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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앞에 선 지식인, 무엇을 해야 할까

기사승인 2020.01.20  17: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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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3)

민중을 개념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까닭

민중신학자들에게 민중은 자명한 현실이 아니다. 민중신학의 전제인 민중은 제대로 포착되지 않고, 개념적인 안정성도 갖고 있지 않다. 억압, 수탈, 차별, 배제, 주변화 등 민중의 현실을 서술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개념들은 판에 박힌 상투어이기 쉽기 때문에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힘들이 배치되고 결합되는 장에서 민중이 어떻게 구성되고 그들의 현실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 때문에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을 개념적으로 규정하거나 민중 현실에 대한 설명을 도식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민중이 그러한 개념 규정의 틀과 설명 도식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을 표현하고 전개하는 움직임에 주목한다. 민중은 그러한 움직임에서 가장 잘 파악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중은 피억압이라는 개념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는 틀의 안에서 그 틀을 깨고 밖을 향하는 운동의 주체로서 파악된다. 착취, 차별, 배제, 주변화 등등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민중이 운동의 주체라면, 민중의 주체성은 운동을 가로막는 틀과 도식, 법과 제도, 고정시키고 정상화하고 안정시키는 권력의 장치들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민중의 운동은 민중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언제든 불안정하게 만든다. 만일 민중을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그 민중 개념은 어느 한 순간에 나타나는 민중 현실의 특이한 국면을 포착할 경우에만 그 한도 안에서 진리일 것이다. 만일 민중신학이 그러한 진리를 추구하여야 한다면, 민중신학자들은 부지런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민중 개념의 불안정성은 민중신학적 사유의 생산성을 촉발한다.

민중의 주체성이 민중 담론의 초점이다

그 동안 민중신학에 관한 논의에서는 민중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선배 민중신학자들이 말하는 ‘민중’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중을 가리키는 적절한 언어를 찾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민중을 ‘비시민’이나 ‘희생자’로 부르기도 했고, 담론의 ‘외부’로 설정하기도 했고, ‘유령,’ ‘다중’, ‘잔여’, 혹은 ‘하위주체’로 지칭하기도 했고, ‘민중-되기’를 화두로 삼기도 했다.

▲ 더 나은 사회를 열망하는 민중운동과 민중들의 요구 앞에 선 지식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Getty Image

민중 담론이 이처럼 다양하게 나타난 까닭은 1990년을 전후로 한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과학적 현실분석과 변혁 중심의 민중담론에서 벗어나고자 한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한 유파인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영향 아래서 민중을 새롭게 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러한 논의들은 민중을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이바지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논의들은 푸코, 들뢰즈, 바디우, 네그리, 데리다, 스비팍, 아감벤 등의 개성적인 언어와 사유의 틀을 통해서 보이는 민중을 서술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민중현실에 앞서서 언어와 사유의 틀이 먼저 주어져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하지만, 그 틀이 각각 어떤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철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도 별도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문제는 그때그때 전개되는 운동으로서의 민중 현실을 어떻게 포착하고, 이를 어떻게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필자는 민중이 있다, 없다, 하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은 민중담론을 고립시키거나 민중담론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라고 본다. 민중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민중의 함성을 들어도 듣지 못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 시대에는 민중의 규모가 엄청나게 팽창했고 그 분포가 광범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 시대의 민중이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미취업 청년들, 불완전 고용 상태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대다수 영세 자영업자들, 노인들, 외국인 노동자들, 성 소수자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누가 민중인가를 묻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중의 계급적 구성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민중의 현실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생각하였을 때, 그들이 날카롭게 포착한 것은 민중이 그들을 주인의 자리에서 밀어낸 권력의 배치를 의문시하고, 그것을 해체함으로써 주인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운동의 주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안병무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에 민중이 민족과 국민의 이름 아래 덮여 보이지 않고, 민중의 주체성이 철저히 부정되었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었다.”(1)고 지적한 뒤에, 곧바로 오늘 여기서 민중이 새 역사 형성의 주체로 움직이고 있음을 증언하고자 했다.

