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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놈의 골짜기와 아겔다마에서(사 32:9-18; 행 1:12-26; 요 16:16-24)

기사승인 2020.05.22  17: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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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절 일곱째주일(5월24일)

1. 오벨과 망대가 굴혈이 되며

오늘 구약 본문 이사야 32장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사 32:9-11)

한마디로 심판의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볼까요?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사 32:12-14)

여기서 오벨은 ‘솟아 오른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동남부의 구릉이자 견고한 요새입니다. 그런데 ‘도시가 섰던 언덕(공동변역)’인 그 견고한 성과 망대가 굴혈(窟穴), 곧 땅 속으로 깊이 패어 들어간 구멍이 되어버렸습니다. 무너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심판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심판하면 바벨론의 침공을 통한 유다의 멸망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사야 본문은 바벨론의 침공이 아닙니다. 앗시리아의 침공을 말합니다. 따라서 말씀의 배경을 조금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6장에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말씀이 나오죠? ‘웃시야 왕이 죽던 해(사 6: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10대 왕인 웃시야는 비교적 나라를 잘 다스려 그가 통치할 동안에는 나라가 평안했습니다. 그리고 웃시야 왕의 아들인 11대 요담도 그나마 나라를 잘 다스립니다. 성전을 증축하고 성읍들을 견고하게 건축하고, 암몬과 싸워 이기는 등, 아버지 웃시야처럼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역대하 27장에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 27:6).” 그러나 요담은 16년을 통치하고 41세로 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2대 아하스 왕 때입니다. 할아버지와 또 아버지와 달리 아하스는 이상하게도 일평생 철저한 우상숭배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역대하 28장 말씀은 아하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대하 28:1-4)

바알 우상을 만들고 여러 산과 언덕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모든 큰 나무 아래에서 아세라 여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아하스 왕은 심지어 자기 왕자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기 ‘힌놈의 아들 골짜기(the Valley of Ben Hinnom)’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시온 산 위에 건설된 예루살렘 성읍 주위에 산들이 있는데, 그 산과 시온 산 사이에 골짜기가 몇 개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입니다. 그냥 ‘힌놈의 골짜기(the Valley of Hinnom)’라고도 합니다.

▲ 힌놈의 골짜기(오른쪽)

아무튼 솔로몬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 내내 자기 자녀들을 불태워 우상숭배를 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늘 뜨거운 불길과 연기 사이로 아이들의 절규하는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태우는 곳’, ‘용광로’라는 뜻)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렘 7:31-34)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세운 우상의 제단과 인신제사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성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힌놈의 골짜기를 히브리어로는 ‘גיהנום(게 힌놈)’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음역하면 ‘게엔나(γέεννα)’가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옥 불’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이 힌놈 골짜기에서는 항상 쓰레기를 태우거나 인신 제사를 위한 제단에서 불이 솟구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게 힌놈’을 통해 평생 꺼지지 않는 뜨거운 ‘지옥 불’을 상상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유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람(수리아) 왕 르신과 이스라엘(에브라임) 왕 베가를 통해 징계하십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한 것입니다. 이때 아하스는 앗시리아에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당시 앗시리아는 북쪽에 곰처럼 버티고 앉아 있던 강대국 있었습니다. 사실 앗시리아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에게 위협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반 앗시리아’ 동맹을 맺습니다. 그리고 유다도 그 동맹에 가담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오히려 앗시리아를 의지합니다. 이때 궁중 예언자였던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하스에게 전합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사 7:4-7)

강대국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이 유다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예언자’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어이 앗시리아 군대를 불러들입니다. 따라서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은 앗시리아에 의해 무너집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아하스 왕은 이제 앗시리아 왕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후, 당나라가 신라에 압력을 행사했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략한 후, 창씨개명을 요구하고 신사 참배를 강요했던 것과도 같습니다. 앗시리아 왕은 유다 땅에 앗시리아의 우상의 제단을 그대로 본 따,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 놓고 아침저녁으로 제물을 드리도록 강요했습니다. 또한 유다는 앗시리아에 엄청난 양의 공물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쥐어짭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했던 유다는 주권을 빼앗긴 허수아비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후 아하스 왕에 실망한 이사야는 왕궁을 떠납니다. 궁중 예언자로서 공적 활동을 접고 세상을 등진 것입니다.

2. 가룟 유다

구약 아하스 왕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나오는 가룟 유다와도 비슷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승천하신 것을 보고, 이제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배경입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2-14)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행 1:15a)”었는데, 제자의 이름이 나오죠? 모두 11명입니다. 하나가 빠졌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행 1:14b-17)

그리고 유다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행 1:18-19).” 여기서 ‘불의의 삯’은 예수님을 판 은전 30냥을 말합니다. 또한 ‘아겔다마’, 곧 아람어로 ‘피밭’이라는 장소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 힌놈 골짜기와 아겔다마(오른쪽) 가운데는 아겔다마 수도원

성지 순례자들은 아겔다마와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같은 장소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 멀리서 골짜기만 바라보고 지나간다고 합니다. 왠지 불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이들을 불태워 제물로 바친 곳이고, 신약 시대에는 유다가 죽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힌놈의 골짜기처럼 우상숭배와 인신제사가 판치는 지옥 불구덩이와 아겔다마처럼 배신과 배반이 난무하는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요?

3.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복음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예수님의 고별사가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요 16:16)” 그러자 제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요 16:17-18)

그러자 예수께서 답을 해주십니다.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요 16:19-20a)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기뻐한다고 하죠? 이렇게 불의가 잠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요 16:19).” 그리고 이렇게 제자들을 위로합니다.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b).” 제자들의 애통은 세상의 기쁨이 될 것이나, 마침내 제자들의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근심이 변하여 기쁨으로 변화되는 때는 언제인가요? 그 예를 이후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1-22)

여기서 예수님은 ‘여자가 해산한 때’를 말씀하시죠? 비록 해산 직선에는 출산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산모가 근심할 것이지만, 아기를 낳으면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곧 다시 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보지 못하는 잠시의 고통은 다시 보는 기쁨으로 인하여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언제인가요? 다시 구약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4.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아하스 왕에게 실망한 이사야는, 아니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실망한 이사야 선지자가 공적 활동을 접고 세상을 등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사야에게 많은 제자들이 몰려듭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예언을 문서로 정리시킵니다. 그 예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메시아 예언이죠? 오늘 구약 본문 후반부의 말씀이 메시아 예언에 해당됩니다. 말씀을 볼까요?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사 32:15-18)

무슨 때입니까? 바로 위에서부터 성령이 임하시는 때입니다. 그 때에는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는 새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인이 해산하여 아기를 낳은 기쁨의 때요,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을 다시 만난 소망의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때에 사람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배반했던 유다 대신, 새로운 직분자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대신 감당하게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0-22)

사람을 세우는데, 그는 예수의 부활을 담대히 증거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봉사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 가운데 제자들은 두 사람을 세우고, 그 중 한 사람을 제비로 뽑아 사도로 세웁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행 1:23-26)

그리고 복음서 말씀에 의하면, 이제 그 날에는, 곧 성령이 임하면! 또한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을 것이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오늘도 우리는 이 진실을 믿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비록 우리가 가는 길에 힌놈의 골짜기와 아겔다마가 놓여있을지라도, 배신과 배반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을지라도, 또한 불의한 현실과 불공평한 세상에 놓여있을지라도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는 정의와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의 교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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