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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감탄하는 믿음

기사승인 2020.05.29  16: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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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화 한 묵상 9

한 성자가 여행길에 지쳐 길옆에 누웠습니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을 때, 어떤 화가 난 순례자가
그를 깨우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신자들이 성전을 향해
머리를 숙여 절하는 시간이오. 그런데
당신은 거룩한 성전 쪽으로
발을 뻗고 있지 않소.
도대체가 엉터리 신자로군”

성자는 꼼짝도 않은 채 눈만 뜨고 말했습니다.
“내 발을 주님 계시지 않은 쪽으로
좀 놓아 주시겠소?”
- 앤소니 드 멜로, 개구리의 기도 1, 27 참고.

ⓒ하태혁

감동하거나 감격하면, 너무 재미 있거나 맛있으면, 누군가와 나누고 싶습니다. '함께'의 맛은 그렇게 마주 울리는 나눔의 메아리이겠지요. 나눔이 마주 울리게 하는 뒷맛은 더 넓고 깊어지니까.

박연준 시인이 수필집 『모월모일』(문학동네, 2020, p. 68)에서 신용목 시인의 시 한 부분을 나눠 줍니다. “모든 나무가 지구라는 둥근 과녁을 향해 날아든 신의 화살이었다 해도” (신용목, 「절반만 말해진 거짓」,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 2017))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진심으로 놀라며, 시란 감탄하기 위해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눈을 떠 감탄하기 위해!

창밖의 푸른 숲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검은 허무의 공간을 뚫고 날아와 지구라는 작디작은 과녁에 명중한 수많은 화살들이 숨 쉽니다. 미세먼지를 마셔 푸릇한 숨을 내쉽니다. 하나님의 화살들이 함께 춤춥니다.

시만 감탄하기 위해 읽을까. 믿음도 감탄의 시작이면 좋겠습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흑백으로만 보이는 일상 그대로를 색칠해주는 믿음이라면 어떨까요? 일상 그대로 얼마나 맛깔스러울지. 하나님의 영이 눈을 열어줄 때, 그제야 새로이 보이는 그대로의 진리를 만날 때 예배입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는 그러므로 일상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소외시킬 수 없다.

믿음으로 시작하는 감탄은 그렇게 성령의 시작(詩作)이자 모든 순간의 예배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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