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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축 시대: 축 시대의 ‘원시반본(原始反本)’의 문명

기사승인 2020.03.17  18: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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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찬린의 ‘한밝’과 김상일의 신서학(新西學)

‘한밝’으로 만난 도연(道緣)

김상일은 변찬린을 학계에 정식으로 소개한 연구자이다. 그는 변찬린 관련 첫 학술서적인 『한밝 변찬린(한국종교사상가)』에 대해 2017년 12월 18일 「교수신문」에 다음과 같은 서평을 실었다.

필자(김상일)는 1988년 『한밝문명론』(지식산업사)을 출판한 직후 ‘변찬린(邊燦麟)’(1934-1985)이란 분을 처음 알게 됐다. 이 분의 호가 ‘ᄒᆞᆫᄇᆞᆰ’인 것이 인연이 된 것 같다. 『성경의 원리』 그리고 『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을 그 무렵부터 접할 수 있었다. 은퇴한 후 서재를 정리할 때와 미국으로 책들을 가져갈 때도 빼놓지 않고 꼭 챙긴 책이 이 두 책이다.
2017년 10월 저자로부터 『ᄒᆞᆫᄇᆞᆰ 변찬린: 한국종교사상가』를 받게 됐다. 30년 전 그 변찬린, 그리고 앞으로 쓰려고 하는 『단신학(丹神學)』에서 반드시 다루려고 했던 그 분에 관한 책이었다.(1)

필자는 1980년 후반에 유족으로부터 변찬린의 책을 김상일 선생에게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변찬린 연구를 하면서 인터뷰를 위해 김상일 선생을 수소문했지만 만나지 못하였다. 변찬린과 김상일은 생전에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ᄒᆞᆫᄇᆞᆰ’이라는 한민족의 종교원형을 세계적인 지평에서 보편화하려는 공감의식을 가지고 있음은 저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 김상일, “‘새로운 문명의 대안적 사유’로 호명한 이유는?”, 「교수신문」903호, 2017. 12. 18., 6면

김상일이 이사를 가도 반드시 챙긴 두 책 중 하나인 『선(禪), 그 밭에 주운 이삭들』은 1965년 변찬린이 32세 때부터 쓰기 시작한 종교수상록이다. 종교사상가로서 변찬린을 알려면 『성경의 원리』보다 오히려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시와 수필, 격언, 종교에세이 등  11장 142절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단편이다.

이 책의 머리말은 “東方의 빛, 和諍의 魂, 새 밝에게 드리는 구도의 葉信 1965년 여름 한밝”이라 쓰여져 있다. 필자의 주목을 끄는 부분은 변찬린이 ‘한밝’이라는 호를 쓴다는 사실이다. 아마 한민족의 종교적 상징어로 조명받는 ‘한’과 ‘밝’을 ‘한밝’이라고 하여 호로 사용한 것은 변찬린이 최초일 것이다. 

▲『선, 그밭에서 주운 이삭들』(1965년) 육필원고와 마니산 참성단; 한밝문명의 고향

변찬린은 왜 ‘한밝’을 자신의 호로 정하고 구도적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일까? 이름(名)은 이룸(成)이고 이름(至, 到)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세속의 이름을 버리고 고승이 제자에게 법명을 주어 그 뜻대로 살기를 염원하고, 가톨릭에서는 세례명을 주어 중생의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 ‘호’라는 것은 거듭난 삶을 사는 구도자의 지향점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호이다.

