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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애 3:55-66; 롬 7:14-25; 요 13:16-30)

기사승인 2020.02.28  16: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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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 첫째주일(3월1일)

1.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사순절입니다. 예수께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기념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서 본문인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겸손과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요 13:3-11). 이후에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당부하십니다(요 13:31-35).

그런데 이러한 섬김과 겸손의 구체적인 행동과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수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요 13:36-38)과 오늘 본문 말씀인 가룟 유다의 배반(요 13:21-30)이 교차 편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볼까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요 13:21b)” 그러자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요 13:22)”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께 묻고,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지목합니다. 말씀에 잘 나와 있으니, 함께 보겠습니다.

<카라바조 ‘그리스도의 체포’(1602)>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요 13:23-26)

이 떡 조각을 받은 후에, 사탄이 유다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씀은 전합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요 13:27a)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 13:27b) 물론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요 13:28-29)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요 13:30)이 되었습니다.

27절 하반절을 보면, 예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을까요? 그렇다면 유다의 길은, 곧 배반의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요? 피할 수 없는 건가요? 우리는 지난주 말씀에서, 하나님의 예정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는 데까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유다의 배반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서신서 본문인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답을 줍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 7:14-15)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이미 이러한 사건이 있었죠?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사무엘하 17장 말씀을 함께 볼까요?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삼하 17:1-4)

하나님은 다윗에게 당대의 두 지략가 ‘아히도벨’과 ‘후새’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이 식탁을 같이 할 정도로 신뢰했던 아히도벨은 나중에 다윗을 배반하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붙어, 반정을 꾸밉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물론 아히도벨의 입장에서 보면, 말년의 다윗 왕이 왕답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친할아버지가 됩니다. 따라서 다윗의 불의를 보고, 이스라엘의 미래는 떠오르는 왕자 압살롬에게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왕좌에 앉히고, 자신은 킹메이커가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압살롬에게 조언하는 아히도벨(왼쪽)과 후새(가운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친구 후새로 하여금 아히도벨의 계획을 꺾게 해 주십니다(삼하 17:7). 후새가 다윗 왕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다 준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다윗 살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후 아히도벨은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삼하 17:23)”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유다 역시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아히도벨의 길로 갔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복음서 본문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21a)”우셨던 것입니다. 그 증언은 구체적으로 이렇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 13:16-19)

무슨 말입니까? 다윗과 함께 식탁을 같이했던 아히도벨, 예수님과 함께 떡을 먹었던 유다가 발꿈치를 들었습니다. 배반했다는 말입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판다는 말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생사고락을 같이한 이가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참 서글픕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일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2. 광신도의 특성 10가지

이 시대를 혹자는 ‘3괴 시대’라고 합니다. ‘괴물 등장, 괴질 창궐, 괴변 속출’이 그것입니다. 제가 볼 때 괴물은 거대 권력을 장악한 적폐 카르텔입니다. 또한 괴질은 신천지 성도가 퍼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입니다. 괴변은 무엇일까요? 바로 유튜버들이 퍼뜨리는 사실이 약간 섞인 거짓 뉴스입니다.

행동경제학에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효과를 인류의 생존 본능과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시 인류로 돌아가 볼까요?

사실 원시 인류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소식을 들으면 놀랍니다. 이렇게 두려워하고 놀래야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많은 열매 나무를 발견했다.”라는 긍정적인 소식보다, “곰이 나타났다.”라는 부정적인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고, 또 그래야만 생존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보적인 사람보다 보수적인 사람이 이러한 부정성 효과에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수란 현상 유지와 생존에 가치를 두는 이념이고, 진보는 도전과 변화에 더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소식이 잘 전파되고, 혐오를 조장하고, 극단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라는 뜻입니다. 생존을 위해 잘 훈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성 효과가 극단적이 되면 광신이 됩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교양 영어 사전』 (인물과사상사, 2012)이라는 책에서 ‘광신도(fanatic)’의 특성 10가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첫째, 다른 모든 일을 배제한 채 하나에만 집중한다.
둘째, 세상을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본다.
셋째, 정상적 수준의 사회적 압력에 무감각해 사회적 표준에서 많이 벗어난다.
넷째,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 기본적인 분별력이 없다.
다섯째, 모순에 대해 무한한 관용을 가지고 있다.
여섯째, 자신이 하는 일의 적합성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일곱째, 흑백 이분법을 사랑한다.
여덟째, 변화를 한사코 거부 한다.
아홉째, 다른 사람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
열째, 자신의 광신을 유지시킬 수 있는 ‘하위문화’에 탐닉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두 종류의 광신도가 있습니다. ‘신천지 추종자’와 ‘전광훈 추종자’입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며 자신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파악하죠? 사회적 상식에서 벗어나 있으며 기본적인 분별력도 없습니다. 이분법적 사고로 적과 아군의 구별이 분명하고, 타자 배려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상식적이고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이러한 광신도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방법, 혹은 이들의 광신적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광신을 유지시키는 하위문화를 해체해야 합니다. 여기서 하위문화는 아마도 추종자 집단의 세뇌기술과 자신들의 조직을 든든히 하는 그 어떤 결속력이겠죠?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염 방지를 위해, ‘신천지 성도 전수 조사’에 들어갔으며 전광훈씨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되었습니다. ‘사문서위조 및 행사, 업무방해, 내란 선동,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도 받고 있습니다.

