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집트로 이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배경 이야기로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모세의 탄생과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부각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는 단지 이스라엘의 이집트 이주와 출애굽 사이의 중개 역할을 하는 ‘중간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요셉 이야기에서 우리는 신앙인의 전형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당한 고통과 고난을 신앙의 빛에서 긍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삶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마찬가지로, 형제들의 시기로 목숨을 잃을뻔 하다가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시종이 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을 물리친 것 때문에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혀 13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그가 당한 고통과 고난을 생각하면 형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집트 바로의 권력을 나눠가진 요셉은 형들에게 보복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고난의 시기가 지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해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줍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들이 과거에 요셉에게 행한 일에 대한 보복을 받을까 두려워하면서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고 합니다(창 50,20-21).

가해자의 뉘우침과 용서의 요청이 화해의 전제가 아닙니다. 요셉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형들을 용서했기에, 화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피해자가 가해자들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당한 고난이 개인적 고난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나아가 이집트와 주변 세계를 함께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커다란 구원 계획안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고백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당한 개인적 고난과 고통이 개인적인 차원의 사건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더 큰 뜻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소하고 개인적인 고통과 고난일지라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그것은 결코 사적인 고통과 고난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더 큰 구원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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