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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사람들은 왜 창조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기사승인 2020.04.07  16: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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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1

< 1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최근 한국교회 역사상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 감염병으로 주일예배를 비롯한 교회 안에서의 모든 집회를 잠정적으로 중지하게 된 것이지요. 언제 이 사태가 진정되어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집에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가오는 봄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 19’도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주님의 품에 안아주시고, 유족을 위로해주시기를, 특별히 목숨을 걸고 방역과 치료에 전념하고 의료진과 당국자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상공인들과 노동자들을 기억하시고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빠르게 지구촌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감염병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혐오와 배제와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인류가 하나 되어 힘과 지혜를 모으는 기회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미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집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정 중지된 수요예배 시간을 활용해, 온라인 성경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는 방식이 아니지만, 시대의 위기를 공부의 기회로 삼기위해 시작했으니, 성도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

이번 온라인 성경공부는 ‘인물 중심’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비록 오래 전의 사람들이지만,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원형적인 인간상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옛 사람의 삶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간 길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 2 >

오늘 우리는 먼저 창세기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새번역’ 구약성경은 모두 1,530쪽인데, 그 가운데 창조 이야기,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겨우 5쪽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짧은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논쟁을 일으키고 있고, 특별히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기원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생각을 결정적으로 규정해 왔습니다.

성경의 창세기는 인간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라는 궁극적 질문에 대한 본질적 답변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 기자는 이 원인론적 질문에 대하여 과학적 답을 할 의도도 없었고, 충분한 과학적 지식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질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제기하고, 그 답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는 신학적 관심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진화생물학이나 사회학적 관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고, 그 해석과 주장을 둘러싸고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많은 과학적 진실, 특히 지질학, 고고학, 인류학, 진화생물학 등이 쌓아온 엄청난 증거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지금도 창세기를 우주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근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에덴동산의 첫 인간들의 진짜 후손으로 생각합니다. ‘창조과학회’는 그래서 지구의 역사를 6천년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과학자들은 46억년으로 계산하고,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라, 빅뱅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창세기가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설화, 그러나 유치한 옛 날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다시 말해 ‘자유를 주는 동시에 파괴적이며, 인간 책임성에 대한 찬가이자 인간의 사악함에 관한 어두운 우화이고, 과감한 행동에 대한 찬사이자 폭력적 여성 혐오 선동’ 이야기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3 >

그렇다면, 창조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고, 유대인들은 왜 창조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을까요? 우리는 창세기에 실린 창조 이야기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이른바 모세 5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언제 실리게 되었는지 그 시기는 알려져 있습니다.

▲ 히브리 사람들의 우주관 ⓒGetty Image

현재 학자들은 대부분 우리가 아는 형태의 이 이야기가 기원전 6세기에 나왔고, 이 이야기가 들어간 모세 오경은 주전 5세기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보는데, 이는 대체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왜 창조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을까요? 유대인이 자신의 뿌리를 아브라함에게서가 아니라, 천지창조까지 소급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이해하려면, 유대인에게 일어난 재난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재난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한 유다의 멸망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주전 597년, 587년, 그리고 582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유다를 공격, 유다 땅을 철저히 파괴하고, 유다를 도살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유다 지도층 인사들은 그만두고라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쟁, 굶주림, 질병으로 죽거나, 처형당했고, 일부는 이집트로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

주전 8세기에는 25만 명이 넘었고, 주전 597년의 첫 번째 바벨론 포로기 후에도 그 절반은 되었을 유다의 인구는 주전 539년, 최초의 포로들이 귀향한 후에 2만 명을 넘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유다 땅이 얼마나 황폐해 있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불타버렸고, 그와 함께 유다 백성의 정체성이었던 야훼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과 제의공동체도 와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다인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요. 세 차례에 걸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의 숫자는 예레미야서에 의하면 정확하게 모두 4,600명이었다고 합니다(렘 52,28-30). 이것이 남자 성인들만을 계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체 포로의 총수는 그 수자의 3, 4배를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들 유대인들은 바벨론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모여 살았습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정복당한 다른 지역에서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은 상승기에 있던 바벨론 제국의 노동력 풀을 부풀려 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유대인을 포함하여 아시리아인, 메디아인, 스키타이인만이 아니라, 빚을 갚지 못해 잡혀온 토박이 바벨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벨론에는 일종의 노예 세계주의가 있었던 것이지요. 포로들은 관개용 도랑을 파야 했고, 밭을 갈아야 했고, 포도나무를 정리해야 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벽돌을 구워야 했고, 요새, 지구라트, 왕궁을 지어야 했습니다.

