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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만 보고 역사를 찾지 않고, 역사만 찾고 부호를 보지 못한다’

기사승인 2020.05.26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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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와 역(주역과 정역)의 해석학적 해후 (1)

▲ 태극의 하나님

한국 종교사에서 역과 성서의 대화

리하르트 빌헬름(1873-1930)은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선교사로 중국에 건너가 중국학 연구를 하면서 주역이 한자문화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성서가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견된다고 말할 정도로 상당한 경전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주역은 유교와 불교, 도교의 해석학적 도구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계몽주의자와 현대 물리학자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주역은 공자가 십익을 썼다는 전통적 속설를 바탕으로  한대 이후에 유가 경전에 편입되었지만, 편집 시기와 역의 내용을 볼 때 오히려 당시 동아시아의 공유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1)

만일 우리가 전혀 다른 종교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된 종교텍스트인 역과 성서로서 간텍스트적인 해석의 준거점을 발견한다면 오히려 서구 그리스도교 사상과 동아시아 문명과 대화를 촉발하는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한국 종교사에서 그리스도교와 주역과의 만남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천주교 신자였다가 ‘배교’를 한 후 서학(혹은 천주교 신앙)이 그의 학문적 성과, 특히 『주역사전(周易四箋)』에도 흔적이 남아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2)

다산은 예수회의 천주교 서적에 대해서 깊이 매혹되었으나, 외종형 진사 윤치충이 모친의 신주를 불사른 진산 사건 및 그의 조카사위 황사영으로 인해 발생한 백서(帛書)사건 등을 접한다. 그리고 “다산이 신유년(1801) 11월 고난의 18년 강진 유배 생활을 시작하면서 맨 처음 예기와 주역 연구를 착수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이원명은 지적한다.(3) 이런 조선왕조의 근간을 뒤흔든 시대적 위기의식의 중심에서 다산이 주역연구를 시작하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주역사전』을 포함한 『여유당전서』에서 역과 성서(천주교 신앙)가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다는 문헌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이후 기독교와 역의 사상을 대화시켜 ‘역의 신학’을 전개한 것은 이정용(1935-1996)이다. 이정용은 재미 한국인으로 주역을 통해 동양 세계관, 현대과학, 신학과의 대화를 선도해 온 공로가 있다. 그는 서구의 신학적 전통인 존재신학과 과정신학을 비판하며, 역의 신학을 주창한다. 희랍적 이원론의 존재신학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출현한 과정신학의 ‘과정’이 궁극적 실재를 표현하는 적당한 종교적 언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직선적 시간관과 궁극적 실재인 창조성을 비판하며, 순환적 시간관과 변화를 궁극적 실재로 하는 ‘역의 신학’이 더 타당성을 가진 신학적 사유라고 주장한다.(4)

서울대 종교학과를 은퇴한 후 한국종교문화연구소를 창립한 정진홍은 1980년에 이정용의 영문 저서를 『역과 기독교 사상』으로 국내에 번역·소개하면서 쓴 역자후기는 의미심장하다. 역을 그리스도교 문화를 위한 변증적이고 호교적인 자리가 아닌 “기독교 전승의 신학과 성서가 가진 표상적인 한계를 역경의 원리에 의해서 재서술함으로써 그 궁경을 뚫어보고자 하는 그 의도”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 동양적인 지혜를 커다란 전체로 하나”로 만드는 우주적 종교의 프로젝트로 ‘역의 신학’은 탄생한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5)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현실을 볼 때 성서가 ‘그리스도교적’인 것은 맞지만, 그리스도교가 항상 ‘성서적’이었던 것은 아니며, ‘신학’이라는 개념에서도 마찬가지인 바, ‘성서해석’과 ‘신학’이 동일한 범주가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의 해석’으로 ‘해석학적’ 담론을 전개할  여지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 해석에 일생을 바치고, 『성경의 원리』 4부작이라는 독창적인 역작을 남긴 변찬린이 텍스트로서 ‘역과 성서’의 해석학적 만남을 주선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 변찬린은 세계 경전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25세의 청년 시절에 성서와 동양철학인 역에 대해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그는 “운행우시(雲行雨施) 이 동양적 철학을 난 무던히 사랑했지, <내 구름타고 오리라> 한 신약의 말씀과 동양적인 철학은 어찌도 그리 흡사한가? 난 지금 엄청난 정신적인 무엇을 잉태하고 있네. 어느 날인지 이 정신적인 산모는 반드시 귀여운 아들을 탄생시킬 것일세”라고 말한다.