‘한밝’은 “대일광명을 뜻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종교사상”으로 한국종교의 문화적 원형이다.(미주 2)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에서 ‘밝’사상을 광범위하게 논증하고, 김경탁은 「한국원시종교사: 하느님관념발달사」에서 ‘밝’족의 ‘밝’시대를 언급한다. 김상일은 『한철학』(1983, 2014), 『한사상』(1986, 2014), 『한밝문명론』(1987, 2006),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2018)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저서에서 한국인의 사유체계의 독창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으로서의 ‘한’을 사색하고 있다. 또한 유병덕은 ‘한밝’을 한(桓, 韓)과 밝(朴, 光明, 太陽)이라는 두 낱말로 한민족의 종교맥락을 설명한다.(3)

‘한밝’이라는 호는 원래의 대도(大道)인 선맥(僊脈)을 밝혀 지구촌의 분열된 신관, 인간관, 생태관을 통합과 조화의 문명사로 되살리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는 동방의 종교문화적 원류인 선도(僊道)의 고향이 동이족이며, 이 선맥의 맥락이 고조선의 단군, 신라의 풍류, 근대의  최제우와 강증산 등 신종교 창시자의 언행에 계승됨을 밝히고 있다. 특히 역사시대의 죽음문화를 초극한 영의 시대의 생명문화로 탈바꿈할 수 있는 실재를 종교텍스트(특히 성서)에서 규명하여 인류에게 제시한다는 구도의 지향을 표현한다. 즉, ᄒᆞᆫᄇᆞᆰ은 ᄇᆞᆰ이라는 역사적 인간이 ‘산 자의 하나님’인 ‘한’이라는 궁극적 실재를 찾아가는 구도의 여정이다.

한편 ‘한밝’이란 용어로 변찬린과 인연을 맺은 김상일의 ‘한’은 종교신학적 언어로 인격신과 비인격적인 신을 포월하는 제일 원리이며, 축 시대의 지구촌 사유체계에서 그리스의 로고스, 중국의 도(道). 인도의 브라만에 맞설 수 있는 한국의 ‘문화목록어’이자 철학적 상표이다. 그는 일(-), 다(多), 중(中), 동(同), 혹(或)의 의미를 함의하는 ‘한’사상안에서 세계적인 학문적 지평을 확보하려고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그는 켄 윌버의 초인격 심리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한민족 의식 전개의 역사’를 아린기인 알층(에덴동산 잠복기), 감층(구석시 원시무리기), 어린기인 닥층(신석기 농경모계씨족 사회), 밝층(청동기 부계도시사회)의 네 개 층과 어른기를 무장(巫場), 선장(仙場), 법/연장(法/然場)의 네 개 장으로 구분한다. 알·감·닥·밝층은 무·선·법·연장에 상응하는 ‘ᄒᆞᆫ’사상의 전개사로 정리한다.(4)

그런데 학자들이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선(僊)과 선(仙)을 변찬린은 반드시 구별하여 사용한다. 또한 김상일도 1988년 『한밝문명론』(2006년에 『한민족 의식 전개의 역사』로 개제)에서 변찬린의 「선고僊(仙)攷」를 인용하는 대목이 바로 ‘제Ⅵ. 仙場. 26. 僊과 仙’이다. 바로 이 지점이 변화의 선맥(僊脈)을 상실하고 부활의 선맥(仙脈)이 개명되는 축 시대의 잃어버린 영성(靈聖)고리를 되살리려는 두 사람의 공동연구의 영역(靈域)이다. 김상일은 특히 “변찬린은 인류문명사에는 두 가지 맥이 흐르고 있는데 하나는 살아서 우화등선하는 선맥(僊脈)과 죽어서 시해선해 우화등선하는 선맥(仙脈)으로 분류한다. 이 두 종류의 구별은 변찬린 사상의 등록표와 같다”고 강조한다.

변찬린은 창세기 5장 24절과 히브리서 11장 5절을 상호 비교하며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성구에서 “옮겼다(僊의 遷去부분)”는 구절에 주목하면서 파자(glyphomancy)해석을 한다.(5)

이 성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옮겼다〉는 말이다. 〈옮겼다〉는 말은 이 장(場)에서 다른 장(場)으로 천거(遷去)됨을 의미한다. 삼차원 시공에서 사차원 시공으로의 옮김이다. 사차원은 피안이 아니라 삼차원의 자리에서 보면 새로운 장인 것이다.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천거(遷去)된 사람이었다. 죽지 않고 장생불사하는 도맥은 선(僊)인데 에녹은 선(僊)의 비의를 터득한 성서에 나오는 첫 사람이었다.(6)

