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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들여진 그 날 위에 우리의 오늘이

기사승인 2020.05.19  17: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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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작이다

이미 긴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어느 한 날도 그냥 보낼 수 있는 날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5월18일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국가 폭력배들에 의해 피로 물들여진 그 날 위에 우리의 오늘이 있습니다. 그 한 주간 흘린 피들이 한반도를 적셨습니다. 그 땅 위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 날의 그들은 우리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생명의 외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늘을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 날의 아픔도 슬픔도 비명도 죽음도 우리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삶으로 기억합니다. 산 자로서 우리는 그날의 사람들이 꿈꾼 오늘을 만들어 갑니다. 더뎌도 끊임없이 그 길을 가고 넘어져도 서로 일으키며 갑니다. 그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해방을 춤춥니다. 희망을 알알이 거둡니다. 그 속에 그들이 있습니다.

그날은 우리 오늘의 시작이기에 그 사이에 시간 간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늘이 지치고 힘들다 할지라도 그날의 함성은 우리에게 다시 힘내고 시작할 수 있게 합니다. 곁길로 새고 거꾸로 갈 때에도 우리를 불러세우고 다시금 제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이러한 그날을 기억하며 오늘의 성서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하나님 야훼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그들의 삶이 하나님과 계약한 대로 진행될 리는 없습니다. 계약이 파기될 위험이 상존합니다. 사람으로서 또 집단으로서 피할 수 없는 한계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과의 계약이란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것으로서 계약한 것 자체가 무모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일반계약 같았다면 그 계약은 벌써 무효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유효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계약회복의 길을 열어두셨기 때문입니다. 일상에도 그러한 장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안에 회막을 짓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죄 가운데 들어오셨습니다. 거기서 고백과 용서가 일어나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관계가 회복됩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일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제한적입니다.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대속죄일입니다. 이 날 대제사장을 위한 속죄제가 거행되고 그 다음에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가 이어집니다.

이를 위해 제물로 두 마리의 속죄염소와 한 마리의 번제양이 선택됩니다. 속죄염소 한 마리와 번제양은 제물로 바쳐지고 남은 속죄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지고 광야로 내보내집니다. 우리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 결과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죄로 더럽혀진 성소와 회막과 제단이 성결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죄가 소멸됩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처음 상태를 회복하고 또다시 함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속죄제사는 새로 다시 시작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와 같은 장치를 허락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계약을 지킬 수 없는 존재와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약으로 사람을 얽어매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계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세상을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도입니다. 강제와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전쟁과 착취가 없는 평화의 세상입니다. 사람과 생명이 목적인 세상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편만한 세상입니다. 생각만 해도 참 좋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그러한 나라를 만들고 온세상이 그 나라가 되게 하시려고 기획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겐 불가능한 시도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은 바보이셨을까요? 하나님의 그와 같은 행동은 그렇지 못한 세상을 부정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그렇게 하심으로 부정하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하나님의 기획과 일치할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뜻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때문에 사람을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고 사람들이 그의 백성 내지 자녀가 되는 관계를 이 세상에 실현시키시려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 기획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하나님과 사람들이 처음에 섰던 출발선에 다시금 설 수 있게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과 용기를 주십니다.

그 형식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지만, 그 의도와 내용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성전이라고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전은 여전히 더럽혀질 수 있고 더럽혀지지만, 그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우심과 우리의 ‘회개’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늘 다시금 시작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계시록 6장에 따르면 억울함을 갚아줄 것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 있습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 피흘림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그들은 절규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당한 일들이 당분간 더 계속되리니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새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다 이루었다.”

주님은 그들을 새세계로 맞아들이시며 우리를 그 자리에 초대하십니다. 새로 열리는 새세상 문앞에 우리를 함께 세우십니다. 그 새세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며 꿈꾸셨던 세상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계약의 당사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십니다. 우리의 지난날을 모두 털어내고 새세상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저 함성 속에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십니다. 저 살육의 자리에서 죽어간 이들의 억울함을 씻어 주시는 주님께서 새세상을 시작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부름에 응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다시 시작하는 우리이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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