민중신학자들은 나락의 극한을 뒤집어 하늘을 보는 민중의 능력에 주목하고 그 능력을 발현하는 민중의 탄생에 논의를 집중했다. ‘한과 단의 변증법’이나 ‘민중의 자기초월 능력’ 같은 어구들은 민중신학자들의 민중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인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러한 능력이 있기에 민중은 억압하고 착취하고 차별하고 배제하고 주변화하는 구조들에 맞서고 그 구조들을 비판적으로 넘어서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러한 민중이 탄생하는 곳은 현실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현실의 한복판이다. 민중은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 주변화가 작동하는 현실을 구성하는 일부분이기에 그 현실을 안으로부터 파괴하고 그 현실을 넘어서서 새로운 현실을 형성하는 주체이다.

민중운동과 지식인

민중신학이 처음 태동할 때만 해도 지식인이 민중과 어떻게 연대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했다. 1975년 현재 4년제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학령인구의 5%에 불과했고, 민중 현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도 소수였다. 지식인과 민중이 각기 다른 사회학적 범주로 여겨지던 시대에 지식인이 민중의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지식인의 ‘먹물’을 빼고 민중의 자리에 현존해서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중이 스스로 말하게 하고 그것을 전하는 것이 지식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980년대에 이르러 민중운동은 대미 자주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 민족통일 등의 이슈를 아우르면서 급진화되었다. 민주노조 운동, 농민 운동, 빈민 운동 등 기층 민중의 운동이 활성화되고, 지식인들의 연대가 두드러졌다. 지식인들은 민중운동의 방향 설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거듭했다. 민중 세력은 1987년 헌정체제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근간으로 한 1987년 헌정체제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1990년을 전후로 현실사회주의 사회들이 급격하게 붕괴하자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인민인민주의 혁명 노선을 표방하였던 다양한 분파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학령인구의 80%가 대학 교육을 받는 우리 시대에는 1970년대나 1980년대처럼 소수의 지식인이 대중을 선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디지털 매체의 보급과 확산을 통해 저마다 세상의 일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의견의 흐름들이 형성된다. 대통령 국정문란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온라인을 통해 의견을 형성한 다양한 집단들이 군중을 이루어 촛불을 들고서 거대한 시위를 벌이곤 한다. 그러한 군중의 의견 형성과 시위를 조직하고 지도하는 지식인 집단이 따로 있는가? 무수한 시민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느슨한 협의체를 이루어 일종의 ‘집단지성’을 발휘하기는 하였지만, 그 협의체가 군중을 선도하고 조직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촛불시위가 우리 시대에 민중의 현실적 요구를 끌어안고 민중 운동을 펼치는 방식인가?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2016년과 2017년의 촛불 군중은 그들 자신에게서 끌어낸 엄청난 힘을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질서에 가두어둠으로써 억압적이고 민중배제적인 87년 체제를 해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촛불 군중은 87년 체제의 보수적인 자유주의의 틀이 허용하는 시위의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디지털 공론의 장에 올라온 무수한 지식들과 정보들은 촛불시위의 우산 아래서 매우 다양한 의견 집단들을 묶어내는 최소공배수에 불과한 자유주의적 헌정질서 수호의 틀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과 들어올 수 없는 것으로 확실하게 나뉘어졌다. 촛불시위를 발화시켰던 민중 세력의 요구는 부차화되었고,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더 이상 관심사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대통령 탄핵 국면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87년 체제의 틀에서 새로운 자유주의 정권을 선출하는 일이었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이 기업친화적이고 노동억압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자유주의 정권의 색깔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촛불의 대의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촛불시위가 설정한 한계에 가장 충실한 모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중운동의 대의에 충실한 지식인의 역할

민중이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 주변화가 작동하는 현실을 안으로부터 파괴하고 그 현실을 넘어서서 새로운 현실을 형성하는 주체라면, 그 민중의 운동은 방향이 분명해야 하고 그때그때마다 민중의 현실적인 역량에 맞는 과제들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 중요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민중운동의 대의에 충실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민중에 연대하는 지식인이라는 표현은 지식인이 양산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부적절한 표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민중운동의 대의에 충실한 지식인이라는 어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민중운동의 대의에 충실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의 핵심 모순들과 문제들을 은폐하는 갖가지 이데올로기들과 환상들을 폭로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관계들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요인들과 구조들을 또렷하게 밝히고,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그 요인들과 구조들을 혁파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토론을 촉진하는 일이다. 그러한 지식인들의 작업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민중운동의 헤게모니를 끊임없이 강화시키는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이 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운동의 대의에 충실하고자 하는 지식인들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주

(미주 1) 안병무, “민족·민중·교회,”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서울: 한길사, 1986), 215.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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