바울은 성서텍스트에서 역사시대의 개명기에 타락한 역사적 인간인 아담과 영의 시대를 개명한 역사적 예수라는 신인(神人)을 상징적으로 대비한다. 타락한 인간(류)은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망결정론’을 사망시키고, 예수는 부활이라는 생명의 실상을 역사적 지평에 제시한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를 통해 ‘사망과 영생’에 대한 바울의 해석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변찬린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그리고 영의 시대로 문명사를 구분한다. 그는 동서단절의 종교문명과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인류’에게 새 축 시대인 영의 시대를 향해 한민족의 선맥과 성서의 변화와 부활의 도맥으로 역사시대와 영성 시대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의 골짜기에  풍류교(風流橋: 풍류의 다리)를 놓는다.

새 밝이여
인간의 창조는 삼막으로 구성된 극본이다
형형(炯炯)한 영안(灵眼)으로 선사시대, 역사시대와 영의 시대를 열연(熱演)하며 
관극(觀劇)하라.
각(各) 장(場)마다 개폐(開閉)하는 서설(序說)과 종말론적인 의미를 
대식견(大識見)으로 관조하지 못하면 대각(大觉)을 이루지 못하리.(7)

나는 다리(橋)입니다
낡은 세대와 새 세대를 잇는 가교(架橋)입니다
역사시대와 영의 시대를 잇는 대교(大橋)입니다.
마지막 때의 예언자이며 새 시대의 전도자입니다
빛나는 후생(後生)들이여
나를 다리삼아 이 허무의 심연
무의미의 골짜기를 건너가십시오.(8)

변화의 선맥(僊脈)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개명기에, 성서적 언어로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을 때 생물학적 죽음을 겪지않고 평화와 선화(僊化)의 세계에 나타나는 도맥을 말한다. 그러나 부활의 선맥(仙脈)은 선맥(僊脈)의 길을 상실한 후 즉, 성서적 언어로 인간이 타락한 후에 생물학적인 죽음을 당연시하는 상극과 사망의 세계에 발현하는 도맥을 말한다. 변찬린은 “엄밀히 의미에서 참 도는 선(僊)밖에 없다. 유불선(儒佛仙)은 잘못된 선천에서 발생한 비본래적 제이의적 종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후천선경이 개벽되면 유불선을 초극하여 대도의 선(僊)만이 조조(照照)히 빛날 것이다. 후천이 오면 모든 종교는 그 뿌리인 풍류도로 귀의할 것이다. 이것이 참 의미의 원시반본이다”(미주 9)라고 말한다.

원래 신과 인간이 단절되지 않고 본체계인 영성우주와 현상계인 시공우주가 교류하는 열린계의 허브역할을 하던 선맥과 선(僊)층은 철학적 이성의 세계관에 의해 신화적 사건으로 실재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기 시작하고, 인식체계에서 망각되어진다. 즉, 축 시대 이전의 통합적 세계관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존재구조의 뒤틀림 현상이다. 이로 인해 신관은 비인격적인 신관과 인격적 신관으로 분리되고, 통전적 인간은 육과 혼과 영이 분리되고, 우주적 세계관은 본체계와 현상계가 단절되어 영성과 이성의 분리되고, 종교의 삼직은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가 분리되는 역사시대의 세계관이 전개된다. 전의식의 통합적 세계관은 현의식의 분열적 세계관으로 문명사적 파열음을 내지만, 초의식의 포월적 세계관에서는 ‘원시반본’의 새 축 시대가 도래한다. 이를 변찬린은 변화의 선맥(僊脈)과 부활의 선맥(仙脈)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궁극적 인간이 ‘산 자의 하나님’(마 22:32, 막12:27, 눅20:38)을 만나는 두 가지 유형의 도맥을 성서의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변찬린, 『성경의 원리 上』, 한국신학연구소, 2019, 72-73.

