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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출 19:1-6; 벧전 2:4-10; 마 16:13-20)

기사승인 2020.02.21  16: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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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현절 일곱째 주일(2월23일)

1. 목회자는 성경을 무시하고, 교인들은 성경에 무지하다!

『교회에게 하고픈 말』 (두란노, 2020)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전 백석대 신대원 교수인 류호준 교수의 책입니다. 이 책에서 류호준 교수는 오늘날 교회의 핵심적인 문제에 관해 이렇게 지적합니다. “목회자는 성경을 무시하고, 교인들은 성경에 무지하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한국교회에 온갖 문제가 생겼다!” 그렇습니다. 보수적인 교회들은 성경 자체(문자 자체)를 우상화하여 ‘성경 우상주의자’가 되었고, 진보적인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중시합니다. 또한 신학교와 교수들은 단지, ‘(서양)신학 지식 소매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러한 무지와 무시 속에서 성경의 본질은 희석되었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기에 ‘실천적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목회자와 말씀에 무지하기에 맘몬을 추구하는 중직자들이 이끄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말씀에는 무지하지만, 싸움에는 유능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에는 무관심하지만 자기 이익에는 밝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신앙 적폐 목록을 류호준 교수는 이렇게 나열합니다. “자기중심적 신앙, 종교적 열정 강조, 구원의 사회성에 대한 무지와 외면, 무차별적 고소·고발,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도덕성, 기업화된 교회, 시대착오적 성경해석 등등….”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요? 류호준 교수의 말입니다. “종교개혁의 후예라면 성경을 무엇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말씀을 무겁게 여기며 매일 그리스도와 죽고 사는 일에 천착한다면, 한국교회에 실천적 무신론자나 ‘카더라 신앙생활’ 성도가 없어질 것이다.” 결국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ad fontes)’입니다. 그 근본은 성경입니다. 류호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처럼 닮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가 말씀대로 빚어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극단주의나 근본주의 구호를 외치는 그리스도인, 무례한 기독교인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목사에 관해서도 류호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는 죽음과 삶, 이생과 사후, 시간과 영원, 비참과 구원, 심판과 회복 사이에 서서 그 다리를 이어 주고 건네주는 사람입니다. 달리 말해, 이쪽에 있으면서 저쪽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본향을 사모하도록 자극하고, 삶의 충만한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도록 도와주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가 목사이며 설교자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이 제사장(오늘로 치면 목회자)에 관한 말씀이라, 목회자에 관한 류호준 교수의 말을 한 구절 더 인용해 볼까요? “목회자가 교인들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거나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는 종교적 사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에 불과할 것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영적 부담감, 다시 말해 하나님의 값진 구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없는 사역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목회자가, 제사장의 나라로 부름 받은 교회가, 또한 천국의 열쇠를 받은 교인들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불행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의 나라로 부르시고(구약),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으로 선택하시는 말씀입니다(서신서).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어서 그들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복음서)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2. 제사장 나라가 되며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볼까요?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지 삼 개월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였고 그 이후, 모세가 시내산을 등정하여 하나님께 말씀을 받은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출 19:1-3)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 땅에서 히브리(떠돌이)로 살았던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4-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시는데, 그 목적은 이스라엘을 선민(혹은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세계만방에 ‘제사장 나라(a kingdom of priests)’로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통박사로 유명한 조병호 목사의 『제사장 나라 하나님 나라』 (통독원, 2014)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조병호 목사는 제사장의 나라에 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레위 지파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12지파 사이에서 제사장 지파로서 복의 통로가 되었듯이, 제사장 나라는 하나님과 세상 모든 나라 사이에서 복의 통로 역할을 하는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하여금 세우고자 하신 제사장 나라는 온 세상 사람들과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람 사랑 프로젝트였습니다.”

제사장 나라는 하나님의 ‘사람-사랑-프로젝트’라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키워드가 ‘제사장 나라’라면, 신약의 키워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서로 상충하는 다른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다시금 새롭게 세우신 나라가 제사장 나라를 함축하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장 나라의 ‘제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얼마나 위대한 사건인지 알 수 없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안에는 하나님의 용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병호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나라는 하나님의 용서가 있는 나라였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나아가 조병호 목사는 교회에 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안에 예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사람, 그래서 내 몸이 거룩한 성전, 그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끄는 동력인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 말씀이 바로 그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3.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의무에 대해 개인생활과 사회생활로 구분하여 권면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볼까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 모두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조병호 목사도 『제사장 나라 하나님 나라』 마지막 40장 ‘왜 예수님으로 튜닝(tuning)되어야 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있으나마나 하는 존재인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으로 튜닝되면 그들도 ‘세상의 빛’이 되고,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숨길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성전, 곧 교회로 만들고, 또한 동시에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을 숨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볼까요?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6-8)

하나님의 예정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넘어지는 자를 미리 정하셨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여 부딪치고 걸려 넘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음으로 이들 역시 다 돌아오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하나님께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더 이상 ‘노예 오네시모’가 아니라, ‘형제 오네시모’로 받아들이라고 권면합니다(몬 1:16).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노예이지만, 믿는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보면 형제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하며, 그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실현된 하나님 나라를 다 같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오늘 본문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출 19:5a)”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요 3:16) 이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그리스도의 일꾼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9)” 그렇습니다.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제사장인 우리들은 주께서 주신 사명을 이 땅에서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도 복이 쌓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 말씀을 보면 이러한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서 본문 말씀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예수께서 자신의 정체성을 제자들에게 묻는 장면입니다.

피에트로 페루지노, <천국의 열쇠를 받은 그리스도>(1482)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5)

그러자 베드로가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고백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따라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7-18)

그렇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세주, 구원자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세워졌고, 제사장의 나라가 확립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까지는 제자들에게 비밀로 주어졌습니다. 20절 마지막 절 말씀이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 16:20).” 이번 주 수요일은 사순절(Lent)이 시작되는 ‘성회수요일(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입니다. 따라서 다음 주는 사순절 첫째주일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현절기 동안 펼치신 하나님의 사역을 본받고, 또 사순절을 기념하며 그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비밀을 아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의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고백합니다.

5.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전에는 제사장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또 전에는 거룩한 제사장이 아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인 거룩한 성전을 통하여, 또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류호준 교수는 교회가 ‘환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부단히 세상의 경계를 넘어 약자를 찾아가고 이들을 섬겼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도 약한 이를 보살피는 환대의 정신을 갖추자.” 그렇습니다. 이것이 택하신 족속의 사명이고 왕같은 제사장의 직분이며 거룩한 나라의 마땅히 행할 바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용합니다. 류호준 교수의 고백에서 기독교 신앙의 참 뜻을 깨닫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런 분위기 안에 ‘은혜로 가득한 환대’를 불어넣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환대를 통해서 기쁨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마치 철철 넘쳐흐르는 물 대접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 입니다. 흘러내리는 눈물 속의 포옹, 숨 막히는 기쁨,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들쳐 메고 외치는 기쁨의 소리, 다른 사람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손들…. 우리가 은혜로 가득한 환대를 베풀 때, 우리는 환대받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우리 교회가 환대의 공동체가 되고, 또한 우리를 통하여 환대받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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