<신천지OUT 포스터와 전광훈>

그런데 이들은 우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밥상공동체를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발꿈치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불법적인 광신적 하위문화가 분열되고 해체되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소멸되어야만 건강한 기독교, 나아가 대한민국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3.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요? 왜 발꿈치를 들고 예수님을 배반할까요? 사도 바울은 그들 속에 거하는 ‘죄’라고 분명히 말해줍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인 로마서 말씀을 볼까요?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6-20)

그렇습니다. 그들 속에 거하는 죄 때문에,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리고 사도 바울도 일평생 이러한 번민에 쌓였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속에 거하는 죄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1-23)

결국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밥상공동체를 파괴하고, 믿음의 공동체, 사랑과 섬김, 겸손의 공동체를 배반하는 이가 사도 바울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도대체 누가 우리를 구원할까요?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a).”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가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삶은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롬 7:25b)”게 됩니다. 갈등과 번민이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갈등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죄는 우리를 옭아맵니다. 사탄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진정,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 곧 괴롭고 쓴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에게서 우리는 이러한 끊임없는 갈등과 번뇌를 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요 13:16-20).”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접한 이들은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사탄을 물리쳐 주십니다.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구약 예레미야 본문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4.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본문인 예레미야 애가는 한 도시의 멸망을 읊은 조가(弔歌)입니다. 한때는 자랑스러운 도시였으나, 이제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초토화가 된 예루살렘 성을 눈물로 묘사하는 노래입니다. 다섯 편의 시로 예레미야는 멸망당한 예루살렘 성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5장의 주제를 나열하면 이렇게 진행됩니다. ‘1.슬픔(예루살렘의 멸망)-2.원인(여호와의 진노)-3.소망(하나님의 자비를 구함)-4.회개(심판에 대한 회개)-5.기도(회복을 위한 기도)’의 순입니다.

바울의 실존적인 고민이 예레미야에게는 공동체의 고민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구약 본문인 3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참혹한 패망의 현실을 목격한 유다 백성의 비통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절망적인 폐허의 현장에서도 구원을 호소하는 예레미야의 신앙, 마지막으로 회개를 요청하는 예레미야의 애타는 절규와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호소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예레미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들어 볼까요?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애 3:55-59)

이제 예레미야는 이러한 탄식과 부르짖음의 원인이 되는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요청합니다.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애 3:60-66)

<‘낭만닥터 김사부2’ 인물 관계도>

이번 주에 끝난 TV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 2>(2020.1.16.~2.25)를 보면, 환자를 살리려는 김사부(한석규 분)와 그의 동료들이 있고, 또 환자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 돌담병원을 허물고 미래병원이라는 골프와 레저가 가능한 최고급 병원을 만들려고 하는 도윤완 이사장(최진호 분)과 박민국 돌담병원 원장(김주헌 분)의 패거리들이 있습니다(나중에 박 원장은 김사부의 진심을 알고 함께 돌담병원을 ‘응급외상센터’로 만드는데 힘을 합칩니다). 도윤완 이사장은 끊임없이 돌담병원을 폐쇄하고자 김사부를 따르는 이들을 이간질하고 협박하고 거짓말하고 돈으로 미혹합니다.

그러나 김사부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결국 온갖 고난 속에서도 이깁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았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이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은 오늘 예레미야 말씀처럼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반드시 멸하실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함께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조금 더 배려하고, 위로하고, 나누고 베풀어서 가룟 유다와 같이 우리 공동체 구성원 중,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거나, 또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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