변찬린은 우주적 신성인 ‘한’과 궁극적 인간인 ‘밝’을 타원형의 두 중심으로 삼아 ‘한밝’을 형성한다. 이를 토대로 성서의 변화와 부활이라는 도맥과 한민족의 선맥사상을 ‘풍류’라는 종교적 정체성으로 동서의 포월적 신관인 ‘한’과 역사적 인간인 ‘밝’이 신인합발(神人合發)하는  구도의 과정을 문명사적 지평에서 펼친다. 종교적 인간인 ‘밝’의 구도자가 ‘한’이라는 궁극적 실재를 찾아가는 인류 문명사에서 잃어버린 영생의 통로를 종교텍스트를 사경하며 개척하고 있다. ‘한’이라는 궁극적인 하나님을 모시고, ‘밝’이라는 빛의 존재로 민중과 더불어 화광동진(和光同塵)하는 것이 구도의 자세이다. 역사적 성인에게 ‘한밝’은 종교적 인간이 신인합발의 종교체험을 통해 궁극적 인간으로 탈바꿈하여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과 ‘밝’을 둘러싼 두 사람의 담론은 한민족의 종교적 독창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을 추구하는 문명사적 공감의식이다. 김상일은 아직도 ‘ᄒᆞᆫ’이라는 한국의 독창적 사유구조로 인류문명의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지적 작업을 아직도 진행 중이다. 대학 시절 은사인 한태동의 학문적 방법, 화이트 헤드의 과정철학과 존 캅의 과정신학, 수리철학 등을 포함한 다학제적인 사유체계에서 변찬린의 종교세계가 어떻게 평가할 지 필자도 자못 궁금하다. 그가 「교수신문」에서 밝혔듯이 필생의 역작인 ‘단신학(丹神學)’에서 변찬린의 종교사상을 언급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음 회는 변찬린과 유영모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다석 유영모는 함석헌과 더불어 2008년 세계 철학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소개된 종교인이다. 그런 그가 아직도 알고 싶어하고, 체험하고 싶어하는 ‘빛 맛’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다른 맛은 더러 보았습니다만, 이 빛 맛은 못 보았습니다. 빛 맛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맛도 소금 맛도 볼 수 있는데 빛 맛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았으면 하는 게 이 사람의 마음입니다.(10)

생전에 유영모를 몇 차례 만난 변찬린은 자신의 호인 한밝의 ‘밝’처럼 성서를 중심으로 ‘빛의 성찬’을 펼친다.

미주

(미주 1) 김상일, ‘새로운 문명의 대안적 사유’로 호명한 이유는? 「교수신문」 903호, 2017. 12. 18., 6면
(미주 2) ‘한밝사상’, 『한민족대백과사전』
(미주 3) 柳炳德, 「韓國宗敎 脈絡에서 본 圓佛敎思想」, 『문산 김삼룡 박사 회갑기념논문집』, 원광대학교 출판부, 1985, 1-58.
(미주 4) 자세한 내용은 김상일, 『한민족 의식 전개의 역사』, 지식산업사, 2006.;같은 저자, 『동학과 신서학』, 지식산업사, 2000; 같은 저자, 『수운과 화이트헤드』, 지식산업사, 2001.를 참고하기 바라며, 다음 기회에 다른 주제로 김상일의 연구를 구체적으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미주 5) 변찬린, 『성경의 원리(상)』, 한국신학연구소, 2019, 62-90.; 白川靜, 『字統』, 平凡社, 2007, 540. 에녹과 엘리야의 우화등선의 선맥(僊脈)과 모세와 예수의 부활의 선맥(仙脈)은 별도의 기회에 전면적으로 취급하기로 한다.
(미주 6) 변찬린, 「僊(仙)攷」, 『甑山思想硏究』 5輯, 1979, 195.
(미주 7) 변찬린,  『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가나안출판사, 1988, 110-111.
(미주 8) 변찬린,  『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같은 책, 1988, 134.
(미주 9) 변찬린, 「僊(仙)攷」, 같은 글, 207.
(미주 10) 류영모(다석학회), 『다석강의』, 교양인, 2016, 171-172.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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