1972년경 제자들에게 성경강의에서 역 사상을 피력하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1978년에 「성서(聖書)와 역(易)의 해후邂逅」라는 글에서 그 실체의 일단을 드러낸다. 이 글은 다석과 훈민정음을 같이 연구한 이정호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이정호는 국어학자가 아니라 정역 연구의 일인자라고 자타가 평가하는 역 사상가이다. 그는 「성서와 역의 해후」의 창조적 해석에 크게 탄복하여 저서 3권(아래 사진)을 며느리를 통해 변찬린에게 전달하였다. 지음(知音)이다.

▲ 『주역정의(周易正意)』 저자 이정호 친필 증정

역의 부호와 성서의 역사를 대화시켜라

정약용이 천주교와의 교섭을 통해 탈 주자학적인 관점에서 주역에 주석을 하고, 이정용이  ‘역의 신학’을 통해 아시아의 보편적 신학을 지향했다면, 변찬린은 주역뿐만이 아니라 근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정역까지 포함하여 역 사상과 성서해석의 요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복희팔괘(伏羲八卦)와 문왕팔괘(文王八卦)를 극복한 정역팔괘(正易八卦)”를 중심으로 성서와 해석학적 지평의 융합을 시도한다. 역과 성서는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종교 문헌이지만 진리의 표현방식이 상이할 뿐 간텍스트적인 대화가 가능한 종교문헌이라는 것을 통합적인 이해체계를 구축하여 상응한 해석지평에서 성서와 역의 맥락을 대화시킨다.(6)

역에 의하여 암호화된 팔괘의 체계는 성서에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되었고 성서에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된 암호와 상징과 비유는 팔괘에 음양으로 부호화된 차이뿐이다. 다시 말하면 역에는 음양의 부호가 있을 뿐 역사는 없고 성서 속에는 역사가 있으나 부호가 없을 뿐이다.
- 변찬린, 「성서와 역의 해후」, 『증산사상연구』(4), 1978, 141.

그는 성서의 역사에 표현된 인물과 사건을 역의 팔괘(와 주역과 정역)에 부여된 인격성, 방위성, 자연물, 신체부위 등의 상징성을 대입하여 해석학적 시도를 한다. 우리는 짧은 지면의 한계로 「성서와 역의 해후」에 담긴 방대하고 심오한 내용을 자세히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7) 이 글에서는 성서와 역은 해석학적 틀만 갖추어지면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자세한 것은 ‘ᄒᆞᆫᄇᆞᆰ성경해석학’을 설명할 때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기로 하는 것을 독자들은 양해해 주기 바란다.

사례 1) 주역과 성서의 해후 : 벽옥과 홍보석은 태극

▲ 태극

만일 동아시아에서 역 사상을 아는 지식인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한다고 할 때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혹은 역 사상을 모르는 중동의 지식인은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할까? 전자는 역의 표현방식이고 후자는 성서의 표현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역 사상을 모르는 요한계시록의 편집자는 ‘파랑과 빨강’이라는 색채로 표시하고, 역의 편집자는 ‘태극(太極)’으로 도식화할 가능성이 크다. 역에서 태극은 만유를 생성하게 하는 존재근거이고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상응한다. 이를 변찬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 4:2–3)

이 성구는 하나님의 모습과 천사들의 모습과 생명과의 모습을 미술적인 색채 감각으로 추상화하고 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은 벽옥(碧玉, 푸른색)과 홍보석(紅寶石, 붉은색)으로 곧 태극의 형상이며 하나님을 호위한 천사들은 무지개의 색으로 표현되고 모든 생명계는 녹색으로 추상화되어 있다.
- 변찬린, 『성경의 원리(중)』(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9), 64.