포로들은 매일 에사길라 - ‘들어올린 머리의 집’ - 이라고 부르는 화려한 바벨론 신전 단지와 7층짜리 거대한 지구라트 에테메난키, 즉 ‘하늘과 땅의 기초 신전’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놀라운 광경에 대한 히브리인의 기억은 거드름을 피우는 자만이나 오만을 의미한다고 적절하게 재해석되어 ‘바벨탑’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포로들이 겪은 고초와 굴욕, 한 맺힌 울분을 대수롭게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의 처지는 사실 그렇게 가혹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록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죄인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집을 짓고,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것이 허용되었고(렘 29,5), 자기들의 방식으로 생계를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심각한 신학적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제의의 토대가 되었던 야훼 하나님의 약속, 곧 다윗에게 종말이 없는 영원한 왕조를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의심을 받았습니다. 야훼만이 전능하신 유일신이고, 이방신들은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민족 신학도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붕괴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민족의 재난은 슬픔만이 아니라 의심과 비아냥의 샘도 두드려 열었습니다. 야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훼는 돌보지 않습니다. 야훼는 바벨론의 신 마르둑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신 마르둑은 원래 ‘폭풍의 신’으로 오래 전부터 바벨론의 수호신이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이 두려워서 그냥 ‘벨’(Bel), 즉 ‘주’(主)라고만 불렀습니다. 마르둑은 경쟁관계에 있는 모든 신의 힘을 흡수하여, 우주의 주인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지요.

다른 한편에서 이런 재난이 야훼께서 친히 행하신 징벌이라고 느낀 사람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하나님의 공의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겔 18,2-5; 애 5,7). 예언자들의 말을 받아들인 경건한 사람들은 자기 민족이 죽을 죄를 저질렀고, 따라서 하나님 자신이 진노로 이스라엘을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으로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런 절망과 위기의식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추방당해 처음으로 접촉하게 된 당시 제국 바벨론의 위용 앞에서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그들이 우주의 배꼽이라고 확신했던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프라테스 강변의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북적거리는 도시는 부유하고 세련되었으며, 또 아름다웠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거대한 도시 성벽과 공중정원,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재구성되어 있는 이슈타르 성문은 유약을 바른 벽돌로 이루어진 그 웅장함으로 도시의 위엄을 증언해줍니다. 유대 포로들이 받았을 충격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처에 세워진 이방신들의 웅장한 신전들은 유대인 포로들이 믿었던 야훼 하나님이 정말 최고의 유일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혹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온 유다 지도층은 절망 속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유배지로 추방당한 그들은 주변 강대국들과 그들의 신들에 대하여, 또 자기 민족의 비극과 그 의미에 대하여 새로운 방향을 부여하고, 나라를 잃은 유대인 공동체를 궁극적으로 재건하기 위한 미래를 설계해야 할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언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나서야 했습니다. 예언자들은 민족의 재난에 대한 신학적 해명을 제시하고, 미래를 위한 소망의 불꽃을 살려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가 당한 비극은 민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며, 이 심판은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준비시키는 정화 과정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제 예언자들이 예비한 길을 따라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새로운 국가를 성전 중심의 제의적 공동체가 아니라 – 어차피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갈 전망도 보이지 않았기에 - 전통과 율법의 고수를 특색으로 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했습니다. 안식일과 할례의 엄격한 준수가 강조되었습니다. 국가와 성전이 없고, 제의도 끝장난 상황에서 그들이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표식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때까지 구전되거나, 문서로 보존되어온 역사서와 제의법들을 수집하고, 편찬하고, 확정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은 이제 ‘제의 공동체’에서 ‘책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기간동안 유대인들은 이른바 ‘모세 5경’을 편찬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유배당한 남의 땅에서 그들은 율법 책으로 과거를 고수하면서, 미래를 대비한 것이지요.

유대인들의 70년 바벨론 포로기는(렘 25,11-12) 이스라엘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기였습니다. 전환은 먼저 이스라엘의 신앙에서 일어났습니다. 근동의 한 작은 국가의 부족신이라고만 생각되었던 야훼 하나님은 진정으로 세계사의 주재자이자 우주의 창조주로 고백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으로써 제의가 아닌 율법을 중심으로 ‘책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유대교’(Judaism)가 탄생된 것도 역설적이게도 포로기가 준 하나의 선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언자들과 포로로 잡혀간 유배지에서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던 유다 지도층 인사들에게 70년 바벨론 포로기는 결코 오지 않는 봄을 원망하면서 절망했던 고통스러운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유다에서 추방당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민족어로 유지했지만, 보통 그 언어학적 사촌인 아람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신-바벨론어와 더불어 바벨론의 일상어였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과 그들을 잡아온 사람들 사이에 언어의 장벽은 없었고, 태생이 좋은 히브리인에게는 사회적 장벽도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온 상류층 사람들은 궁정에서 사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유대인 포로 가운데 학식 있는 일부는 옛 아카드어, 옛 바벨론어, 심지어 수메르어까지 익힐 수 있었는데, 이 고대어들은 느부갓네살의 제식에서 사용되었고, 바벨론 서기들이 자기 민족의 신성한 이야기를 유지해가는 데에도 이용했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대응 서사’를 구축해야 했습니다. 야훼는 더 이상 지역적인 신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작가는 야웨가 전능하신 우주의 창조주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야훼는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님이시기에, 유다가 망한 것도, 바벨론 제국을 신의 훈육적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으신 것도 야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권력자인 느부갓네살 같은 사람도 가신을 부리듯이 부릴 수 있는 야훼 하나님은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며, 유대인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만드셨다는 선언입니다.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 동안, 그리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뛰어난 방식으로 엮이게 된 히브리 성서는 더 이상 아브라함과 히브리인의 기원에서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서 시작되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왜, 그리고 언제 유대인들이 자기들만의 창조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는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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