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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기사승인 2020.03.25  17: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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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묵상하며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13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5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17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태복음4:12~17/새번역)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죽음의 어둠 속에 갇히는 일은 불상사입니다. 그것은 뜻밖에 엄습해온 사고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빛이 비치고 하나님 뜻이 이뤄질 때 사고는 사건이 됩니다. 예상 못한 놀라운 사건으로 바뀝니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새로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하태혁

‘삶이 새로워지는 사건’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삶이 새로워지는 사고’는 어색합니다. 사고는 되도록 빨리 수습해서 그 이전으로 복구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건은 벌어진 일의 의미를 깨달을 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특별한 전환점입니다. 사고와 사건의 차이를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명쾌하게 정리합니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예컨대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사건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개가 어떤 날 사람을 물었다’라는 평서문에서 끝나는 게 처리이고, ‘그는 도대체 왜 개를 물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문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게 해석이다.

죽음의 땅 어둠 속에 주님께서 빛이 비출 때,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이방인의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가서 함께 살아가는 사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 돌이키라는 초대입니다. 삶과 초대, 혹은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주님께서는 “삶으로써 선포”하십니다. 죽음의 땅 어둠 속에 갇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써 선포”하십니다. 선포와 삶은 둘이 아닙니다.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 삶은 광야의 시험을 돌파한 존재의 몸짓입니다. 유혹을 이겨낸 존재로서 함께 살아가십니다. 자신을 증명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세상권력을 의지하라는 유혹을 이겨낸 삶으로서 함께 하십니다. 선포 이전에 함께 사는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사건인 이유입니다. 삶이 없는 존재의 선포일 때, 어찌 빛을 비추는 사건일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선포는 존재의 뿌리에서 돋아난 꽃이요 열매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삶의 태도를 돌이켜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자는 초대입니다. 생각과 감정의 일시적 후회가 아니라 몸짓과 존재의 혁명적 전환입니다. 그래서 그저 식민지 상황 이전으로 복구되는 사고 처리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전에 상상도 못한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코로나19는 사고입니까, 사건입니까? 코로나 19를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코로나19는 분명 뜻밖의 손님입니다.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배웅하느냐가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그저 빨리 처리해서 복구하려고만 하면, 사고처리일 뿐입니다. 사고로만 본다면, 배움이나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급히 복구하려고만 하면 사고는 계속될 것입니다. 더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사건으로 본다면 다릅니다. 이전과 다른 존재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의 사건으로 본다면,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저 재수 없이 당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전환점이 될 사건으로 만날 것입니다.

전염병으로 어둠 속에 앉은 이들 곁으로 다가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 어둠 속에 갇혔지만, 그럼에도 다가가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 갇힌 서로에게 다가는 마음 자체가 빛입니다. 그저 전염병 이전으로만 빨리 복구하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다시는 그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돌이키는 태도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어둠 속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회개입니다.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건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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