사례 2) 성서와 정역의 중매: 낡은 세상(선천)의 16일이 새 세상(후천)의 초하루가 된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에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솔 아래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한다. 애굽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멸하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는 40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 구원의 땅, 가나안에 도착한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이었다. 가나안은 새 세상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이를 변찬린은 “애굽은 낡은 종교, 낡은 관념을, 광야는 중생하는 도량을, 가나안 땅은 새 세상, 새 종교이 장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한다. 변찬린이 주목하는 것은 축복의 땅인 가나안의 첫 하루는 낡은 애굽과 광야 생활의 연장선상인 16일이 아니고 새 세상의 첫날이라는 것이다. 변찬린의 얘기를 들어보자.

* (여호수아 5장 10절에 의하면) 만나가 그친 날은 16일에 해당한다. 유월절은 정월 14일 밤을 양을 잡고 그 이튿날에 가나안 땅 소산을 처음 먹었으니 정월 보름날이고 그 다음 날 만나가 그쳤으니 16일에 해당한다. 만나가 그친 날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만나가 그친 16일은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는 첫날 곧 초하루가 된다. 그러므로 이 성구에서 다음과 같은 숨은 진리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낡은 세상의 16일은 새 세상의 초하루가 된다>. 16일 = 초하루. 이 난해한 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밝힐 능력이 없다. 오직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본 고의 목적은 성경을 해명하는데 있으므로 역의 사상을 이곳에 혼합할 필요가 없다. 성경은 성경으로 순수하게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 변찬린, 『성경의 원리(중)』(서울: 영일문화사, 1980), 271.

필자주) 변찬린은 1980년 출판한 『성경의 원리(중)』에는 위의 글처럼 역 사상을 반영하지 않고 문제제기만 하지만, 1978년에 이미 위의 문제제기에 대해 정역으로 성서와 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성경의 원리』에는 다종교적 언어, 간텍스트적 해석, 다학제적 방법이 도처에 기술되어 있다.

“<선천(先天) 16일 달이 후천(後天) 초하루 달이 된다>는 일부의 예언을 생각하자. 정역(正易)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복상기월당천심(復上起月當天心) 황중기월당황심(皇中起月當皇心)> 또 <월복우자(月復于子)하니 30일이 회(晦)니 후천이다 >라는 말이 있다. 윗 글의 뜻은 달을 선망(先望: 한 달을 둘로 나누었을 때 앞의 보름) 제일 일에 기산(起算)하면 15일에 가서는 천심에 당(當)하니 이것이 천심월(天心月)이고 달을 제16일에서 기산(起算)하면 15일 후에는 황심(皇心)에 당(當)하니 이것이 황중월(皇中月)이다. 따라서 기산점을 표준하여 말할 때는 선천월(先天月)이 복상월(復上月)이요, 후천월(後天月)이 황중월(皇中月)이지만 15일 후 달을 표준하여 말할 때는 전자가 천심월이요, 후자가 황심월(皇心月)이 된다. 그러므로 황중월은 선천 16일의 달이요, 후천 초하루의 달인 것이다.”
- 변찬린, 「성서와 역의 해후」, 『증산사상연구』(4), 1978, 177.

사례 3) 주렴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변찬린의 「태극도(太極禱)」

주자학의 비조인 주렴계는 우주의 근원을 태극(太極)이라 하고 태극에서부터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도해(圖解)하여 ‘「태극도(太極圖)」’를 그린다. 이에 249자의 해석을 붙인 것이 『태극도설(太極圖說)』이다. 이 도서는 주희(朱熹)가 『근사록(近思錄)』을 편찬할 때 책의 첫머리에 실었고, 퇴계도 『성학십도』에서 10개의 도학의 학문체계가운데 첫 도상에 실을 정도로 유교 학자에게는 해석서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주렴계가 역 사상에 근거하여 우주의 생성과 인륜의 도리를 밝힌 『태극도설』과는 달리, 변찬린은 “성서(聖書)와 역(易)은 음양(陰陽)과 같고 남자(男子)와 여자(女子)와 같다”고 하고, 성서와 역을 음양조율하며 「태극도(太極禱)」를 읊는다.

「태극도(太極禱)」는 태극의 하나님에게 건도성남(乾道成男)한 남성(乾)과 곤도성녀(坤道成女)한 여성(坤)이 음양으로 화합하여 새 시대의 아들딸을 낳는 새 인류의 조상이 되게 해 달라고  올리는 새로운 ‘창세기’의 기도이다.

태극도(太極禱)(8)

쌍닫이 대문大門을 활짝 여소서
열쇠와 자물통의 연분緣分으로
성도成道한 건남乾男과 곤녀坤女가 드오니
거룩한 손을 높이 쳐들어
만대萬代의 축복을 내려 주소서.

함장가정含章可貞하신 나의 신부新婦여
숫봉鳳과 암황凰이 깃을 드리운 
태극太極의 집, 무극無極의 내실內室에
금촉대 휘황輝煌하게 밝혀놓고
첫날 밤 신방新房을 차리사이다.

토기장이 하나님을 닮아
지아비와 지어미된 우리
오손도손 속삭이는 밀어密語와 정어情語는 
태초太初에 계신 말씀이 되어
의미意未를 낳게 하소서
상징象徵을 빚게 하소서.

천지天地와 일월日月의 덕德을 얻어
어제는 수화기제水火旣濟로 포옹하고
날개 돋친 영원한 오늘은
지천태地天泰의 괘효卦爻로 합환合歡하오니
이 사랑을 어여삐 여기소서.

새 부모父母가 된 내외內外
새 조상祖上이 된 부처
우러러 태극太極의 괘상卦象을 본받아
한 동그라미 안에
여덟 식구食口 단란團欒한 가정을 이루어
생육生育하고 번성蕃盛하게 하소서.

「태극도(太極禱)」는 성서와 역의 해석학적 전통을 포월하여 역과 성서, 성서와 역이 창조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성서와 역의 존재근거가 ‘태극의 하나님’임을 논증한 후 다음에는 예수가 64괘의 대표괘인 건위천괘에 상응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태극의 하나님과 건위천인 예수’라는 논증을 받아들인다면 “필자(변찬린)는 성서와 역을 해후시켰고 중매시켰다. 이제부터 성서와 역은 교감하여 새 시대의 아들 딸을 낳을 것이다”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다음에는 새로 발굴된 변찬린의 「건괘乾卦로 본 예수 소전小傳」의 전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미주

(미주 1) 역의 종교문헌적 성격은 다음을 참고할 것: 김승혜, 「周易의 現代的 意味 : 역의 종교사학적 고찰을 거쳐-」, 『東亞硏究』, 1982, 49-80; 강돈구, 「정역의 종교사적 이해」, 『종교이론과 한국종교』, 박문사, 2011, 431-453.
(미주 2) 원재용, 「다산 정약용과 서학/천주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 『한국교회사연구소』(39), 2012, 37-145.
(미주 3) 이원명, 「茶山의 周易觀」, 『泰東古典硏究』(10), 1993, 709-712.
(미주 4) 신재식, 「이정용의 신학」, 『한국문화신학논문집』9, 2006, 307-332; 황필호, 「기독교와 주역」 : 이정용의 변화신학을 중심으로」, 『우원사상논총』 6, 41-68.
(미주 5) 이정용·정진홍 역, 『역과 기독교 사상』(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0), 300-301.
(미주 6) 화쟁해석 혹은 장자 해석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이호재, 『한밝 변찬린: 한국종교사상가』, 602-638; 같은 저자, 포스트종교운동, 62-71.
(미주 7) 「성서과 역의 해후」는 별도의 단행본으로 내어도 될 정도로 해석학적으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주 8) 원문의 시감을 살리기 위해 한자는 그대로 살려두었다. 시적 비유와 상징을 살려두기 위해 별도의 해석을 하지 않았다. 변찬린, 『禪房戀歌』, 1972, 108-110.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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